한국적 사유의 탄생과 전개과정을 탁월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넘을 수 없을 듯이 보이는 이 같은 편견에도 나는 한국 철학이 아직 이땅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함석헌이 물에서도 아니 녹았고, 불에도 아니 탔고, 칼로 찍어도 아니 끊어졌고, 망치로 때려서도 아니 바쉬진 것이 우리 말 우리 생각"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의 사유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아니 당신이 이 땅에살고 있는 한, 그 때문에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도 원효와 똑같이 통합의논리를 제시하는 논객이 있고, 지눌의 깨달음에 도달한 고승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이 땅 어딘가에 이황처럼 말과 행실을 일치시키려 애쓰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혹 당신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당신이다. 왜냐하면 이황의 글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부끄러워질수밖에 없으며, 조식의 상소문을 읽고 나면 당신이나 나나 그 경건함에 고개를 숙일 것이며, 박지원의 시를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눈물지을 것이고,
정약용의 논(論)을 읽으면 당신이나 나나 무릎을 치며 탄복할 수밖에 없을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한국 철학사를 펴내는 일은 동아시아고전을 연구하는 이가 『논어』를 주해하고 기독교 신학자가 성서를 주해하는 것만큼이나 학문적으로 뜻 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는 이런 학문적 의미 때문만이 아니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철학의 거장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삶의 문법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저변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바람이 이 책을 펴내는 데 더 큰 동기로 작용했다.

불교의 나라 고려에서는 대각국사 의천이 나왔습니다. 
국사라는호칭은 신라 시대에는 없었고 고려 시대에 
처음 생겼는데, 나라의 스승.
나라의 스님이란 뜻입니다. 
의천은 고려의 11대 왕 문종의 아들인 동시에13대 왕 
선종과 15대왕 숙종의 동생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스님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천이 선종에게 이야기해서 원효에게 화쟁국사라는 호칭을 내리도록 합니다. 여기서 고려의 스님들도 원효 사상의 핵심이 화쟁이라고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도 사회 분열이 심각해지면 원효의 화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와 상관없는 여러 매체에서 원효의 화쟁을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화합‘을 이루고자 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화합이 어렵습니다. 서로 이익을 다투잖아요. 이익을 다투는 사람들 간에 어떻게 몫을 나누는 것이 합당한지, 그에 대한 합의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지눌의 수행법은 돈오점수와 정혜쌍수입니다.
돈오는 단박에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점수는 조금씩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정‘은 ‘선정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마디(samadhi) ‘이고 ‘삼매(三昧)‘로 음역한 것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선정입니다. 
정(定)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물러 있는 상태, 혹은 그러한 수련에 들어간 상태를 말합니다. ‘혜‘는‘지혜‘ 입니다. 팔리어로 ‘pania", 산스크리트어로 ‘praina‘, 한문 음역으로 ‘반야죠. 선정은 돈오와 관련된 수행 방법이고 점수는 지혜와 관련된 수행 방법입니다. 정혜쌍수는 대번에 깨치는 선정의 수행인 돈오와 깨우쳤다 해도 계속해서 지혜를 쌓아가는 점수의 과정을 함께 닦아가야 한다는 지눌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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