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교과서의 클래식
























법을 크게 公法과 私法의 두 가지로 구별하는 것은, 로마법 이래 전통적인 
태도이다. 법질서를 이와 같이 나누는 경우에, 民法은 私法에 속한다. 여기서 민법의 의의를 확정하려면, 
私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사회관계를 
대상으로 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둘 중 앞의 것은 公法과 私法의 구별 표준에관한 문제이고, 뒤의 것은 私法의 실질적 내용에 관한 문제이다. 

성질설(종속설) 

법이 규율하는 법률관계가 평등관계이냐 아니냐를 그 표준으로 하여, 불평등관계 즉 권력 · 복종의 관계(수직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공법이라고 하고, 평등 · 대중의 관계(수평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사법이라고 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도 공법 · 사법을 구별하는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지만, 역시 비난은 있다. 
즉, 국제법은 공법에 속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인데, 
성질설에 의하면, 국가는 서로 평등한 까닭에, 
그것은 사법에 속한다고 하여야 하는 결과가 되어, 
이 표준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민법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불평등관계이므로, 그것을 
규율하는 법은 공법이라고 하여야 하는 부당한 결과가 된다.

주체설 

이 견해는 규율하는 생활관계의 주체에서 구별의 표준을
찾는다. 국가 기타 공공단체 상호간의 관계 또는 이들과 
개인의 관계를 규율하는법이 공법이고, 개인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사법이라고 설명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국제법은 공법이라는 것이 된다. 
한편,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사인과 매매 · 운송 등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를 공법에 속한다고 하여야 하는 
부당한 결과가 된다. 이러한 부당한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국가나 공공단체가 사인과 같은 자격으로 개인과 관계를 
맺는 경우에, 이를 규율하는법은 사법이라는 예외를 
인정한다. 이 점에서 이 견해는 구별의 표준이 
이원적이라는 비난이 있다. 그러나 가장 알기 쉽고 또한 
실질적으로 공법 · 사법을 올바르게 구별하고 있는 
학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권 특히 소유권과 계약의 자유에 새로운 공법적 제한을 
더하는 국가의 사회정책·노동정책 및 경제정책적 입법이 
점점 많아지고, 이들이 쌓여서 공법 · 사법의 어느것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의 법영역을 이루게 되었다. 
노동법(노사관계 또는 근로관계및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규율대상으로 하는 법의 총체, 경제법(국민경제 전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입법의 총체. 독점금지 · 
경제통계 · 소비자보호에 관한 입법이 특히 중요하다), 
사회보장법 (자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구민에 
대하여 공적 부조 · 보험 등의 방법으로 일정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고,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문화적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최제한도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법의 총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독자의 사회적인 법질서, 
즉 사회법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종래에는 전적으로 사법의 지배에 
맡겨져 있었던 사적당사자 사이의 경제적 관계에 대하여 
국가가 끼어들고 참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법적 법률관계에 공법적 요소가 파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학자들은
"사법의 공법화니, 공법과 사법의 혼합 또는 공법에 의한 
사법의 지배"라고 부르고 있다. 

사회법은 이제는 전과 같은 공법 · 사법의 구별을 가지고는 분간할 수 없는, 말하자면 그것은 중간적 영역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공공복리의 원리에 
의거하여, 사회법이 확대·강화되는 경향이 더욱 현저하다. 
뿐만 아니라, 장차 공법과 사법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다른 방면에서도 마련되어 있다. 헌법은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모든 국민에게 근로권(헌법 32조), 
근로3권(헌법 33조), 생활보호(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헌법 34조), 환경권(헌법 35조), 
혼인과 보건을 보호받을 권리 (헌법 36조) 등을 인정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국가는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있으며(헌법 119조 2항), 
또한 여러 곳에서 공공복리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헌법 23조 · 37조 등 참조). 

이러한 헌법의정신에 입각한 입법으로 말미암아 각종의 
사법적 법률관계에 공법적 요소가 끼어들 것이다.
나아가 ‘기본권의 대사인‘효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이 사인들 사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결국 공법과 사법은 앞으로 더 접근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그만큼 공법과 사법의 구별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볼 때에, 공법 · 사법의 
구별을 부정하는 학자나학파(예컨대, Kelsen과 그의 학파=Wien 학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사법의 구별은 단념하여야 하는가? 비록 그 구별이 곤란하다고 하더라도, 구별에 어떤 의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하나하나의 법률에 관하여 공·사법의 구별이나 공법관계·사법관계의 구별을 뚜렷하게 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 
사이에는 각각 다른 법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즉, 사법원리와 공법원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 특히 사법에서는 개인이 자유로이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 넓은 범위에서 인정되며(사적 자치의 원칙), 이 점에서 공법과 다르다. 
이와 같이 사법원리와 공법원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법·사법을 구별할 실익이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규율할 규정이 분명하지 않은 때에는, 이에 적용할 법규와 법원칙을 결정하기 위해서도 공·사법의 구별이 필요하다. 
법률상의 쟁송에 관하여 행정사건과 민사사건의 구별의 
표준을 세우기 위해서도, 공법과 사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행정소송은 피고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행정법원의 전속관할이다. 행정소송법 3조 · 9조·38조 · 40조 · 46조 참조). 
결국 실정법이 그 구별을 인정하고 있고, 또한 실정법상 
공·사법의 구별이 가지는 위와 같은 의의에 비추어, 적어도 실정법상 공법 · 사법의 구별은 여전히 유지되어야 한다.

재산관계와 가족관계 

개인 상호간의 생활관계는 이를 자기보존위한 관계와 종족보존을 위한 관계라는 서로 성질을 달리하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생활을 하려면 각종재화의 지배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보존을 위한 사회관계는 결국재화를 획득하고 지배하는 것에 관한 관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경제관계」 또는 「재산관계」라고 부른다(보통 일반적으로는 이들 두 용어 중 재산관계」라는 말이 관용되고 있다. 한편 사람은 남녀의 성적 결합에 의하여 자손을 늘리고, 집단을 이루어 외적을 막고 자연의 위협과 싸우면서 그의 존속 · 발전을 꾀하는 종족보존의 본능도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족보존에 관한 사회관계를 「가족관계」라고 
일컫는다.

종래의 통설에 의하면, 가족관계는 다시 친족관계와 상속관계로 잘게 나누어진다고 한다. 친족관계는 특정의 남녀의 결합에 의한 일정범위의 혈연적 집단,
즉 친족집단에서의 생활관계를 의미하며, 상속관계는 친족집단의 생존의 기초가 되는 재산의 승계(재산상속)에 관한 
생활관계라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설은 과거의 민법 친족상속편에 대해서는 타당한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어도 지금의 우리 민법에서는 합당하지 않다.즉, 1990년 말의 민법개정으로 종래상속편에서 규율하고 
있었던 호주상속을 호주승계로 변경하여 친족편으로 
옮김으로써 그 후 호주제는 2005년 민법개정으로 아예 
폐지되었다. 현행 상속법은 사람의 사망에의한 재산의 
승계만을 규율하는 근대적인 순수한 재산상속법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행 상속법은 재산관계만을 
규율하는 것이라고 하여야 한다. 본래상속제도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그의 유산이 무주의 재산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며, 따라서 상속법은 그 본질이
재산에 관한 법이다.

하여 마련된 것이며, 따라서 상속법은 그 본질이 재산에 
관한 법이다. 상속법이 배우자와 일정범위의 혈족을 
상속인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윤리관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일정한 가족 구성원에게 
유산이 승계된다고 해서 상속관계를 구태여 재산관계가 
아닌 가족관계라고 할 것은 아니다. 
요컨대, 현행법에서상속관계는 순수한 재산관계라고
하여야 한다.

물론 재산관계와 가족관계는, 서로 전혀 다른, 그리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개의 세계는 아니다. 사람이 재화를 얻고 지배하는 것은 종족보존의 본능과도 관련이 있고, 또한 종족보존의 관계도 자기보존의 본능에 의하여 크게 영향을받는다. 그러나 두 개의 사회관계가 질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두 관계는 어떠한 특질을 가지고 있을까? 
재산관계는 각자가 자기의 이해를 고려하여 타산적으로 
이기심을 가지고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만들어진,선택,계산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가족관계는 
종족보존의 본능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해의 타산을 
넘어서, 애정을 가지고 각자가 인격적으로 맺어지는 
「주어진」 「숙명적인 관계이다.
위와 같은 재산관계와 가족관계가 바로 사법이 규율하는 
사회생활관계, 즉「사법관계」이다.

1. 일반법과 특별법 

사람 · 장소 · 사항 등에 특별한 한정 없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을 일반법」 또는 「보통법」이라 하고, 
한정된 사람 · 장소 또는 사항에 관해서만 적용되는 법을 
특별법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구별은 상대적인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상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다. 그러나 각종의 
상사특별법은 상법의 특별법이다. 일반법·특별법을 
구별하는 실익은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하여 
적용되는 데있다 (특별법 우선의 원칙. 
즉, "특별법은 일반법을 깨뜨린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항에 관하여 특별법이 있으면, 
그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해서 먼저 적용되고, 
그러한 특별법이 없는 경우에 일반법이 적용된다.

2. 일반사법으로서의 민법 
사법을 위와 같이 일반법과 특별법으로 나눈다면, 민법은 
사법의 일반법, 즉 일반사법이다. 그것은 사람 · 장소 · 사항 등을 한성하지 않고 개인의 일상. 보통의 사적 생활관계에 
적용되는 원칙법이다. 민법은 사법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법이다. 말하자면, 민법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각종의 특수 · 구체적인 사법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많은 
특별법들이 쌓아 올려지고,전체로서 「피라밋」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전체가 사법의 법체계, 즉 사법질서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3. 특별사법일반사법인 민법에 대하여, 많은 특별사법이 
있다. 그런데 가족관계에 관해서는 민법 이외의 특별법이 
몇 개 되지 않으며, 특별사법의 대부분은 재산관계에 
관한 것이다. 특별사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를 
규율하는「상법」(1962년 법 1000호)이다. 
그러므로 상법이 무엇이며, 민법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사법으로서의 상법은, 일반사법인 민법과 비교할 때, 어떠한 특질을가지는 것일까? 원래 기업의 주체, 즉 상인은 
일반사인과는 다르다. 개인주의적인 사법, 특히 재산법은 
날카롭게 이익을 인식하고 항상 이를 뒤쫓는 이기적인 사람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 전형적인 사람이 바로 상인이다. 그는 이윤의 추구와타산으로 밤낮을 보내며, 아주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그리하여 상인의 업무인 기업활동 즉 상행위는 영리성을 가지고 있고, 상인은 이를 기술적·합리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반복성과 집단성, 또는 그 결과로서 
개성의 상실과 정형화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관계에는 이와 같은 특성이 
나타나는데, 그에 적합한 특수한 제도들(회사, 어음 • 운송 · 보험 등)이 형성되고, 상법이 민법의특별법으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상법은 가족관계나 일반의 재산관계를 
규율하는 법처럼 각 경우의 당사자의 처지를 고려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실현하려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견지에서 합리적인 의사를 존중하고, 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그 지도원리로 삼게 되었다.

1. 실체법과 절차법

권리,의무의실질적 사항을 규정하는 법이 실체법이고,
실체법상의 권리를 실행하거나 또는 의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절차를 정하는 법이 절차법이다.

2. 실체법으로서의 민법

실정법을 실체법과 절차법으로 나누는 경우에,
민법은 실체법에 속한다. 법치국가를 원칙으로 하는 
근대국가에서 법의 위반이 있거나 법률관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에 최종적으로는 재판을 통해서 국가권력의
발동을 요구하여야 한다. 실체법이 정하는 내용을 법원 
기타의 공적 기관에 의하여실현하는 절차를 정하는 
법이 절차법이므로, 민법도 궁극에 가서는 절차법을 
통하여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체법과 
절차법, 민법과 민사절차법의밀접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법의 연원淵源(Rechtsquellen)을 짧게 줄여서, 
「법원(法)」이라고 한다(이장에서 다루는 법원은 재판을 담당하는 法院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용어는 여러 가지의뜻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반드시 
명백한 용어는 아니지만(법을 형성하는 원동력, 법을
형성하는 기관, 법을 형성하는 형식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은 법의 존재형식 또는 현상형태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원래 법은 사회생활의 준칙으로서 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며, 공간적 · 외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 사회규범으로서 그 내용은 
어떤 소재를 통하여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법은 일정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존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법을 인식할 수 있는법이 드러나 있는 모습을 
가리켜 법의 연원 또는 법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민법의 法源은 실질적 의미의 민법의 존재형식을 말한다.

법원에는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다. 성문법은 문자로 
표시되고 일정한 형식 및 절차에 따라서 제정되는 법이며, 
「제정법」이라고도 한다. 성문법(제정법)이 아닌 법을 
불문법이라고 한다. 불문법으로서 보통드는 것으로는 
관습법,판례법,조리 등이 있으나, 판례법과 조리의 법원에 
관해서는 나중에 살피는 바와 같이 학설이 나누어져 있다.
한 나라의 법이 대부분 성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에, 
그 나라는 성문법주의를 취한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문법주의의 나라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제정법을 제1차의 법원으로서 인정하는 주의가 성문법주의이고, 판례법 · 관습법 등을 제1차 법원으로서 인정하는 
주의가 불문법주의이다. 어느 주의를 채택할지는 주로 
전통과 정책에 의하여 정해진다. 사법에 관하여 본다면, 
영국은 불문법주의이며, 부부재산관계 · 동산의 매매 · 
건물임대차 등의 특별한 사항에 관해서는 제정법이 있지만, 민법 전체를 포함하는 제정법은 없다. 미국의 많은 주(State)도 이에 가깝다. 이에 반하여, 독일·프랑스 · 스위스를 비롯하여 유럽대륙의여러 나라들은 모두 성문법주의를 취하여 민법전 · 상법전 등의 대법전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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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두고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사람은 제17대 대통령 이명박과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년 기념사업과 건국절 제정 시도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건국 100주년 선포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1948년 정부 수립과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다르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였다.
여기에 역사 교과서‘ 논쟁이 더해지면서 진보와 보수진영 간의 이념대결이 빚어졌다. 그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건국과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학계와 언론에서 ‘역사전쟁‘이라고 표현하는 데서 짐작할 수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48년 8월 15일이라는 ‘1948년 건국설‘은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었다. 1998년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출간한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처음으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했던 그는 ‘건국절 제정‘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거대한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2016년 "건국일이없는 대한민국은 생일도 없는 국가"라고 비판하면서 ‘건국 논쟁‘을재점화시켰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어간다. 건국의 역사가 70년이 되는 국가에서 조국의 건국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대한민국말고 또 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건국 후 67년이 넘도록 건국일이 언제인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국가이다.

‘1948년 건국설‘의 또 다른 주창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이영훈 교수이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동아일보>에 실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칼럼을 통해서 "그해(2008년)부터 지난 60년간의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이다. 나에게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어느쪽이 중요한가라고 물으면 단연코 후자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우리 2000년의 국가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을 선포했고, 국민 모두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 대다수의 민초에게 조선 왕조는 행복을 약속하는 문명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성신여대 김영호 교수는 "분단 극복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국사학계의 역사관이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어서 건국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조망하는 새로운 역사 인식으로서 건국사관 정립의 필요성을 주창하였다.

지금까지 왜 건국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했을까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인 에릭 보글린(Eric Voegelin)의 ‘현실의 일식 현상‘이라는 용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보글린은 현실을 왜곡하여 인류를 파탄으로 몰아간 현대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상이나 역사 인식의 허구성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은 분단사관과 
통일지상주의 역사관이었습니다.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은 근대국가적 의미에서 미완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하고, 건국조차도 조국의 분단을 불러 온 민족분열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에 비해 
건국사관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발전과 시련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는 역사 인식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논쟁은 곧 헌법을 둘러싼 논쟁이다. 한시준의 주장처럼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문화하였다. 이것이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을 1948년에 재건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면서 역사적으로 ‘1919년건국설‘을 뒷받침하는 명분으로 이해되었다. 그뿐 아니라 1987년에개정된 현행 헌법의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헌법은 1919년건국을 명문화하였으며, 1948년 건국은 이러한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1919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측의 논거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헌법학자인 서울대 김철수 명예교수는 "헌법 전문도 독립정신의 계승을 말하고, 대한민국의 재건이라고 하는 점에서 임시정부의 종말을 인정했기에 임시정부가 계승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계승‘과 ‘재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정신이나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지,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법적인 동일체를 나타내는 
말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현재는 2001년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한 판결문>에서 
헌법 전문에3·1운동을 계승한다는 것은 ‘연혁적 · 이념적 
선언‘ 이라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3·1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1948년 건국에 대한 ‘연혁적 이념적인 기초‘에 불과하고, 
국가로서의 법적인효력은 없다는 것을 암시한 취지로 
원용될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1919년 9월 6일 상해 임시정부는 
한성 정부와 노령 정부를 통합하는 절차를 거쳤다. 
개헌 형식을 거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국호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대한민국을 사용했으며,
정부 조직은 한성 정부의 것을 채택했다. 
그 결과 집정관을 대통령이라는 칭호로 바꾸어 한성 정부의 조직과 각료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상해 임시정부 안에서는 이들 조직간의 내부 갈등이 여전했으며,
1925년 3월 26일 임시의정원에서는 이승만 임시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런데 탄핵 사유중의 하나가 임시정부의 결의를 부인하고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승만의 취임사는 한성 정부의 역사성을 말한 것으로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과는 무관한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고 
1781년까지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인 결과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건국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것은 건국이 완성된 
정부 수립보다건국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아서 시작된 건국절 제정과 건국 시점 논쟁은 역사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성찰해 보면 그로 인해 얻은 교훈 또한 
적지않다.
그런 점에서 원로 사회학자인 신용하 교수의 당부는 
주목할 만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서로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후자는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마지막까지 피 흘려 싸운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전자는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 건국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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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상의 핵심적인 사상을 담아낸 책
번역이 매끄럽고 잘 되었습니다.
















선교사에 의하여 중국문화가 서양에 전해졌을 때 
서양의 사상가들이 가장 경이롭게 여겼던 점은 바로 중국 사람들에게 
서양의 기독교와 같은 일신교의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양호한 
도덕문명과 사회질서가 가능한가 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상제의 감화가 필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학습과 깨달음을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아와 공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타자와 
도의적인 것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학자 한스 큉(Hans King)은 이것이 바로 중국의 
지혜이고 공자의 지혜라 여겼다.

공자는 ‘예‘의 함의, 본질과 기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밝혔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어질지못하면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덕이 없고 진실한 감정이 없는 예약은 다만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며 허위적인 
예의범절일 뿐이고 심지어 지배적인 사회적 강요로
전락되어 사람들이 진실한 개체로서의 사람이 될 수 
없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공자가 비판하려는 것이다.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가 답하였다. 

"훌륭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스럽게 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게 행하여야 한다. 상례는 겉치레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인이 멀리 있겠는가? 내가 인을 바라면 곧 인이 이른다. 
여기서는 예약의형식 배후가 생명의 감통 인간의 
내재적이고 진실한 감정과 도덕적인 자각임을
지적하였다. ‘인도‘와 그 표준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사람이 자각이 있고 ‘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도덕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주재하는 것임을 확실하게 
나타내었다. 도덕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자기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즉 타율의 제약이나 타력의 강요에 의하여 좌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 도덕적인 
주체성과 도덕적인 자유를 인식한 문화 위인 중의 
한사람이다. 물론 이는 결코 ‘禮‘의 적극적인 의미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고, ‘예‘는사회적인 절도이며 ‘예‘는 
군자의 행위가 일정한 절도를 유지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주체성, 자율성 원칙의 확립에 유리하다. 
‘예‘에 부합하고 ‘예‘를 실행하는 과정은 인성화의 과정이고 
특수한 사회조건 하에서 ‘인‘(내재적인 도덕)의
외재적인 표현이다.

공자는 ‘인‘과 ‘예‘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군자의 인격을 배양하고 도덕적인 자기수양에 
종사하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로부터 안의 의미는 수가 즉 자신에 대한 수양에 
있고 ‘예‘를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교양이 있게 되는 동시에 ‘예‘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예‘의 내재적인 핵심을 확실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하여
 ‘인덕‘을 자각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경지에 도달하고 도덕적인 주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와 초기의 유가가 주장하였던 사랑은 차등이 있는 
사랑이었다. 공자가 비록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기독교의 ‘박애‘ 묵자의 ‘겸애‘와는 매우 큰 구별이 있다. 
사랑에 차등이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신의 부모,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정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제자는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손하고 삼가고 미더우며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이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는 소년이 집에서는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웃어른을 공경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신중하고 
말에 신용이 있으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인덕‘이 있는 사람과가까이함을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전제는 ‘효‘ 즉
우선 자신의 부모를 사랑한 뒤에 다시 확충시켜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유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데 근본이 서야 도가생긴다. 효와 제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여기서 ‘위인‘은 바로 행인안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즉 ‘인‘을 실천함은 ‘효‘와 ‘제로부터 시작하고 ‘효‘와
‘제는 ‘안‘의 한 가지 일이며 ‘인‘의 시작이지 인의 전부 
혹은 근본이 아니라는것이다. ‘인은 근본이고 ‘효‘와 ‘제는 
쓰임(用)이다. 공자는 부모와 형제, 자매에대한 진실한 
사랑과 존경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 타인에게 미칠 것을 
주장하였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 주고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남도 이루도록 해 준다. 자신의 처지에서 남의 처자를 유추할수 있는 것을 인의 방법이라 이른다."
무엇이 仁인가? 仁은 바로 자기가 서려고하면 동시에 
남을 깨닫게 하여 남도 설 수 있게 하고, 자기가 
통달하면 남을 도와주어 남도 통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생활에서
사소한 것으로부터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인도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공자의 뜻은 외부에서 강제로 남을 서거나 통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분위기 혹은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남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똑바로 세우고 사회에정착하고 세상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진 사람의 풍격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자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음을 
중시하였고 공권력은반드시 백성들의 이익을 수호하고 
백성들에게 도움과 실제적인 혜택을 주어야함을 
강조하였다. 정치를 하는 자의 지혜는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백성들이 이익을얻을 수 있는 곳을 따름으로써 
그들이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성들이 이득을 얻음에 정부는 자원을 소비하지 않거나 
적게 소비하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늘 백성들을 징집하여 노역을 시켰기 
때문에 대량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있었고 가끔은 확실히 
농사 시기를 어기기도 하였다. 농업사회에서 백성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거둘 수 없다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따라서 공자는 노동할수 있는 시간 조건과 사람을 선택하여 노동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니
누가 그를 원망하겠는가?

관리철학의 측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德으로써 정치함은 마치 북극성이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음에도 모든 별들이 그것을 에워싸는 것과 같다."
정치를 하는 자가 만약 도덕적인 인격으로써 국정을 
주관하고 다스리거나 혹은사회를 관리한다면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에워싸는 것처럼 사람들의 옹호를 
받게된다는 의미이다. 관리하는 자는 권세나 지위가 
아닌 덕에 의한 정치, 인격으로써마음으로 기꺼이 
심하게 하여야만 동료나 아랫사람들한테 추대를 받게 된다.
실제로 매 부서, 매 기업의 주요한 리더가 만약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고 몸으로써힘써 행하며 솔선수범하여 
규범을 엄격하게 지키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또한
의지력, 이상, 아량을 갖추어 포용할 수 있다면 
이 부문은 응집력이 있게 된다.
이는 법규를 반대하고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의 구성, 법규의 관리도매우 중요하지만 제도와 
법규는 어디까지나 사람에 의하여 집행된다. 
현대사회에서는 반드시 법치와 덕치를 결합시켜야 한다.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수치를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수치심을 느껴 선에 이른다."

이 말의 뜻은 만약 정치를 하는 자가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백성들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범죄는 면할 수 
있지만 수치스러운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치를 하는 자가 도덕으로 이끌고 ‘禮‘의 문화로 
백성들을 교화하면 백성들은수치스러움을 알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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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을 고찰해보다.










이른바 ‘동아시아유학이라는 연구 분야는 공간적 
개념이자 시간적 개념이다.
공간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유학은 유학의 사상과 
그 가치 이념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전되고 의미를
형성한 것을 가리킨다. 이런 차원에서의 동아시아 유학은 송명유학, 도쿠가와유학 또는 조선유학의 범주보다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동아시아적인‘ 차원에서 보는 유학의 문제는 중국, 
일본 또는 한국이라는 단일지역에서 보는 유학 내부의 
문제와는 대단히 다르다. 시간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유학은 각각의 국가별 유학의 전통에서 벗어난 
경직되고 변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동아시아 
각각의 국가별 유학자들의 사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시기에따라 변화되고 시대와 함께 발전한다. 
따라서 ‘동아시아유학은 그 자체가 다원적인 
학문 분야로서, 여기에는 전근대적인 일원론의 
전제된 설정이 없기 때문에
‘중심 vs 변경‘이나 ‘정통 vs 이단‘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문화 동아시아‘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두 가지 방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문화전파의 현지화라는 시각에서 볼 때, 
그 어떤 문화이든 다른 지역에 전파될 때 모두 다 
그 지역의 문화와 부딪치고 적응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과정이 바로 ‘현지화‘의 과정이다. 
문화전파는 결코 상품 수출과 같이 수입국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한 문화와의 대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문화전파는 ‘문화교섭‘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동아시아는 지리적 개념이자 문화적 
개념이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동아시아를 지리적 개념으로만 
강조한다면, 동아시아유학개념의 제안은 동아시아 
자체에 문화적 내포가 없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의
유학은 일방적인 전파일 뿐 현지 문화와의 교섭 
과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유학이 동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통제적 개념이되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자체가 아무것도없는 문화 부재의 
지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
유학은반드시 ‘중화문화일원론‘이나 ‘중국 중심론‘의 
변칙으로밖에 될 수 없는데, 이는오늘날 세계 문화 
다원화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편견이다. 
그렇지않으면 ‘잠재적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가 ‘동아시아는 문화지리적 개념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또 다른이해, 즉 동아시아를 정치질서와 지리정치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돌려야 하기 때문인데, 
20세기 초 ‘동아시아‘ 개념이 일본에서 유행될 때 바로
‘지정학적 냄새를 짙게 풍겼었다. 예컨대, 모두가 익히 알고 있고, 아픈 기억을지니고 있는 ‘대동아공영권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의미가 강한 지정학적 개념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미 사어가 되었고, 정직한 지식인이라면
그것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화지리적 
개념인 동아시아를 강조하게되는 것은 이처럼 지정학적 
개념인 동아시아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차단하기위해서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적 내포를 가진 지리적 존재로 
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동아시아 자체가 의미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할 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에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명확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동아시아 지역문화에서의 중국유학의 
역사적 문제를 재조명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설정한 동아시아유학이 왜 필요한가 
라는 문제에 대답해보기로 하자. 
이에 앞서 ‘동아시아유학‘의 연구 성격과 대상, 
접근 방법 등에 대해 몇 가지 초보적인 이해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만 들어 거칠게 말해보면,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동아시아유학은 동아시아문화나 동아시아사상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동아시아유학 연구는 성격상 다문화 
비교 연구에 속하며, 동아시아문화 자체가
다원성이란 근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유학 또한 구조상의통체성이나 역사상의
 ‘동일‘이 있을 수 없다. 이는 다문화 비교 연구가
성립될 수 있는 전제이기도 하다.

둘째, 중국에서 발원한 유학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발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시간과 지역적 공간에서 이질성을 
드러내고, 그 과정도 반드시 현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중국유학이나 일본유학 또는 한국유학은 구조적인 
형태 및 의리적인 천명에 있어서 가지각색이다. 
바로 이런의미에서 동아시아유학은 다원적인 
학술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 다원성 때문에 서로 ‘타자‘가 되면서도 또한 
서로 주체가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중국은 ‘타자적인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절대성 · 보편성의 대표자인 것도 
아니고, 중국에 대한 ‘타자화‘를 통해 일본 자체의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은 중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들은 서로 타자가 되고 서로 주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타자‘나 ‘주체‘만 강조한다면,
이른바 이러한 ‘타자‘나 ‘주체‘는 배타성을 지니게 
되어 타자/비타자‘라는 이원적 대립의 올가미 속에
빠지기 쉽다.

넷째, 중요한 것은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문화적인 차이, 다름, 타자가 소멸되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문화적인 공감의식이 뚜렷해지는 요
즘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차이, 다름, 타자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화이부동‘과 ‘동즉불계‘중국의 옛라는지혜가 현 세계의 
서로 다른 문명 간의 문화적 공감에 하나의 
관념적 기초를제공해 준다.

다섯째, 동아시아유학 연구가 다문화 연구인 이상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다른 문화 간의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는 
또한 오늘날 세계의 ‘문명 대화를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된다. 본질에 있어서 대화는 
상대를 정복하는 것도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것이므로 당연히 ‘타자‘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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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을 동아시아 사상사적 맥락에서 설명하다.






























원래 ‘주리‘와 ‘주기‘라는 용어 자체는 사단칠정논변에서 
이황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가 이 용어들을 사용한 
맥락을 보면 그것은 심성론의 관점, 즉 지각의 차원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와 기리는 지각의두 요소 중에서 
사단의 도덕감은 ‘리를 주로 한 것‘으로, 칠정의 일반감정은
 ‘기를 주로 한 것‘으로서 각각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리는 선험적인 원리들을 함축하고 있는 
이성일 뿐만 아니라, 지각상에서 자각되는 
당위준칙의 출처로서 도덕적 이성을 의미한다. 
기는 육체형기와 감각기관, 그리고 외물을 지각할 때 
받아들이는 감각적 질료와이것에 연결되어 있는 
심리적 감성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이 점에서 주리와 주기는 존재론보다는 지각론적인 
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대승과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황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사단을 선험적인리 위주로 설명하는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단과 칠정을모두 경험적인 방식으로만 설명하는 입장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황은 주리론이고 기대승과 이이는 주기론이라 
볼 수 있으며, 지각론적 맥락에서 각각 ‘이성주의‘와
 ‘경험주의(자연주의, 심리주의)의 입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리 주기 개념을 주로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왔다. 그러나 본래 그것은 존재론보다는 
심성론, 구체적으로는 지각론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주리 주기 도식은 조선성리학에서도 출된 것이지만, 인식론적 맥락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철학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희 이후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송명리학은 
대체로 주리의 입장을 취하다가 청대 고증학과 일본 
에도시대고학에 이르러 점차 주기론이 강세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적 실증을 중시하는 주기론의 
입장이 문헌 고증의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주희의 철학적 입장과 노선을 이황과 이이 중 누가 더 
정통으로 계승하였는가 라는 도통론의 관점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철학에서는 독창성이 중요하지 
누가 무엇을 더 충실히 계승하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통론은 학문적 논리나 합리성이 
기준이 되는 것이아니라, 흔히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이나 
학파의 정치적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를 배후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도통론은 철학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을 
해석하는 바람직한관점과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주성리학의 철학적 근본 문제, 즉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들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접근법이
가장 적절하다.

대체로 중국 명대의 유학자들에 비해 조선성리학자들은 
지각론적인 분석을 좀 더 중시하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성향적 차이에 근거해서 중국은 변증법적인 
종합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논리적인 분석을 중시한다고 단순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황이 기대승의사칠논변에서 했던 다음 언급은 
조선성리학의 이러한 특성을 잘 말해준다.

 "내 생각에는 다른 것 가운데 나아가 같은 것이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 두 가지를 
하나로 뒤섞어서 말한 경우가 진실로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것 가운데 나아가 다른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두 가지는 나아가 말한 것이 본디 주리와 주기의 
같지 않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와 기로 분속시킴이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여기서 이황은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을 하나로 하여 
뒤섞어서설명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비록 기대승이나 이이도 이황 못지않게 분석적인 경향을 내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혼륜‘이라고 
하는 뒤섞어 말하는 관점을 나타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본체론적 경향과 사유가 기대승과 이이에게 내재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황은 사단과 칠정에 
대한 분석에서 각각 나아가 말한 것에 주리와 주기의 
다름이있다고 주장한 것이고, 이에 대해 기대승은 
그렇게 나누어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황의 주리론이 지각론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완성된 
호발설의 명제인
"사단은 리가 발하되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하되 리가 올라타는 것이다"라고 말
하게 되는 전후 맥락에서 잘 나타난다. 
이황의 논쟁상대인 기대승은 주기의 입장에서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분석할 수 없으며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그도 천명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지각의 입장을 수용하였으나, 그것은 단지 지각을 
구성하는 형식적인측면에 국한되었다. 천지만물의 
리와 기는 인간에게도 적용되므로, 지각의 재료는 
기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주재하는 원리는 리가 된다. 
기대승은 이러한 지각의 형식에 초점을 맞춰서 사단과 칠정 
모두 리와 기가 결합한것이므로 리와 기로 분속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칠징을 사단과 대립시켜 각각 구분되는 것으로 
말한다면, 칠정과 기의 관계는 사단과 리의 관계와 같습니다.그 발하는 것이 각각 혈액이 있고,
그 이름이 다 가리키는 바가 있으므로 주가 되는 바에 따라 분속시킬 수 있는것입니다. 나도 친정이 리와 상관없이 
외물이 우연히 모여들어 감응하여 움직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사단이 외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도 실로 칠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것일 뿐입니다.

사단이든 실정이든 지각의 요소로서 리와 기가 모두 
작용하므로 나누어분속시킬 수 없다는 기대승의 비판은
사실상 지각론적 맥락에서 이황의견해를 공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지각의 요소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내용상에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주희가 지각된 내용으로써 구분했던 
도심과 인심에 각각해당시키면서 양자를 엄격히 
구분했던 것이다. 도덕감정으로서 사단은
도덕이성(리)이 발동하되 그것에 질료가 따라가서 
그대로 당위의식(도심)이 성립되는 것이요, 
일반감정으로서 칠정은 육체적 형기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경험적 질료가 발동하되 그 위에 지각의 
원리가 작용함으로써감각적 의식(인심)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 당위적 내용 자체는 모든 감각적 질료를 
초월하여 오로지 선험적인 도덕이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칠정의 일반감정도 도덕감정처럼 리가 필요하지만, 
이때의 리는 지각의 재료를 주재하는 지각의 원리를 의
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칠정의 내용은 육체적 형기
(감각기관)가 외부와 감응하여 유입된 경험적 
질료(기)로부터 온 것이다. 이황의 호발설의명제는 
지각의 차원에서 도덕의식과 일반의식을 리와 기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반면 기대승의 경우 지각의 형식적 요소로서의 
리와 기가 사단칠정에 공통적으로 개입되지만, 
도덕적 선악을 결정하는 객관적 기준은 리와 기이외에 따
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자연적인 심리적 결과인 칠정 
가운에 외부 상황에 부합하고 예의 절목에 들어맞는 
것을 사단이라 칭할 뿐이지, 칠정 이외에 별도의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단을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규정할 수 있는 내적인 근거는 발견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 생명의 선만을 보고 도덕 생명의 선지선을 무시하는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자연히 발현한 것이 곧리의 본체의 그러함이다"라는 기대승의 주장은 지각한 상태가 객관적 규범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선악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황은 이러한 주장이 오류라고 보았다.
그것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의 결합이라고 하는
지각형식상의 공통성 때문에 동일시하되,지각된 내용에 대해서는 양자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뒤섞어 혼륜시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단의 지각 내용의 근원이 되는 리를
마음속에서 자각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끝내 리와 기를 동일시하는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황도 지각작용에 있어서 도덕이성으로서 리와 
경험적 질료로서 기가 모두 필수불가결한 
두 형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단칠정의 
지각된 내용은 서로 다르기때문에 하나는 리를 주로 하고 
다른 하나는 기를 주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의 지각 내용은 순수하게 선한 도덕이성으로부터 나
온 당위의식이므로, 외부 대상에 의한 일반적 감각이나 
감정과는 달라야 한다.
칠정이 경험적 질료인 기에 의해 촉발되는 수동적인 
감정이라고 한다면,
사단은 경험을 통해서 지각하되 내용상 도덕이성(리)으로부터 발출되어나온 능동적 감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의 지각 내용적 근원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이황의 입장은 도덕적 선과 가치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경험을 경유하되 경험적 질료의 감각 내용을 초월한 것으로서, 순전한 도덕이성의 발로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황의 도덕론은 주희의 인심도심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황이 사망한 후 일어난 성혼과의 논쟁에서 이이는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 기대승의 입장을 분명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기대에 비는해 이이의 주장은 좀 더 
명확했다. 그는 이황의 호발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단과 칠정 모두 "기가 발하여 리가 올라탄 것일 뿐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을 주장했다. 
기대승에 비해 이이는 체용 개념에 근거한 존재론적인 
리와 기를 강조한다. 즉, 이이는 "발동하는 것은 기요 
발동하는 까닭은 리이니, 기가 아니면 발동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동할 까닭이 없게 된다"고 말한다.

이황이 지각론에 있어서 주리론(이성주의)을
나타내는 반면 이이는 주기론(경험주의)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리론은 지각의 두 요소에 있어 리로 지시되는
당위의 원천으로서의 선험적 도덕이성을 중시하는
반면, 주기론은 이성을 중시하는 감성의 
원천이 되는 심리-육체적 에너지와 경험적 감각 질료를 의미하는 
기도 주목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의는 마음이 반한 것이며, 마음은 성과 정의 주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발하기 전에는 마치 태극이 동정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나, 음양으로 나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하나의 마음속에 혼연히 하나의 성이 있으니 순선하고
악이 없습니다. 이 마음이 이미 발한 때에 이르러서는 
마치 태극이 움직여서 양이 되고, 고요하여 음이 되어 
나눠진 것과 같습니다. 이때 기가 활동을시작하기 때문에 
그 정의 발함에 선과 악의 구분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 시초는 매우 미약합니다. 이에 의는 심이 발한 것으로, 
또 그 정을 끼고 좌지우지하는데, 혹은 천리의 공정함을 
따르고, 혹은 인욕의 사사로움을 따라 선과 악의 구분이 
이로 말미암아 결정이 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가 
선과 악을 가르는 기미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리로부터 발출하였으므로 순선한 반면, 칠정은 
리에 기의 활동이 겸해졌으므로 선악이 있게 된다. 
결국 선악의 기원 문제로 볼 때, 사단은 리에 기원하고 
칠정은 리와 기가 같이 작용하지만 주로 기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황은 다음처럼 주장한다. 
"이로써 보면 두 가지가 모두 리와 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온 근원으로 인하여 각각 주로 하는 
바와 중하게 여기는 바를 가리켜 말한다면 어떤 것을
리라 하고 어떤 것을 기라 한들 무엇이 불가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이황은 우주론적인 리와 기에 의해 사단칠정의 
선악이 결정된다고 본것이다. 그는 우주론(존재론)적인 
도덕론의 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퇴계 철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이해와 
심화 과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호발설은 그의 
지각론을 대표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황은 조선 성리학에서 지각과 인심도심에 관
한 논의를 싹틔우고 발전하도록 이끌었던 선구자로 
평가될 만하다. 이황의 철학적 지향성은 이이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는 이황에 맞서서 새로운 
지각 개념과 인심도심론을 구상하게되지만, 
이는 이황이 선구적으로 개척하게 되는 지각론의 
틀을 수용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이는 결코 지각론적 인심도심론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으며, 그것을 벗어나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과 비전을 모색하였다. 이는 율곡 철학이 
정이와 주희, 그리고 이황과 다른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진척시켰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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