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을 고찰해보다.










이른바 ‘동아시아유학이라는 연구 분야는 공간적 
개념이자 시간적 개념이다.
공간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유학은 유학의 사상과 
그 가치 이념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전되고 의미를
형성한 것을 가리킨다. 이런 차원에서의 동아시아 유학은 송명유학, 도쿠가와유학 또는 조선유학의 범주보다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동아시아적인‘ 차원에서 보는 유학의 문제는 중국, 
일본 또는 한국이라는 단일지역에서 보는 유학 내부의 
문제와는 대단히 다르다. 시간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유학은 각각의 국가별 유학의 전통에서 벗어난 
경직되고 변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동아시아 
각각의 국가별 유학자들의 사상적 상호작용 속에서 
시기에따라 변화되고 시대와 함께 발전한다. 
따라서 ‘동아시아유학은 그 자체가 다원적인 
학문 분야로서, 여기에는 전근대적인 일원론의 
전제된 설정이 없기 때문에
‘중심 vs 변경‘이나 ‘정통 vs 이단‘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문화 동아시아‘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두 가지 방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문화전파의 현지화라는 시각에서 볼 때, 
그 어떤 문화이든 다른 지역에 전파될 때 모두 다 
그 지역의 문화와 부딪치고 적응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과정이 바로 ‘현지화‘의 과정이다. 
문화전파는 결코 상품 수출과 같이 수입국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한 문화와의 대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문화전파는 ‘문화교섭‘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동아시아는 지리적 개념이자 문화적 
개념이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동아시아를 지리적 개념으로만 
강조한다면, 동아시아유학개념의 제안은 동아시아 
자체에 문화적 내포가 없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의
유학은 일방적인 전파일 뿐 현지 문화와의 교섭 
과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유학이 동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통제적 개념이되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자체가 아무것도없는 문화 부재의 
지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
유학은반드시 ‘중화문화일원론‘이나 ‘중국 중심론‘의 
변칙으로밖에 될 수 없는데, 이는오늘날 세계 문화 
다원화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편견이다. 
그렇지않으면 ‘잠재적 동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가 ‘동아시아는 문화지리적 개념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또 다른이해, 즉 동아시아를 정치질서와 지리정치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돌려야 하기 때문인데, 
20세기 초 ‘동아시아‘ 개념이 일본에서 유행될 때 바로
‘지정학적 냄새를 짙게 풍겼었다. 예컨대, 모두가 익히 알고 있고, 아픈 기억을지니고 있는 ‘대동아공영권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의미가 강한 지정학적 개념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미 사어가 되었고, 정직한 지식인이라면
그것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문화지리적 
개념인 동아시아를 강조하게되는 것은 이처럼 지정학적 
개념인 동아시아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차단하기위해서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적 내포를 가진 지리적 존재로 
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동아시아 자체가 의미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할 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에따른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명확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동아시아 지역문화에서의 중국유학의 
역사적 문제를 재조명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설정한 동아시아유학이 왜 필요한가 
라는 문제에 대답해보기로 하자. 
이에 앞서 ‘동아시아유학‘의 연구 성격과 대상, 
접근 방법 등에 대해 몇 가지 초보적인 이해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만 들어 거칠게 말해보면,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동아시아유학은 동아시아문화나 동아시아사상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동아시아유학 연구는 성격상 다문화 
비교 연구에 속하며, 동아시아문화 자체가
다원성이란 근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유학 또한 구조상의통체성이나 역사상의
 ‘동일‘이 있을 수 없다. 이는 다문화 비교 연구가
성립될 수 있는 전제이기도 하다.

둘째, 중국에서 발원한 유학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발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시간과 지역적 공간에서 이질성을 
드러내고, 그 과정도 반드시 현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중국유학이나 일본유학 또는 한국유학은 구조적인 
형태 및 의리적인 천명에 있어서 가지각색이다. 
바로 이런의미에서 동아시아유학은 다원적인 
학술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 다원성 때문에 서로 ‘타자‘가 되면서도 또한 
서로 주체가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중국은 ‘타자적인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동아시아에 있어서 절대성 · 보편성의 대표자인 것도 
아니고, 중국에 대한 ‘타자화‘를 통해 일본 자체의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은 중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들은 서로 타자가 되고 서로 주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타자‘나 ‘주체‘만 강조한다면,
이른바 이러한 ‘타자‘나 ‘주체‘는 배타성을 지니게 
되어 타자/비타자‘라는 이원적 대립의 올가미 속에
빠지기 쉽다.

넷째, 중요한 것은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문화적인 차이, 다름, 타자가 소멸되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문화적인 공감의식이 뚜렷해지는 요
즘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차이, 다름, 타자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화이부동‘과 ‘동즉불계‘중국의 옛라는지혜가 현 세계의 
서로 다른 문명 간의 문화적 공감에 하나의 
관념적 기초를제공해 준다.

다섯째, 동아시아유학 연구가 다문화 연구인 이상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다른 문화 간의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는 
또한 오늘날 세계의 ‘문명 대화를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된다. 본질에 있어서 대화는 
상대를 정복하는 것도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것이므로 당연히 ‘타자‘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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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을 동아시아 사상사적 맥락에서 설명하다.






























원래 ‘주리‘와 ‘주기‘라는 용어 자체는 사단칠정논변에서 
이황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가 이 용어들을 사용한 
맥락을 보면 그것은 심성론의 관점, 즉 지각의 차원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와 기리는 지각의두 요소 중에서 
사단의 도덕감은 ‘리를 주로 한 것‘으로, 칠정의 일반감정은
 ‘기를 주로 한 것‘으로서 각각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리는 선험적인 원리들을 함축하고 있는 
이성일 뿐만 아니라, 지각상에서 자각되는 
당위준칙의 출처로서 도덕적 이성을 의미한다. 
기는 육체형기와 감각기관, 그리고 외물을 지각할 때 
받아들이는 감각적 질료와이것에 연결되어 있는 
심리적 감성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이 점에서 주리와 주기는 존재론보다는 지각론적인 
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대승과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황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사단을 선험적인리 위주로 설명하는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단과 칠정을모두 경험적인 방식으로만 설명하는 입장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황은 주리론이고 기대승과 이이는 주기론이라 
볼 수 있으며, 지각론적 맥락에서 각각 ‘이성주의‘와
 ‘경험주의(자연주의, 심리주의)의 입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리 주기 개념을 주로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왔다. 그러나 본래 그것은 존재론보다는 
심성론, 구체적으로는 지각론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주리 주기 도식은 조선성리학에서도 출된 것이지만, 인식론적 맥락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철학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희 이후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송명리학은 
대체로 주리의 입장을 취하다가 청대 고증학과 일본 
에도시대고학에 이르러 점차 주기론이 강세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적 실증을 중시하는 주기론의 
입장이 문헌 고증의 방향으로 나간 것이다.

주희의 철학적 입장과 노선을 이황과 이이 중 누가 더 
정통으로 계승하였는가 라는 도통론의 관점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철학에서는 독창성이 중요하지 
누가 무엇을 더 충실히 계승하였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통론은 학문적 논리나 합리성이 
기준이 되는 것이아니라, 흔히 자신이 추종하는 인물이나 
학파의 정치적 주도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를 배후에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도통론은 철학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인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을 
해석하는 바람직한관점과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주성리학의 철학적 근본 문제, 즉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방법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들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문제와 접근법이
가장 적절하다.

대체로 중국 명대의 유학자들에 비해 조선성리학자들은 
지각론적인 분석을 좀 더 중시하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성향적 차이에 근거해서 중국은 변증법적인 
종합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은 논리적인 분석을 중시한다고 단순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황이 기대승의사칠논변에서 했던 다음 언급은 
조선성리학의 이러한 특성을 잘 말해준다.

 "내 생각에는 다른 것 가운데 나아가 같은 것이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 두 가지를 
하나로 뒤섞어서 말한 경우가 진실로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것 가운데 나아가 다른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두 가지는 나아가 말한 것이 본디 주리와 주기의 
같지 않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와 기로 분속시킴이 
어찌 불가하겠습니까?"

여기서 이황은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을 하나로 하여 
뒤섞어서설명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비록 기대승이나 이이도 이황 못지않게 분석적인 경향을 내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혼륜‘이라고 
하는 뒤섞어 말하는 관점을 나타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본체론적 경향과 사유가 기대승과 이이에게 내재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황은 사단과 칠정에 
대한 분석에서 각각 나아가 말한 것에 주리와 주기의 
다름이있다고 주장한 것이고, 이에 대해 기대승은 
그렇게 나누어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황의 주리론이 지각론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완성된 
호발설의 명제인
"사단은 리가 발하되 기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하되 리가 올라타는 것이다"라고 말
하게 되는 전후 맥락에서 잘 나타난다. 
이황의 논쟁상대인 기대승은 주기의 입장에서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분석할 수 없으며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그도 천명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지각의 입장을 수용하였으나, 그것은 단지 지각을 
구성하는 형식적인측면에 국한되었다. 천지만물의 
리와 기는 인간에게도 적용되므로, 지각의 재료는 
기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주재하는 원리는 리가 된다. 
기대승은 이러한 지각의 형식에 초점을 맞춰서 사단과 칠정 
모두 리와 기가 결합한것이므로 리와 기로 분속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칠징을 사단과 대립시켜 각각 구분되는 것으로 
말한다면, 칠정과 기의 관계는 사단과 리의 관계와 같습니다.그 발하는 것이 각각 혈액이 있고,
그 이름이 다 가리키는 바가 있으므로 주가 되는 바에 따라 분속시킬 수 있는것입니다. 나도 친정이 리와 상관없이 
외물이 우연히 모여들어 감응하여 움직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사단이 외물에 감응하여 움직이는 
것도 실로 칠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타는 것일 뿐입니다.

사단이든 실정이든 지각의 요소로서 리와 기가 모두 
작용하므로 나누어분속시킬 수 없다는 기대승의 비판은
사실상 지각론적 맥락에서 이황의견해를 공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지각의 요소라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내용상에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주희가 지각된 내용으로써 구분했던 
도심과 인심에 각각해당시키면서 양자를 엄격히 
구분했던 것이다. 도덕감정으로서 사단은
도덕이성(리)이 발동하되 그것에 질료가 따라가서 
그대로 당위의식(도심)이 성립되는 것이요, 
일반감정으로서 칠정은 육체적 형기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경험적 질료가 발동하되 그 위에 지각의 
원리가 작용함으로써감각적 의식(인심)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 당위적 내용 자체는 모든 감각적 질료를 
초월하여 오로지 선험적인 도덕이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칠정의 일반감정도 도덕감정처럼 리가 필요하지만, 
이때의 리는 지각의 재료를 주재하는 지각의 원리를 의
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칠정의 내용은 육체적 형기
(감각기관)가 외부와 감응하여 유입된 경험적 
질료(기)로부터 온 것이다. 이황의 호발설의명제는 
지각의 차원에서 도덕의식과 일반의식을 리와 기로 
구분하여 설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반면 기대승의 경우 지각의 형식적 요소로서의 
리와 기가 사단칠정에 공통적으로 개입되지만, 
도덕적 선악을 결정하는 객관적 기준은 리와 기이외에 따
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자연적인 심리적 결과인 칠정 
가운에 외부 상황에 부합하고 예의 절목에 들어맞는 
것을 사단이라 칭할 뿐이지, 칠정 이외에 별도의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단을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규정할 수 있는 내적인 근거는 발견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 생명의 선만을 보고 도덕 생명의 선지선을 무시하는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기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자연히 발현한 것이 곧리의 본체의 그러함이다"라는 기대승의 주장은 지각한 상태가 객관적 규범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선악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황은 이러한 주장이 오류라고 보았다.
그것은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의 결합이라고 하는
지각형식상의 공통성 때문에 동일시하되,지각된 내용에 대해서는 양자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로 뒤섞어 혼륜시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사단의 지각 내용의 근원이 되는 리를
마음속에서 자각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끝내 리와 기를 동일시하는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황도 지각작용에 있어서 도덕이성으로서 리와 
경험적 질료로서 기가 모두 필수불가결한 
두 형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단칠정의 
지각된 내용은 서로 다르기때문에 하나는 리를 주로 하고 
다른 하나는 기를 주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의 지각 내용은 순수하게 선한 도덕이성으로부터 나
온 당위의식이므로, 외부 대상에 의한 일반적 감각이나 
감정과는 달라야 한다.
칠정이 경험적 질료인 기에 의해 촉발되는 수동적인 
감정이라고 한다면,
사단은 경험을 통해서 지각하되 내용상 도덕이성(리)으로부터 발출되어나온 능동적 감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의 지각 내용적 근원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이황의 입장은 도덕적 선과 가치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경험을 경유하되 경험적 질료의 감각 내용을 초월한 것으로서, 순전한 도덕이성의 발로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황의 도덕론은 주희의 인심도심론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황이 사망한 후 일어난 성혼과의 논쟁에서 이이는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 기대승의 입장을 분명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기대에 비는해 이이의 주장은 좀 더 
명확했다. 그는 이황의 호발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단과 칠정 모두 "기가 발하여 리가 올라탄 것일 뿐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을 주장했다. 
기대승에 비해 이이는 체용 개념에 근거한 존재론적인 
리와 기를 강조한다. 즉, 이이는 "발동하는 것은 기요 
발동하는 까닭은 리이니, 기가 아니면 발동할 수 없고
리가 아니면 발동할 까닭이 없게 된다"고 말한다.

이황이 지각론에 있어서 주리론(이성주의)을
나타내는 반면 이이는 주기론(경험주의)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리론은 지각의 두 요소에 있어 리로 지시되는
당위의 원천으로서의 선험적 도덕이성을 중시하는
반면, 주기론은 이성을 중시하는 감성의 
원천이 되는 심리-육체적 에너지와 경험적 감각 질료를 의미하는 
기도 주목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의는 마음이 반한 것이며, 마음은 성과 정의 주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발하기 전에는 마치 태극이 동정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나, 음양으로 나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하나의 마음속에 혼연히 하나의 성이 있으니 순선하고
악이 없습니다. 이 마음이 이미 발한 때에 이르러서는 
마치 태극이 움직여서 양이 되고, 고요하여 음이 되어 
나눠진 것과 같습니다. 이때 기가 활동을시작하기 때문에 
그 정의 발함에 선과 악의 구분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 시초는 매우 미약합니다. 이에 의는 심이 발한 것으로, 
또 그 정을 끼고 좌지우지하는데, 혹은 천리의 공정함을 
따르고, 혹은 인욕의 사사로움을 따라 선과 악의 구분이 
이로 말미암아 결정이 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가 
선과 악을 가르는 기미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리로부터 발출하였으므로 순선한 반면, 칠정은 
리에 기의 활동이 겸해졌으므로 선악이 있게 된다. 
결국 선악의 기원 문제로 볼 때, 사단은 리에 기원하고 
칠정은 리와 기가 같이 작용하지만 주로 기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황은 다음처럼 주장한다. 
"이로써 보면 두 가지가 모두 리와 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나온 근원으로 인하여 각각 주로 하는 
바와 중하게 여기는 바를 가리켜 말한다면 어떤 것을
리라 하고 어떤 것을 기라 한들 무엇이 불가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이황은 우주론적인 리와 기에 의해 사단칠정의 
선악이 결정된다고 본것이다. 그는 우주론(존재론)적인 
도덕론의 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퇴계 철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한마디로 지각론과 인심도심론의 이해와 
심화 과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호발설은 그의 
지각론을 대표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황은 조선 성리학에서 지각과 인심도심에 관
한 논의를 싹틔우고 발전하도록 이끌었던 선구자로 
평가될 만하다. 이황의 철학적 지향성은 이이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는 이황에 맞서서 새로운 
지각 개념과 인심도심론을 구상하게되지만, 
이는 이황이 선구적으로 개척하게 되는 지각론의 
틀을 수용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이는 결코 지각론적 인심도심론에 
갇혀 있지만은 않았으며, 그것을 벗어나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과 비전을 모색하였다. 이는 율곡 철학이 
정이와 주희, 그리고 이황과 다른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진척시켰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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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적인 헌법 교과서






































































헌법은 국가를 법적으로 형성하는 기본규범이다.
국가가 존립하려면 무엇보다 국가권력이 생성, 
정당화, 규제되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 간의 기본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헌법은 이에 관한 기본원칙들을 
규율함으로써 국가 법질서의 근간을 형성한다. 
이를 보다 규범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헌법(Constitution,Vertassung)이란 국가권력을 창설, 
배분함과 아울러 국가와 국민의 기본관계를 규율하는 
법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란 성문의 실정 헌법전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1948. 7. 17, 제정되고 1987. 10. 27. 
최종 개정된 ‘대한민국헌법‘이 이러한 의미의 헌법이다.

실질의 의미의 헌법이란 법형식과 상관없이 위 헌법의 
개념요소, 즉 헌법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규범을 말한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은 헌법사항, 즉 국가권력의 소재와 
상호관계,  그 행사의 방법과 한계에 관하여 모든 규율을 
완결적으로 할 수 없다. 헌법은 헌법사항 중에서 근본적인 
것들만 규율하고 나머지는하위규범, 특히 법률에 위임할 수 있다. 

이러한 법률로는 공직선거법, 정당법,정부조직법 등이 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를 통한 국가기관의 구성에 관하여,
정당법은 국민주권과 국가권력의 매개체인 정당의 창당, 
조직 등에 관하여, 정부조직법은 행정권력을 행사할 
행정각부 등의 설치, 조직과 직무범위 등에 관하여, 
각각 헌법을 구체화하는 보다 자세한 규율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 개념의 필요성은 크지 않다.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란 결국 헌법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을 
헌법적 의미관련 하에서 파악해 보고자 하는 명칭 부여에 
불과하다. 헌법의 특성(최고규범성, 개정곤란성, 헌법보호), 현법재판의 심사기준은 모두 형식적 의미의 헌법에만 관련된다. 

헌법은 국가권력을 창설, 배분한다. 이를 통하여 
정치공동체인 국가를 형성하고, 국가의 법적인 
존재양식의 토대를 제공한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에 터잡아 (제1조 제2항), 
입법권을 국회에 (제40조), 행정권을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제66조 제4항), 일반사법권을 
법원에(제101조), 헌법재판권을 헌법재판소에(제111조)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관한 많은헌법규정들은 
위 국가기관들의 권한 행사의 조건과 방법,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헌법은 입법, 
행정, 사법 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의 구도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므로 헌법은 권력의 수권규범이자
제한규범이다. 이와 같이 헌법이 국가권력에 대하여 
수권과 동시에 제한을가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존립목적을 달성함과 아울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성문헌법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성문헌법이 1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헌법의 법원(法)이다. 그런데 성문헌법이 현법의 
법원(法)이 된다고 할 때 실정헌법전에 포함된 
개별조항만이 성문헌법의내용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개별 헌법조항들 뿐만 아니라 헌법 전문 비롯하여 전체 
헌법전에서 도출되는 헌법의 기본원리나 헌법원칙들도 
헌법의 법원이 된다. 따라서 이런 헌법원리들도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며 위헌여부를판단하는 
심사기준이 된다. 이런 원리나 원칙에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국가원리, 권력분립원칙 등이 있고, 
법치주의로부터 다시 명확성원칙, 신뢰보호원직, 
비례성원칙 등과 같은 하위 원칙들이 도출된다.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헌법국가에서 불문헌법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견해가 갈릴 수 있다. 
이 문제는 불문헌법의 개념, 범위, 효력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헌법원리, 헌법판례는 
성문헌법에 내재된 헌법이라고 보면 오로지 헌법관습법 
정도만 고려될 수 있다. 그런데 헌법기관 상호간에 
국가권력의 행사 방법에 관한 관행이 오래 지속되어 
존중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정치적 또는 
헌정적 ‘관행‘일 뿐 법적 효력을 지닌 관습법으로 볼수 
있는지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의회민주주의에서 성문헌법에 다 담을 수 없는 헌법사항은 이른바 ‘실질적 의미의 헌법‘인 법률에 의해 규율될 수 있고, 규율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민사법질서와는 달리 헌법사항에 관하여(헌법)관습법이 성립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불문헌법으로서 관습헌법을 헌법의 법원으로 인정하고있다(현재 2004, 10, 21, 2004헌마554).
관습헌법이란 헌법사항 가운데 국가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으로서 헌법전에 기재되지 않은 것인데, 관습헌법은 
성문헌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하였다.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는,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한 관행 또는 관례의 존재, 관행의 반복 · 계속 관행의 항상성(반대 관행의 부재), 관행의 명료성, 국민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컨센서스(국민적 합의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 국명, 한글을관습헌법으로 
보았다. 그리고 관습헌법의 개정은 성문헌법의 개정절차에 따라야 하고, 법률에 의할 수 없는데, 신행정수도를 충청권 지역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률은 헌법개정절차 없이 
수도를 변경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하였다.

관습헌법을 인정하더라도, 성문 헌법전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직집 명시적 의사표시로써 제정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체계 중 최고의 우위성을 가지며, 그 내용의 개정은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 단지 관습헌법이라는 점만으로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할 근거는 없다. 
헌법을 그와 같이 성문화한 것은 헌법이 예정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인권의 최대한 보장을 객관적으로 다툴 수 없는 확고한 안정성을 가지고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도성문헌법의 특징은 최고법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관습만으로는 헌법을 특징화하는 그러한 우세한 힘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이므로 성문헌법과 관습헌법이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다수의견의 논증은 헌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고보아야 할 것이다. 성문의 경성현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 혹은 불문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를 전개하고 완비되게 하며 계속 형성함으로써, 
또한 항상 이들 원리와 조화를이름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의미에서만 인정될 수 있으며, 더구나 관습헌법으로써 성문헌법을변경하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는 관습헌법의 내용이 헌법에 직접 규정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헌법사항"이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다수의견은 관습법률‘이 아닌 관습"헌법"은 "헌법"이므로 
그 변경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 개념논리에 집착한 것이고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헌법은 성문헌법에만 헌법적 내용을 모두 수록하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 법률이나 관습법의 형태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그러한 내용을 통상 "실질적 의미의헌법"이라 
부른다. "관습헌법"이란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이 
관습으로 규율되고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며, 
"관습헌법"이라고 해서 바로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국가법체계의 정점에 있는 최고법이다. 
헌법 아래로 법률, 명령·규칙, 조례 등의 하위법규가 
질서정연하게 수직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 
헌법은 최고 상위법으로서 수권을 통하여 이러한 
하위규범들이 성립하고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제40조, 제75조, 제108조 제113조 제2항, 제117조 제1항등). 
또한 헌법은 하위규범 해석 · 적용의 기준과 지침이 된다. 
하위법규는 모두헌법에 부합하여야 하며, 이에 위반될 경우 헌법재판을 통하여 그 효력이 상실된다.
헌법은 최고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구속한다
(입헌주의). 모든 국가권력은 헌법을 준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헌법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헌법은입법 · 
행정 · 사법의 모든 국가작용의 지침이 되어 그 목적과 
방향을 제시한다.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그 개정을 어렵게 하는 경성헌법의
속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개방성과 추상성은 법규범의 일반적 특징이다. 
법규범은 많든 적든 불확정성을 지니며, 완결적 규율을 
행할 수 없다. 그리하여 법규범은 해석을 통하여 그
구체적 의미를 발견, 확인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특성은 헌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최고법인 
헌법은 하위규범들에비하여 더욱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며 
불확정적이다. 헌법의 이러한 개방성, 추상성은 헌법의 
지위에서 비롯된다. 국가공동체의 조직과 운용에 관한 
근본적인 사항들만 최고법인 헌법의 규정사항으로 
적합하고, 그 밖의 사항들은 헌법의 수권하에 
하위규범들에서 보다 상세히 규율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은 핵심적인 사항만 압축적으로 규율하게 된다.

또한 헌법의 개방성 · 추상성은 헌법이 공동체의 
근본가치를 설정하고 있는 규범이라는 데에 기인한다. 
헌법은 역사적, 시대적으로 승인된 가치와 정신들을 포함하고 이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여 보존,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헌법적 가치와정신은 일정한 이데올로기나 도덕,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가치나 정신, 원리는 기술적 개념이나 용어로 완결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헌법의 개방성은 헌법에 관한 다기한 이해, 주장과 해석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이러한 견해의 다양성과 이들 간의 
토론 비판을 통해 헌법의 의미는 보다풍성하게 탐구, 
확인 또는 발견된다. 헌법의 개방성은 헌법의 의미 · 
내용의 시간적 · 역사적 변화나 발전을 허용한다. 
헌법은 이데올로기나 가치, 이익의 변화에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탄력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헌법의 개방성은 헌법을 살아있는 것(living Constitution; living instrument)으로 만든다.

이와 같이 보다 개방적이고 추상적인 헌법규범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구체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헌법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발견, 확인하는 과정인 
헌법해석이 필수적이다.

헌법은 정치적 규범이다. ‘정치적‘이라 하여 하여
헌법이 정치적 목적이나 잣대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는 규범이라거나,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헌법재판의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라고할 수 없다. 헌법도 ‘법‘이므로 
법의 원리와 기준에 따라 해석 · 적용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정치성‘은 정치와 헌법과의 강화된 
관련성을 의미한다. 무릇 ‘법‘은 그자체로 정치적 
현상이고 정치의 산물이다. 형법과 같은 공법은 
물론 민법과 같은 사법(法)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인 법질서를 형성하고 국가권력을 창설 · 
배분하는 법이어서 정치와의 관련성이 보다 밀접하고 
이것이 여타의 규범들과 다른 헌법의 특성이라고 
파악할 수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정치성‘은 양면성을 갖는다. 즉, 헌법은 정치에 
의해 규정되는 반면, 정치를 규율대상으로 삼는 법이다. 
헌법은 정치적 힘과 결단을 법으로 순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헌법은 정치과정, 즉 정치세력의 
타협의 산물로서, 정치현실을 반영한다. 헌법은 스스로 
정치가 법의 세계로 들어오는 창구를제공하고 있다. 
입법, 정당, 선거, 헌법개정에 관한 헌법규정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헌법은 정치에 rule을 제공하고 정치의 
준거가 되며, 대통령,국회와 같은 정치권력을 통제한다. 
헌법이 정치를 통제하는 대표적 방법은 정치의 절차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다. 입법절차를 규율하고, 대통령, 
국회와 같은최고 국가기관의 구성과 권한, 권한 행사 방식 등을 규정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통제가 행해지는 
대표적인 법적 절차는 헌법재판소가 행하는 권한쟁의심판이다. 또한 헌법은 정치의 내용(결과)을 통제하기도 한다. 
헌법의 기본권규정이 대표적으로 여기에 해당하며, 
이를 위한 법적 절차로서 대표적인 것이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심판이다.

정치와 헌법의 관계, 헌법의 정치규범성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것에 ‘정치의사법화‘ 그리고 통치행위론
(혹은 political question)이 있다. 전자는 국가와 사회의 주요 정책결정들이 사법, 특히 헌법재판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 혹은 사법국가화라고 경계하면서 
정치과정과 정치력의 무기력, 사법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국가행위에 
대해 사법심사가 언제 이루어져야 하고 언제 
자제하여야 하는지에관한 논의이다.

대통령 직선 등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1987년의 
6월 민주화운동으로 터져 나왔고, 여야는 동년 7월 24일 
8인 정치회담이라는 개헌협상 전담기구를 구성하여 
주요 쟁점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 여야합의에 의해 
대통령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안을 마련하였고,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 동년 10월29일 
공포·시행되었다.

현행 헌법으로의 개정은 범국민적인 민주화 열기 속에서, 
대통령직선제를 통한 국민의 자유로운 정부선택권의 요구, 기본권보장의 강화 등 국민적 개헌욕구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고, 여야의 실질적인 정치협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정치권 주도로 이루어져 주권자인 일반국민이 개헌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행헌법은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폐지하였으며,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켰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헌법소원제도를 
도입하는 등 헌법재판제도를 강화하였다. 
기본권과 관련하여서는 적법절차조항을 신설하였고, 
언론·출판,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 · 검열을 금지하였으며, 
최저임금제의 시행을 명문화하였고, 범죄피해자구조청구권을 신설하였다.
그 밖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평화적 통일의 과제, 
군(軍)의 정치적 중립등을 규정하였다.

헌법해석이란 헌법의 뜻과 내용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말한다. 헌법은 다른법에 비하여 보다 더 개방적, 추상적인 규범이므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헌법의 의미를 발견, 확인하는 과정인 헌법해석이 필수적이다.
헌법해석은 헌법이 살아있는 규범이 되도록 현실의 
생생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에 응답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답적인 추상과 개념에 갇혀 있어서는 안되고, 시대와 
함께 역사적·사회적 고뇌를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반법률의 해석은 입법자의 법률 개정으로 대응 
극복(override)할 수 있지만, 헌법해석에 대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한 대응 극복이 어렵다. 
그리하여 헌법해석의 방법과 한계는 헌법재판의 
정당성 문제와 맞물려 논의된다.

합헌적 법률해석의 근거는 입법권의 존중, 법적 안정성, 
법질서의 통일성유지에서 찾을 수 있다.

법률은 민주적 대의제도의 산물이고, 입법자는 원칙적으로 입법형성의 자유를 누린다. 또한 입법과정에서는 입법자에 의한 헌법해석이 행하여진다. 그렇다면 헌법합치적 해석을 통하여 가급적 법률의 합헌성과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입법권을 존중하는 길이다.

법률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법률의 
효력은 배제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위헌법률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상실시키는 법제에서는 위현이라는 
유권적 해석은 법적 안정성에 큰 충격을 준다. 
기존 법질서는 전복되고 합헌적 법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법질서의 공백이 생긴다. 합헌적 법률해석은법해석의 방법을 통하여 법률의 합헌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살리고 위헌 판단의가능성을 피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에 기여한다.

합헌적 법률해석은 하위법규들이 최고법인 헌법에 합치되게 해석, 적용되도록 함으로써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합헌적 법률해석은 법률해석을 행하는 모든 국가기관에게 요청되지만 특히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에게 
요청되는 과제이다. 합헌적 법률해석은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에서는 한정위헌 · 한정합헌이라는 결정유형으로 나타난다. 합헌적 법률해석과 이에 기초한 
한정위헌 · 한정합헌 결정유형은 헌법재판제도가 정착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헌법의 개정이란, 헌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헌법전의 
문구를 명시적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헌법 개정은 
헌법의 현실적합성을 제고하여 헌법의규범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고 개정이 어렵게 되어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지나치게 커지거나 국가공동체의 
근본가치와 구조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화할 수 있으므로 개정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헌법개정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봉쇄하면 헌법질서나 헌법의 규범력이 파괴되거나 
무시된다(헉명, 헌법변천).

반면 개정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용이하게 하면 헌법질서의 안정성이 저해된다. 헌법의 개방성 내에서 헌법의 변화나 
발전은 헌법해석에 의해 일정 부분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의 개방성이 한계에 이르면, 즉 헌법해석에
의한 문제 해결이 한계에 부닥치면 헌법개정에 의해 
대처할 수밖에 없다.

헌법을 개정하는 방법, 절차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의회의 의결만으로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연방 상·하원 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다. 

둘째, 국민투표만으로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의 1972년 헌법은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의 경우 이에 의하도록 하고 있었다. 

셋째, 의회의 의결에 더하여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현행헌법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 별도의 헌법회의를 소집하여 여기서 개정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전체 주(州)의
3분의 2의 주의회가 소집요구하는 헌법회의에서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전체주(州)의 4분의 3의 주의회에 의하여 비준되는 
등의 방법으로 비준되어야 한다.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하여 반드시 보다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투표의 본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할 
수 있고, 헌법개정을 정당화시켜 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개정에 한계가 있는지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한계가 있다는 입장에서는 한계를 벗어난 헌법개정의 
효력이 어떠한지 다시 문제된다. 헌법개정의한계 문제는 
실제로 헌법개정을 할 수 없는 조항이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현법에 명시적으로 개정금지조항을 두더라도 그 조항부터 개정할 수 있으므로이 문제는 사실상 
한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정의 정당성에 관한 이론적 
문제이다.

슈미트(C. Schmitt)는 헌법제정 권력이 내린 근본적 
결단인 ‘헌법‘은 조직된국가권력, 즉 헌법개정 권력이 
개정할 수 없으며, ‘헌법률‘의 개정만 가능하다고하였다. 
헤세(K. Hesse)는 헌법의 기본적 동일성과 계속성(민주주의 · 법치주의의기본요소)을 헌법개정의 한계요소로 보았다. 이밖에 초헌법적 한계로서 자연법적한계와 국제법적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계긍정론은 ‘합법성의 형식을 밟아 헌법(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자살‘이 행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한계긍정론에서 헌법조항은 개정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한계긍정론에서는 한계를 일탈한 헌법개정은 위헌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설사 한계를 넘었다 하더라도 
헌법규정에 대한 위헌판단의 주체나 법적 방법은 무엇인지 등의 문제가 남는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독일 법실증주의자들은 
한계를 부정하였다. 이들은 헌법제정권력과 헌법개정권력의 구분을 부인하였다. 규범적 상황은 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므로, 한계를 넘어선 개정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으며, 주어진 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한계부정론에서는 모든 헌법규정은 동일한 비중을 지니며, 개정대상이 될수 없는 특별히 중요한 헌법규정이란 없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국민투표를 거치는 경우에 
국민투표를 통한 정당화를 거친 헌법개정의 효력을 
부인할 근거는 무엇인지 묻게 된다.
미국의 헌법학자인 터쉬넷(M.Tushnet)은 헌법의
내용뿐만 아니라 개정절차조차도 헌법개정을 구속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헌법개정의 한계 문제와 관련되는 것으로 헌법조항에 
한 위헌심사가 가능한지의 문제가 있다. 이는 헌법이나 
헌법조항이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지의 문제로 제기된다. 헌법에 의해 창설된 
헌법재판소가 그 존립의 근거규법인 헌법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지는 헌법이론상의 난문일수 있고, 
우리의 경우 헌법 제29조 제2항의 존재로 이 문제가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견해는 실정법에 "법률"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 헌법개정을 국민투표로 확정하는 데 헌법에 의해 창설된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국민이 정한 헌법규정에 대해 
심사할 수 없으며, 우리 헌법은 헌법을 개정금지규정과 
개정허용규정으로 이원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논거로 한다.

긍정적인 견해는 법적 안정성을 감안하더라도 
"참을 수 없는 불법" (G.Radbruch) 이 헌법에 유입된 경우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헌법소송의 길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면서, 위 한계긍정론의 논거들과 실정법상의 논거(법관의 "양심"에 의한 재판은 정법에 따른 재판을 의미한다는 점)를 제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조항에 대한 심사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또한 유신헌법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한민국헌법은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적용된다.
 ‘국민‘이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외국인이나 무국적자는 국민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있더라도 헌법의 적용대상이다.

재외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헌법 제2조 제2항). 
‘재외동포의 출입국과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은 
재외동포에게 출입국과 체류, 부동산 및 금융의 거래,
건강보험 적용 등에 있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재외동포란 재외국민(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자)과 외국국적동포(대한민국 국
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를 포함한다.

‘국민‘은 일차적으로 자연인을 뜻하지만, 기본권 조항에서 말하는 ‘국민‘에는법인이나 외국인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고, 이때에는 이들도 기본권주체로서 
기본권의 보호를 받는다.

헌법은 국가의 영역 내에서 적용된다. 영역은 국가의 
공간적 존립기반이다.
영역에 대하여는 국가의 배타적 지배권(영역권)이 인정된다.
영역은 영토, 영해, 영공으로 구성된다. 영토는 영역의 
기초가 되는 토지이고, 영해는 영토에 접속한 일정한 
범위의 해역 해상및 해저지하를 포함한을 말하며, 
영공은 영토와 영해의 수직적 상공을 말한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분단의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휴전선 남쪽
지역에만 적용되고 있다. 한편 헌법 제4조는 평화적 
통일조항을 두고 있다. 헌법 제3조 제4조는 분단 현실과 
평화적 통일정책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헌법학적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두 조항의 관계에 관한 
해석에 따라 북한과 북한주민의법적 지위, 국가보안법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안법의 상호관계도 문제된다.

헌법 제3조와 제4조의 관계에 관하여는 우선 유일합법정부론이 있다. 이 입장은 헌법 제3조를 엄격하게 적용한다. 
그리하여 북한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에속하고, 북한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북한지역은 미수복(復) 지역이 된다.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이고,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본다. 이 입장에서는 헌법 제4조는 북한지역에까지 헌법의 규범력을 복원하도록 명령하는 규범으로 본다.

다음으로, 북한실체인정론이 있다. 여기에도 몇 가지 해석론이 가능하다. 첫째, 제3조에 비하여 제4조의 우선적 효력을 인정하는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둘째 제3조의 성격을 프로그램규정 
또는 선언규정으로 이해하거나 제3조의 내용변화를 
헌법변천으로 이해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셋째, 제3조는 정통성과 명분을 바탕으로 제헌헌법 이래 
존속하고, 제4조는 현실에 기초하여 현행헌법에서
신설된 조항으로서, 양 조항을 모순되거나 양자택일적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남북한의 특수한 이중적 관계를 
반영하는 조화적 해석 ·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우리 헌법상 저항권의 간접적인 근거를 찾는다면 
헌법 전문의 "불의에의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부분을 들 수 있고, 그밖에 헌법 제1조 제2항, 제37조 
제1항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저항권을 인정하더라도 그 현실적 규범력은 크지 않다. 
저항이 실패한 경우에 국가권력이 정당한 저항권 행사임을 이유로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상정해 
볼 수는 있으나, 실제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헌법적대적 
행위로 평가되어 법적 책임을 추궁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저항이 성공하여 헌법질서가재건된 경우라면 
저항행위는 소급하여 정당화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저항권 행사의 요건이나 한계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 추궁이가능하다.

저항권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행위이다. 저항권의 목적은 소극적으로 기존 헌법질서를 보전하는 데 그쳐야지, 적극적으로 새로운 헌법질서를 창출하기위해 저항권이 사용될 수는 없다.
지배세력의 반헌법성과 불법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만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저항권은 헌법 보호의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이어야 한다. 기존의법과 제도에 의한 헌법보호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러한 수단들에 호소하여야 하고, 아직 저항권을 
행사할 수 없다. 위와 같은 저항권 행사의 요건이 
충족되었더라도 저항권에 기한 실력 행사가 무제한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저항권의 행사는 비례적이어야 한다. 헌법질서 수호, 회복에 적합하고 필요한 범위내의 행위만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로 인정되고, 이를 초과한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이 부과될 수 있다.

헌법보호는 통상적 상황이 아니라 
비상사태(천재지변, 폭동, 경제공황, 전쟁등)하에서도 
필요하다. 국가의 비상사태를 한시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제도가
국가긴급권인데, 헌법은 제76조(긴급재정 · 경제명령 등), 
제77조(계엄)에서 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헌법이 스스로 국가긴급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국가긴급사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국가긴급권의 남용을 방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 헌법조항들은
긴급권 발동의 요건, 절차, 효력 등에 관하여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은 
인정될 수 없다.

헌법 제76조, 제77조에서 규정하는 국가긴급권제도는 
고유한 의미의 헌법보호 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전보장, 
공공의 안녕질서 자체를 직접적인 보호법익으로 하는 
국가보호, 사회보호의 의미도 아울러 포함하고 있다.

‘헌법의 기본원리‘란 헌법 전체를 지배하는 기초적 원리이자, 헌법질서의 지주가 되는 원리를 말한다. 헌법의 기본원리는 헌법의 전문과 본문에 명시적, 묵시적으로 들어 있다.
한국헌법의 기본원리에는 민주주의원리, 법치주의 원리, 사회국가원리, 국제평화주의(평화국가원리)가 있다.
헌법의 기본원리는 헌법조항 및 법령의 해석기준이 되고, 입법 및 정책결정의 방향을 제시하며, 헌법재판의 심사기준이 된다. 헌법개정의 한계를 인정하는입장에서는 헌법개정의 한계사항이 된다.

헌법 전문이란 헌법전의 본문 앞에 있는 서문(序文)을 말한다.
한국 헌법의 전문에 포함된 내용으로는 헌법제 · 개정의 
유래, 헌법제정권력자, 헌법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 
등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은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지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재판규범으로기능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전문을 위헌심사의 보충적 기준으로 활용함으로써 그 규범적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가, 헌법규정법개념으로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종국적 
근거는 실정헌법이므로 실정헌법의 해석을 통하여 합당한 민주주의 원리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의 개념이나 내용에 관하여 스스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전문, 헌법 제4조), "민주공화국"
(헌법 제1조 제1항), "민주적 기본질서"(헌법 제8조), 
"민주주의원칙" (헌법 제32조 제2항), "경제의 민주화"(헌법 제119조 제2항)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헌법규범의 개방성은 민주주의 이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헌법은 민주주의의 개념이나 내용에 관하여 개방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개념으로서 우리 헌법은 "민주적 기본질서" (헌법 제8조)2)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전문, 제4조)
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자유"라는 수식어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은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둥으로 이미 민주주의에 내재되어 있어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우리 헌법질서의 
최고 기본가치로 파악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본요소가 결합된 것으로 이해하면서, 그 본질적 요소로서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선거제도와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 분립, 사법권의 독립을 들고 있다.

[보론] 민주주의 정치이념과 헌법원리

민주주의는 역사적이고 이념적인 가치개념으로서 
대단히 개방적인 개념이다.
민주주의 헌법원리의 내용을 실정헌법의 조문 내에서만 
찾아낸다는 것은 공허하다. 헌법은 정치규범이고,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경쟁의 장이고, 민주주의 
헌법원리는 더욱 그러하다. 이와 같이 규범내재적으로 
민주주의 원리를 충전할 수 없을 때 정치이념적, 철학적, 
도덕적 논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정치이념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화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비중립적, 편파적 이해로 기울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치사상이나 정치이론의 다양하고풍성한 
논의를 규범적 민주주의이론으로 일정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오늘날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진단을 한다면 다기하게 발전, 
전개되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사상이나 이론을 대안적으로 혹은 보완적으로헌법원리와 접목시켜 한 단계 고양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열려있는 더 완성된 단계와 수준을 
부단히 추구케 하는 목표지향적 개념이다.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민주주의(liberal-representative democracy)

18, 19세기 서구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하였다. 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선거권의 
확대를 통해 인민의 정치참여의 욕구를 수용하고(민주주의 요소의 수용), 다른 한편으로 대의제라는 통치원리와 
결합함으로써 대중의 직접 통치라는 우려를 극복
(민주주의 요소의 배제)하였다. 
자유주의의 대표자 중의 한 명인 미국헌법의 아버지 
매디슨(J. Madison)은 고대 직접민주주의를
불관용적이고, 부정의하며, 불안한 것으로, 
그리하여 개인의 안전과 재산권을 지킬 수 없는 것으로 
평가하였고, 다수의 전제(tyranny of majority)를 
방지하며, 파당(faction)의 폐해를 극복하고 사적 
이익을 넘어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의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기획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탄생시켰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특징적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개인주의적 인간관 ② 소극적 자유의 관념 ③ 국민주권 확립과 선거권의 확장 ④ 대의정부(정기적 · 경쟁적 선거, 비밀투표 등) ⑤ 제한국가, 법에 의한 국가권력의제약, 권력분립 ⑥ 정치적 ·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장, 법 앞의 평등 ⑦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 정치와 경제의 구분, 국가와 가족의 구분) ⑧ 선(good)에 관한 궁극적 진리의 부재라는 인식론, 다원적 가치와이익 사이의 경쟁 ⑨ 생산수단의 사유 ⑩ 시장경제

법은 명확한 용어로 규정함으로써 적용대상자에게 그 규제 내용을 미리 알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명확성의 요체는 
예측가능성이다. 법규범이 명확하여야수법자는 그 내용을 미리 알 수 있고 이로써 장래의 행동지침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정은 법의 행위규범성, 재판규범성 양면에서 요청된다.

전자의 측면에서, 법이 국민에게 행동의 준칙을 제공하고 
자유영역마저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자의 측면에서, 불명확하고 포괄적인 법규범은 
법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 · 집행을 용인하게 된다.

법령의 존재, 내용 등에 관한 법적 명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법령은 공포(소되어야 한다. 헌법 제53조,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이 이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 포괄위임금지원칙,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보호에는 명확성의 요청이 내재되거나 강화되어 있다. 죄형법정주의에서는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 다만,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을 규정함에 있어 
가치개념을 포함하는 일반적 규범적 개념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포괄위임금지원칙은 법률에 미리 대통령령 
등으로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당해 법률 자체로부터 대통령령 등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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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요건이란 입법자가 법률상 범죄로서 규정한 
행위의 유형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하면 범죄가 된다‘고 
미리 정해 놓은 행위의 틀, 즉 범죄의 정형 구성요건이다. 
이 범죄의틀 속에 꼭 맞아 들어가는 행위는 형법에 
의해 처벌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형법이 어느 행위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정해 놓은 이유는 그것이 
법익에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거나 그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만이 
범죄가 될 수 있다. 앞서 정의했듯, 범죄란 간략하게 
말해서 ‘법익에 대한 가해행위‘ 이다(법익에 대한 가해행위로서의 범죄). 형법의 임무는 이 가해행위를 억지 · 예방하여 법칙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법익보호를 추구하는 형법의 임무).

범죄의 주체는 각칙의 개별 범죄에서 자(者)라고 
표현되고 있다. 자연인이 이에 해당한다.
가령, "사람을 살해한 자" 할 때의 행위주체는 자연인을 
상징한다. 법인과 같은 무형체가
물리적으로 사람은 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법인은 원칙적으로 범죄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인의 범죄행위를 
전제로 해서 법인도 자연인과 함께 처벌하는 것은 
이론상 가능하다. 법인의 피용자인 자연인이 형벌법규에 
위반하였을 때 그 사용자인 법인도 함께 처벌하는 것으로 근거조항을 만들어 두면 된다. 
이와 같은 조항을 자연인 · 법인 두 주체를
모두 벌한다는 의미에서 양벌규정부른다. 
양벌규정은 현재 형법전 내에는 없고 개별 
행정형벌법규에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범인은 
그 처벌의 근거가 되는 양벌규정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법인격체가 범죄의 주체가 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범죄능력‘이 있다고 표현이한다. 범죄의 주체가 
된다는 말은 곧 그가 형벌의 객체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범죄의 주체가 되는 인격체는 범죄능력이 있는 
동시에 형벌능력도 있다. 자연인은 범죄능력이 있고 
또 형벌능력이 있다. 법인도 법규정이 존재하는 
한도에서는 범죄능력과 형벌능력이 있다.

범죄능력과 구분해야 할 개념으로 ‘책임능력‘이 있다. 
책임능력이 있다는 말은 행위주제가 형법상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범죄의 주체가 된다고 해서 
모두 책임비난의 대상이되지는 않는다. 형법은 14세 
미만인 자의 행위를 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책임비난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또, 심신장애자나 놓아자는 
책임비난에서 제외되거나 그것이 감면된다. 
이 모두 범죄능력은 있으되 책임능력이 없거나 감면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인격체가 책임능력이 없다고 
해서 바로 그가 범죄능력마저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무능력자라도 다른 주체의 범죄에
가공하는 형태로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범죄능력이란 정확히 말해 구성요건의 행위주체가 
될 수있는 자격을 말하므로 책임능력과 구분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범죄는 그 주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구성요건적 
결과를 야기한 자 모두를 행위자로상정한다. 그러나 범죄 
중에는 주체가 될 자를 일정한 속성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각칙 중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는 그 주체가 ‘공무원‘인 자격을 가진 자로 한정된다. 이처럼 일정한 속성을 가진 자로 주체를 한정해 놓은 
범죄를 신분범이라고 일컫는다.

판례는 이 신분의 의미를 "남녀의 성별, 내외국인의 구별, 
친족관계,공무원인 자격과 같은 관계뿐만 아니라 널리 
일정한 범죄행위에 관련된 범인의 인적관계인 특수한 지위 또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판례의 판시였으나 이 중 우리 형법 조항에 들어맞지 않는내용도 있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형법 중에 특정 성별만이 주체가 되어 범할 수 있는 범죄는 없다. 우리 형법은 남녀의 성별에 따른 신분관계를 설정하고
있지 않다.

과거에는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로 되어 있었기에 
마치 남자만이 강간죄를 범할 수 있는 듯 오래하기 쉬웠다. 이와 같이 법문에는 주체의 제한이 없으나
사실상 일정한 속성을 가진 자만이 구성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범죄를 유사신분라고 부른다. 
그러나 강간죄를 모직 남자만이 멈할 수 있다는 
위의 전제는 잘못되었다. 여성이라도 남성의 강간 
범행에 가담한 공범의 형태로는 강간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형법은 강간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녀를 강간하는 행위자가 남성에 
국한하지 않는 이상 강간죄를 신분과 유사하게 
이해하는 것은 오류이다. 남녀의 성별을 형법상의 
신분으로 설명하는 위 관계 역시 잘못된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
형법이 신분으로 인정하는 행위자의 속성에는
공무원이나 중재인, 증인, 의사 등의 전문직업인이나 
종교인, 재산의 위탁관계에 기한 보관자나 사무처리자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 기타 친족관계가 있다.

개별 법령에 양벌규정을 두어 법인에게 벌금형을 
과하도록 하는 이상 법인은 그 한도에서 범죄의 주체가 된다.종래에 범인의 범죄능력을 놓고 찬반 양론이 대립한 적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법인처벌 조항이 실정법규에 존재하는 이상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법위반행위를한 법인에게 벌금형이 부과되는 현실은 곧 법인도 형벌능력이 있고 범죄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벌규정은 통상 피용자가 그 영입에 관하여 법률의 
위반행위를 한 경우에 그 행위자를발하는 외에 
사용자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한다는 형식으로 규정된다. 영업의 사용자는 법인일 
수도 있고 개인일 수도 있다. 이 법인의 피용자에는 
대표자 외에도 대리인, 사용인 기타 종업원이 포함된다. 
사용자가 개인이라면 그의 피용자는 대리인, 사용인
기타 종업원이 된다. 이를 한데 묶어 양벌규정은 통상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한다.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본법의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科)한다". 

최근에는 법인격 없는 사단 · 법인과 관련한 일탈행위가 
많아지면서 양벌규정의 적용대상 안에 ‘법인격 없는 단체‘도 포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결국 종업원인 자연인이 
법위반행위를 하면 그 종업원을 처벌하는 외에 영업주 
법인 또는 개인, 법인격 없는 단체에게도 벌금형이 부과된다.반드시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양벌규정으로 
해당 뜻을 규정한 경우에 한하여 영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같은 영업주의 처벌도 범죄의 성립을
전제로 하는 이상, 벌금형의 부과는 반드시 영업주에게 
과실과 같은 책임비난의 근거가 마련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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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형법 총론 교과서인데 이해하기 쉽고
내용이 정말 좋습니다.






































형벌조항은 법원의 해석을 통해 피고인에게 적용된다. 
법원이 종래의 법률해석을 피고인에게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소급효금지 원칙에 혹여 반하지 않을지가 문제된다. 
행위 당시의 판례에의하면 처벌되지 않는 행위였으나 
행위 후에 법원이 법률해석의 변경을 통해 이를 처벌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피고인 입장에서 보면, 해석의 변경은 
마치 불리한 신법이 소급해 적용되는 것과도같다. 
기존의 판례에 따라 자신의 행위가 처벌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깨진 것이다. 이에 신뢰보호의 관점에서 변경된 
해석을 당해 사건에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도 주장된다. 그러나 현재 대법원의 입장은 해석의 불이익변경이 
형벌불소급의 원칙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형벌불소급이 문제되는 것은 오직 법률의 
불이익변경뿐이다. 형사처벌의 근거가 되는 것은
법률이지 판례가 아니라는 데에 따른 입장이다. 
우리 형법에서 판례는 형식적 의미의 법원(法源)이 아니다. 법원은 기존의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법률조항을 해석하여 새로운 결론을 낼 수 있다.

어떤 이익의 보호가치에 관한 합의는 시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형벌법규의 정당성에 관한 판례도 
그와 더불이 바뀐다. 종래 형벌법규에 의한 처벌을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가 후일 그결정을 바꾼 예는 
헌법판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예에서 결정이 번복되는주된 까닭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해악이 있나 없나의 판단이 달라진 데에 있다. 해악이 있다는것은 행위가 법익을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범죄로서 
처벌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동체가 법익의 보호가치를 승인할패의 이야기다. 
법익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되면 이를 해치는 
것은 더 이상 해악이 아니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결정례를 통해 ‘그 행위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미미하거나 법익에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다‘고 설시한다.

행위가 해악을 끼쳤다는 것은 곧 그 행위가 법익을 
침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 법익이 법규범에 의해 보호받을 가치를 가진다는 
승인이 있을 터이다. 결국 판례의 이론은 일관되게 
한 가지로 모아진다. 판례는 어떤 행위를 두고 선험적으로
 그 해악을 따져 범죄화를 논하지 않는다(사실 해악과 불쾌감을 정확히 구분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먼저 그 행위가 저해하는이익을 놓고 그것이 법익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를 따진다. 행위의 직접적 결과뿐 아니라 
간접적과장까지도 모두 고려하여 그것이 형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 보호가치에 대해 
법공동체의 승인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를 저해하는 
행위는 법익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법익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범죄로서 인정된다. 
이것이 판례가 형벌조항의 합헌성을 따지는 메커니즘이다.

형법의 도덕적 한계를 다루는 이론으로 해악의 원리(Barnm principle)가 있다. 이 이론은 처음에 ‘타인에게 해악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면 그의 국가형벌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그리자 이 이론은 논의를 발전시켜,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행위에 국가형벌권이 개입할 수는 
없는가, 국가가 후견적 견지에서 개인의 일탈을 범죄로 
다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하여 타인에게 
해악은 주지 않지만 불쾌감을 끼치는 행위, 아이 없는 
잘못된 행동, 자신에게만 해악을 끼치는행위가 논의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 관리의 이론은 이 허락 원칙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판례는 판시에서 행위가 끼치는 
해악을 언급하되, 기본적으로는 법이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법익(Rechtsgut)이란 개인 · 사회 · 국가에 관련된 이익 중에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 어느 가치가 법칙이라고 인정되는 데에는 그 법공동체의 합의와 숭인을 필요로 한다. 이 법의관이 바뀐즈음에 헌법재판소의 판례 
변경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를 
기존에 합헌이라 보았다가 후일 위헌으로 입장을 바꾼 
선례가 있다.

형법 제309조 혼인빙자간음죄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은 콩 두 차례 있었다. 2002년에 있는 결정에서 합헌이라 보았던 것을 2009년에 위헌이라고 결성했다. 형법 제241 조 간통죄에 관한 헌법재판소결정은 총 다섯 차례 있었다. 1990년, 1993년, 2001년 및 2008년 각 합헌 결정이 있었는데, 최종적으로2015년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이들 여러 결정례에서 언급한 보호법‘은 늘 같았다. 혼인빙자간음죄가 보호하는 이익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었고, 간통죄가 보호하는 이익은 선량한 성도덕과 혼인제도 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였다. 다만 그 이익을 형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느냐에 관한 판단이 날라졌을 뿐이다. 이익의 보호 가치에 관한 재판관들의 판단은 그 시대의 법공동체가 형성한 합의에 기반한다. 
그래서 시대상의 변화와 더불어 공동체의 의식도 변하고, 재판관들의 판단도 뒤바뀌는 것이다.
2009년과 2015년의 위헌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위 이익을 더 이상 형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보았다. 
보호할 가치가 없는 이익을 저해하는 것은 해학이 아니다. 
그래서 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혼인빙자간음과 간통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미미하다고 했다. 보호가치 없는 
이익을 위해 해악이 없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다른 헌법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은 위헌이다.
법익은 대륙법계에서 고안된 개념이고, 해악은 영미법계에서 생성된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는 이태생이 다른 두 개념을 모두 사용한다. 법익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면 더 이상 해악도 없다. 이 논리구조가 헌법재판소 판례의 이면에 들어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 전단(학)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헌법조항이 나타내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례성 원칙‘이라 일컬을 수 있다. 비례성 원칙이란 목적의 실험에 비례적인 수단을 사용하도록 요청하는 원칙을 말한다. 여기서 목적의 실현에 수단이 비례적이라 함은 첫째, 그 수단이 목적의 실현에 적합하고 수단의 적합성), 둘째, 다른 가지에 대한피해를 최소화하며 피해의 최소성), 셋째, 그 수단으로 실현하려는 목적이 그로써 제한되는 다른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것(법익의 균형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례성 원칙을 풀어서 정의하면, 목적의실현에 적합하고, 다른 가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며, 다른 가치의 제한과 비교하였을 때 더 우일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라는 원칙을 뜻한다.
개념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듯이, 비례성 원칙은 세 가지 부분원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수단의적합성 원칙: 둘째 피해의 최소성 원칙: 셋째, 법익의 균형성 원칙(소위 좁은 의미의 비례성 원칙),
이 세 가지 원칙에 더하여 헌법재판소는 위헌심사 시에 목적의 정당성을 덧붙인다. 그래서 목격의 정당성 원칙까지를 합쳐 총 네 가지로 이루어지는 위헌심사의 기준을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의 원칙이라 부른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 조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는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한하여 법률이라는 수단으로써 제한될 수 있음을 규정한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헌법재판에서 위현 여부의 논증으로 빈번히 인용된다. 집적(集積)된 헌법판례의 대부분은 이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 이하를 따지는 것들이다. 형벌법규의 위헌성도 주로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 이하로 가려진다.
이렇게 형벌규범의 비례성 내지 과잉금지는 죄형법정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이룬다.

형법상 낙태죄에 관해 최근 있은 헌법재판에서 재판관 
4인의 헌법불합치 의견 재판관 3인의단순위헌의견이
각 개진되었고, 그 외에도 재판관 2인의 합헌 의견이 
개선되었다. 이들 의견은 모두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른 
심사를 그 논거로 삼고 있다. 같은 심사기준에 의하여도 
심사결과는 각기 다르다. 이들 의견의 논리구조를 파악해야 그 당부당을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시할 수 있겠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어떤 법률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과 그로 인해 제약을 받게 되는 
다른 법익, 이 두 이익 사이의 명령을 전제로 한다. 형량이란서로 충돌하는 두 이익 사이의이란가치를 비교하는 작업이다. 상충하는 두 법익이 모두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속할 경우에는 기본권충돌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 기본권이란 말 그대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다.
그래서 두 기본권 간의 우열을 정해서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고 다른 하나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이 당착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논리가 과잉금지의 원칙이다. 
입법목적의 달성에 적합한 수단중에서 다른 법익에 
최소한의 피해만을 주는 수단을 선택하고, 다시 그 피해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이더 클 경우에만 법익의 제한을 
허용하겠다는 기준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우선적으로 상충하는 
두 법칙이 속한 기본권을 파악해야 한다. 위 결정의 
법정의 견인 4인의 헌법불합치 의견은 이 사안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충돌로 보았다. 
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의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구조라고 본것이다. 이 둘을 놓고 
과잉금지의 원칙을 심사한 결과 헌법불합치의견은 
낙태죄가 침해의 최소성과법익의 균형성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모자보건법이 정한 자기낙태의 정당화사유 
외에도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낙태가 요청된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입법목적의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불가피한 수단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수의견의 일부를 이루는 3인의 단순위헌의견도 기본구도는 위와 같다. 다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상충하는 법익으로 태아의 생명 외에도 여성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을 추가하고 있는 점이 차이가 난다. 낙태의 시기가 늦어질수록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크게 증가하는 점을 고려해. 여성의 생명 · 건강이라는 공익을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또 한 가지 요소로 제시한 것이다. 단순위헌의견도 낙태의 전면적 · 일률적 금지가 침해의 최소섬에 위배되고, 법익의 균형성을 위반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2인의 합헌의견은 법익의 비교형량의 한 축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 조항과 관련이없다고 처음부터 전제했다. 태아의 생명을 소멸시킬 권리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없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판사는 우리에게 범죄를 저지를 권리가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누구도 사람을 살해할 권리가 없고, 
재물을 절취할 권리가 없다.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내용이 아니다. 이처럼 형량의 한 축인 기본권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낙태죄의 법정형이불법과 책임의 정도에 비해 과도하여 비례성을 잃었다는 정도의 심사만 가능하다. 그러나 합헌의견은과잉금지의 심사를 시도하기 위해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한다는 가정 하에 논의를이어간다. 그리하여 합헌의견은 낙태죄 조항이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을 위반하지 않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어느 행위가 범죄로서 처벌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위 시에 처벌규정이 존재해야 한다. 형법은 제1조 제 1항에서 이 점을 가장 먼저 정하고 있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이 행위 시의법률에 의할 것은 헌법 제13조가 명시하는 헌법적 요청이다. 행위 후에 법률을 제정해서 소급하여 처벌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소금처벌금지), 행위 시에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라면 그 행위시의 형벌(구법)에 따라 처벌됨이 원칙이다행위시법주의 구법주의).
헌법과 형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것은 소급처벌이다. 그러므로 소급처벌을 하지 않는 사후법은행위자에게 적용되어도 무방하다. 행위 당시에 처벌법규가 존재하였는데 행위 후에 이를 폐지하는 것은 소급처벌이라 할 수 없다. 또한 행위 시에 존재했던 처벌법규를 행위 후에 가볍게 개정하는 것도 소급처벌은 아니다. 원래 처벌의 대상이 된 행위를 벌규의 개정으로 사후에 더 무겁게처벌해야만 소급처벌에 해당한다. 형법 제1조 제2항은 이 점을 규정하고 있다. 범죄 후 법률의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볍게 된 때에는 신법에의하여 재판한다(재판시법주의: 신법주의) 형법 제1조 제2항은 범죄 후에 행위자에게 유리하게 법률이 변경되었을 시에만 적용된다. 범죄 후에 행위자에게 불리하게 법률이 변경된 경우는 제1조제2항의 적용영역이 아니다.

제1조 제2항에서 ‘법률‘에 변경이 있다 함은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 개폐되는 경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범죄와 형벌을 정하는 규범 전체의 개폐를 뜻한다.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일체의 법규가 개폐되어 처벌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를 상징한다. 처벌법규가 폐지되어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처벌법규가 개정되어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가 동항의 법의 ‘변경‘에 해당한다.
법률의 변경으로 형이 구보다 ‘가벼워진 경우‘라 함은 법정형이 가벼워진 것을 뜻한다. 법정형 중에 주형(刑)과 부가형(刑)을 모두 비교하여 형의 가볍고 무거움을 가린다. 수형이 동일하면 부가형을 비교하여 경중을 판가름한다. 범죄 후 법률의 개정이 여러 번 이루어져 힘이 수차례 변경된 때는 모든 혐의 경중을 비교하여 그 중 가장 가벼운 형을 적용하여야 한다.

제1조 제2항의 적용으로 ‘신법에 따른다‘고 함은 형이 
폐지된 경우와 가볍게 개정된 경우의 효과를 달리이해해야 한다. 범죄 후 처벌법규가 폐지된 때에는 본 항의 
적용으로 면소판결이 선고된다. 형사소송법 제326조는 
면소의 선고를 할 경우 중의 하나로 ‘범죄 후의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를 명기하고 있다. 법령 폐지 시때
신법을 적용한다 함은 바로 민소의 선고를 의미한다. 
한편, 범죄 후 처벌법규가 가볍게 개정된 경우에는 
행위자에게 유리한 신법이 적용된다. 
이는 제1조 제2항의 문언 그대로이다. 범죄 후 처벌법규가 무겁게 개정된 경우는 제1조제2항의 적용영역이 아니다. 
이때에는 제1조 제1항에 따라 행위 시의 법률인 구법으로 
행위자를가볍게 처벌해야 한다. 이것이 행위자에게 
유리한 법적용이다. 제1조 제1항과 제2항은 법령의 개폐 
시에 행위자에게 가장 유리한 효과만을 적용토록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형법 제1조 제2항은 행위자에게 유리한 법령 개폐 시에 
신법을 적용할 것을 규정한다. 이 신법의 적용은 
법령개폐의 동기를 따지지 않는다. 적어도 제1조 제2항의 
문인을 보아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판례는 법령 개폐의 동기 둘로 구분하여 제1조 
제2항의 적용 여하를 달리하는 태를도를 취한다(동기) 
법령의 개폐가 법률이념의 변천에 따른 때에만 제1조 
제2항을 적용하고, 그개폐가 사실관계의 변화에 따른 
때에는 동조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법령의 개폐가 
그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 자체가 부당하였다거나 
또는 과형이 과중하였다는 반성적 고려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형법 제1조 제2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제1조 제1항이 적용되어 행위 시의 구법으로 
처벌된다는 말이다. 법률이념의 변경이 아닌 다른 사정의 
변천에 따라 그때그때의 특수한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법령을 개폐한 경우에는 위법행위의 가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판례는 
행위자에게 유리한 제1조 제2항의 적용영역을 축소하여 
해석하고 있다.

한때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였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형벌법규가 효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따라서 유죄의 재판이 확정된 경우라도
그 근거된 처벌조항이 소급해서 실효한다면, 이는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격이 된다. 이때에 당사자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
재심법원은 처음부터 청구인의 행위가 범죄가 아니었음을 밝혀주는 의미에서 무죄판결을 신고한다.

위헌결정으로 형벌법규가 소급실효한다고 함은 그 법규가 시행된 때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는 형벌법규의 시행 이후 위헌결정이 있기까지 유죄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재심청구의 당사자가 된다.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다. 해당 형벌조항에 대해 
종전에 현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그 결정이 있은 날의 다음 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같은 조항에 대해 먼저 합헌결정이 있고 나중에 위헌결정이 내려진 경우 소급실효의 범위가 제한되는 것이다.

형법은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이와 같이 영토를중심으로 형법의 적용범위를 결정하는 태도를 속지주의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라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영토와 영해, 영공이 합쳐져서 대한민국의 영역을 이룬다. 북한은 헌법 제3조가 정하는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속하기는 하나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실제로 미치지않는 반국가단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이다. 만일 북한에 대한민국의 형법이 적용된다고 보아 
속지주의를 적용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보호주의도 
적용되어야 하므로 외국에서 외국인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저지르는 반인권적 범죄도 모두 한국형법에 따라 
처벌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기까지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는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또,북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이탈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한 주민을 한국형법에 따라 처벌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형법의 속지주의는 
아직 북한 지역에까지는 효력이 미치지 않고 있다.

속지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기국주의가 있다. 
기국주의선박이나 항공기는 소란속된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고, 공해상에서는 게양된 국기가 표시하는 
국가만이 그 선박·항공기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형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있는 대한민국의 선박 또는 
항공기 내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공해상을 운항 중이던 대한민국 국적의 선박에 해적이 난입하여 
대한민국 국민에게 총상을 가한 사건에서 법원은 외국인인 해적들에게 한국형법을 적용하여 
해상강도살인미수, 해상강도상해 등의 죄로 처벌한 바 있다.

외국인의 국회법 중에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범죄는 형법이 정한 
섭외적용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속지주의나 속인주의, 
보호주의에 관한 어떠한규정을 가지고도 한국영법을 
적용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항공기납치, 인신매매 같은 
반인도적범죄나 외화위조, 마약밀매 같은 대규모 조직범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형사처벌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 이같이 범죄지나 범인의 국적, 
침해된 법의 여하를 파지지 않고 한국형법을 적용하겠다는 태도를 세계주의라고 부른다.
판례는 중국 영공에서 중국인에 의해 납치된 중국 국적의 
민항기가 대한민국 영토에 불시착한사안에서 이를 
납치범이 외국인의 국외범인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내법인 
항공기 운항안전법(현.항공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하여 처벌했다.

종래에 형법 제7조는 
"범죄에 의하여 외국에서 혐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힘을 감경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형의 감면을 필수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고 법관의 재량에 맡긴 형태였다. 때문에 법관이 형의 감경이나 면제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중처벌의 시비를 피할 수 없었다. 이 내용에 대해 2015년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형법 제7조는 개정되었다.

새로운 제7조는 "죄를 지어 외국에서 혐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집행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고하는 형에 산입한다."라고 규정되었다. 종래의 임의적 
감면이 필수적 산입으로 바뀐 형태이다. 외국법원의 판결이 있었던 사안에 대해 한국법원이 다시 심판하는 것이 일사부재리 원칙 위반은 아니다.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일사부재리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헌법상 일사부재의 원칙은 외국의 형사판결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대한민국 내에서 거듭 형벌권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외국에서 형의 집행을 받은
사람에 대해 한국법원이 거듭 심판하는 것은 가능하고, 
다만 그 집행된 좋은 반드시 한국에서 선고하는 형에 
산입한다.

범죄란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위법하며 유책한 행위이다.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점(구성요건해당성), 
또 그 행위가 위법하다는 점(위법성), 그리고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유책성)이 범죄의 성립요건이 된다. 
죄형법정주의 원리에서 구성요건해당성이 도출되고, 법익보호주의 원리로부터는 위법성이라는 
요건이 도출된다. 
또, 책임주의 원리에서 유책성이라는 요건이
도출됨으로써 범죄의 세 요소가 구성된다. 그리고 이들 세요소 아래에 개별요소들이 자리함으로써 범죄의 
세부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범죄체계가 완성된다. 지금은 범죄의 성립 여하를 구성요건해당성 - 위법성 -책임, 이 순서대로 검토한다는 점에 대해 판례나 학설 중에 이견은 없다. 이 같은 범죄 체계가 형성된 것은 과거 백여 년 동안 진행된형법 이론의 한 성과이다.

이제 사람들은 형법의 임무가 법익의 보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고에 기초하면, 범죄의 본질을
법익에 대한 침해·위험에서 찾게 된다. 법익을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달리 정당화사유가 없는 한 
위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를 비난할 사유가 있을 경우에 그 행위는 
유책행위로서 확정된다. 책임의 판단에 앞서 행위가 초래한객관적인 법익침해의 면에 초점을 맞추어 위법성을 
판단하겠다는 태도가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다(이것을 객관적 위법론이라고 부른다). 책임 없는 자의 행위라도 그 자체의 객관적 해악을 놓고 볼때에는 위법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이 같은 행위를 한 행위자의 주관적 측면에 초점을 두어 유책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위법성의 판단은 책임의 판단과 구분하여 먼저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형법의 임무가 법익의 보호에 있다고 보는 한, 비난할 수 없는 자의 법익침해행위는 위법하지 않다고 하는 결론은 
승인할 수가 없다(주관적 위법론에 의한다면, 
가령 조현병환자처럼 책임능력이 없는 자가 사람을 
살해하여도 이를 위법한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형법이 사회윤리를 보호하는 규범이 아닌 법익을 
보호하는 규범이라 여기는 현 시점에서 위와 같은 
결론을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본서도 객관적 위법론에 기반한다).

이론은 간명할수록 좋고, 범죄론의 체계도 간단한 것이 좋다. 처음에 우리 입법자가 형법을 제정할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고의·과실을 책임의 영역에서 설명했다. 행위자의 심리상태라는주관적 측면은 그에게 비난을 가할 수 있느냐는 책임의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고전적 범죄체계). 그 후로 고의·과실을 구성요건요소로 보는 이론(목적적 범죄체계), 또 고의·과실에 구성요건요소와 책임요소로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는 이론(함일태적 범죄체계) 등이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대에 따라 주류가 되는 범죄 체계는 있었어도 시대를 막론하고 진리인 범죄체계는있을 수 없다. 자기가 범죄현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범죄체계를 설정하면 그만이다. 본서는 고의·과실을 순수한 책임 요소로 설정하면서도 기존의 이론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체계를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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