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저 / 새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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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 ”단종의 슬픈 역사“ 정도로 해석되어야하나? 영화 <왕과사는남자>를 보고서 오롯이 단종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책이 뭐가있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때 만난 책. 저자 이광수의 친일여부는 (물론 화가나고 짜증이 나지만) 차치하고 읽기시작했다.

이 책은 단종대왕의 탄생부터 단종대왕의 죽음까지를 오롯한 단종대왕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다.


사실 조선의 역사를 훑어가듯이만 알고 있어서, 세조가 단종대왕의 왕위를 찬탈했고, 그 과정안에 사육신과 생육신 정도만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터 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는 나는 (부끄럽게도) 잘 모른다.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을 거쳐 단종대왕이 왕위에 올랐지만, 문종대왕의 여러사정으로(이부분이 제일 놀라웠음) 적자인 단종대왕을 너무 늦게 가진터라 고작 10살의 나이에 보위에 오르게 되었다. 정정한 숙부들 서슬퍼런 신하들 사이에서 고작 10살의 아이가 어른스러운들 얼마나. 수양대군의 야망을 잘 알던터 셋째숙부 안평이 수양의 견제세력이 되었으나, 결국 수양은 김종서, 황보인, 동생 안평을 제거하고 명실상부 조선 권력 2인자(사실상 1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그의 야망을 뒷받침할 명분, 방법, 힘 모든 것을 갖춘 그가 왕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한명회의 지략, 정인지의 야망, 신숙주의 배신은 단종이 숙부 수양에서 선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아 책속 정인지는 정말.. 개XX)


그렇게 수양에게 강제로 빼앗기다싶이 왕권을 내어주고도 끝내 노산군으로 강등 영월로 유배를 가야했던 어린 왕. 그는 누구도 의지할 수 없도록 철저히 고립되었고, 없는 사람인듯 지워져야했다.

하지만 정말이였을까?! 책 속의 수양 역시 어린 조카에게서 권력을 찬탈하고도 발뻗고 살수 없었다는 것이.. 

“상왕을 배반하고 돌아선 정인지, 신숙주의 무리가 지금왕이라고 배반하고 돌아서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왕이란 결코 마음을 놓이는 자리가 아닌것을 깨달았다.” 

 흥미로운 점은 공신들 역시 노산군을 살려두었을 때 자신들에게 끊임없이 닥칠 후환을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더 노산군과 금평을 죽이려 그 난리를 쳤는지도…


결국 (영화와는 달리) 금평의 집에서 쓰였던 격서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금련이라는 시녀에 의해 급창에게 넘겨지고, 그로인해 결국 역모로 몰려 교살당하게 된다. 사실 이미 귀향가있던 인물이 역모를 꾸몄을까.. 싶긴하지만, 결국 그 일로 노산군 역시 죽임을 당한다. 책속에서는 사약이 아니라 역시 개인의 영달을 노렸던 한 시종에 의해 교살당한것으로 나오는데, 그의나이 고작 16세라니…


이런 역사적 소설을 읽을 때면 꼭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만약”이다. 만약 문종대왕이 어린 아들을 생각해 그냥 수양에게 왕위를 넘겼더라면.(아들의 안위 보장을 약속받아서..) 만약 단종대왕이 왕위를 받았으나 수양 숙부에게 그냥 넘겼더라면.. 그는 살수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참.. 권력앞에 누군가의 목숨은 보잘것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였다. 그 놈의 명분. 그 뜻도 모를 그것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을 근거가 되는가. 결국 적장자로써 가지는 단종대왕의 위치는 아무리 문종대왕이 지키려했어도 결국은 단종대왕이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았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했다. 결국 적장자라는 왕위의 명분이 역설적으로는 그가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못할 저주가 되어버린 상황이라니. 슬프네. 슬퍼.


그래. 진짜 애사네. 슬픈 역사.

그래서 세조역시 오래 살지는 못했겠지. 자신도 그자리를 언제 빼앗길리 모른다는 두려움과 형님의 아들을 그리고 수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오른 자리였으니.


영화와 또다른 관점에서의 단종대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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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장례식
조현선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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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물리적으로는 절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할 수 없음에도 “나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은 책. 지인의 추천도 있었고.


나희는 가난하진 않지만 빠뜻한 살림을 꾸려가는 아버지에게 대학 등록금만큼은 자신이 벌어 대학을 가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고, 이곳 미수의 조그만 매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달 급여가 무려 300만원이고, 병원옆에 딸린 조그만 매점이기에 야간에는 손님도 별로 없고, 너그러운 사장 미수 덕택에 일하는게 힘들지 않았지만, 일주일만에 나희는 매점을 그만두려했다. 

이유는 하나.

새벽 2시가 되면, 매점에 붕대와 소독약을 사러오는 남자. 아무리 이곳이 약국이 아니라말해도 매번 나타나 똑같은 것을 찾는다. 

그리고 같은 시간 환자복을 입고 온갖 관에 주사를 두른채로 삐쩍마른 미라같은 모습을 한 할머니가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하듯 빠끔꺼린다. 

그런지 일주일째. 그녀는 너무 두려웠다.


사장 미수는 그만두려는 나희에게 조심스래 물었다. 무언가 보이는 것이냐고.

흠찍 놀란 나희에게 십년전쯤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도 같은 말을 했었다며. 이후로 누구도 그런말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너도 그런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그래서라면 야간이 아니라 오후 근무로 바꿔주겠다 말한다.

오후 근무를 하게된 나희. 야간과 달리 숨돌릴틈없이 돌아가는 오후 근무에 다시 야간으로 변경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던 어느날, 근처 미용실 사장이라는 여자가 그녀앞에 나타나 미용실 앞에 아주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열어달라고 한다.  본인이 열면되는데 대체 왜?! 간곡하게 말하는 사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나희는 퇴근길에 문을 열어주고, 그 작은 문을 통해 폴짝 뛰어나오는 고양이 루비를 만났다. 어쩔 수 없이 루비를 임시보호 하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온 나희. 다음날 그 미용실 사장이 3일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만난 미용실 사장. 루비 이야기를 하니, 안심한 표정. 그리고 얼굴이 흐릿한 어떤 사람을 따라 떠났다.


이 이야기는 병원 매점에서 일하는 나희가 그곳에서 만난 영혼들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고 그들이 이곳에 미련이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이다.


죽기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못해 나희를 졸졸 따라다녔던 강선빈.

죽기전 아내에게 먹이지 못한 고깃국으로 나희를 찾아온 오수형.

어렸을 적부터 루프스로 고생하다 결국은 췌장암으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친구와 함께 했던 동해 여행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온 최희진.

잠깐의 실수로 잃어버려, 알수 없는 이유로 죽었지만 자신의 주인을 죽고나서도 찾는 진돌이.

남편의 폭력과 사업부도로인해 삶이 너무 힘들어서 딸에게 모질었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했던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다시 찾아온 조연자.


뭐랄까. 우리의 삶은 이런 사소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가 살게 하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어떤 위대하고 거창한 가치가 아니라 그에게 하지 못한 한마디, 함께 했던 순간에 대한 행복한 기억. 그리고 미안하다 전하지 못한 진심. 그런것들이 인간에게 남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소함에 가슴이 뭉클해지니까.


나의 죽음이 다가온다면,

나에겐 잊지못한 무엇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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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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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던 책 중 하나. 요즘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질병. 그리고 죽음. 이 책을 읽으며 벌써 5년쯤 지난 코로나 때가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 그 시기에 우리도 이랬었나 하는 생각들.


도시 오랑. 어느날 부터인가 쥐의 사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뉴스에 간간히 등장하였으나 글쎄. 싶던 중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림프가 붓고 하혈을 하고, 열이 발생하다 2-3일만에 죽어나가는 증상들. 쥐들이 죽어나갈때와 유사하다.

이것이 흑사병임을 알아 챘으나, 시당국의 대처는 늦기만 하다. 우왕좌왕 하던 중 계속되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의 눈을 더이상 덮을 수 없었던 때가 되고서야 정부당국은 도시를 봉쇄하고 이동을 금지한다. 

도시의 사람이 아니기에 내보내 달라는 랑베르. 이것은 재앙이라며 신의 뜻이라 말하는 신부. 모두가 불행해 지기에 아이러니하게 행복해진 코타르. 그리고 이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나가려는 의사 리유. 

페스트에 대한 두려움. 어느새 그것과 함께 하는 일상에 젖어든 시민들, 그러면서도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는 패닉. 그리고 자신만의 이유로 이곳을 나가려고 드는 사람들. 그리고 어떻게든 이것을 이겨내보려는 인물.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종교의 무의미.

코로나를 겪으며 들었던 다양하고도 어쩔수 없었던 무력함의 시간을 작가 카뮈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세계대전 속에서 이도저도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페스트라는 소재를 통해 풀었다는 점이 새삼 놀아웠다. 전혀 다른 두 매개는 결국 한 개인이 통제할수도 이겨낼 수도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도 없는 그 상황은 어쩜 이리같은 것인지.


그리고 소설 속에 가장 먼저 혈청을 주입함으로써 죽어가던 판사의 아들에 대한 묘사는 전염병이든 전쟁이든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죽어나가는 것은 가장 여리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왜냐하면 죄 없는 어린애가 그렇게도 오랜 임종의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본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p. 279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그 병은 의사 리유와 이 시간을 함께 이겨나갔던 타루의 목숨을 앗아갔고,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끝내 부고를 알려왔다.

왜 신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왜 신은 가장 어리고 약한 아이의 목숨까지 앗아가야 하는 것일까.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세계로의 환희라는 신부의 말에 과연 부모를 잃고, 아이를 잃고도 내 손으로 시체조차 수습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위로를 안겨줄 수 있을까?!

의사 리유에게 신은 그저 잡히지 않는 허상이였을 뿐이였고, 페스트는 그가 끝내 싸워야할 대상이였다. 그 싸움을 함께 했던 것은 인간들의 연대였을 뿐. 그렇기에 외부인 랑베르가 연인을 보기 위해 오랑을 탈출할 계획을 할 때에도 리유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 암흑같았던 시간 속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준것은 그들이 누렸던 일상의 소소함과 가족, 사랑, 친구 들이였으니까.


아마도 내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지 않았다면 이 소설 속 군상들의 면면을 이토록 깊게 이해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지나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시간 속에서 누구는 가족을 연인을 동료를 친구를 잃었다. 또한 가장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되찾았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책 한권을 읽으며 지났던 시간을 돌이켰고,

그 시대가 다시 돌이켜진다.


인간이 군집을 이루고 사는 동안은 어쩌면 또 다시 반복 될지 모르는 페스트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뤄야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은 결국 우리가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우엇이었기에, 의사 리유는 그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페스트가 왔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것이 갔지만, 결국 언젠가는 다시 올지도 모르는 또다른 재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것은 

전염병일 수도 

전쟁일 수도.

우리에게 또 다른 팬데믹 일 수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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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그 이후 - 애플tv 플러스 드라마 원작
셰리 핑크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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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꽤나 논쟁적인 측면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5일동안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한 책이다. 


허리케인카트리나의 발생으로 메모리얼 병원이 침수되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모회사인 테닛에 구조요청을 보냈으나, 그런 체게가 없었던 본사는 병원에서 자체적인 대비체계를 말할뿐이였다. 한여름 전력이 끊기고 상수도도 끊긴상태, 하수도는 역류를 시작하는 최악의 상황이였다. 병원은 미칠듯한 더위와 어둠에 갖혔고, 주방위군과의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은 통에 왔던 헬기가 그냥 돌아가야 하는 등의 어이없는 소통부재도 존재했다. 한마디로 재난 상황에 대한 어떠한 프로토콜도 없는 상태였던 것.

그렇게 병원은 자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가장 위급한 사람을 대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경증, 스스로 움직이거나 부축을 받아 움직임이 가능한 환자와 보호자의 안전을 최우선하기로 했다. 병원의 구조팀이 도착했을 때 그들을 먼저 보내고, 7층의 위중한 환자들은 나중에 대피시키겠다는 말만 할 뿐이였다. 그 5일의 끔직했던 상황이 지나가고, 그저 재난 상황에 구해지지 못한 환자들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만 넘어갔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증환자가 머물렀던 7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던것.

그렇게 시작된 수사. 밝혀진 사실은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가 DNR에 사인한 환자였고, 의식이 없는 중증환자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체내에는 각종 안정제가 검출되었다. 밝혀진 사실은 그들을 보트가 들어오는 2층이나 헬기가 오는 옥상으로 올릴수가 없었기에 고통속에 죽어가도록 둘수 없으니 대량의 혼합 안정제를 의사들이 투여하고, 구조/비구조자들을 나눴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결정을 내렸던 의사들은 보호자들에게조차 상황을 공유하거나 통보하지 않았다. 중증환자인 어머니 곁을 지켰던 보호자는 심지어 어머니는 추후 구조될 것이니 먼저 구조보트를 타고 떠나라는 의료진의 말을 믿었고, 먼저 떠난 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서명한 DNR이 어머니를 구조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였다며 흐느꼈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의료진 모두 풀려났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 민사소송을 면책한다는 법조항에 따라서 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어떤 선택이 옳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의료진의 선택이 반드시 잘못되었는가?! 라는 질문과 나 라면? 이라는 질문이 함께 한다. 

당시의 측면은 의료진만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정말 총제적 부재였다.  테닛이라는 메모리얼 병원의 모회사의 방치, 주 정부에서 역시나 재난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 부재,  고립된 병원. 놀랍지 않은가. 고작 5일동안 벌어진 이 상황이.  그 지옥같은 고립 속에서 의료진이 마주한 것은 재난 그 자체보다 비 이성적 공포가 만든 터널 시야였는지도 모른다.

 환자나 보호자가 고립되어 있는 동안 목이 말라 생수를 요구했는데 거절당했다. 비축분이 모자라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수사 시 밝혀진 사실은 병원에는 생수/통조림/음료수가 꽤나 쌓여있었다고 한다. 뭐지. 이런 상황. 이후 언론보도에서는 병원이 약탈당해 최악의 상황이였다 사실은 아니였던 것. 또한 엘리베이터 고장 등으로 인해 환자의 이송이 힘들었다는 보도 또한 사실이 아니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대피가 가능해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의 주 발전기가 홍수 수위보다 훨씬 높이 있었기에 일부 위급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전력 공급은 가능했다고…


저자는 이 책을 의료진에 대한 비판/옹호의 목적으로 쓴것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그대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시민사회의 합의가 없을 때 비상상황에서 비이성적 판단일지도 모를 판단에 의해 누군가의 생명이 맡겨져서는 안된다는 것.

당시 같은 상황에 놓엿던 코네티컷  호스피스에서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위중한 환자를 대피시킬 예정임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렸으나, 그들은 더 건강한 사람을 최우선 대피 순위로 변경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듯 우리사회의 재난상황에 정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구조 순위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우리 사회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 그래야 그 상황 안에서 슬프지만 우리가 납득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우리의 생은 소수 몇명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빈번하다고도 저자는 말한다. 

”이런 끔찍한 압력 하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싶은지 미리 한번 생각해보는 사치를 누릴 수는 있다.“ p.647


재난은 대비를 하여도 늘 발생을 하고, 그런 시기마다 우리는 백서를 출간하며 그런 상황에 대해 피해 및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늘 그런 상황 속에 놓일 때 해야하는 결정을 그저 소수에게 맡기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위중증 환자에 대해 존엄사를 논의하는 과정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환자본인/보호자/그리고 의료진/생명윤리위원회 등. 그런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한 생명에 대하여 내려지는 결정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메모리얼 병원의 재난 상황에서 발생했던 몇몇 의료진의 결정에 대해 법적 면책에 대해 의료계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재난이라는 이유로 법적 정당성을 획득한 것 자체가 의사가 가지는 생명 윤리에 대한 위기, 그리고 환자와 의사가 갖는 믿음의 측면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수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겠지만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몰렸을 때, 누군가의 생명은 누군가의 손에 달린다. 그것이 제도화 되었다고 한들 어쩌면 이 잔인한 선택을 오롯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고 불편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 한다.


우리는 잘되어있을까.


추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어야 할까? 환자들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죽게 내버려두었어야 할까?


당신이 도대체 뭔데. 내 동의나 허락도 없는 상태에서 내 고통을 핑계로 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결정한단 말인가?”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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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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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고통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일은 가능한가” 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던 책.

최근 방영된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된 존엄사.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존엄사, 안락사라는 측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이 책은 3명의 의사가 조력임종이라는 죽음을 놓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보아야하는 지를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시작은 용어와 개념에 대한 정의다. 단순히 어떤 사례들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놓고 다투어야할 논제가 아니라 그것에 이르기 까지의 우리사회의 생에 대한 질/ 돌봄 등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며 반드시 검토해야할 쟁점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한 국가들이 마주한 난제,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우리 문화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까지를 읽고 있다보면 정말 내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결과를 위해 단순히 생각했던 문제가 타인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논제가 아님을 알게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선택 역시, 단순히 호흡기 연결을 종료하고, 심페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임종에 다다를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즉  임종기에 들어선 상태가 아니라면 연명의료중단 역시 자기선택 사항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결정권은 연명의료중단 뿐인데, 그렇다면 왜 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부터가 논의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신약이 필요한 암환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해당 환자는 가족에 대한 피해, 어려운 진료환경, 간병, 고가의 치료비 등은 환자에게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순수한 동의”라는 측면에서 성립할 수 있을까? 

결국 죽음이라는 한 인간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오롯한 자신의 결정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가 임종에 이르기 전까지, 소위 조력임종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기 전까지 우리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저자는 이 대복에서 '말기 돌봄/완화 의료'의 화두를 다시 던진다. 호스피스. “죽음”과 연결지은 치료가 아니라, 끝까지 내가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평안한 삶을 위한 치료의 측면에서 호스피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나, 호스피스가 대안이 될 수 있을만큼 우리 사회에 보편적 접근성이 있는지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10년전이긴 했으나 말기 암이셨던 할머니를  호스피스로 모시려했으나 서울 내에서는 3-4일 내 사망하지 않으면 퇴원해야 한다고 들었고, 경기권에서는 입원은 가능했으나 우리 가족의 접근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위치였기에  포기해야만 했다.  수도권조차 이러할진데, 지방의 현실은 더 열악하지 않을까?


결국 돌봄에 대한 의료의 공백은 가장 경제적/신체적 취약계층에게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조력임종이라는 것이 제도화 되었을 때 모두에게 이 제도는 정말 안전하게 이용될 수 있을까?!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노인 자살 1위가 대한민국인데..

’임종기’의 환자뿐 아니라  만성질환/난치병의 측면에서 본다면 운동신경장애/만성폐질환/심부전등등 임종기는 아니나 끊임없이 누군가의 손길과 치료가 평생에 걸쳐 필요한 질환을 가진 사람들 역시 돌봄이나 완화의료의 접근성을 놓고 본다면 너무나 낮은 수준의 현실 속에 놓여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굉장히 폭넓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 봐야할 점을 짚고 있다. 자살과 의사조력임종의 차이, 그리고 의사조력임종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 등. 그리고 우리가 TV에서자주 보는 스위스의 이그니타스라는 단체 등. 그리고 의사로써 가지는 딜레마. 인간생명의 존중측면에서 행했던 의료행위에서 “죽음”을 두고 내려야 하는 행위는 결국 환자에게 의사에게 가지는 절대적 믿음의 훼손 측면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

그럼에도 여전히 조력임종에 대해 합법화 되지 않은 나라에서 자신의 환자가 가지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내린 몇몇의 의사와 그들의 양심고백등으로 재판에 대한 판결은 집행유예로 결론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을 지극히 의사나 환자/환자가족 의 개인적 이슈로만 언제나 묶어둘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더 음성화 될 때 나타나는 문제 역시 존재함을 저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류잉 작가의 “단식 존엄사”도 생각이 났고, 또다른 의미로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한사람의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는 사실이 새삼 무섭다.

깨끗한 죽음. 이것은 깨끗한 삶이라는 말처럼 어려운 일임을.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엔딩까지 이르는 삶에 대해 개인의 문제이면서도 사회의 문제임을 다시 알게 하는 책이다. 

그렇기에 참 어렵고 아팠다.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더욱 남은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끝내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조력임종을 택했을 누군가의 고통을 너무 뒤늦게서야 알았다. 그 깊은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 채, 그동안 그저 쉽게 '죽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조력임종 도입을 찬성했던 나의 한없는 가벼움이 부끄러워졌다.


진짜 추천.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뿐 아니라 가족 관계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돌봄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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