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타 ㅣ 범우문고 32
현진건 지음 / 범우사 / 198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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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책. 아마 학창시절 "고교생이 읽어야할 필독서"리스트에 있었던 것이 그 시작이지 않았을까. 우연히 어떻게 구매하려던 책 가격을 맞추려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작디작은 책.
그리고 심지어 궁서체로 쓰여진 아주 오래된 현대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 현진건 작가님의 소설집이고, 이렇게 소설을 많이 쓰신분인 줄은 몰랐다. 내가 읽은 책은 범우사 범우문고의 문고판 사이즈의 책인데 얇고 작은 책에 현진건 작가님의 단편이 꽤나 여럿 수록되어 있었다. 읽다보니 느껴지는 시대. 1920.30년대의 말투 그리고 그시대상. 당시로써는 굉장히 리얼한 소설이였겠다 싶은 내용들.

개인적으로 내게 인상깊었던 소설은 잘 알지 못했던 "불"
열다섯살 순이의 이야기. 봉건시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농촌에서 조혼의 피해자가된 그녀. 남편을 피해 헛간으로 숨어들었지만 남편은 끝내 그녀를 원수의 방으로 데려간다.  밤에는 남편에게 낮에는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는 그녀가 끝내 살기 위해 선택한 것에 대한 이야기. 시대는 옛날이지만, 열다섯 순이는 그 시대에 저항을 던진다. 벗어나기 위해
"순이는 근래에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 못견디겠다는 듯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로 뛰고 세로뛰었다." p.30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할머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가족을 관찰한 듯한 이 소설은 묘했다. 가장 큰 어른이고, 나의 오랜 가족이였던 이를 보내는 그날까지의 가족의 군상. 이 단편은 시대상이 보이지가 않았다. 길어진 평균수명에 죽음만 유예되었을 뿐 여전히 병간호, 돒봄등은 가족들의 몫이다. 그 몫이 주는 힘듬 부담 이런 시간들이 표면적으로 한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을 수 있는가. 어떤 모습들이 가족에게 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진짜 병자를 위한 행위인지를 이 단편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에도 유효하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그리고 표제작 "B사감과 러브레터"
요즘도 사감선생님이 있나.. 나때도 없었지만, 대학 기숙사에는 있었던것 같다. 사실 선생님이 아니라 대학 기숙사는 직원분이시긴 했던것 같기도 하고. 다만 이 소설은 작가님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였는지 모르겠다. 그저  당시 남성보다 혼기를 놓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로인해 억압된 시선 속에 갇혀 살아야했던 한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연얘편지 속 주인공이라는 마치 광기어린 모습으로 변질된 것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런 여성의 희화화된 모습이였는지는...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님이 말하는  B사감의 모습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만 남았던 소설.

이 소설집에 실린 내용들을 읽고있다보면 여성과 남성의 대비가 분명히 드러난다. 빈처에서도 운수좋은날에서도 술권하는 사회에서도. 빈처와 술권하는 사회는 인테리 남편이면서 가난한 가장, 그런 가장을 그저 믿고 믿는 아내. 일제 치하라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자괴감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가정에서는 그래도 대우받고 존중받는 모습이 대비가 암울한 사회 속에서도 살아갈 한 숨이 되어줄 수 있었던 버팀목을 그린 것일까.. 싶다가도 지금의 "나"는 못살겠네 싶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운수 좋은 날"은 반어법 제목답게 결말을 알고 보면서도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어느 하루 그래도 꽤나 돈을 벌어 으쓱한 마음으로 아픈 아내가 먹고 싶었던 설렁탕을 사들고 들어간 집에서 가장 싸늘한 결말을 맞게되는 사실이 앞선 두 이야기들과 완전히 다른 결론앞에 왜이리 씁쓸하던지.

현진건 작가님이 오래토록 살아 지금을 놓고 소설을 쓰셨다면 아마도 빈처, 술권하는 사회는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던 소설들.
재밌었다.
소설 속 대사가 정말...
1970년대 영화 속 신파 대사가 귀에 맴도는 듯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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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지음,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 오후의소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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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번역가님이 추천해주신 동화책. 가끔 누군가의 추천으로 동화를 읽다보면 낯선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지? 하는 느낌. 내가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읽었다면 어떤 의미로 읽었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이 이야기는 이타릴아의 베파냐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동화라고 한다. 산타클로스의 할머니 버전?! 하지만 할머니가 마녀처럼 보일 정도로 주름도 많고, 못생겼고, 빗자루를 타고 다닌다고하니. 하지만 이 동화 속의 할머니는 빨간 스카프 두르고, 사신 앞에서도 당신이 지금은 사신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빵소를 만들기 위해, 누가를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줄 팡도르를 만들기 위해.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은 그 때마다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음식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절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문턱을 넘어 음식의 향에 맛에 그 결심이 무너진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마지막일까. 아니면 또다른 시작을 말하는걸까. 할머니의 레시피는 누구의 손을 타고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똑깥이 달고, 따뜻한 맛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시작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엄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이때 뭐넣었어? 할머니꺼는 무슨 맛이였지? 오래토록 살아계실 줄 알았어서 한번도 할머니의 음식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할머니 였다.(할머니와 오래 살아서 대다수 음식을 할머니가 해주신 맛으로 기억하기에..)

삶과 죽음은 물리적으로 절대 만날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은 할머니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탈리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일까. 
“집과 나무들은 유령처럼 희미해졌고 두 여인의 뒷모습은 솜사탕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팡도르를 하나 사먹어 봐야겠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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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장강명 지음 / 글항아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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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읽어야지. 벽돌책. 그리고는 책장에 예쁘게만 꽃혀있는 나의 벽돌책들을 바라보며 이 책을 들었다. (저 책은 언제 읽지..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엄!청! 놀랐다. 벽돌책이 이렇게 많다고?! 그리고 나의 벽돌책 기준은 500페이지였는데, 장강명작가님은 700페이지를 기준으로 잡으셨다고하는데도 백권이 넘는.. 물론 연재했던 내용을 묶은 것이라고는 하나 백권이 넘는 벽돌책을 읽!었!고. 읽고나서 글을 썼다는게 더 놀라웠다. 와.와.


총 7장의 주제로 분류된 벽돌책들.

이 책은 벽돌책들에 대한 서평책이 아니다. 소개의 글?! 정도. 하지만 수백 페이지의 책을 읽고 서너 페이지로 책을 소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한번은 체험해봐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p.19

독서라는 행위에 있어 벽돌책은 얇은 책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해주고, 책을 읽는 다른 근육을 키워준다고. 나는 이말에 동의한다.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정리했다는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벽돌책이 그러한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에 번역된 대부분의 벽돌책은 번역가가 편집자가 출판사가 엄선한 것들이기에 그런 효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내가 몇 안되는 벽돌책을 읽으며 막연히 느꼈던 밀도 높은 충만함의 이유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첫 파트는 단연코 흥미다. 일단 재미있고, 흥미로워야 읽지. 첫 장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은 <재난, 그 이후> 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했던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내용이다. 재난이라는 극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믿었던 윤리가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를 두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는 책이라 한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지만, 일어났고, 그 비극을 토대로 우리는 재난 프로토콜을 어떻게 가동하고 있는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 우리가 어떤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니.. 궁금해지는 책이다. 


두번째 파트. AI 시대. (아.. 이노므 AI.)

나는 여기서 내가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예쁘게만 꽂혀있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어야 할 시점이라는걸 알았다. 저자는 이 책의 추천 이유를 "인간 존재에 염증이 생기고 진보를 더는 믿을 수 없을 때 이 책은 해독제와 같습니다.p. 62" 라고 말했지만, 내가 선택한 이유는 작가님이 말한 이유에서는 아니다.

나는 다른 질문이 피어올랐다. 인간의 방대한 지식과 행위에 따른 역사를 학습하며 진화하는 AI의 최종결론도 정말 '선함'으로 향해갈까?!  인간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는 AI의 시대에 오히려 인간 본성을 다룬 벽돌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를 찾은 셈이다.


그리고 네번째 파트의 "루시퍼 이펙트"

이 책은 꽤나 유명한 교도소 실험.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부여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한 내용을 다뤘다. 뭐 실험 자체가 문제가 많았고, 굉장히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궁금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우리를 위의 책에서 선하게도 만들지만 얼마나 악하게도 만들 수 있는지가. 알아야 피해갈 수 있고, 알아야 같은 수렁에 두번은 빠지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섯째 파트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번역가님의 추천으로 알고 있던 책인데, 여기 소개글을 보고 더 궁금해진 책이다. 3대에 걸친 악의 기원을 쫒아 심연으로 향하는 소설이라는 글에 더 궁금해진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궁금해진 책 리스트를 정리하고 보니 나는 인간의 선과 악에 관심이 많은건가. 아니면 내가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인건가..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


작가님의 글솜씨로 인해 소개된 많은 벽돌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하지만, 나는 안다.. 벽돌책은 정말.. 무겁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읽고나면 뿌듯함이 인다는 사실도.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할 때, "나는 절대 작가님의 꼬심에 넘어가지 않을테다! 나는 절대 장바구니를 늘리지 않을테다!" 라고 다짐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덧 내 장바구니는 터지고 있고, 일부 품절/절판된 책들을 찾아 중고서점을 뒤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뭐 일단 리스트업한 책들부터 시작해 볼까나.



"저는 지적 지구력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기초 정신력'이라고 봅니다. 지적 지구력이 있어야 복잡한 사유를 견딜 수 있고, 그래야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높은 해상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151

"거듭 말씀드리지만 벽돌책 독서의 의의는 과정에 있지 결론에 있지 않습니다. 꼭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고 등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p.339

-- 암요암요. 읽다가 멈춰도, 벽돌책이니까 다른 책 한권은 읽은 셈...이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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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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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도 몰랐고, 그저 제목 하나에 끌렸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이라는 저 제목이.

이 책은 저자가 10명의 철학자들의 언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존엄과 존재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한다.

예전에는 속한 집단 속에서 쓸모를 증명해야했는데, 현재의 삶은 내 삶 전반에서 나의 쓸모가 필요해졌다. SNS, 회사, 가정. 그리고 이제는 AI의 등장까지. 사람뿐 아니라 기계와의 경쟁 속에서도 나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몽테뉴까지로 이어지는 축적되어진 지혜 속에서 인간은 인간자체로써 존엄한 존재임을 분명히 학습했음에도 우리는 왜 쓸모를 찾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잠깐 “토”를 달았던 부분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에 대한 부분이였다. 당시의 교육은 “인간의 본성대로 살도록 돕는일”이 교육이였으나, 현재는 좀더 경쟁력있는 인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으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맞는말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교육이 평균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커리큘럼을 집중시키며 능력제일주의라는 이상을 만들어냈으니까.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은 그런것을 하지 않아도되는 노예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아니였나. 하는..

그렇다면 현실에 발을 딛고 먹고사니즘을 고민해야하는 우리와 먹고사니즘을 고민할 필요없었던 노예제 시대의 사회 두 사회의 교육관은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지 않나하는 생각.

물론 능력제일주의 만을 위한 교육이 현재의 “쓸모”를 증명하는 사회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도구화된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 인간으로써 살아내기 위한 기본을 잊지말라는 것이다. 죄책감, 부끄러움, 그리고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 타인과 살아가는 방법에서는 우위에 서라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을 가져야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좋은 말이고, 우리가 잊지말하아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책속과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나 벌어진 지금에서 뭐랄까.. 너무너무 착한 친구가 내게와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말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도 누군가는 이런 글을 쓰고 상기시켜줘야겠지. 무엇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고 지치게만드는지.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역시 죽음이였다. ”몽테뉴“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p.220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말이다. 삶의 유한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것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죽음은 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속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매 순간 도구로써의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으로써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어떤 순간을 가장 후회할까, 아니면 어떤 순간을 가장 행복해할까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내가 가지는 생각을 달리할지도.


재밌는 책이다. 너무 착한 친구가해주는 충고 같으면서도 순간순간 뼈때리는 말들이 숨어있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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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
권성민 지음 / 돌고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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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영상을 보고 구입한 책. 참고로 TV방영은 보지 않았다. 꽤나 유명했다고 듣기만 했을 뿐. 추천 내용을 듣고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PD의 생각에 꽤나 놀랐다.

 이 책은 시사예능 프로 “더 커뮤니티”를 기획하면서 PD가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그 기획, 촬영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는 사상의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을 건드린다. 단순히 좌/우의 관점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부터, 좌/우의 구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간극을 어떻게하면 좁힐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한 책이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극대화되어가는 갈등의 근원은 무엇인지가 그 시작이 아니였을까 싶다. 나는 그 시작이 온라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그것을 “만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특히나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만드는 알고리즘으로 인한 무분별한 노출은 상대의 생각을 접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그렇게 이미 확정되어버린 대상은 역시나 온라인 내에서 가장 공격하기 쉬운 대상이 되어버린 상태.


저자는 그렇기에 “더 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의 기획단계 부터 굉장히 세심하게 판을 짜기 시작한다. 조사를 통해 보수성향/진보성향을 구분하고, 그에 따른 소득/환경을 통해 최대한 다양한 구성요건을 만들고자 한 노력이 보였다.(물론 방송이라는 특성상 기본 검증이 필요하기에 어쩔수 없는 점을 말하기도했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또한 성향 조사를 통해 진보/보수를 나눴다. (이 부분에서 자신이 믿었던 것과는 반대의 성향이 나타난 분도 계시다니.. 나도 해보고 싶네.)


그렇게 시작한 프로그램은 다양한 주제/요건에서 보여지는 의견 /탈락자 그로인해 분열되는 현상이 마치 지금 전세게 속에서 보여지는 분열의 양상과 유사하게 보였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 사회 분열의 이유의 한 면을 읽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이미 자신의 의견을 공고하게 말할 대본을 준비하고 나온 토론프로그램과는 달랐다.  기본 장에서부터 여러 상황들 속에서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대립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표출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지난 대선 때 나왔던 의견이 그러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금액으로 일하면 안되는것” 이라는 말. 그 후보가 옳은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배경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 그럼에도 그것을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그렇기에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폭넓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선이 내세우는 대의가 실제 노동자들이 실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을 읽으며 다른 책에서 읽었던 아이의 말이 떠오른다.

공감이라는 뜻의 의미에 대해 아이는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결론은 대화였다.

공론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였고, 저자는 그것을 시사에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낸것이다. 차이라는 것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사회는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장소이고 시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위선“을 말하는 부분이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위선을 집어던지는 일이 아니라, 위선을 끌어 안고 지켜나갈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p.347

이 부분에서 임산부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등장한다.(어쩜 그리 내생각과 같은지) 그것은 결국 우리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위선의 한 측면이며, 그런것을 감내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라는 것. 나는 여기서 외국에서 많이 나오는 우리나라 카페 문화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CCTV가 우리의 행동을 그렇게 유도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위선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우리의 행동을 성공한 위선자로 이끌고 그것은 우리를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최저선이 무너졌을 때 최대 악까지 내려갈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점도 같이 말한다. 그것은 스텐퍼드 대학교의 교도소 실험에서 ”설계자의 개입이라는 강한 압력“이 인간 본성을 어디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까.


다시 야만의 시대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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