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디스워튼의 작품은 올드뉴욕을 읽고서 두번째 책이다. 올드뉴욕과는 결이 전혀 다르면서, 묘하게 어렸을적 보았던 스티븐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미드를 생각나게했다. 묘하게 으스스한 스산함이 느껴지는 8개의 단편들. 개인적으로 여름 밤에 불꺼놓고, 책상 스텐드하나 켜놓고 읽었더라면 더 오싹했을 법한 스토리로 구성되어져있다.


이디스워튼은 "순수의 시대"로 여성최초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이다. 명망가의 자제로 상류사회에 있다보니, 올드뉴욕도 그러했고, 이 책의 배경 또한 부자집에 대한 배경이 풍부했다. 7화의 "페리에 탄산수 한병"의 배경이 되는 사막의 집은 부자이면서도 사막 그자체의 몽환적인 배경이 잘 그려져 있었다.


1화 "시간이 흐른 후에야"는 시작부터 앨리다스테어의 입을 통해 복선이 깔리고, 보어부부의 일상이 그려질때마다 내 머릿속은 대체 누구지? 이사람인가? 저사람인가? 아니면 주인공인가?하면서 내내 복선의 주체를 찾아서 내용을 읽어나갔다. 물론 틀렸다. 참고로 단순하게 생각했어야했는데, 혼자서 너무 꼬와서 상상한 덕에 틀리긴했지만, 덕분에 오싹함은 두배로 다가온 내용이였다.


개인적으로 1화는 오싹해서 인상깊었고, 6화 "충만한 삶"은 살고 있는 지금을 생각나게 했다. 살면서 남편과의 모든 생활이 불만이였던 여자는 죽고난후, 생명의 영을 통해 자신이 살아서 충만하지 못했던 삶을 채워줄 영원한 반려를 만났으나, 여자는 삶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는 살면서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던,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줬던 남편을 기다린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왜 제목을 "충만한 삶"으로 지었는가, 여자는 왜 영원의 반려와 함께하지 않았던 것일까. 워튼이 1800년대 후반 사람이여서, 일부일처 뭐 이런 개념으로 이런 스토리를 쓴거 같진 않았다. 다른 작품들에서 여성을 그린 모습이 수동적인 모습은 아니였기에. 그렇다면 왜 이 챕터의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인지. 그녀는 삶이 행복했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그 삶 자체를 기다린 것인지.. 내가 죽고나서 내게 생명의 영이 나타나 나의영원한 반려를 만나게해준다면 나는? 지금 내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듯.. 계속해서 내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질문과 함께 참고로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혼자살기로,,)


으스스함에 읽으면서도, 결말을 읽고, 내가 놓친게 있었나? 하는 의아함이 들었던 밤의 승리편. 그럼 러틀리지가 만났던 사람은 그녀였을까? 아니면? 했던 "매혹 편. 공작부인은 대체 예배당에서 무엇을 했기에 공작이 그곳에 들어갔을때, 그녀를 위한 조형물을 가져왔을때 그리 두려워했을까. 그냥 당당해도 되었을텐데... 했던 기도하는 공작 부인편. 각 단편이 1800년대 후반이 배경이고, 상류사회가 배경이다보니 "성"과 같은 크면서도 뭔가 으시시한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다보니 되게 오래된 흑백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참고로 결말은 독자의 상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오랜만에 읽는 유령이야기. 재밌다! 으흐흐흐흐~


"괜찮습니다." 그녀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요. 얼마든지 기다릴수 있죠." 그녀는 홀로 천상의 문턱에 앉아서 남편의 부츠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p. 230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표지도 예쁘고, 워낙 유명한 책이여서 읽었습니다. 약간은 건조한 문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내용들이 좋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표지도 예쁘고, 카버의 글도 좋았습니다. 추천!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레이먼드 카버라는 저자도 처음이고, 무슨 책일까? 종교 책인가? 하면서 읽은 이 책은 단편 소설집이다. 책의 제목인 대성당은 마지막 챕터에 등장한다.

미국 현대단편소설로 최고라 불리는 이책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건조한 느낌을 받았다. 장면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가 간결하달까. 친절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지만 너무 함축적이지도 않은 느낌. 그래서 느껴지는 건조함.


첫 소설인 깃털들은 한 부부가 다른 부부의 저녁 초청을 받아, 집의 입구에서 만나는 극락조를 보고, 음식을 보고, 그 부부의 못생긴 아이를 보고, 돌아와 부부의 아이를 가졌고, 아이로 인해 일상이 전과 같지 않다는 내용. 별것 아니지 않아 싶지만, 부부의 시선과 심리가 묘하게 공감이 가면서도 장면이 간결하게 보이는 느낌을 준다. 아. 그렇지, 그렇겠구나..하는... 

다른 소설들도 비슷했다. 열은 떠나버린 아내와 실제로 심리적인 이별을 하기까지, 주인공이 가져야 했던 불안감과 아내와 자신사이에 있었던 인물이 떠남으로써 정말로 아내와의 이별을 체득하기까지 인간의 감정은 복잡한듯, 시간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잊혀져가는 것을 담담하게 그린다.


개인적으로는 "깃털들"이라는 소설과  책의 제목인 "대성당"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깃털들은 부부의 관계가, 대성당은 맹인을 이해하는 비장애인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 싶었던 부분이 있었기에.


Good!


"이것도 방금 저 사람에게 들은거고. 대성당을 짓는 데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그 작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더군. 그런식이라면 이보게, 우리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숭이의 손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지음 / 내로라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나니,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 책이 그런 영화, 책들의 원작이였다고하는 해설을 보고 아~ 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물건이라. 이 책에서는 그 물건이 주술사의 주술이 걸린 원숭이의 손이였다.


 

"누군가가 나타나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한다면?" - 첫페이지


 저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책을 펼침과 동시에 나를 생각에 빠뜨렸다. 나는 무슨 소원을 빌것인가? 다수의 영화와 책을 통해 소원에 해당하는 댓가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었다. 소원을 얘기하는 순간 그만큼 소중한 것을 앗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랄까?ㅋ


읽으면서 신기했던것은 이 책은 '3'이라는 숫자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3명, 소원3개 등등. 3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라고 알고있었는데, 왜 3이였을까?하는 생각을 하는데, 해설에 그 부분에 대한 옮긴이의 해석이 담겨있었다. 개인적으로 3번이라는 숫자가 뭔가를 깨닫게 해주는 숫자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을했다. 첫번째는 가볍게, 두번째는 첫번째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번째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실수였을음을 알게하는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가장 최소한의 숫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릴수는 없겠지만, 3번의 기회를 통해 지금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꼭 저질러지고서야 아는 사람의 욕심이란.


 누군가 내게 원숭이 손을 주면서 어떤 소원도 이루어지는 물건이라고 하며, 하지만 자기라면 이것을 태워버리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 물건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얼마전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지는 방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저 집을 탈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 책을 보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소원을 말할지말지는 모르겠지만 태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과 욕망사이에서 아직도 고민하는 것이겠지.


 200파운드에서 시작된 작은 욕심은 아니, 어쩌면 호기심은 결국 나의 인생에서 더 소중한 것을 앗아가는 결과로 돌아오는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경고를 하고 있다.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과, 불가능한 것을 욕심내지 말라는것. 원숭이의 손이라는 물건 자체가 나타내는 불가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불가능을 욕심낼때, 사람이 자기 인생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 그 결과를 다 겪고서야 깨닫지 말라는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욕심을 내겠지?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진다는 물건을 받는다면,, 그렇다면 내가 죽어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 욕심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자체가 새로운 욕망으로 바뀔까?! 아. 어렵다.


 


Good! Goo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