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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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이라는 글 하나에 선택해서 본 책. 저자의 가장 유명항 소피의 세계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유명 저자의 신작이라는 글과 함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밤의 유서" 죽음과 맞닿아있는 두 단어. 밤과 유서.


책은 일인칭 시점으로 알버트가 근위축증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고 인생을 돌아보며 남긴 글이다.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숲속의 오두막"을 둘러싸고 알버트와 에이린의 함께 하는 삶. 그리고 마지막을 혼자 준비하는 알버트의 글이다. 내용은 알버트의 인생. 에이린과 함께해 크리스티안을 낳고 유네를 만나고 손녀 사라까지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시한부를 선고받아, 그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 죽음을 결심해 유서를 작성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돌아보며, 그는 그녀와 시작을 함께했고 둘의 위태로움을 이겨했던 장소인 오두막에서 그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방명록에 남긴다. 삶을 정리하며 그는 지금의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인연을 수많은 우연의 산물이며, 로또 1등과 같은 행운이였다고 말한다. 빅뱅의 순간부터 어느것 하나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지금의 지구는 그는 그녀는 없었을 것이나, 그 모든 시간이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 그와 그녀를 있게했고, 크리스티안, 유네, 사라를 만들었고 그들의 오두막에 있게했다. 그렇기에 그는 모든 것에 감사하지만, 몇달 남지않은 시간을 죽어가는 자신의 몸에 묶여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아가기보다, 본인의 의지로 삶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마지막을 타인의 도움으로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비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러다 그는 불연듯 깨닫는다. 그 자신의 마지막이 에이린과 그의 가족들에게 어떤것일지. 그가 이렇게 가고 나면 그녀는 그녀의 가족은 어떤 심정일지를.  죽음을 앞두고 '나'에서 '나의 당신'의 감정을 생각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좀 놀랐다고 해야할까. 타자이지만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은 사실 나의 죽음이든 당신의 죽음이든 죽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볼때,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나의 죽음이라면 나에. 당신의 죽음이라면 당신을 잃는 나에. 개인적으로 아직 나의 죽음을 겪어보진 않았기에(그러니까 이렇게 책을 읽고 감상을 쓰고 있으니..) 가장 가까웠던 나의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나는 할머니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할머니와의 이별로 인한 나의 슬픔에 빠져있었으니까. 하지만 할머니가 가시고 한참 후에야 그 마지막을 함께 많은 이야기를 시간을 나눠보지 못했다는 깊은 아쉬움과 슬픔이 남았다. 책을 읽으며, 그 시간에 아쉬움이 다시 떠올랐다.


나의 경험은 에이린이 바라보는 알버트의 죽음이지만, 저자는 나의 죽음 두고 나와 당신의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톺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나는 순간은 비극일지 모르나, 지나온 인생은 희극이였듯, 가까운이의 마지막을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또한 관계를 함께하는 시간속에서 겪어내야 하는 것임을 말이다. 에이린의 경우도 수십년을 함께해온 알버트와의 이별을 어떻게 겪어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책은 담담하게 또 짦은 이야기로 쓰였지만, 책에 해설을 달아주신 강신주님의 말처럼 다시 한번 더 읽게 만든다. 화자의 입장으로 당신의 입장으로.


여운이 깊게 남는 책이다. 그 시간이 적절할 것이라고 강신주님은 썼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럴지 모르나, '당신'의 입장에서의 마지막은 여전히 모자르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완전한 이별은 참 어렵고 슬프다.


"한 때 우리는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하겠다고 서약한 적이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우리에겐 좋은 날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다가 올지도 모르는 나쁜 날을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나쁜 날 중에서도 무언가 좋은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p.170


강력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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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체력 -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돈의 방정식
닥터마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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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체력" 자본과 체력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제목인 책. 앵? 싶어서 읽었다. 작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유가가 하락하고 코스닥, 코스피가 바닥을 치다가 작년 여름부터 끝도 없이 오르던 주가. 전세계적으로 비트코인의 말그대로 떡상. 이게 뭐지 뭐지 하면서 너도나도 주식광풍과 코인광풍에 몰아치던 때 나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갔지만, 이게 대체 무슨상황인지를 알수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냥 자본체력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 광풍에 휩쓸려 뭔가를 해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흐름, 시장의 흐름을 읽고 준비해야하고 주의해야하는 것들을 볼수 있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다. 이 책은 그런 나와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책은 자본체력을 위한 준비, 단련, 멀리보기 크게 3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를 나 스스로에게 묻는것으로 시작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변하지 않는 기준인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부자가 되기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 준비과정에 내 소득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하고 있고, 그 소득을 나는 어떻게 관리하는가, 준비는 말그대로 나의 자산과 그 관리를 제대로 돌아보는것이 그 시작인 것이다. 이 챕터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내가 경제에 대해 이 나라 경제의 근간인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초중고에서는 경제의 역사나 주식이나 채권이 무엇인지 뭐 이런 원론적인 것만 배웠지, 지금 현실에서 이 자금의 흐름이 왜 이렇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식을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부분은 지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와같이 부모도 제대로 모르니 지금 나의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경제개념을 갖게 하는것이 그토록 어려워 진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련챕터는 부동산, 주식, 주식외의 투자재로 불리는 금, 비트코인등에 대한 설명이다. 무엇에 투자해라라는 것이아니라, 돈의 흐름을 읽는 법, 주식, 채권, 부동산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그 근본인 자본의 생태계는 대체로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를 과거 일본, 미국, 한국(IMF) 때를 통해 지금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수많은 경제 기사속에서 어떤 맥락을 봐야하는지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며 새삼 되새긴 사실은 부동산과 주식은 다르다는것이다. 부동산은 필수재와 투자재 모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에 접근하는 방식과 주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다주택자라면 부동산도 투자재의 목적이 훨씬 크겠지만 나와같은 소시민에게 부동산은 어떤 측면을 더 강하게 보고, 나에 맞는 곳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필수재니 무조건 영끌하라는 것은 아니고, 접근 방식이 다르니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을 토대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태생은 거품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양상을 띤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시장과 국가, 중앙은행이 어떻게 조이고 풀어주는지, 그 지표가 되는 것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국채의 흐름이 이렇게 돌아가는것인지를 처음알았다는..(자본체력이 바닥..ㅠ)


그렇다면 이런 준비와 단련을 통해 멀리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4차산업혁명을 통한 핀테크의 도래, 비트코인과 같은 전자 화폐의 등장. 이런 화폐를 스타벅스는, 페이스북은 어떻게 규제와 금융권을 피해 자기만의 생태계를 꾸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기술의 발전이 기존 금융 시장을 어떻게 흔드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더해져 우리의 시선이 어디까지 뻗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팁이 있다. 아. 어렵다. 이제 눈떴는데, 달려야하는 상황이라니.


하지만 세상에 '한방'은 없다. 금융자본이 노동자본의 증식보다 빨라진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지금까지 몰랐다고 앞으로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결국 내가 열심히 일해도 내 자본은 줄어들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과 함께 간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에 그것 또한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열심히 버는 돈으로 나는 내 미래 설계를 어떻게 할것인가? 시간을 들여 돈을 벌것인가, 돈을 들여 시간을 벌것인가. 


공부할것이 많다. 숙제를 한아름 받아든 느낌이지만, 노력하는 만큼 건강(?)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Good!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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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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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불리는 책이고, 스페인 최고 권위 <나달문학상> 1회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 주저없이 읽기시작한 책.(이런거 또 못참지...)

책은 주인공 안드레아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안드레아가 대학공부를 위해 바르셀로나의 할머니 댁으로 이사오는 것을 시작한다. 스페인 내전으로 피폐해진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이 집을 통해 투영되는데, 안드레아가 처음 이집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부분에서 얼핏 엿볼수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거미줄이 쳐지고 다 깨어져나가 한쪽 날개만 천장 밑에 대롱대롱 매달린 전등 갓 아래 달랑 한 개 남아 있는 희미한 백열 전구와 그 빛을 받아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낸 현관이었다"  p.21


오래도록 이어진 내전으로 피폐해버린 큰삼촌과 그 전쟁통에 큰삼촌과 결혼한 외숙모, 큰 삼촌은 분노의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인물로, 매번 집안에서 아내를 폭행하고, 모두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삼촌옆에서 그래도 참아내는 외숙모는 어떨때는 어른의 모습을 어떨때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을 하는 인물. 

 그리고 작은 삼촌은 오래된 내전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그런 환경에 그저 너무 익숙해져버린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이다.  형의 아내를, 안드레아의 친구에게 지분되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인지를 그저 주위의 인물들에게 인정받고자하는 어른 아이.

 젊은 세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고, 타인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인물 안드레아의 이모. 이 인물이 초기 안드레아를 가장 크게 옭아매는 인물 중 하나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강요하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타인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모든 인물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사람. 

 이런 가족 구성원 모두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한명도 없었다. 이 가족을 통해 오래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가난, 불안함이 어떻게 사람을 바닥으로 내려앉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주인공 콜필드의 방황이였다면, 이 책은 반대로 안드레아의 시선으로 보이는 나머지 인물들의 방황이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와 같은 모습이랄까. 

"어차피 내 인생의 끝이 막다른 골목이라면, 인생을 굳이 힘겹게 뛰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을 향유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어떤 이들은 죽도록 일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인생을 지켜보기 위해 태어나는가보다. 나라는 사람은 그 관조자 역할을, 그것도 아주 미미한 역할을 하도록 타고난 것 같았다." p.370

 이런 암흑같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으로 그려지는 친구 에디가 있다. 에디와의 관계속에서 안드레아는 자신의 환경과 전혀 다른 그녀의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때론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에디와 헤이메와의 관계속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은 그녀의 삼촌들과 할머니가 겪었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갈 당시 젊은이들의 희망같이 보여지기도 했다. 그녀 또한 그녀의 가족을 떠나 또다른 환경에서의 새출발을 그리면서 끝나는 이 책은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차이,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바라보는 미래를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내전을 겪어야했던 세대는 결국 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대비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콜필드는 십대의 휘몰아치는 방황을 그리면서도, 내부에는 동생 피비의 안녕과 자신의 모습을 자기 내면에서 찾아가고 있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주인공 이전 세대의 방황하는 모습 속에서 안드레아가 자신만의 내면을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무살을 갓 넘긴 안드레아의 모습은 작은 삼촌의 말한마디에 흔들리고, 이모의 구속에 속박당해 복종하면서도 그녀의 생각과 색깔을 변하지도, 주변의 생각에 물들지도 않는다.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흔들들리는 단계는 있으나, 그속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그녀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을 보면서, 이십대의 시작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새로운 시작이 바르셀로나의 첫날 밤과는 다른,

더 밝은 밤의 마드리드를 안드레아가 만나길 바라며.

"이 계단을 처음 오를 때 가졌던 새 삶에 대한 가슴 떨리는 희망과 열망이 기억났다. 그런데 지금 나는 1년 전에 막연히 알기를 바랐던 충만한 인생과 기쁨, 심오한 관심, 사랑,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다시 떠나는 것이었다" p.485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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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와이프 - 어느 날 나는 사라졌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킴벌리 벨 지음, 최영열 옮김 / 위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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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주말의 명화에서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두손을 꽉 쥐며 가슴을 두근거려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이 책의 제목과 부제에서 그 영화가 떠올랐다. 응? 영화를 각색한 책인가? 답은 아니다!


책은 계속해서 세명의 시선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해간다.

베스, 제프리, 마커스. 

베스의 시선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준비된대로 계속 해서 이동하면서, 자신을 학대했던 남편으로부터, 또한 그 기억으로부터 말이다. 

제프리는 어느날 출장에서 돌아왔더니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고, 아내의 쌍둥이 언니 잉그리드 조차 아내의 행방을 모른다. 그렇게 그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인 마커스의 시선. 마커스는 제프리, 잉그리드, 사린의 내연남 맥아담스의 증언 및 사린 주변인, 그리고 그의 숨은 조력자를 통해 사린의 행적을 추적한다.


책의 스토리는 여기까지.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베스와 제프리의 각자의 시선을 놓고보면 베스는 피해망상인가? 제프리는 싸이코패스인가?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한다. 피해자는 있는데 범인은 드러나지 않는 전개랄까? 작가는 끝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토리로 사람을 끌고간다. 

남편으로 인한 오랜 학대 속에서 누구도 믿지 못했던 베스는 도망치는 중 마르티나라는 친구를 만나고, 어쩌면 너무 친절해서 의심스러운 목사님을 만나 잠깐의 편안함을 누리지만, 결코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베스는 왜 이제서야 남편을 떠나는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그때까지 참도록 두었는가. 그 이유가 너무나 참혹했다. 개인적으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찾는것도 흥미진진했지만, 떠나지 못했던 그녀의 삶이 쓰렸다. 남편이 폭력을 뉘우치며 그녀를 사랑해주는 찰나의 기억이 폭력속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떠나는 것만으는 폭력을 저지할 수도 없고, 자유룰 보장받지도 못한다. ‘저 여자는 왜 저 남자를 떠나지 않는 걸까요?’ 이나라 곳곳의 가정이나 법정에서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왜 저남자는 저 여자를 못가게 할까요?’ 가 더 나은 질문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난 답을 알아냈다.

당신은 나를 보내주느니 죽이고 말꺼야” p.96


이 책의 심리에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현실감 있었던 것은 베스의 심리다. 사실 '적과의 동침'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 속에서 불안이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내가 잘못본건지도..) 책에서 베스는 끊임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상황을 살핀다. 집착을 넘어 죽일듯하게 쫒는 남편의 그림자 속에서 베스는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그녀의 모습에 두렵고, 한편 가슴아프면서도, 그의 끝을 보지 않는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될것이라는 사실에 답답함과 어쩔수 없음이 더 찌릿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정말 피해자일까? 그는 정말 그녀를 폭행한 것일까? 그녀는 그를 언제까지 피해다닐까? 하나씩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의 답이 보일때쯤 세사람의 시선이 하나로 합쳐진다. 와! 와!

더운 여름 누군가 나를 쫒고 있다는 느낌하나만으로도 오싹해진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느때보다 실감나게 다가오는 책!

재밌다!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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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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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고 읽었다. 성불평등이 아니라 왜 "여성 혐오"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저자 잭 홀런드는 기원전 몇세기전쯤부터 그 혐오의 역사를 시작한다. 왜 혐오가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문헌을 바탕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여성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시기부터가 책의 시작이다.  과연 그 혐오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까?

"생물학적 차원부터 정치적 차원까지 남녀가 서로 관계를 맺는 모든 분야에서 제각기 여성혐오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모두 경멸의 중심에는 여성이 잠재적으로 자신과 다르며 위협적일 수 있다고 여기는 남성의 두려움이 있다고 추정한다. 여성 혐오의 역사는 남성이 자신과 여성이 실제로 다른 점 혹은 다르다고 여기는 점에 집착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남성에게 여성은 최조의 '타자'다. 인간은 타자로 지정한 부류의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곤 하는 우려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다른 인종, 종교, 계급이 존재하기 전부터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p. 322


책은 그리스시대의 여성부터 현대까지를 말한다. 어떻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리스 시대의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남자의 소유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였다. 사람을 소유할 수 있었던 시대이므로 여성은 노예의 위치와 같았다. 그렇게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가 되고,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혐오는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띄게된다.  그리스 로마 초기시대에는 남아선호사상에 강했기에 태어난 여아의 다수가 태어나자마자 죽어야했고, 여자는 아이를 낳다가 또는 낙태 시술을 받다가 죽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종교적으로 낙태나 영아살해를 금지시켰기에 여성 지지자들이 많았으나, 그 교리를 들여다보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보지는 않는다. 사도바울의 말을 보면, 여성은 남자의 몸에서 나왔기에 남자에 종속된 존재라는 것, 여성은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종교적으로 남녀모두에게 금욕적인 삶을 강요했고, 그 중에서도 여성의 순결을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는 여성이 순결을 잃는다는 것은 그 여성이 어떤 취급을 당해도 보호받을 수단이 없기에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남성의 욕망을 누르기 위해 여성의 정숙함이 강조되어 화장, 보석 등과 같은 꾸밈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에서는 여성이 그 자체로 혐오의 대항은 아니였으나, 남성이 자신과 벌이는 고뇌와 사투속에서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여성은 굉장히 순결한 이미지로써 추앙받는 경우(마리아)도 있으나 거의 다수는 혐오의 대상이였고, 그 혐오의 끝판왕(?)이 바로 마녀사냥의 형태로 나타났다.악령과 성교를 한다는 여성을 사냥한다. 악령의 실체는 뭔지도 모르겠으나 신고가 있으면 여성을 잡아다 온갖 방법으로 고문하고 불태워죽인다. 그 여성에 대한 변호를 하는 것조차 사탄으로 규정되고, 여성이 누가봐도 무죄로 보이지만 무죄로 판정내리는 순간 그 판사도 사탄이되기에 누구도 여성에 대한 변론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간 여성의 수는 수십만일 것이라 추정한다고 한다. 이런 여성에 대한 혐오의 모습은 2차세계대전 히틀러까지 이어지고, 직접적인 살해는 없으나 익명성 뒤에서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욕망을 자신이 다스리는 방식이 아니라, 타자화된 이성의 탓으로 돌려온 역사임을 알게되었다. 결국 나의 욕망을 내가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그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때인가 짧은 치마나 소매없는 옷인가를 입고 다니면 남성으로 하여금 성욕을 일으켜 범죄로 이어질수 있기에 경범죄로 처벌한다는 기사가 난적이 있다.(정확하지는 않음..오래전이라..) 그때 그 기사에 대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고 여자고 자신의 욕구는 자신이 다스리게 가르쳐야 하는것을 옷을 소위 야하게 입었다고 처벌하는 이런 멍청한 법이 어디있냐는 것이다. 그럼 겨울에는 성범죄가 없냐고 말씀하시며 이말은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당신이 담을 낮게 만들어 도둑이 든것이니 당신탓이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였다. 


 현대에서도 같은 상황을 보는것을 보면 나아지고 있는 역사인가 싶다.

 내가 컨트롤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는 탓을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뭉치기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마 남녀간의 논쟁은 인류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부터 여자와 남자는 서로 나뉜 상태로 태어났고,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서로의 성이 되어볼 수도 없다. 어린아이가 늙어 노인이 될수 있기에 세대간 갈등은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삶이기에 이해의 폭이 보다 넓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써의 삶이 어떤지는 서로가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기에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성, 종교, 인종등에 대한 차별의 결과로 타인의 혐오로써 드러나는것 그 자체가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자화된 대상의 혐오로 나약함을 감추고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실이 더이상이 인간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앞으로의 미래는 이런 내용을 현실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써만 알기를 바라는 세상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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