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1592 - 동아시아 질서를 바꾼 삼국 전쟁의 시작
KBS <임진왜란 1592> 제작팀 지음, 양선비 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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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사실 1592년에 일어났다는 사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내부 혼란을 잠재우고자 정명가도를 내세우며 일으킨 전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사실을 아는 것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님이 활약하셨다는 것 외에는.

책의 제목을 보고 정말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하나만으로도 책 한권이 나올 정도라면 대체 그 전쟁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에 책을 읽었다. <KBS 임진왜란 1592>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읽었다. 소감부터 말하자면, 읽는 내내 화가 치밀었고, 전쟁이라는 현실속에서 누구보다 지옥을 살았던 그 시대의 선조들의 삶은 슬펐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의 끝판왕이였던 셈이다. 유럽의 대항해시대와 함께 열린 금과 은에 대한 욕심이 일본열도까지 흘러들어, 일본의 어마한 은광에서 캐내어진 은과 교환된 조총은 일본 무기의 발전을 가져왔고, 그 무기는 임진왜란에서 엄청난 화력으로 우리에게 향했다. 조선은 건국이래 큰 전쟁이 없었기에, 전쟁에 대비해 만들었던 제승방략 체제는 시작부터 총체적 난국이였고, 일본은 20만 대군에, 잘 훈련된 병사들이였기에 시작부터 패배는 어쩌면 당연했다.

 다만 전쟁의 후반부로 갈수록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것으로보아 마냥 뒤쳐짐은 아니였으나, 시작은 그러했다. 일본군은 20일만에 한양을 정복했으나, 이미 당시 왕이였던 선조는 도망갔고(참 화가나는 사건이지만, 어쩌면 신의 한수였는지도..)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수군을 지켰다는 것, 그리고 의병의 존재는 임진왜란을 또다른 형국으로 끌고갔다. 

 

 당시 명은 조선을 믿을 수 없어 섣불리 원군을 파병할 수 없었고, 명 자체도 내전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밀려오는 일본의 병력과 조선의 요청 등으로 명군을 지원했으나, 너무 자신했던 터에 그들은 대패하였고, 그것이 지리멸렬한 강화 협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속에서 일본 못지않게 우리 나라에 패악을 부렸던 이는 명나라 군이였다. 명목상 구원군으로 들어왔고, 자신의 나라에서 보급되지 않는 물량을 조선에서 빼앗는 것은 물론, 군량을 담당하던 하급 관리인 명군이 우리나라의 종2품 고관의 곤장을 때리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으니, 민간에 행한 패악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렇듯 임진왜란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 대상이 된 명나라 틈바구니에서 조선열도만 고초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활약으로 일본은 군량미등의 지원이 끊겼고, 명나라는 방어를 우선으로 하기에 지리멸렬한 시간이 계속되던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전쟁은 사실상 종결된다. 그 이후 삼국의 변화를 읽고 있자니, 광해군 시대 광해군의 북방외교에 그토록 반대하며, 당시 양반이 명나라에 했던 그 무조건적인 충정이 이해가 되기도했다. 임진왜란 시 명의 지원, 이 지원이 조선이 명에 보내는 충성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이 그러했다. 그러니 그들은 명이 아닌 오랑캐와의 외교가 웬말이였겠는가. 사실 병자호란의 원인이 되었던 그 사대의 예가 역사적 사실 중에서 짜증이 나는 부분이였는데, 임진왜란과 맞물려 보니 그들의 맹목적인 충성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밖에도 명의 멸망, 청의 등장, 도쿠가와 이에아스의 에도막부의 시작인 일본의 변화 등 임진왜란은 그저 한번 일어났던 전쟁이 아니였다. 동아시아 3국의 체제를 바꿔버린 전쟁이였다. 이 조그만 나라 한반도는 왜이리 시끄러웠던 것인지. 임진왜란은 단순한 침략 전쟁이 아니였던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유일한 분단국가, 신 냉전 대립의 중심에 있다. 그때는 없었던 미국도 포함해서. 우리의 전쟁은 정말 끝난걸까...?

지금의 대한민국이 임진왜란으로부터 무엇을 알아야할지를 생각케하는 책이다.

전쟁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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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 - 자본은 인간을 해방할 수 있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재유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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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 냉전시대의 한창이던 시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금서였다. 사회주의 사상의 가장 근간이 되는 책이였으니까. 그 시기가 지나고,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문득 이 책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직접 쓴 자본론의 1차저작물을 읽고싶었으나, 국부론을 읽은 후, 내가 이해할 책이 아님을 깨닫고 자본론은 그냥 포기했었드랬다. 어짜피 이해도 못할 꺼 읽어뭐해..하면서. 그러다 EBS에서 자본론의 2차 저작물의 출간 소식에 얼른 읽은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개인적으로 나에겐 이 책도 어려웠다. 흑.ㅠ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있던 자본론은 경제서인줄 알았는데, 철학서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론은 마르크스는 철학자이면서 경제학자이다.라는 것.(나만 이제 알았던 건가..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말할 때, 마르크스는 자본을 어찌 보았는가?!라는 점인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자본을 물신적인 특성과 정신적인 특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두 특징이 모두 결합된 자본은 그 안에서 모순되며, 대립하는 관계를 가지는 그래서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 사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자본론은 총 3권이다. 1권만 마르크스가 직접 출판했고, 2,3권은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출간했다. 

1권은 자본주의의 생산과정에 대한 분석, 2권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실현하기 위한 유통 과정, 3권은 산업자본, 상업자본, 금융자본, 토지 지대의 연관관계를 분석하는데, 3권에서 각 자본을 가진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1,2권의 설명을 들을 때는, 대체 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라는 자본주의의 정반대의 서있는 인물로 그려진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3권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계급 투쟁,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선언했던 그의 사상이 3권에 녹아있었다. 


자본론은 이론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상에 대한 실천만을 촉구하는 사상서만도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과 설명을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 그 사상속에 녹아있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구분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문제를 말하고있는 책이다. 하지만 자본론을 다 읽어본 사람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책을 전체 읽어본 사람도 아닌 나로써는 이 책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사상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오롯한 100% 자본주의 체제는 아니다. 어느 정도 사회주의가 섞여있는 자본주의다. 최저임금, 기본연금 등과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및 청년지원, 영유아등 어린아이에 대한 지원 등등과 같은 국가 복지 및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등 역시 사회주의의 한 면면 이다. 이렇듯 현 체제에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그 부분을 수정하여 더 나은 체제로 만든 발판이되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사실상 북유럽 국가는 자유 민주주의를 택하면서도 경제적 측면은 사회주의 색체가 강한 나라들 아닌가. (사실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저 일당 독제였을뿐.)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이 되어버린 자본에 대해 애덤스미스는 무엇을 간과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역시 마르크스가 간과한 것 역시 같지 않았을까. 그냥 둘다 보고싶은 것만을 봤다는 느낌이랄까. 둘다 사람을 너무 믿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를 보고 있어도 역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정치는 모든 이가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지만,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는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다만, 두 거장 모두 '나'만 잘사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 '모두'가 잘사는 경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그 방법이 달랐을 뿐. 어려웠지만 자본론에서 꼬집고 있는 문제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슬프다.


"인간은 언제쯤 자본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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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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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내 장바구니 안에 있던 책이다. 아마도 책의 저자 사이먼 싱에 관심이 생겼을때, 읽어봐야지 했던것 같은데, 이제서야 읽다니...  

나는 수학, 과학이 너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고, 수포자로 졸업했고, 여전히 수학과 과학을 참...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딱히 접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할 때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아.. 수학. 이 책을 과연 내가 이해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 풀이하는 책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피타고라스부터, 페르마를 거쳐, 그 페르마라는 분이 정리했다는 수식을 증명하기 위한 여러 수학자들을 거쳐, 끝내 그 정리를 증명해낸 와일즈까지 모든 위대한 수학자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책 중간중간에 수식이나 문제가 등장하지만, 딱히 그 문제나 수식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책의 흐름이 끝기지는 않는다.(개인적으로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ㅋ)


책은 피타고라스부터 시작한다. 졸업한지 백만년이 지났지만 피타고라스정리는 기억하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그가 정리한 피타고라스 정리를 보고 페르마는 다음의 정리를 남겼다.

X^n + Y^n = Z^n (n이 3이상의 정수일때, 이를 만족하는 X, Y, Z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본인은 이 정리를 증명하였으나, 한 페이지에 기술하기 힘듦으로 기록하지 않는다...고만 남겼다한다..(야속한 냥반..) 그래서 이 정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수세기 동안 위대한 수학들이 도전했고, 일부는 정말 일부의 성공을했지만 완전한 증명을 해내진 못했다. (위대한 수학자중의 하나인 오일러가 n이 3인경우에 대해 증명하였다.)

책을 읽으며, 내가 수학이 싫었던 이유가 떠올랐다. 수학을 풀다가 어느 순간 딱 막혀버리는 순간, 그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책 속의 수학자들은 그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시도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그 자체를 애정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 놀라웠다. 나는 '답' 그 자체만을 원하지만, 수학자들은 그 답을 찾아가는 길, 그 과정부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였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증명을 해 낸 앤드류 와일즈는 11살때 페르마의 정리를 접하고, 그 증명을 해낼때까지 수십년을 그 문제를 놓지 않았고, 도전했고, 성공했다. 40살이 넘어서 말이다.

 

오일러의 일부의 증명과 같은 성공, 튜링 이후 등장한 컴퓨터에 의해 500이하의 정수에 대해서 증명했고, 그 정수의 크기는 1000, 10000과 같이 커졌지만, 이것은 증명이 아닌 그저 이해해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수학자들은 알고 있었다. 모든 수를 다 계산할 수는 없으니까. 이런 정리와 유사한 오일러 추론인 다음의 방정식은

X^4 + Y^4 + Z^4 = W^4 (본 방정식을 참으로 만드는 정수 X,Y,Z,W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었으나(왜? 그 수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1988년 하버드의 노엄킬스가 그 정수를 찾아냈다. (어마무시한 숫자..) 그러니 증명을 끝내기 전까지 수학자들에게는 컴퓨터를 이용한 대입방법은 그 답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1960년대 발표한 <다니야마 -시무라의 추론>이 발표되고(이 스토리는 슬펐다..), 1984년에 독일의 조그만 마을에서 열린 학회에서 프라이는 페르마의 정리를 약간의 변형하여, <다니야마-시무라의 추론>과 함께 엮었다. <다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참이라는 것이 증명 되는 발상을 한 것이다. 물론 그가 세운 추론에 오류가 있었으나, 해당 발표를 본 세계의 모든 수학자들이 그 오류를 해결하기에 나섰고, 쉽진 않았지만,버클리의 켄 리벳 교수가 그 간극을 매워주었다. 이제 <다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을 증명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또한 자동으로 증명되는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와.우.

하지만 그 길도 쉽지는 않은 것. 많은 이들이 수십년동안 <다니야마-시무라의 추론>에 매달렸지만 증명하지 못했고, 그것을 앤드루 와일즈가 해낸것이다. 혼자서 7년의 연구, 발표한 논문에 오류가 있어, 다시 1년을. 말이다.


 하나의 수학문제를 풀어내는 시간이였다. 많은 수학자들이 발견하고, 증명해낸 많은 수식의 바톤을 와일즈가 이어받아, 결승점까지 이어지는 책의 스토리는 정말 경이로웠다. 한 개인만의 승리라기 보단, 수많은 이들의 승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없었던 고대부터, 수학 그 자체가 천대받았던 중세를 거쳐, 과학의 한 수단 또는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당했던 근세를 거쳐 현대까지. 그 긴 시간속에서 수학자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노력하고, 용기있게 도전해 오면서 오늘에 이른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의 역사를 말한다. 여전히 증명되지 못한 정리에 대해 많은 이들이 여전히 도전하고 있고, 와일즈는 현대 수학을 이용해 증명해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페르마가 살았던 그 시대의 수학으로 증명하고자하는 이들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페르마가 자신이 증명했다고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내딛는 한 발. 그 한 발걸음을 내딛는 수학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겐 그저 벅찬 감동이였다.

그들의 도전에 끝없는 박수를 보낸다.


"자네들은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린거야. 스코틀랜드에는 적어도 몸의 한쪽 면 이상의 면적에 검은 털이 나있는 양이 적어도 한 마리 이상 방복되고 있는 들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이래야 말이 되는거라구!"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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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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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보는 서가명강 시리즈가 새로 나왔다. 이번 편은 뇌인지과학과 교수님이 쓰신 뇌에 관한 강의다. 요즘 뇌과학분야의 전문가분들이 나와서 하는 사람의 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참. 신기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로부터 출발하니까. 하다못해 먹고 자고 배변하는 행위 또한 뇌와 연관이 되어있었다. 오. 신기해.


이 책은 폭넓은 뇌과학 분야에서도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지를 설명해 준다.  시작부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뇌는 생존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맞는 말이다. 인간 근본의 목표이니까. 생존방식이 달라졌을 뿐, 생존 그 자체의 목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 방식은 바로 해로운 것을 피하고, 이로운 것을 취하는 것이다. 이 간단함 속에 이토록 많은 내용이 있을 줄이야..ㅋ

 해로운 것을 피하는 방법에는 무조건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생존에 영향이 미칠 수 있으니 말이다. 피하는 방법도 상황과 환경에 맞춰서 변형된다. 이로운 것을 취하는 것 역시, 다양한 학습을 통해 이로움을 때로는 강화시키는 학습을 통해 생존을 이어가도록 한다고 한다...(살아남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다...)


이런 기본의 원리로 뇌가 기억하는 것은 다양한 분류로 나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일화기억, 재인, 회상과 같은 서술적 기억과 행동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차적 기억으로 나뉜다.

 서술적 기억은 우리가 동영상 처럼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특정한 사건에 대해 동영상처럼 기억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기억. 이 기억을 담당하는 곳은 뇌의 해마 영역이다. 그래서 해마 영역을 다치면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기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해마는 한번 다치면 되돌릴 수 없다니,, 조심해야겠다..메멘토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 상황들이.)

 절차적 기억은 무의식 적으로 학습되고 그 학습에 따라 어떤 판단이 아니라 무의식 적으로 기억이 동작하는 것을 말한다. 문을 열고 닫는다던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억이다. 아주 일상적인 행위에서 조차 뇌가 매번 학습하고 판단하여 행동해야 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을 것이라하니.., 생각 할 수록..참..신기했다. 이런게 생존이였구나....싶었다는..

 해마를 다친 사람은 서술적 기억에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절차적 기억은 가능하다고 한다. 자전거를 배웠지만, 배웠던 기억에 관한 행위는 잊어도, 자전거를 타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별개로 우리의 뇌는 뇌 척수액에 둘러싸여 있기에 1.5kg 이나 되는 뇌를 머리에 엊고 다니면서도 무겁다고 느끼지 않는다니 인체의 오묘함이란 아는 부분이 생길 때마다 놀랍다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뇌를 완전히 분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실 기술 자체의 문제는 아닐 것이나, 그것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인간에게 득이 될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인 치매를 치료할 수 있지만, 누군가 나의 기억을 임의로 지우거나 심을 수 있다. PTSD 등으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의 기억을 조작해 그 고통스러웠던 과한 기억의 무게를 줄여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고통의 기억을 심어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파트에서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 인간의 모습이 떠올라 개인적으로는 우리에게 줄 이로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는 것은 안비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닮은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왔을까?! 인공지능의 발달역시 과거에 비하면 눈부실만한 결과를 내고 있지만 우리의 뇌만큼 정교하면서 유연하고, 때로는 단순하게 사고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AI 스피커와의 대화를 예를 들었는데, 그 답답함에 나도모르게 피식했다는.ㅋㅋㅋ 그래서 뇌와 같은 형상으로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기도 하고, 또한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하는 것을 바로 디지털화 할 수 있는 기술도 연구중이라고하니, 그 미래에 어떨지 사뭇 궁금해지면서도, <뇌>와 관련된 부분이라 문득 이유없이 두려워지는 파트이기도 했다.


굉장히 당연하다고 믿었던 행동들에 대해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읽으며, 당연한 행위 속에도 우리의 뇌는 우리의 나이만큼 일어났던 사건들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여 우리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의 뇌란 참...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게하는 책이다.

또한 신기함과 별개로,, 뇌와 관련된 많은 기술들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만큼 우리에게 해로움이 아닌 이로움으로 다가오길 잘 지켜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하는 책이다.

재밌고, 이로운 책이다! Good!



"뇌인지과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생물학 등 다른 자연과학 학문과 비교할 때 약간 다른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연구의 대항이 되는, 즉 '뇌'가 연구를 하는 우리 자신의 정신을 구현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뇌가 뇌를 연구한다고 볼 수도 있다. 뇌가 자기 자신을 연구하는데도 여전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모른다는 것도 아이러니이지만, 완전히 알게 된다고 했을 때 그 지식의 완전함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무서운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p.192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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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국부론 - 인간 노동이 부를 낳는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이재유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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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에 "국부론을 제멋대로 가져다 해석하지 말라"라고 쓰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이 책이 제멋대로 해석했다는 오해를 살까봐 쓰지 않았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대한 2차 저작물이다. 오래전에 <국부론> 상권을 읽어본적이 있다. 꽤 두꺼웠고, 너무 어려워서 거의 한달가까이를 읽고서도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EBS의 오늘을 읽는 클래식 시리즈 중의 하나로,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 그가 영향을 받았던 저자들의 사상을 포함하여, 국부론을 관통하는 핵심을 설명하는 책이다. 총 3장으로 구성되었고, 1,2장은 국부론 및 애덤스미스를 다루고 있다면, 3장은 1,2장에서 언급된 사상가들의 책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감을 먼저 밝히자면 조금 어려웠지만,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국부론을 제멋대로 가져다 해석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었냐면, 애덤스미스는 시장주의자 였으면서 또한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현재는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계속해서 돌고 돌면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할때마다 우리는 최대의 이윤을 강조한다. "최대의 이윤" 중요하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자본주의 사상에서 애덤스미스는 빠질수 없는 인물이고, 그의 사상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현되며, 그는 자유주의 사상에 늘 중심에 있다. 국부론에 고작 한번 등장했던 그 단어. 하지만 정말 애덤스미스는 완전한 시장주의자 였을까.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 존 내쉬는 술집에서 프린스턴 대학교의 친구들과 누가 먼저 금발 미녀를 유혹할 수 있는지 내기한다. 이 대 친구들은 <국부론> 한 구절을 마치 합창하듯 외우면서 '이기심'으로 부터 비록된 행동이야 말로 최대 효과를 얻는 다는 명제를 펼친다. 과연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은 무엇일까?" p.38

 

인간의 이기심. 이것은 우리가 알고 이기심(selfishness)가 아니라 자기애(self-love)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둘의 차이는 selfishness는 '배타적'이고 '원자화된' 완전한 나만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고, self-love는 나와 타인이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스미스는 즉 '나'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나와 너'를 모두 생각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오롯한 나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 공감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어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인 '공평한 관찰자'의 입장으로써 상대와 나를 이해하는 사상이라 말한다. 이것이 오롯한 시장주의자의 사상일 수 있을까?!


일의 분업화, 분업을 통해 생산되는 물건에 대한 교환을 위해 생성된 시장, 물건의 가치 및 등가 교환을 위해 생겨난 화폐의 의미, 그로 인해 생겨난 각 물건의 가격, 가격을 구성하는 요건 및 자본의 의미, 자본의 이윤등에 대해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의 이윤. 자본의 이윤을 최대한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곧 그 물건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대한 많은 물건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을 다 팔아야하기에 가격은 최소한으로 낮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노동자의 임금에 대해 자본가의 이율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해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했을까?!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은 전체 국부의 증가이며, 노동자라는 계급이 유지되기 위해서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 전체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 금액이 필요하며, 그들의 임금인상은 전체 국부의 증가에 필수적이므로 그들의 임금인상은 '자연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들의 생활 개선이 필수적임을 말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뭔가 아리송함이 느껴진다. 18세기 당시 노동자라는 계급은 사실상 노예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기계에 맞춰진 노동이 필요했던 시기였고,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물건' 취급을 받던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인지, 노동자의 임금 및 처우개선에 대해 말하는 의도가 '최대 효율'에 맞춰있기에, 인간을 위한 사상인지, 자본주의를 위한 사상이였는지가 문득 헷갈렸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런 사상은 19세기 공장법을 제정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하니,,,)

 책을 읽으며, 국부론에서 이런 아쉬움이 조금씩 보인다. 저자도 그 부분을 짚어주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시대적 한계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제일 이상했던것이 빈곤과 관련된 여성의 출산율 부분이다...이상해..) 


이밖에도 자본의 파이가 커지기위해 어떻게 관리되고, 무엇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농업, 제조, 도매, 소매, 중농주의와 중상주의 중 스미스가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상은 무엇인지, 그 중심에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요 부분에서 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 시장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ㅎ


국부론은 국가 전체의 '부'를 늘리기 위한 방안을 설명한 책이지만, 그 책을 관통하는 것은 그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택하는 인간의 감정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 지를, self-love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고서는 '국부론을 제멋대로 해석하지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책의 중요한 단어들 중 하나가 '공감'이였으니까. 중간중간 조금 잉?스러운 부분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의 생각은 소수의 부가 아니라 모두의 부를 말하고 있기에 말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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