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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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베트남 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 기억에 맴돌뿐. 아무튼 읽었다. 세계사를 관련 책을 읽다보면, 진짜 많은 전투나 전쟁이 나온다. 문득 대체 사람이라는 종족이 어떻게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수 있었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이 소설은 그런 전쟁 중 하나였던 베트남 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의 기억이다.

끼엔의 전쟁 이전부터, 전쟁 이후까지. 큰 줄기는 끼엔과 프엉의 스토리이면서, 그 중심에는 전쟁이 있었다. 전쟁 이전의 끼엔과 프엉, 이후 끼엔과 프엉 그들은 죽지않고 살아 만났지만, 더이상 서로가 알고 있던 상대도 아니였고, 스스로도 이미 변해있었다. 이야기는 끼엔의 기억을 따라 쓰여졌지만, 모든것이 비정상이였던 그 시대에 대하여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각개의 장면으로 쓰여졌기에 더 그 시간 속에 있는것 같았다. 

그 시간이 흐름으로 기억될리가 없었다. 장면으로 기억되었고, 사람으로 기억되었고, 사건으로 기억된다. 끼엔이 생존자로써 이 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그를 살려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문득 떠오른 장면을 떠올리며, 끼엔은 그들과 함께 있던 장소로 찾아가지만, 그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살아남았지만 끼엔의 그 시간에 파멸되었고, 전쟁이라는 그 비극 속 있던 누구의 삶도 오롯할 수는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속에 있던 이의 모든 기억과 삶은 아직 전쟁 속에 있었다. 끼엔도 프엉도, 모두 다.


대체 전쟁은 누구를 무엇을 위해 하는것인지. 그 비극 속에서 평범했던 모든 이의 인생을 이토록 망가뜨리면서까지 왜 해야하는 것인지를,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베트남 전에 대해 베트남 인의 눈으로 쓰여진 책이라 어떤 이념이 보이지 않을까했지만, 전혀. 이 이야기 속에서 적은 미국이 아니라, 이 전쟁을 일으킨 모두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전쟁이라는 주제를 선택했고, 왜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하는 걸까? 전쟁 당시 그의 삶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의 삶은 실로 참혹했고, 심지어 그것은 삶이라 말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으며, 그 삶속에서 예술적인 색체란 찾아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p.77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고 형제이고 자매이고 너이고 나이다. 그 사실을 모든 이가 기억한다면, 전쟁이라는 비극은 이 땅에서 없어지지 않을까.


진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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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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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소설로 유명한 <제 5도살장>을 드디어 읽었다.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 읽었는데, 왜 이 책이 반전소설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책의 해설에 보면 실제 작가는 드레스덴에 포로로 잡혀있었고, 도살장을 포로수용소로 개조한 제 5도살장에 진짜 끌려갔고, 살아남았다고한다.(진짜 제 5도살장이 있다고 한다!) 이 책 역시 화자가 드레스덴에 있었고, 그 때의 이야기를 소설로 집필하려는 시도로 시작한다. 실제 내용은 화자의 소설 이다.


주인공 빌리 필그램은 그냥 그런 미국인,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사실 그안에서 가장 먼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는 그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지옥 속에서 살아남았다. 정말 군인 같았던 이들은 죽었는데 말이다. 그런 그가 전쟁 이후 트랄팔마도어라는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했고,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그가 원하는 시간으로 갈 수 있는것 같지는 않다. 소설 속에서 그는 문득 돌아보니 어느 시간때이고, 돌아보니 어느시간때이고, 두서없이 왔다갔다하니까. 


빌리가 책 속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 그런거지"라는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에 학살에 그는 항상 저 말로 마무리를 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읽는 내내 이 책이 대체 왜 반전소설일까?라는 의문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 학살, 파괴 이런 것들이 저토록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인데,, 전쟁이라는 불가파함에 대해 어쩔수 없는 인간성의 포기? 그게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일까? 여전히 나는 의문스럽다. 

다만 빌리의 냉소는 그의 시간여행 때문이기도하다. 어짜피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어쩌면 냉소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긴 인생의 시간 속에서 늘 비극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닐테니, 그 비극을 떠나 자신의 희극 속으로 들어가면 되니까. 그것이 트랄팔마도어인들이 사는 방식이기도 했다. 


시간이라는 절대 값이 우리에게 전부 노출되어진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모든 것이 정해진 결과라는 불가피함으로 빌리처럼 살게될까?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든 다른 의문이였다. 우리가 늘 말하는 자유의지는 시간이 선형으로 흘러가고 있어, 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기도한데, 그 시간이 우리에게 공개되어진다면,  우리가 우리의 모든 시간을 알고 있다면, 마치 "네 인생 이야기"의 헵타포드 언어처럼 말이다. 그럼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할까?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폭력성, 죽음, 학살 등에 대해 빌리가 트랄팔마도어인에게 어떻게 하면 당신들 처럼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그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므로 그러니 당신 인생에서 가장 좋은 순간만을 보며 살라 말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살고 있는데, 과거의 순간에 멈추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질까? 평화로워질까?


"오늘은 그렇죠. 하지만 다른 날에는 당신이 보거나 읽었던 어느 전쟁 못지않게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안보고 말지요. 무시해버립니다. 우리는 기분좋은 순간들을 보면서 영원한 시간을 보냅니다. -- 동물원의 오늘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멋진 순간 아닌가요?" p.151


하지만 어쩌면 빌리는 시간 여행을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그 순간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그 끔찍한 순간 역시 그의 인생의 한 부분이였으니까. 어쩌면 바꾸고 싶었는지도,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결과로 "뭐 그런거지"라는 냉소만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볼수 있다한들, 한 인생의 흐름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별개다. 그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우리 기억속에 각인되는 것들일테니. 그러니 비극은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트랄팔마도어인이 아니니.. 

오래간만에 굉장히 신기한 책을 만났다.

책이 던지는 질문으로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하지만, 묘한.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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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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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교수님 신작 책 제목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더 나와야, 저 제목이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일지. 문득 두려워졌다.

김승섭 교수님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바로 구매했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이 분 책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탁. 짚고 있어서.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분이라서. 그래서 이제서야 읽었다. 부끄럽게도.


책은 교수님이 첫머리에서 후주에서도 말하듯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비극에 대해 말한다. <천안함>과 <세월호>.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비극속에서 살아남은 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비극들에 대해 교수님이 '공부'하는 사람으로 쓴 글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46명이 죽고, 58명이 살았다. 그 58명의 생존자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 패잔병이라는 시선, 천암함 생존자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는 현실, 군 내에서 패잔병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외면하는 시선, 첨예한 정치적 대립. 누구도 그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말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세월호 생존학생들에 대해 국가가 지자체가 언론이, 우리의 행위나 생각은 좀더 나아졌을까? 전혀. 여전히 보여주시기식이였고, 프레임을 씌웠고, 생존자, 유가족 누구에게도 그들이 진정 필요로하는 마음을 나눠주진 못했다. 그리고, 역시 세월호도 진행형이다.


작가는 이런 문제에대해 국가적 대처나 지원 등은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피곤해하고, 그렇기에 그 이야기들을 시위나 보상을 위한 일종의 '떼'쓰는 행위로만 보는 것이다. 세월호 생존학생의 정신적 PTSD등을 고려하여 군입대 문제를 논의해야 함에도, 생존자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리고 군대를 갔고, 생존학생은 건강히 군생활을 마치지 못했다.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못한 것이다.

비극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 고통을 오롯히 혼자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치유되지 못한 삶을 낳고, 그 것은 또다른 비극을 낳는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물론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대처방안에대한 백서를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사고, 사건을 통해 살아남은이, 떠나보낸이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시간을 함께 나눠줘야할지에대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몫이 아닐까 싶다.


책의 말미에서 산업재해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여전히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사회의 안전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등의 재해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강도높은 노동 현장에서의 재해를 각 회사가, 국가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 통계를 바탕으로 본 우리사회는 여전히 50-60년대를 보는것 같았다. 

책의 제목인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제목이 정말 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더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야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피해자는 '당신'이 아니라 '나'일 수 있다는 것. 비극은 사람을 가려오지 않는다. 그러니 더 타인의 비극에 피곤해하지도, 무감각해지지도 말아야하지 않을까.


강력추천!



"혹자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천안함 생존장병의 고통을 모욕하고 가짜 뉴스에 호응했던 사람들이 어리석은 극소수일 뿐 그러한 현상을 한국 사회 전체로 확대해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피해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열한 비난을 하는 사람 자체는 소수였을지 몰라도, 우리 편의 고통만을 선택적으로 공감하고 우리편에 유리한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는 성향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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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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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딸 이기에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가슴 어디 한군데를 쿡 찌르는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북튜버의 추천으로 읽게된 이 책은 아주 오래전에 선물을 받아놓고도 두고두고 아껴두다 이제야 읽었다. 책을 펴는 순간 첫 문장에서 가슴이 아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p.9


이 책은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의 2세로 태어난 미셸 자우너의 이야기이다. 미셸은 비록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2세는 아니지만, 중산층인 부모님 덕에 1년에 한번은 한국을 다녀갔고, 들어올때마다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조금씩은 배웠다. 어머니가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문화를 알고 있고, 특히 한국음식에 익숙했다. 둘의 관계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가 바라는 딸이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자하는 딸과의 대립으로 미셸은 독립을 선언하고, 그렇게 대면대면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존재하는 말그대로 애증의 관계로 들어선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질무렵 엄마의 암 소식.

미셸은 바로 엄마에게 돌아가, 엄마의 투병을 곁에서 지킨다. 그 모든 시간들을.

어떻게든 엄마를 살려보고자, 엄마와 더 함께있는 시간을 늘려보고자 노력하는 모든 행위는, 엄마의 기적을 만들지 못했고,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드리고자 당시 자신의 곁을 지켰고, 엄마가 인정했고, 좋아했던 남자친구 피터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책을 읽으면 내내 나는, 작가가 엄마의 투병기간과, 그 이후 돌아가신 시간을 힘들지만 버텨내는 방법에 놀랐다. 지치지 않기 위해, 절망에 빠지지 않기위해 엄마와의 추억을 돌아보며,  건강했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사랑했던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고, 노래하고, 추억한다. 돌아가신 이후는 엄마와 나눴던 음식, 엄마가 마지막까지 잘 드셨던 잣죽을 스스로 만들어먹고, 김치를 담궈먹으며, 엄마와 함께 나눴던 한국의 문화속에서 그녀만의 애도를 표하는 장면을 보며, 그녀의 건강한 정신이 부러웠다. 물론 글로만 읽는 그녀의 애도였기에,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얼마나 좌절했을지, 그 슬픔의 깊이는 감히 글만으로는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셸의 애도를 보며, 자식에게 엄마란 존재가 물리적으로 사라졌다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한 이별, 관계의 엔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주고간 모든 시간이 그녀 안에서 살아있으니까.


슬프다. 아마도 작가가 한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그녀가 추억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삶과 닮아있어서 더 그녀의 슬픔이 마음깊이 와닿았던것 같다. 그녀의 추억이 나와 엄마의 추억과도 많은 것들이 닿아있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나의 먼 미래(오지 않기를 바라는 미래.)를 보는 듯하는 마음에 더 쓰렸는지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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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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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북클럽 추천 도서라는 태그를 보고 읽은 책. ‘만화책?“ 웬 만화책 추천이지…하면서 읽었다. 태그만 보았기에 사실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몰랐고, 별 기대없이 본 책인데, 읽으며 내내 일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작가님이 추천한 “내 어머니 이야기”라는 만화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의 일대기, 엄밀히 말하자면 유대인으로써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런데 왜 쥐로 유대인을 표현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여러 분석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디즈니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추측, 나치가 유대인을 일컫던 것이  하수구의 더러운 쥐들과 같다는 영상 때문이였는지….

책은 아버지 블라덱이 어머니 아냐와 결혼하던 청년시절 부터를 시작한다. 재밌는 점은 중간중간 아버지와 이 만화를 작가 본인의 껄끄러운 관계가 등장하는데, 아버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래도 꾸준히 들으며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에피소드가 아버지 이야기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뭔가 현실판 아버지와 아들이랄까) 


다소 부유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히틀러의 등장과 동시에 말그대로 삶에 대한 생존의 시기로 들어간다. 서서히 압박해오는 나치의 압박에 차차 조금씩 가진것을 잃고, 버려가며, 도망자신세로 목숨만 겨우 연명한채 살아가지만, 결국 아우슈비츠까지 끌려간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처세를 통해 겨우 살아나왔지만, 그런 살아남기위해 처절했던 당시의 시간으로 인해 아버지는 쓰레기 한조각 까지 철저하게 아끼는 인물이 되어버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전쟁 이후 아버지와 재회해 아들(저자)을 낳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듯 했지만, 결국 자살을 택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완성해가는 시간 속에서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다소 유해지는 것을 보며, 어쩌면 비정상적이였던 아버지의 삶을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살아온 아들의 이해가 보이기도했다.


 신기했던 점은 책 속의 아버지의 삶은 완연한 이분법적 인물들의 대립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리가 일제치하 속에 있을 때와 비슷했달까. 나치에 부역하는 유대인이 있었고, 유대인을 돕는 독일인도 있었다. 독일의 선전과 핍박으로 인해 폴란드인은 같은 폴란드계 유대인을 고발하기도했고, 책의 화자인 아버지 조차도 유대인이지만 나치에 부역하는 인물들에게 처세를 통해 살아남기도 했다. 그런 탄압속에서 살아남은 아버지는 전쟁 이후에 흑인은 모두 도둑놈이라는 인종차별주의적 사고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받아야만했던 온갖 차별과 핍박에 살아남은 인물이면서도 말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였다. 인종차별을 통한 한 민족의 말살은. 그 일이 어떠했었는지는 많은 책들을 통해 말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로 보여지는 한 사람의 인생 속에서의 그 사건은 더 생생한 가혹함으로 다가온다. 어떤 삶이였는지, 수백만명의 죽음보다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리고 그 삶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더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절대 다시 겪지 않아야할 역사를 읽으며, 정말 전쟁 이후 우리의 삶은 정말 평화로워진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평안하다고 전세계가 평안하지는 않으니.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고,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맑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각종 전쟁과 인종차별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저자의 <쥐>는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준다. 역사를 통해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를.


진짜 추천!


“하지만 신은 거기 오지 않았단다. 믿을 건 오로지 우리뿐이었지”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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