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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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읽고 싶어졌던 책. 왜인지는 모르겠다. 베스트셀러 였고, 내용조차 전혀 모르는데, 그냥 제목에 이끌려 오랫동안 장바구니 속에 있던 책이다.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저자는 말했다는 소개 글을 보면서, 저자는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소비할까.


1952년 마을로부터 떨어진 습지의 작은 오두막에 사는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는 일이 잦고, 술에 취하면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어느날 아침 구두를 신고, 이마를 스카프로 가린채 떠났다. 막내딸 카야는 엄마가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길 바랬지만, 엄마는 그냥 떠났다. 엄마가 떠나고 첫째, 둘째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났고, 카야의 바로 위 오빠 조디조차도 떠났다. 7살 카야는 혼자 아버지와 집에 남았다.

카야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지만,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며 집을 청소하고 그리츠를 만든다. 아버지와 거의 마주치지 않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가끔은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날은 카야를 데리고 낚시를 가기도 했다. 엄마에게 편지가 온날, 아버지는 다시 술을 먹었고, 어느날부터인가는 집에 오지 않았다.

이제 카야에게는 가족이 없다. 그녀가 평생 살아온 습지, 자연, 그리고 그녀가 그곳에서 채집한 표본만이 그녀의 가족이였다.


 먹을 것이 떨어져 더이상 먹을 것이 없던 날, 카야는 바다에서 홍합을 캐, 점핑에게 가져갔다. 점핑은 카야가 습지에서 살고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홍합을 사주었고, 그의 아내 메이블은 입지 않는 옷이나 세간살이 등을 카야에게 내주었다. 카야는 그렇게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마을 공무원에 의해 학교에 갔으나, 적응하지 못해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외부인이라고는 점핑과 메이블 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카야가 보트를 몰고나가 길을 잃었던 날, 다시 카야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 테이트를 제외하고는.


테이트는 카야가 궁금했다. 그래서 카야와 새의 깃털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점차 가까워지면서는 그녀에게 글자를 알려준다. 책을 읽고, 타인과 이야기하는 법을.. 그리고 둘의 관심사인 습지, 야생과 같은 자연을 매개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대학에 가게된 테이트. 카야와 미래를 약속했지만, 대학에 간 그는 더이상 카야를 찾아오지 않는다. 테이트를 기다리던 카야는 자연의 모든 수컷이 그렇듯 테이트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에 다시 외로워진다.


그리고 1969년 습지에서 체이스 앤드류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을 수 없는 습지라는 배경은 야생동물을 오랫동안 관찰 했던 작가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습지라는 이미지에서 상상되는 축축하고 무언가 가기 꺼려지는 곳을 이토록 경이롭게 살아숨쉬는 생생함을 전달하는 곳으로 바꿔버린 작가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7살 소녀가 혼자 살아가기에는 척박하고 고된 곳이 아니라, 그곳이였기에 카야가 스스로를 지켜내며 성장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했으니까. 

 사회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인간의 차이가 무엇일까. 카야는 습지에서 혼자자랐기에 타인에 대한 두려움은 가질 지언정 자신이 만나는 이들에게는 진심이다. 그녀의 태도에는 거짓이 없다. 반대로 사회 속에서 자란 우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그 관계에는 거리가 있다. 어느정도는. 모두와 관계를 맺지만, 어쩌면 모두와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외로운 사람일까. 


 카야는 늘 엄마를 기다렸다.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끝내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카야는 엄마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 속에서 습지안에서 카야는 행복했지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는 외로웠다. 정말로 사람들 속에 늘 있는 우리는 외로움이 없을까.

또한 책 속에는 습지소녀 카야와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 외에 1950-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남성과 여성이라는 각종 편견과 차별이 깔려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어쩌면 인간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그러면서 타인보다 우월한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그래서 우리라는 소속감을 만들어내며 나와 다른 무언가에 대한 배척이, 그래서 만들어낸 경계 중 하나가 차별이 아니였을까.

자연속의 카야는 어떤 경계도 만들어내지 않는데, 자신을 위협하는 인간 외에는.

진짜로 누가 더 외로울까를 생각케한다.


추천. 진짜 추천!


"카야는 책장을 어루만지며 조개껍데기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떠올렸다. 발견한 곳, 바닷가에 어떤 모양으로 놓여 있었는지, 계절과 해돋이. 그건 카야의 가족 앨범이었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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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반을 넘어서 - 기후정치로 가는 길 전환 시리즈 3
트로이 베티스.드류 펜더그라스 지음, 정소영 옮김 / 이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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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절반을 넘어서> 원제는 Half-Earth Socialism 이다. 지구절반 사회주의(직역하니까...).

부제는 기후정치로 가는 길인데, 기후와 정치라.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기후 위험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읽은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책은 낯설고 급진적이였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만큼 우리는 우리 환경을 이렇게 마구 써왔구나..싶은 생각이 들게했다.


산업혁명이후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하 경제성장을 기반에 두고 성장해왔다. 그 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모든 것에 효율성을 따져왔고, 그렇게 발전해 온 결과가 지금이다. 멸종 위기종이 곧 인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공기, 물, 토지, 식량 모든 것이 오염되었다. 그런 지금 자본주의 체제에서 내세우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은 탄소배출량을 제한하며, 거래하고, 과학적 토대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제시한다. 

그 중 대표적인 방식이 SRM 햇빛을 차단하거나 반사하도록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투입하는 방법, 그리고 BECCS 탄소포집저장 방법, 그리고 원자력 발전 등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것들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우리의 자연은 망가져가는 어느 한곳을 막아낸다고해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계산보다 훨씬더 복잡하게 얽힌 유기체와 같은 우리의 자연은 개별 증상에만 초점을 맞춘채 단편적인 접근으로는 제어할 수 없음을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단적인 예로, 탄소포집저장방식으로 현재의 탄소배출을 위험 수위 아래로 낮추기 위해서는 인도 이상의 대륙이 필요하며, 그 탄소를 땅속에 가뒀을 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예측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인도만한 땅이 어딨냐고요..)

원자력은 친환경적이라 말하지만 수많은 폐기물, 우라늄 채굴에서 발생하는 탄소량,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을 그 누가 보장한단말인가. 그리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인해 발생된 수많은 오염과 인간에 가해진 위협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분석도 없는 지금 원자력이 친환경이라는 말은 근거 없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절대 찬성!)


그래서 저자는 "지구절반 Half-Earth"를 말한다. 이 개념은 에드워드 윌슨이라는 곤충학자가 제시하였고, 지구 절반을 재야생화함으로써, 그곳에 다양한 생물종을 보호하고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 지금의 기후위기를 우리는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자본화를 말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최선이 현상을 늦추는 것 뿐이며, 최악은 더한 재해의 결과를  맞닥뜨릴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자연 회복을 위해서는 지금의 자본주의 기반이 아닌 사회주의 기반이 되어야하며, 이 사회주의는 우리의 과거에 겪었던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며, 사회주의를 통해 자연적 지구공학 방법을 적용해야 함을 설명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효율성의 측면조차, 기후가 더이상 회복 불능의 상태로 빠진다면, 더이상 무의미한 체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구절반 사회주의는 결국 자연스러운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보다 에너지를 덜 쓰고,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택해야하며, 지금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의식적인 '경제의 통제 p.130'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속에서 불가피한 비효율성, 성장저하 등등의 예상치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릴수 있으나,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왜 이 과정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목적, 그리고 이전 사회주의에서 발생했던 관료제의 병폐 문제등을 해결하려는 노력 등등이 필요함을, 그렇기에 "생태 위기 시대에 사회주의가 어떤 기능을 할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의 출발점 p.198"이 필요함을 설명한다.


이 같은 노력이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쿠바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굉장히 놀라웠다. 모든 나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 나라에서 시행했다는 점에서 유의미 하지 않는가! 주변의 원조가 모두 끊긴 쿠바에서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소가 권장되었으며, 버스와 차를 대체하기위해 자전거를 보급하였고, 토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많은 토지를 야생상태로 돌림으로써 쿠바는 놀랄만한 생물다양성을 유지했고, 사람들의 건강지수가 올라갔다. 쿠바는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오염에 시달리지 않는다. 물론 이 과정은 굉장히 고난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가져온 셈이다. 


책을 읽으며, 왜. 사회주의여야 했는지 이해되었다. 효율성, 영리, 이익이 목적인 자본주의 체제안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에 그러했다는 것. 물론 읽다보면 굉장히 급진적인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이런 주장이 등장할 만큼 우리의 기후위기는 굉장히 심각한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1년이 다르게 여름이 뜨거워지고, 겨울이 따듯해지며, 남북극에서 모기떼가 출몰한다는 뉴스를 보는 요즘이 말이다.


지금의 환경위기를 극복해야함에 있어 반드시 옳은 방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볼만한 주장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인간의 이동이 잠시 멈췄던 때, 외국의 어느 호수에는 백조가 돌아왔고, 우리나라의 공기는 깨끗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는 일부 정화되는 자연을 보았기에 저자의 지구절반 프로젝트가 내게는 꽤 크게 다가왔다. 지금의 편안함을 위해 미래의 무엇을 빼버린것 같은 죄책감이 드는 요즘이다.


Good! Good!


"SRM으로 열기가 식은 하늘이나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보카치오와 셸리처럼 어쩔 수 없이 다시 글이라는 피난처로 들어가기 전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여름이 없는 미래라는 공포소설이 아니라 유토피아를 믿고 싶기 때문이다." p.261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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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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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님의 최신작인 <이끼숲>을 먼저 읽고, 이 책이 읽고 싶어 졌다. 천선란이라는 이름을 알게해준 작가님의 대표작 <천개의 파랑>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책을 읽고 얼마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 제목이 얼마나 마음 아프면서도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콜리는 안드로이드 기수다. 다만 기수가 가져야하는 칩이 아니라, 누군가 연구하던 인지능력과 학습능력을 가지는 칩을 탑재된 안드로이드다. 그것도 완전히 우연하게.

 콜리는 어느 차로 옮겨져 아주 작은 시멘트 방에서 지낸다. 그곳의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간다. 그리고 만난 민주. 그리고 자신이 타야할 말 투데이. 민주가 투데이에게 하는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나, 콜리는 똑같이 한다. 투데이의 목덜미를 만져주고, 투데이의 행복을 느끼기위해 그의 등에서 투데이의 떨림을 느낀다. 콜리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저장한다.

콜리와 투데이의 호흡이 좋아 투데이가 더 빨리 달릴 수록, 콜리는 투데이의 떨림을 더이상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콜리는 투데이가 점점 힘들어하는 것을 안 그날, 경기 중 투데이의 등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폐기될 위험에 놓이는데.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은혜는 동생 연재와, 엄마 보경과함께 산다. 은혜는 다리를 가질 수 있으나, 그 비용을 집에서는 감당할 수 없기에 휠체어를 탄다. 

연재는 안드로이드 베티에게 밀려 편의점에서 해고된 날 가끔 들리던 경마장 창고에서 콜리를 발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콜리를 사온다.

실제 콜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를 수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이상 달릴 수 없는 투데이는 안락사의 위기에 놓인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천개의 파랑>을 읽고 있다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안드로이드 콜리는 투데이의 행복을, 연재의 행복을 안다. 그들이 행복할 때 어떤 에너지를 뿜어내는지, 슬플 때는 어떠한지. 자신이 행복과 슬픔을 알지 못하지만 타인의 행복과 슬픔을 아는 콜리.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행복과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나의 행복과 슬픔이 먼저다. 나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배웠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 진짜 인간은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콜리는 프로그래밍 되었다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알고, 배려하고, 기다린다. 묻고 싶은 것을 참고, 투데이의 행복과 슬픔을 알고, 연재의 기쁨을, 연재의 어려움을, 그리고 파란 하늘을 보고싶어하고, 천개도 넘는 단어로 하늘을 표현 할 줄 아는 존재다. 

 문득 콜리는 우리 인간이 가장 되고 싶은 인간의 형태를 띈 안드로이드 인걸까. 아니면 우리는 절대 될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안드로이드 인걸까… 우리가 만들고 싶은 AI는 무엇일까…


SF소설을 읽으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줄은 몰랐다.

콜리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을 알았고, 투데이를 통해서 조금은 느리게 달려도 행복함을 알았고, 연재와 은혜, 지수를 통해 누군가와 함게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과정을 알게했다.

우리가 SF라는 단어 속에서 떠올리는 뭔가 다른 세계관이 막~ 펼쳐지는 책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 속에서 인간이 정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하늘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게 언제일까. 하늘이 가지는 다양한 색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언제일까..


추천!


“하늘은 매일, 매 시간 색과 모양이 바뀌었다. 하늘은 파란색이었지만 가끔 보라색이나 분홍색, 노란색, 회색이 섞이기도 했다. 그렇게 섞인 색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콜리는 ‘파랑 분홍’이나 ‘회색노랑’으로 단어를 합쳐서 불렀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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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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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아이슬란드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아이슬란드 저자의 책이 처음이기도 하고, <저주받은 피>라는 제목이 끌렸다.  그리고 책 뒤에 쓰여진 글을 보고, 다시 본 제목에 가슴이 아렸다.


어느날 70세정도 되어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채 발견된다. 그는 머리의 상처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여졌으며, 그 상처는 재떨이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시체위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알 수 없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재떨이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면 우발적일 가능성이 크면서도, 그 알 수 없는 문구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에들렌두르 형사는 죽은 이인 홀베르그의 주위를 파해치기 시작한다. 그 주위를 파헤칠수록 그저 평범한 노인이였던 그가 대체 왜 살해당해야 했던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 때 발견되는 사진 한장.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아 답답하던 때, 그는 이전 자신의 사수인 마리온의 전화를 받는다. 마리온은 홀베르그의 과거를 말해주며, 콜브룬이라는 여자를 언급한다. 마리온은 홀베르그가 40여년 전 그 여자를 겁탈했고, 그여자는 그 이후 아이를 출산하였으나, 아이가 4살되던 해 뇌종양으로 사망한 후 자살했다고 말한다. 그 아이가 홀베르그의 아이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말과 함께. 콜부룬은 40년전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였던 그 때,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신고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그녀가 그를 유혹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그녀가 증거물을 내밀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음을 알려준다. 사진 속 무덤, 아이, 에들렌두르는 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누구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사건, 그럼에도 살인자를 찾기위해 에들렌두르와 그의 동료 올리는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그날의 진실을 묻는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콜부룬의 언니 엘린은 동생과 조카 아르두르를 떠올리며 몸서리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때 경찰의 태도로 인해, 엘린은 에들렌두르도 믿지 않는다. 다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며.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 홀베르그의 주변인물, 그가 가진 특이한 유전병력, 콜부룬의 딸 아우드르의 사라진 뇌. 그리고 별도로 에들렌두르의 전처 지인의 딸 실종사건이 맞물리며, 성폭력이 피해자는 물론 그 주변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이 이야기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의 심리상태를 읽고 있다보면,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성폭력은 쉽게 신고도, 목소리 내 말할 수도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40년전이나 현재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책에서 어떤 이가 지금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해도, 10년 뒤에 이 고장 사람들은 나를 보더라도 교통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지금 성폭행을 당했다면, 10년뒤에도 20년뒤에도 이 고장 사람들은 나를 성폭력 피해자로 기억할 것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끔찍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수사물이며 스릴러인 책을 보며 범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하기 보다는 홀베르그의 과거 행적이, 그의 끔찍하고 생각조차 싫은 그의 행적이 낱낱이 다 밝혀지는 것에 더 스릴이 느껴지는 책이였다. 오히려 범인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홀베르그는 그렇게 죽어선 안됬다. 더 고통스럽게, 자신의 죗값을 다 치르고 죽어야 했는데.


 어떤 사건 사고든 피해자와 가족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테지만, 특히나 성폭력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범죄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홀베르그가 지옥불의 고통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길 진심 두손 모아 빈다.


재밌다. 추천!


"소장님은 그 비밀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군요. 오래된 가족의 비밀. 비극과 슬픔, 그리고 죽음. 이 모든 것이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들어 있는 겁니다. 가족사와 개인사들이. 소장님이나 제 얘기도. 비밀을 모두 가지고 있다가 원할 때마다 꺼내볼 수도 있는 거고요. 한마디로 전 국민을 들여다보면 유리병 도시로군요."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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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장날입니다 - 전국 오일장에 담긴 맛있는 사계절 김진영의 장날 시리즈
김진영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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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장날입니다" 장날. 언제부터인가 듣지 못한 단어. 예전에는 가끔 장날이라고 열리는 시장을 보았던것 같은데, 어느덧 서울살이가 익숙해진 시점부터 듣지못한 단어다. 아는 지인이 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뭔가 낯설지만 그리운 단어가 눈에 들어와 덥석 읽은 책.

 

책은 식품 MD를 하고 있는 저자가 근 20년동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얻은 장날 및 음식 노하우를~ 마구 풀어놓구 있다. 으흐흐.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재밌는 점은 장날이 열리는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계절별로 장날을 그리고 있다. 봄에는 어디 장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는지, 여름에는, 가을에는, 겨울에는.. 이런 식이다. 인생 거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지낸 나로써는 사실 제철에 뭐가 먼지를 잘 모른다. 마늘쫑이 봄에 나온다는것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야채를 사시사철보고 있으니..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야채는 정말... 빙산의 일각이였다. 낯선 이름의 야채들. 그 시기 그 고장에서 동네 어르신들에 의해 캐내어져 장날에 잠시 보이는 야채들. 전국으로 퍼질만큼의 재배가 되는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산속에서 캐내어지는 야채. 

바다에서 잡히지만 서울에 왔을때는 이미 그 맛이 아닌 생선, 해산물들.

먹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맛있게 먹어보지 못한 제철 음식들. 꺄아..ㅠ

아... 이 나이 될때까지 우리 나라에서 나는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다니.ㅠㅠ

새우젓도 잡히는 시기에 따라 구분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잡는 시기에 따라 잡는 새우도 달라진다는 것은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또한 새우젓의 숙성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또한 저자는 새우젓은 숙성시간이 쌓일 수록 맛있어진다고하니, 김장하시는 분들은 참고!)

 

꽃게는 수조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다가(어느 시장에서든, 그러니 타이밍이 중요함!)

수박은 꼭지가 싱싱한것 보다는 적당히 마른것이 당도가 높다는 것.

콩이 맛있는 고장에서는 우뭇가사리를 넣은 콩국을 꼭 아메리카노 대신 먹어보라는 팁( Aka. 우무리카노, 고령), 11월에는 해콩이 나오는 정읍에서 콩으로 만든 두부를 꼭 먹어 볼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밤의 고장은 합천의 왕밤(왕밤 너무 좋아요!!꺄!). 진짜 달걀만한 사이즈!!

다래. 우리나라 토종키위. 잘 씻어서 껍질채 먹는데, 키위에 없는 산의 향기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철원! 가을이 일찍 오는 곳.

그리고 어느 장이든 식당에서 밥은 곁다리가 아니라 메인이라는 사실.

어느 장이든 가게되면 그곳 로컬푸드를 이용한 식당을 꼭 방문해볼것. (로컬푸드이기에 싱싱함은 기본이고,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 있다는 팁!)

 

책을 읽으며, 계절별로 가봐야하는 장들을 열심히도 적었다. 돌돌이 시장가방 끌고, 나도 장터가서 몽땅 쓸어담아 올 태세로, 그 옆에는 꼭 갈꺼다!라는 다짐도 함께 썼다.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먹는 곳이 장터인것 같으면서도, 문득 장날의 분위기에 이것저것 구경하며 휩쓸리다보면 뭔들 맛있겠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르고 먹어도 맛있고, 알고 먹어도 맛있는 우리의 장날 음식들!

 

다만, 지방의 소멸이 사람이 모이는 장터에서조차 보인다는 글은 슬프면서도 섬뜩했다. 우리가 장날하며 떠올리는 그런 편안하고 구수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뭔가 내가 알아온 것들이 사라지고 있기에, 어쩌면 그런 느낌을 글로만 보고 느낄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그래서 저자는 고향세를 내고 있고, 고향세를 내는 동네로 가장먼저 소멸이 가까이 보이는 지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아.. 저는 고향세 처음 들었어요!) 경북 영양군과 전북 장수군. 고향세가 지방의 소멸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더 좋은 대책이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모두가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라니, 나도 고향세가 무엇이고 어떻게 낼 수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배고프게 했지만ㅠ, 재밌고, 유익했다. 

(바로 캔 고구마는 맛없단 사실을 처음 앎, 이것은 밤도 마찬가지..보름은 숙성을 해야한다고 함...)

 

추천 추천!

 

'인간의 욕심이 끝없이 내주던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긴 둑으로 갈랐다. 시장 끝에서 뒤돌아 가던 길, 상인의 말이 귀에 꽂혔다. "금빛 바다가 똥빛 바다가 되면서 내주는 것이 없소."'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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