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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피 ㅣ 에를렌뒤르 형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23년 6월
평점 :
저자가 아이슬란드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아이슬란드 저자의 책이 처음이기도 하고, <저주받은 피>라는 제목이 끌렸다. 그리고 책 뒤에 쓰여진 글을 보고, 다시 본 제목에 가슴이 아렸다.
어느날 70세정도 되어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채 발견된다. 그는 머리의 상처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여졌으며, 그 상처는 재떨이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시체위에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알 수 없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재떨이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면 우발적일 가능성이 크면서도, 그 알 수 없는 문구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에들렌두르 형사는 죽은 이인 홀베르그의 주위를 파해치기 시작한다. 그 주위를 파헤칠수록 그저 평범한 노인이였던 그가 대체 왜 살해당해야 했던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 때 발견되는 사진 한장.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아 답답하던 때, 그는 이전 자신의 사수인 마리온의 전화를 받는다. 마리온은 홀베르그의 과거를 말해주며, 콜브룬이라는 여자를 언급한다. 마리온은 홀베르그가 40여년 전 그 여자를 겁탈했고, 그여자는 그 이후 아이를 출산하였으나, 아이가 4살되던 해 뇌종양으로 사망한 후 자살했다고 말한다. 그 아이가 홀베르그의 아이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말과 함께. 콜부룬은 40년전 지금보다도 훨씬 더 보수적이였던 그 때,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신고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그녀가 그를 유혹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그녀가 증거물을 내밀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음을 알려준다. 사진 속 무덤, 아이, 에들렌두르는 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누구도 말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사건, 그럼에도 살인자를 찾기위해 에들렌두르와 그의 동료 올리는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그날의 진실을 묻는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콜부룬의 언니 엘린은 동생과 조카 아르두르를 떠올리며 몸서리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때 경찰의 태도로 인해, 엘린은 에들렌두르도 믿지 않는다. 다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며.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 홀베르그의 주변인물, 그가 가진 특이한 유전병력, 콜부룬의 딸 아우드르의 사라진 뇌. 그리고 별도로 에들렌두르의 전처 지인의 딸 실종사건이 맞물리며, 성폭력이 피해자는 물론 그 주변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이 이야기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의 심리상태를 읽고 있다보면,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음에도, 성폭력은 쉽게 신고도, 목소리 내 말할 수도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40년전이나 현재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책에서 어떤 이가 지금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해도, 10년 뒤에 이 고장 사람들은 나를 보더라도 교통사고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지금 성폭행을 당했다면, 10년뒤에도 20년뒤에도 이 고장 사람들은 나를 성폭력 피해자로 기억할 것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끔찍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수사물이며 스릴러인 책을 보며 범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하기 보다는 홀베르그의 과거 행적이, 그의 끔찍하고 생각조차 싫은 그의 행적이 낱낱이 다 밝혀지는 것에 더 스릴이 느껴지는 책이였다. 오히려 범인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홀베르그는 그렇게 죽어선 안됬다. 더 고통스럽게, 자신의 죗값을 다 치르고 죽어야 했는데.
어떤 사건 사고든 피해자와 가족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테지만, 특히나 성폭력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범죄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홀베르그가 지옥불의 고통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길 진심 두손 모아 빈다.
재밌다. 추천!
"소장님은 그 비밀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군요. 오래된 가족의 비밀. 비극과 슬픔, 그리고 죽음. 이 모든 것이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들어 있는 겁니다. 가족사와 개인사들이. 소장님이나 제 얘기도. 비밀을 모두 가지고 있다가 원할 때마다 꺼내볼 수도 있는 거고요. 한마디로 전 국민을 들여다보면 유리병 도시로군요."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