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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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한국은 불시착했다.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김영민 작가님은 그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아마도 그날의 일로 김영민 작가님이 대한민국에 대해 썼던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모아서 이 책을 내신거 같았다.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면면에 대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지만 작가님의 글은 읽고 있다보면 허를 찔리는 느낌이다.
웃기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뜨끔..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아.. 싶은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는.

과거 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글은
단군 신화 였다. 사실 나는 단군 신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조선이라는 나라 그러면서도 단군 신화 속의 "신"의 등장이 왜 인지에 대해서. 작가는 그것을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식민 사관에 대항하여 등장한 것이라 말한다. 중국황제마저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권위. 그것은 곧 '신'이다. 환인의 서자 환웅을 통해 하늘신의 이름으로 '홍익인간'의 가치를 내세워 '신'이라는 존재가 세운  홍인인간의 나라라는 것. 고조선이라는 것이 허망인 것이 아니라, 고조선에 씌워진 '신'이라는 의미가 그렇다는 것이다. 

"단군 신화는 제국을 의식한 정치 신학이다"

이 밖에도 한국의 과거에는 유교, 노비에 대한 이야기 등등. 가장 웃겼던 전염병 파트에서 킹덤이 등장할 줄이야. (킹덤 때문에 전염병 파트가 과거에 들어있는 걸까.ㅋㅋㅋ)

그리고 등장하는 현재. 현재의 첫 이야기는 "서울의 봄"이다. 쿠테타. 아마도 12.3일의 그날이 있었기에 가장 처음으로 선택된 글 이였을까. 저자는 쿠테나는 위법이 아니라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테타의 본질 p. 137" 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쿠테타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현재 대한민국의 제일 하단을 받치는 근간을 뒤엎은 것. 
우리가 민주화 과정을 통해 지켜낸 그 근간이 다시금 시험대에 오른 것이 12.3 내란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간"이란 무엇일까. 시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통해 말한다.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증거.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 p.148 하는 것. 인간은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을 하는 존재이면서, 옳지 않은 일에 생존을 버리고 타인과 함께 스크럼 속으로 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끝내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겠지만, 우리가 가지는 각자에 대한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다는 작가 한강의 말을 저자의 글을 통해 읽으며 새삼 뜨거워지는 무엇을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광장 이후에 대한 "혁명을 끝내는 법".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우리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은 무엇이였을까 무엇이였기에 그토록 실망해 다시 그 혁명을 촉발시켰던 정당의 인물을 다시 대통령에 올렸던 것일까를 다시 돌아보게 한 챕터다. 
"가두 시위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혁명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에, 정부에게 그만큼의 큰 보상과 관심을 요구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정치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p.156
생각해보면 혁명의 시작은 정치가  사회가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작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완성은 무엇일까?! 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지금 빛의 혁명은 시작인 것일까? 아니면 끝난것일까.진행중일까.
이 질문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것인가"라는 챕터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본 챕터는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와 함께 하는 '사회'에 대한 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아...정말 사는거 어렵다.

미래는 
지금 사회가 가지는 이슈.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한다. 꽤나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글들은 미래에 어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렇다~라는 상황과 이것이 과연 미래에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글들이랄까. 그래서 과거나 현재와 달리 내게는 다소 냉소적으로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적이란 무엇인가"라는 챕터의 번 아웃. 번 아웃이 오는 것에 대한 글은 정말.. 와..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가셨나 싶은 느낌이랄까. 
"잘난 사람이 되고자하는 욕구도 시들고, 잘나 보이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욕구만 남는다. 잘난 사람이 되는데 실패하면 분발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잘나 보이는 사람이 되는데 실패하면 토라지는 마음이 생긴다" p.265
이 마음이 타인을 비난하며 자기 존재의 존엄을 찾으려 드는 사회가 된다는 글. 후..... 과로로 인한 번아웃이 만든 사회는 "돈"을 구걸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라는 말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아.. 미래가 정말 장미 빛이 될 수 있을까..
날씨도 뜨거워지는데, 머리도 뜨거워 열이 오르네..ㅠ


"공동체의 생멸을 생각한다" 창조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하는 "생멸"
이 챕터에서 말하는 생멸의 대상은 대한민국이기도, 인간이기도, 관계이기도, 나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죽음이기도 하고 사회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라짐, 죽음의 정의는 뭘까. 지금 대한민국은 생멸해가는 중인걸까?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간다는데, 나라는 존재는 죽으면 끝나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12.3 내란 이후 우리 공동체가 보였던 행위들이 떠올랐다. 추운날 밖에서 시위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버스. 각종 카페에 선결제. 알지 못한 이들이지만 나와 지금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믿음을 보이는 각종 행위들. 기나긴 시간을 놓고 보자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멸해가는 중이겠지만, 내가 없어도,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나의 이후에도 나를 기억하고 시대를 기억한다면 아직은 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거 아닐까.

진짜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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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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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 추천으로 읽은 책. 너무 재밌다길래~ 머리도 식힐 겸 읽었다. 안식혀짐.. 몰입해서 보느라 책을 펼쳐서 닫지를 못했다.ㅋ 보통 추리물을 읽다보면 범인의 윤곽이 잡힌다. 아.. 이사람이겠구나. 이사람이 누구겠구나.. 싶은 그런..
    완전히 오판이였다.

    트리샤와 이선은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그러던 중개인 루디의 소개가 있던 집을 찾던 중 폭설에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와중에 집을 찾았다. 하지만 트리샤는 그 집이 웬지 모르게 불길하다. 루디의 소개였고, 눈으로 더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그 날. 왜 그리 그집이 불길한 것인지.
    그 집의 주인인 에이드리언 박사가 실종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선은 1/4가격으로 그 집을 매입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그저 기쁘다. 누군가 죽었을지도 모르는 집인데..

    트리샤는 집을 둘러보던 중 비밀 서재를 발견한다. 그저 시간을 때울 책을 고르던 중이였다. 그 서재에서 트리샤는 에이드리언 박사가 내담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녹음한 파일 리스트를 발견한다. 비밀서재이기에 아마 경찰도 못찾은듯.
    그곳에서 박사가 EJ라는 자신의 환자에게 자신의 치부가 든 동영상으로 인해 협박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
    중요한건 그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다. 이선은 내가 예민한 것이라하지만, 나의 촉은 속일 수 없다. 
    우리와 함께 누군가 있다. 내가 무섭다고 한 초상화. 이선이 분명 돌려놓았는데 누군가 다시 돌려놨다. 먼지가 내려앉지 않은 침낭 등등. 분명 누군가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이선은 아니라한다.
    뭐지. 박사의 영혼인가.

    개인적으로 빈집에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이선이 나는 가장 두려웠다. 빈집이 얼마나 무서운데, 거기다 미국의 빈집이니 사이즈가 어마어마. 책의 배경에 이 집은 더군다나 산속 깊숙히 있다는 설정이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근데 그런 집에서 어쩜 이리 태연할 수 있지? 혹시..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들어 책을 멈출 수가 없었다. 트리샤에게 얼른 도망가. 혼자라도. 라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하지만 작가는 나의 뻔한 추리를 보란듯이 뒤엎는다.
    아니아니. 
    그것도 당당히. 
    아니아니.
    내가 보았던 그이름이 아니야.(혼자 자기부정 중..)

    머리를 식히려 들었던 책을 머리를 식힐 세도 없이 읽어나간 미친 흡입력.
    네버라이.
    제목의 의미를 마지막에 알게 할 줄이야.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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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의 연구 암실문고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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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으로 책을 집어들게했다. 첫 머리말을 읽고서 읽어봐야지.라는 마음을 먹게한 책.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죽음에 관한 책이 늘 궁금하다. 알지 못하는, 절대 알 수 없는 그것이기에 그런 것일까. 죽음에서도 자살은 특별하다. 생명의 기본 욕망은 “살아있음”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스스로 그 삶을 놓는 이들의 선택 자살.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다.

    참고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내게는 정말 어려웠다. 여전히 어렵다. 문학적으로 풀어가는 자살이라는 개념은…


    첫장 “실비아 플러스” 저자의 지인이기도 했고, 시인 이였던 이. 그녀의 글과 그녀의 삶을 통해 왜 그녀가 자살을 했어야 했는지를 돌아보는 장. 제 3자의 눈이고, 그녀 스스로가 죽음에 대해 어떤 글도 남겨놓지 않았기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녀의 삶의 궤적과 시를 통해 짐작만 할 뿐. 그것은 그녀가 남편과의 이별을 통해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이별을 동시에 다시 떠올리게 했고 그것은 곧 사무치는 상실감을 되새기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

    어느 순간 부터 드러난 그녀의 슬픔과 깊은 어둠이 시를 통해 드러나지만, 저자는 말한다. 예술가가 창조적 활동을 통해 그 슬픔과 상실을 드러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때로는 그 창조적 활동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심연에게 더 가까이 가도록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 즉 부정적 감정의 해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관중들에게만 해당되었던 말 이였던 걸까.

    잠깐씩 등장하는 그녀의 시들은 내게는 너무나도 어두웠다. 짙었고.


    그리고 자살의 역사

    자살을 부정하는 역사에서 기독교는 빼놓을 수는 없다. 처음부터 기독교에서 자살을 죄악시 하지는 않았다. 6세기에 이르러서야 ”살인하지말라“는 항목에 의거하여 다소 독특하게 해석한 것아 근거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 육체는 신이 주신 선물이기에 헛되이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 그것을 계속해서 공고히 만들어가며 자살은 곧 금기. 그리고 두려운 무엇이 되었다.

    자살에 대한 역사적 시각에서 로마법은 다소 이상했다. 로마법에서 자살은 죄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남의 목숨은 더더구나 아끼지 않는 법이다” p.122라는 이유로 자살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앵..? 자살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만으로 판단하는 근거라기엔 너무나도 확장된 해석 아닌가.. (더군다나 노예는 그 목숨이 주인의 것이기에 그 자체가 주인의 투자금으로 보았다는 점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음에도 하.. 하는 한숨만 나왔다)


    3장과 4장에서 다루는  자살이라는 세계 및 문학 부분은 문학가들의 글을 통해 자살을 다루지만, 읽을 수록 “죽음”이라는 그 자체에 매몰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소 난해하고, 문학가들의 어두운 문장 속에서 “죽음”이라는 것에 침잠해가는 무엇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 그 자체가 우울감을 가져온다는 말이 아니다. 내 감정이 아니라 문학 그 자체가 오롯이 심연만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의미다.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기도 했지만.. 2차 세계 대전의 강제 수용소 같은 환경..


    ”그 개인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한 죽음은 그 개인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도장을 찍어 줄 뿐이었다“ p.419


    나의 자살이 나의 삶의 흔적이라니. 얼마나 끔찍했던 시대란 말인가. 강제 수용소의 죽음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집단에 대한 학살을 통해 인간 자체의 몰개성을 나타낸다. 

     그런 시대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증명이 나의 죽음 뿐 이였던,,,, 너무나 극단의 시대였다는 점이 너무나 끔찍했다. 아.. 정말 3장과 4장은 나에게는 꽤나 난해하고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흑.



    마지막 장은 작가 스스로가 자살이라는 유혹. 행위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준다. 왜 이 책을 썼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결되는 부분이랄까. 서론을 읽으면서는 가까웠던 이의 죽음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 이 책에 이르렀는가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기에 이토록 자세하게 파고든 저자의 의도가 궁금했던 쯔음. 저자 스스로 역시 삶의 끝이라는 것에 매여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의 결과로 그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가 담담하게 쓰여진 마지막장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어쩌지 못하는 절망감을 품고 한번쯤은 떠올려봤을 법한 그 단어가 삶 속에서 어떻게 해소? 또는 묻어져? 가는 것인지가 쓰여있다.저자의 모든 감정에 동의 하진 않으나 저자가 이른 결말에는 부분 이해가 가기도 했다.


    흥미로운 책이다. 여전히 터부시 되는 그 행위에 대해 쓴 연구.  말그대로 연구다. 연구.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쓰여진. 그것을 옹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조금 어려웠지만,

    읽어볼만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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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너스에이드
    치넨 미키토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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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논스톱 의료 서스펜스‘ 여름엔 이런 소설 책이 딱이지. 제목만 들었을 때는 순간 ”그레이 아나토미“가 생각났던건 왜일까.ㅋ (이웃집이란 단어에 로맨스를 떠올렸나봄..ㅎㅎ)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직업 의사, 간호사와 그 배경의 병원 서스펜스는 늘 재밌다. 두렵기도 하고. 사실이 된다면 치료받아야하는 마지노선에서 일어나는 범죄이다보니.. 읔.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미오는 스스로가 간호조무사인게 부끄럽지 않다. 환자와 가장 가까이서 일하고, 환자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들의 치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일본에서 간호조무사는 별도의 자격증 없이 일 할 수 있고, 그 어떤 의료행위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개념) 그런 미오는 일본 최고의 외과팀이 있는 세이료대학교의 간호조무사이다.

    그러던 어느날 미오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 하나에의 암수술을 앞두고 그녀가 평소 지병으로 가졌던 통증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모두가 그녀의 말을 무시했지만, 외과병동 탑 오브 탑의 플래티넘 의사인 류자키만이 그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해주었다. 그래서 수술에 앞서 환자의 대동맥 이상을 감지함으로써 수술 중 사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환자를 구했다.
    하지만 류자키는 의심을 한다. 어떻게 간호조 무사의 의료 지식이 이토록 높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미오와 이웃으로 맞닥뜨린 어느 날 그녀가 짓는 매듭을 보고 그녀가 외과의사 였음을 알게된다.

    사실 미오는 외과 의사다. 수련까지 제대로 마친. 일류급의. 하지만 그녀는 의사로써 환자를 맞닥뜰릴 수가 없다. 그녀 스스로가 그녀가 가장사랑했던 언니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었기에. 언니의 죽음으로 PTSD를 진단받으며, 더이상 치료행위를 할수 없던 그녀를 안타깝게 여긴 히가미 즉 현재 세이렌 외과병동 최고의사가 그녀를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해준 것.

    어느날 집에 갔던 그녀는 자신의 집이 쑥대밭이 되었지만  사라진 것은 노트북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언니와 연인관계였던 경찰로 부터 언니가 자살이 아닌 타살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 노트북. 그리고 기자였던 언니가 마지막으로 취재했던 내용들에 대한 퍼즐들이 언니의 타살 정황을 점점 더 확신으로 만들어간다.
    언니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인물과 류자키가 함께 있는 것을 보게된 미오.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언니는 타살일까.
    언니의 죽음과 류자키는 관련이 있을까.

    오로지 기술만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류자키의 냉정함. 정 반대로 그것이 다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하지만 의사로써의 기능을 할 수 없는 미오. 무엇이 진정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언니의 죽음을 파헤치는 서스펜스와 별도로 저자는 의료 행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종교적 이유로 인해 자식의 수술을 거부하는 엄마, 아들을 살리기 위한 범법자의 히든 수술 등을 통해 의사의 어떤 점이 환자에게 더 나은 것인지, 옳은 것 인지에 대한 판단을 독자에게 던지지만 글쎄. 그부분은 모르겠네.

    재미있으면서도 던지는 화두는 묵직한 책.
    살짝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도 하기에 좀 더 깊이 다가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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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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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이다. 아직 8월도 오지 않았는데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듯 하다. 이제 시작인데,, 그러다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가을방학” 너무도 청량한 저 계절이 벌써 그립다.
    책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책이다. 딸에게 모녀 관계란 늘 묘하다. 한없이 애틋하다가도, 그 애틋함이 언제 있었는가 싶게 치열해지는 관계 속에 놓여 지기도 한다. 그래서 저 제목에 딸과 엄마의 어떤 관계가 담겨있을지 궁금해졌다.

    수오,  수국, 나.
    나는 언제나 좋은 냄새를 머금고 있던 아빠가 있었다. 어느 날 사라져버린. 납치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어느날 아버지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는 가족과 대면하길 원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 생겨 그저 떠나버린 것. 엄마는 그 때부터 아버지와 이혼을 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밖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정상이였던 엄마였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떠난 뒤부터 병처럼 쓰레기를 모으기시작했다. 아파트의 주변 이웃들이 오죽했으면 아동학대로 고소를 했을까. 경찰이 왔지만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 숨막히는 공간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와 엄마의 고향인 고흥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그리고 만난 수오와 수국.
    쓰레기 집에 산다는 사실을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숨겨가며 나는 점점 지쳐간다. 밖에서는 말끔하고 평범한 나로, 하지만 집안에서는 쓰레기와 악취와 벌레와 싸우는 사람으로.

    수오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캐나다로 떠나고, 나도 엄마와 다시 이사를 감행한다. 엄마로 인해 심리학과로 진학했지만, 가구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그만두고 가구만드는 일을 전업으로 삼았다. 새로만들고, 새로운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더 적성이기도 했다.
    엄마와 치료비와 생활비를 대며 나는 어느순간 엄마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로인해 생긴 엄마의 우울증은 나을듯 낫지 않는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병으로부터 엄마가 드디어 한걸음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엄마의 병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의사에게서 떨어진 완치 판정이 후 엄마는 드디서 수 년 만에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여전히 불안함을 가지고 보는 나이지만, 엄마가 나아지고 있음을 나도 안다. 그리고 어느날 엄마가 떠났다.

    그 무렵 수오가 캐나다에서 돌아오고, 수국을 다시 만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떠났던, 고흥의 엄마 친구들을 통해 듣게된다.
    묘했다.
    내가 봐오던 엄마. 그 이전의 엄마. 그리고 지금의 엄마. 어쩌면 엄마가 나를 붙잡고 있던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떠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엄마마저 아빠처럼 떠나버릴까봐 그토록 모진 말들을 내빝으며 엄마를 붙잡고 있던 것은 아닐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서야 오는 가을은 그래서 더 시원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여름의 불볕더위가 있지 않고서야 어찌 가을을 온전히 느끼겠는가.
     여름을 잘 버텨낸 딸과 엄마에게 주어진 가을 방학. 그 방학을 보내며 엄마는 온전히 자신을 찾고, 딸은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온전한 이해는 힘들겠지. 나는 딸이니까.

    나도 느낀다. 우리 엄마와 나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걸. 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엄마는 엄마다. 나의 화를 오롯하게 품어주는 존재. 그러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 그리고도 어느 순간은 내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기도 하는.

    솔미와 미리는 아니 규리는 다시 만났을까.

    “나에게 언제든 돌아갈 장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떠나면 그건 방황에 그칠 수 있지만, 알고 떠난다면 그건 진짜 여행이 되거든.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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