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추억의 힘 - 탁현민 산문집 2013~2023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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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책을 통해 먼저 접해보았다. 탁현민이라는 분을 유튜브를 통해 많이 보았는데, 글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릴줄이야.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문재인 정보 5년동안 그가 기획했던 연출에 대한 기록이라면, 이 책은 그의 생각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더 탁현민이라는 사람이 더 도드라져보이는 책이였고, 읽으며 내내 유쾌했다. 

정말 그의 목소리가 그대로 내 귀에 들리는 느낌이랄까.(아마 탁현민씨의 말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말이 무슨소리인줄 알듯.ㅋ)

 

무대연출가, 청와대 전 의전비서관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탁현민씨의 어린시절은 꽤나 놀라웠다. 올~ 문학소년이셨다니. 문학을 따라, 스승을 따라 성공회대까지 신영복 선생님께 공부하기 위해 찾아간 그의 여정은 어쩌면 그의 그토록 꼼꼼한 무대 연출은 역시 본성이였어..라는 생각이 들게했달까.ㅋ 집요하면 집요하고, 하고자하는 것에 집중할 때 그의 말과 글, 생각은 빛났다.

그래서 더 지금과 그때가 더 비교되는 것이겠지.

다른 이야기지만, 요 부분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다시 읽어야 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스치듯 읽었던 그분의 글이 이 에세이 속에서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오다니...

 

분명 어이없었을 것이고 화가 났을 법도 한데, 어쩌면 지나고(?) 쓰는 글이여서 그런지, 김건희 여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경찰조사를 받을 때의 에피소드는 버스에서 책을 읽던 내게 빵터지는 웃음을 안겨주었다.ㅋ

"만약 김건희 씨의 명예를 웨손한 것이 아니라면, 혹시 베어질 수도 있다는 내 생각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된다면 그 누군가는... 그럼 나무의 명예를 웨손한 것인가요?" p.102

저자가 이토록 진지하게 물었을 때, 조사관의 표정이 사뭇 궁금해졌다.ㅋㅋㅋ( 조사관의 표정에 대한 얘기가 안나와 완전 궁금해짐..)

 

어느 때 파리에서 저자는 때로는 잠못드는 밤이 있기도 했고, 모르는 상대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싫었던 시절도 있었고, 하릴 없이 흐르는 시간을 그저 보내고만 있었던 시절도 있었는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그 시절을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신걸 보면, 놀랍다...워낙 자신의 일에서 만큼은 능력있는 분이기에 어느 편에서 일을 했다는 것과 상관없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에서 정파가 느껴지진 않았다. 이해가 되는 일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이지.. 

 

그래도 지금은 잘 보내고 계신것 같아 보여(?)서 좋네요.... 그러신거죠..?

미스터 프레지던트 2권을 쓴다고 하시던데, 기대할께요!

아, 그리고 그 100유로는 아마도 아줌마가 밥 사주고 싶었지만 꺼려하니까 밥 사먹고 힘내라고 주신 걸꺼에요! 뭘 어째요. 밥 한그릇 맛있게 드시고 힘내면 됬죠. ㅎㅎ 그 아주머니가 이 책을 꼭 보셨으면 좋겠네요.ㅋ

 

굿굿!

 

"나는 여러 날 거기서 해 저무는 시간을 보냈다. 해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찾아오는 어둠도 보았다. 그러나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해서 하루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이 그대로인 날의 하루는 날이 밝거나 혹은 해가 지거나와 상관없이 며칠이 하루처럼 가고, 하루가 며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날들은 아무리 늦게 집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어도 뒤척인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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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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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생충” 제목을 보고서 영화가 생각난건 나뿐이였을까.ㅎㅎ 기생충이라는 영단어도 영화 때문에 알았던 사람중 하나..ㅎㅎ  어떤 책에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을 보고 궁금했다. 기생충에 제국이 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국이다. 으아.. 이렇게 많을 줄이야.(책에서 언급하는 기생충도 아~주 일부일뿐, 사실 밝혀지지 않은 기생충이 훨~씬더 많을 듯.) 책 한권이 전부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이다. 참고로 다 다르다.. 읽다가 지칠만큼. 그런데 굉장히 흥미롭다. 기생충이라는 존재가.


책은 수단의 저스틴이 걸린 수면병으로 시작한다. 수면병은 체체파리를 통해 인간에게 침입하며, 그 유충은 파동편모충이라 불린다. 이 기생충은 인간의 여러 장기를 침범하여, 뇌까지 퍼지면, 생체시계가 고장나 낮과 밤이 바뀌는 현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몇 주안에 인간은 사망한다. 이 기생충이 만약 뇌까지 퍼졌다면 치료약은 비소가 20%가량이나 함유된 치료제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약은 정말 독해 정맥주사용 튜브를 녹여버릴 정도이다. 그래서 테플론으로 된 튜브를 써서 정맥주사를 통해 놓는데, 만약 이 약이 정맥 주위로 퍼져나와 주위 조직으로 퍼지면, 최악의 경우 팔을 잘라내야 한다. (살기위해 놓은 약으로 인해 내가 죽을 지도, 인체 일부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니..) 이러한 처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스틴은 이 약을 통해 파동편모충을 다 제거 했지만, 그 사체가 뇌안을 꽉 채워, 그 사체들을 몰아 내기 위한 자신의 격렬한 면역 반응으로 뇌가 초토화 되었고, 염증 등으로 인해 뇌가 부어올라 스테로이드를 통해 면역 반응을 낮추는 약을 쓰고나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그저 촌충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수 있다니.. 


무시무시한 기생충의 이야기로 시작한 책은 식물에 사는 기생충, 각종 동물에 자리잡는 기생충, 갑각류, 어류, 파충류 등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기생충의 종류에 대해 설명하는데, 재밌던 부분 중 하나는 ‘성’이 구분되게 된 이유중 하나가 기생충 때문이라는 가설이였다. 남과 여라는 말그대로 성별이 왜 구분되어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연 속에서는 무성생식이 가능한 종들이 있는데, 왜 인간에게는 대입시켜보지 않았을까? 물론 책에서 언급하는 이론은 물론 가설이다. 

 가설은 ’제비뽑기‘와 ’뒤섞은 은행‘ 두가지로 나뉜다. 그 중 ’뒤섞은 은행‘이 흥미로웠다. 성은 곧 후손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각 종이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고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데, 유성생식은 유전자 카드를 섞어서, 서로 다른 자원을 사용하게 하는 것과 같다. 무성생식은 그런 카드를 섞을 이유가 없다. 한 유전자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여기서 기생충의 역할이 드러난다. 유성생식은 어쩌면 개체를 더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건강한 암컷이 기생충에 감염된 수컷을 만나면, 암컷은 물론 그 다음 세대도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암,수를 가리지 않고, 각종 환경에 따라 노출되는 종류도 그 범위도 다르다. 그렇기에 더 건강한 개체를 분별하는 능력을 서로가 갖게 되고, 환경으로부터의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그 개체 내부에서 기생충으로부터의 면역에 대한 진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체내의 기생충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증상이나 활동이 약하질뿐. 기생충의 입장에서는 퇴화인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도 숙주가 죽으면 자신들 역시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그 목적을 바꾸어 존재한다는 점이다. 

머리도 없이 생존을 위한 입만 가진 존재들이 대부분이고, 입도 없이 그 몸통 자체로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이렇게 진화할 수 있다니. 무성생식을 통한 종족번식보다 유성생식을 통한 종족 번식이 그래서 더 우세해졌고, 그래서 남은 종이 유성생식인 것 뿐. 훔. (타임머신이 필요해..) 


생각해보면 기생충은 인간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다. 식물에도 기생충이 있다니. 지구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생충은 다 나쁠까? 크론병은 백인에게는 있으나, 흑인들에게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병이였다. 또한 지구상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그 병들이 거의 보고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에서 급속하게 부를 쟁취한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 병이 크게 유행이며, 이젠 흑인들에게도 발생한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어떤 질병이 장내 기생충을 박멸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내 기생충과 면역반응이 적정선을 유지하며 상호작용으로 지켜온 장내 환경이 일부 기생충이 박멸됨으로써, 면역체계가 이상동작을 하여, 자신의 면역 체계를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라는 의견. 

뭔가가 없어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역시 인간이 자연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는 말그대로 허상인 것.


보이지도 않는 기생충이 자연속에서 어떻게 숙주와 살아가며, 변형 되었고, 때로는 기생충으로 인해 새로운 종이 출현하기도 했다. 고립된 환경속에서 자연적으로는 그런 종의 출현이 가능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결론은 기생충은 박멸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서 우리도 기생충일 수 있다는 것. 지구라는 숙주에 묻혀사는. 그렇기에 숙주가 죽으면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맞는 말이지. 인간의 편리함에 대한 이기심으로 숙주가 망가지면, 결국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옴을 지금 보고 있으니.


흥미로운 책이다. 보이지도 않은 어떤 ’충‘들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읽다보면 무시무시하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연가시‘가 떠오른건 나뿐이였을까.ㅋ


재밌다. 무엇보다 진짜 신기한 책!!! 

추천추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숙주가 죽어버린다면, 결국 기생충도 죽고 말기 때문이다. 성숙하면서 얻은 지혜가 온건함을 가져온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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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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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붉은 색 표지 "붉은 강 세븐" 대체 무슨 내용일까? 


어느날 배 위에서 깨어난 헉슬리.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다만 그의 팔에 새겨진 '헉슬리'라는 단어에 자신의 이름이라는 것만을 유추했을 뿐. 그리고 그는 총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배위에서 자신과 동일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팔, 그리고 머리수술자국. 그 자국은 아물었으나,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알뿐.

그리고 걸려오는 한통의 전화. 

배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었고, 그 전화로 기계음과 같이 감정이 없는 톤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그들의 상태를 묻고.

누군가 예전을 기억한다고 하면, 그를 당장 죽이라고 한다.

왜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목소리의 지령을 따르며, 하나씩 파헤쳐간다.


런던의 항구로 들어서며, 이상하게 변해버린 사람이라할지 괴물이라 할지등을 만나서 죽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때때로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백신을 맞는다.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주변탐사를 하지만 간간히 나타나는 괴물들에 의해, 서로를 믿지못해, 내분이 일어나고, 한명씩 죽어간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곳에 있고,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뭔가 익숙한 느낌의 소설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조차 모르며 나아가는 소재. 변해버린 인간과 변해버린 사회. 무엇을 찾고, 무엇을 향해 가는지조차 모르지만 미지의 목소리를 거역할 수 없다. 그렇게 나아가는 이 이야기는 대체 뭐지? 뭐야. 뭐지?...?

마지막 노인의 말과 사건의 면모가 드러나며 그들의 상태가 엮이며, 정말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지금의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는다고 한들, 그것으로 부터 인간이 존속 될 수 있을까?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잃고도 우리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작가는 지금 우리가 앞을 향해 나가며, 잃고 지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머리속이 이 이야기 속의 병으로 가득찬 사회일지도.


익숙한듯한 느낌이 순간 아! 하는 신선함에서 다시 충격으로 바뀌는 책.

왜 그들인지, 왜 그곳이였는지, 대체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싶다면 읽어보시길.

"아포칼립스 스릴러"라는 말이 책이 후미에서야 이해가 된다. 근데 정말 아포칼립스...일까?


재미나다~


' "왜 이걸 지금 활성화 했을까?" 리스가 물었다.

 "왜냐하면." 플라스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앞에 있는게 뒤에 남겨두고 온 것보다 훨씬 끔찍할 거라는 거지." p.72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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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밍 웨이브
무스타파 술레이만 지음, 마이클 바스카 정리, 이정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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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두꺼운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경기로 유명해진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이 쓴 책이다. 궁금했다. “다가오는 물결”의 의미가 무엇일까? AI 기술의 가장 선봉장에 서있는 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책은 기술의 발전을 시작으로, 그것이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뻗어나갈 지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2023년초에 불었던 ChatGPT를보면서 소름이 끼쳤던 나로써는 이 책을 읽으며 두려움에 사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는 AI기술이 누구에게서 어떻게 이용될지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에 그러했다. 그 기술이 생명공학과 만난다면.... 

저자의 기술에 대한 생각 중 이 책을 관통하는 것중 하나는 기술은 파편화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된 하나의 기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기술은 기술과 기술이 합성되어 증폭되어 그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조차 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그렇게 증폭되고 합성된 기술이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이용된다면 우리는 그 기술의 발전을 억제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건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은 국경도 경계도 없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기술의 억제가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억제 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기술을 개발하는 이의 선의에 맡겨야 하는것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기술자로써 저자의 의견에 놀랐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은 대체로 그 기술의 발전에 매몰되어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사용하는 이의 정의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일 줄 알았으나, 저자는 이 부분에서 기술자도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 어떻게 사용될지 분명한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 


LLM모델의 발전은 AI시스템에 인간의 언어를 분석하는 기본의 토대가 되었고, 머신러닝에서 딥러닝으로 발전된 기술과 신경망을 이용해 만들어진 AI는 드디어 마치 인간처럼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진 수준까지 이르렀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라불리는 캐스퍼. 이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든 유전자를 정밀하게 편집하고 수정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인간에게 발생하는 암과 같은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 생명공학이 AI와만난다면?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지도를 만들어 낸다면? 

만약, 그것을 누군가 악용한다면. 그래서 슈퍼 휴먼을 만들어낸다면. 또는 특정 인간만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면. 

하지만 AI와 생명공학이 접목되어 지금 불치병이라 불리는 병들을 극복할 수 있고, RNA나 DNA 기술을 이용한다면, 한번의 치료로 병을 완전히 나을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기술을 이용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술의 발전 범위를 말그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기술이 주는 긍정적 효과에만 매몰되지도 말고, 그렇다고 그것이 주는 보복효과에만도 매몰되지 말아야 함을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안전한 기술의 발전을 위해 그동안 최전선에서 AI에대해 많은 이들과 고민해던 결과를 10가지 제안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특정된 기관, 특정된 기술, 특정된 기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고, 모두가 함께 찾아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인것이다. 그 질문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져질 것이고, 우리는 그 답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가 촘촘하게 사회 안전망을 꾸렸듯, 미래는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제안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부" 편이 였다. 기술의 발전으로 분명히 손실을 입는 계층이 생긴다. 그 계층에 대한 보상에 대하여, 저자는 인적 노동에 부과 되던 세금을 자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격차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가장 일반 시민의 삶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까지 짚고 있는 것을 보며, 저자가 AI 기술의 도래에 대해 깊게 고민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기술자가 기술의 발전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디스토피아로 향하지도, 유토피아로 향하지도 않은 지극히 현실에 발딛고 서서 던지는 질문들이였기에 더 빠져드는 책이였다.

다가오는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하게 기술을 구축해야 하는가. 그 매뉴얼을 우리 모두 고민해 볼 시점 이다.

근미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란 것을 시작 할 때.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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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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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것 같다. 물론 지금 보이지 않는 것도 많겠지.
20대부터 읽었던 박완서작가님 책은 늘 내게 향기로움을 주었지만,
40대가되어 읽는 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깊은 공감을 준다. 20대때에는 그냥 흘리듯이 읽었던 문장, 단어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지만, 뭔가 지금은 나의 입주위를 맴도는 말들이 유려하게, 그러면서도 소박하게 작가님의 글로 아, 맞아. 아, 그래. 이런 감탄사가 나온다.
어쩜 이리 솔직하면서도, 깊은 속마음을 단아하게 쓰는 분이라니.
새삼 작가님의 새로운 글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이 분의 글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새로움은 낯선듯 반갑다.


제목부터 "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라니. 20대라면 당연한 말이지라고 생각했을 이 제목 마저도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세월이 흐르고, 지켜야 할것, 지켜나가야 할것이 나이가 지나며 어깨 위로 한켜 한켜 얹히다 보면, 문득 그것들이 다 사랑임에도 무겁워 버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 제목이 뜨끔하면서도, 나의 젊음을 내가 가졌던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달까. 표제작이 책의 거의 말미에 등장하는데, 작가님의 마음이 내 마음인가 싶어서 책 제목을 물끄러미 다시 보게도 했다.


"화창한 세상" 10, 20대에는 입시와 취업준비과정을 거치며 내가 첫 발을 디디는 곳은 남들에게 보기 좋아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 속에 갖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였다. (돌이켜보니 그러했다)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맞고보니, 왜 그런 편협한 생각 속에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다. 빈부격차는 더욱더 심해지고, 더 무한경쟁으로 빠져드는 사회 속에서 지쳐가서 인지도. 이 글을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그래서 내가 무엇을 외면하였는지를 알게했다. 그래서 뜨끔했달까. 
"이제  우린 열심히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정도는 보장된 세상이 됐다고 믿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헐벗고 굼주렸을 때 보다 더하면 더하다" p.126


"항아리를 고르던 손" 어여쁜 손에 고무장갑을 끼웠을 때, 그 투박함으로 인한 정나미 떨어지는 손에서 옹기를 고르던 뿌뜻함으로 이어지는 손으로 쓰여진 글이라니. 그저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던 글이다. 덤으로 작은 옹기 하나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골라 뿌듯한 웃음이 지어진 B부인에 대한 작가님의 글은 묘하게 어렸을 적 교과서에서 배워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은 "방망이 깎던 노인"이란 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작은 방망이 하나이지만 정말 그토록 진심이였던 그 노인 이야기. B부인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그 웃음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셨겠지. 예전보다 사회는 계속해져 편리해지며 말그대로 현대화 되어가지만, 문득 예전의 것을 떠올려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 느꼈던 그 감성 때문이겠지. "목욕탕에서 갓 나온 여자 p.188"이라는 문구가 그 시절을 생각나게했다. 맞어. 그 상쾌하고도 싱그러운 표정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말이 필요없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며, 얼마전에 TV에서 보았던 마라톤이 생각났다. 예능프로의 출연자가 마라톤에 참석한 내용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각장애인 분이 도움을 받아 42.195km를 뛰고 있는 모습. 뭉클해지는 순간이였다. 작가님이 보냈던 그 갈채는 내가 보았던 마라톤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자신과의 싸움.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히 나의 의지로 이끄는 그 걸음에 보내는 갈채. 감히 나는 한걸음 조차 떼어보지 못한 그 걸음에 대하여 말이다. 어쩌면 과거 금메달에게만 보내던 박수가 이제는 올림픽 전체의 선수들에게 향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결과만을 바라보던 사회가 과정을 보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결과가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글을 1970년대에 쓰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끝까지 달려서 골인한 꼴찌 주자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 때문에. 나는 아직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의 참뜻을 알고 있지 못하다." p.173


"보통으로 살자"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그때도 그랬지만 더 깊어진 혐오를 생각하게 한다. 재벌에 향하는 혐오. 가난에 향하는 혐오. 우리는 왜 혐오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재벌에 향하는 그것은 아마도 나는 갖지 못한 그들만의 리그로 인한 사회의 삐뚤어진 구조에 보내는 미움이겠지만, 가난에는 왜 미움이 담겼을까. 작가님의 쓴 보통의 조건은 그시대나 지금이나 결국 돈이라는 잣대가 그어져 있다. 그것이 점점 돈으로 수치화 되어가는 것이겠지. 구체적으로. 
1975년에 쓰여진 글속에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 돈이 귀하지만, 사람을 더 귀하게 ,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내시겠다는 글을 읽으며, 왜 우리는 여전히 이토록 팍팍해지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나에대한 안타까움.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는 돈 그자체가 아니라 삶의 목표라는 것을 세우고는 있을까.  


한편한편 허투루 읽을 수가 없는 글이였다. 
맞어맞어하면서 읽다가 문득 쓰여진 연대를 보면서, 어떻게 이 때의 글이 지금도 깊은 공감을 이끄는 것인지. 어떻게 대체 그 한줄한줄이 뻔하지 않는 것인지... 정말 읽어나가는 것이 너무..웠던 책.... 흑.


진짜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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