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란 무엇인가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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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올해 처음 들었는데, 이토록 핫해지는 주제가 있을까?! 싶은 기술 or 세계?! 클럽하우스에서 메타버스의 미래에대해 정재승박사님의 소개를 듣고, 대체 이게 뭐지? 해서 찾아본것이 올해 초 무렵이였는데, 페이스북은 회사명을 메타로 바꿀만큼 IT에서 단연코 '핫'한 주제중 하나이다. 그런 메타버스에 대해 어떤 것인지, 현재 메타버스에 무엇이 있는지를 소개하는 책을 제법보았고(읽었다는것은 아닙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려니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메타버스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책이랄까. 메타버스라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것이 아니라, 메타버스라는 세계에 대한 고찰이랄까. 그래서 조금 어려웠다는건 안비밀.

그래도 개인적으로 메타버스를 알게되면서, 가장 애매했달까, 모호했달까 하는 부분이 우리가 알고 있던 MMORPG 분야의 게임과 메타버스가 다른 점이였다. 새로운 가상세계이고, 미션이 주어지는 것을 해결하는 또다른 세계관을 가지는 게임과 메타버스는 무엇이 다를까? 였는데, 그 부분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메타버스 역시 게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적인 웹 서비스도 아니다. 메타버스는 게임의 방법론을 흡수한 개방형 웨 비즈니스 영역이다. 말하자면 온라인 게임과 실생활 연계 서비스의 혼종 매체인것이다." p.37


메타버스는 게임에서 확장된 형태이고 해당 세계에 들어와있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만들어내고, 그 게임을 즐기면서도 실제의 현실과 맞물려 정보와 사회의 연계성을 가지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메타버스를 지금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펜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속에서 우리의 물리적 연결이 끊어진 지금,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의미의 CONTACT 상황을 만들고 있다. 로블록스 내에서는 플레이어가 만든 게임을 즐기면서도, 실제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부동산을 사는 등의 실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을 행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세상은 스토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현실과 같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곳이다. 그러면서 현실과 같은 경제 활동이 가능한 세계. 이런 것들이 우리를 메타버스로 향하게 하고 있다.


이런 메타버스 세상을 저자는 니체의 낙타,사자,아이에 비유한다. 정말 아이는 아이구나, 이토록 유연한 생각과 발상을 하며, 메타버스 세상을 놀이로 즐기며 만들어가는 이의 연령대가 10대라니. 아이들의 눈높이를 과연 낙타인 내가 따라 갈 수 있는 세상인가 싶은 생각에 잠시 우울함이 들정도 였으니 말이다.


X세대의 인터넷에서 MZ 세대에 이르기까지, 일방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디지털환경에서, 모든 이가 정보를 가상 공간에서 만들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또다른 디지털로의 전환을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생산하고, 서로가 생산한 것들을 즐기고,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 <컨비빌리티 세상 메타버스> 펜데믹이 조금은 더 그세상의 시작을 가까이 이끈 것이겠지만,  물리적으로 이루어낸 세계화를 어쩌면 물리적, 공간적 제약을 없앤 진정한 세계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책을 읽으며 들었다.


메타버스가 어떤 환경인지 왜, 메타버스가 자꾸 여기저기서 들리는 단어가 되었는지, 그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알고싶은 사람보다는 그 근원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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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생 -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서 논의되는 ‘위안부’ 문제의 현재를 다루다
김지민 지음 / 소울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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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안부 관련 내용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영화, 드라마, 소설등을 통해 접하면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더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사실이 부끄럽다 뭐 이런게 아니고, 너무나 처참해서. 그 시절을 겪어낸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참해서. 읽을때마다 볼때마다 눈을 감아버릴 정도로. 그럼에도 여전히 그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화가 치솟다보니, 그 사실에 정말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러다 내가 정말 잊어버릴까봐. 
그 시절을 겪어냈던 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여전히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하셨다는 사실, 그런 전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지옥속에서 더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온 분들의 삶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가해국으로부터 반성이라는 것을 받아내야 우리는 같은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읽었다.


 '위안부', 사실은 (군대)성노예. 생존자 분들께서 너무 직접적이여서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저 말이 싫다. 누구에게 위안이란 말인가.

책은 '위안부'라는 단어부터,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 일본의 만행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위안부'에 대한 논의의 시작부터 2차세계대전이후 왜 드러나지 못했는지, 그토록 늦게 1990년대 들어서야 만행이 드러났는지부터 우리나라부터  필리핀, 북한 등의 피해사례, 현재까지 '위안부'에 대한 인식변화, 민간운동, 국가간 촉구등에 대해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의 상황을 말한다. 소설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다.


읽으면서 2차세계대전이후 폐전국으로써 일본에 대해 전쟁에 대한 피해, 배상등을 논의할때, '위안부'의 논의가 왜 이뤄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읽으며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라의 힘이란것이 이토록 중요했던가. 
연합국은 여성의 피해를 전쟁에 대한 부수적 피해정도로 봤었을 것이라는 판단, 거기다 아시안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 조사가 일본출신 연합국국적의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서 매우 축소되었다는 점등을 든다. 결국 연합국 당시 유럽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적 사고(아시안), 일본에 의해 왜곡된 축소등으로 그저 묻혔던것이다. 물론 연합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6.25를 겪으며 냉전의 중앙에 있었고, 모든 과거에 대한 청산을 뒤로한채 오로지 한가지 목표인 나라의 재건에만 매달렸다. 그러기에 지금도 '위안부'관련 재판이 열릴때마다 문제가 되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같은 말도 안되는 협의가 국가간에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부터 '식민지' 피해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더라면, 지금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아니였을까.


그 이후에도 생존자 분들께서 섣불리 증언으로 나오실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그 공포가 그분들의 일상을 일생을 지배했었던 것이다. 당시의 유교적 시대상황과도 맞물려 여성으로써 극심한 성적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 상실감등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통틀어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 여자아이들이 가져야 할 공포에 우리가 감히 이해한다 말 할수 있을까.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증언으로 시작된 '위안부' 운동은 다른 생존자분들의 증언을 이끌어냈고, 다른 나라(필리핀, 중국등) 역시 피해자임을 신고하고 증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부끄러운건 우리가 아니고 너희다" p.72


이렇게 시작된 '위안부' 문제 규명을 위한 운동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1993년 고노담화에서 '위안부'문제에대해 가장 크게 책임을 인정한 담화가 발표되었으나, 일본정부의 배상이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고, '위안부'제도를 노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담화가 일본이 자신의 책임을 가장 크게 인정한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유구무언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일본은 계속 우경화되며, 역사를 부정하고, 고노담화문 삭제, 역사 왜곡부터 2015년 피해자분 누구도 인정하지 않은 한일합의까지 중간중간 우리가 외국에서 벌인 '위안부' 문제 규명 운동에 대한 치밀하고 조직적인 방해까지. 일본은 역사문제 대해서는 적으도 계속해서 역행을 거듭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운동은 이제 점차 확대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이후, 보스니아 내전 등의 현대 전쟁등을 통해 여성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포함하여,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인권>문제로 더 넓게 확장된 것이다. 

" '위안부'를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여성의 권리와 인신매매의 위험성에 대해 민감하게 의식할 수 있으며, 이는 현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와 성폭력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p. 188


우리나라 풀뿌리 운동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접한 많은 이들이 이 역사를 교육하고자 한다. 이유는 하나다.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고, 인권에 대한 문제이며,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표인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의 역사 부정론은 많은 젊은 세대의 분노를 이끌어내고 있고, 생존자 분들의 증언에 대한 일본의 비난이기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정의에 대한 불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재라고 하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운동은 어쩌면 밝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우리가 더 잊지 말아야 한다는것. 외면하지 말아야할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일본정부의 입장을 보며, 일본은 다시 같은 행위를 반복할 수 있는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규명운동에 많은 일본 민간단체가 함께 하고 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들과는 정반대이면서, 실제 일본내에서 해당 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주변인에게는 말씀을 안한다고 한다. 한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라. 이 문제에 대한 말을 꺼낼때 더 크게 화를 낸다고 하니..그렇게 만든것은 일본 정부이다. 그래서 더 우리는 크게 이 이슈에 대해 말하고, 퍼뜨려, 가해국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같은 역사의 반복이란 있어선 절대로 안되니까.


생존자 분들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한다. 꼭 일본의 사과를 들으셨으면, 그래서 매일 편안한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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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의 비밀, 개념어휘에 달려 있다 - 대치동 입시전문가가 콕 집어주는
김송은 지음 / 공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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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야하는 수험생도 아니고, 수험생인 자녀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제목만 "대학 합격"을 위한 목적이 있는 사람만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쓰여 있지만(?) 안의 내용이 모두 지금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있는 단어들이 가득해서 였다. 오로지 호기심에 의해 읽은 책!


책은 인문, 사회, 법학, 경제, 교육, 예체능, 공학, 과학, 의학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에서 현 시사점에 맞춰 가장 많이 빈번하게 쓰는 어휘를 선택하고 해당 어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깨달은것이 있다. 안다고 생각했던 어휘를 설명하라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그 단어를 단어로 알고 있는 것이지 정확한 의미를 타인에게 전달할만큼의 지식도 없고,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 였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몰랐던 단어도 꽤 있다.ㅠ 

OTT(Over The Top) 이라는 이 단어가 가리키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이 단어가 말하는 것이 '셋톱박스를 넘어서 p.316' 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기존 매스미디어를 넘어 다양하진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였다. 물론 이 말이 가르키는것이 유투브,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ㅠ

개인적으로는 <화이트 워싱>이라는 단어가 눈에 박혔다. 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그 단어의 예로 나온 것이 돌이켜보니 아... 그러했구나하고 나의 생각을 환기시켰달까. <닥터스트레인지>의 에이션트원이 티베트인임에도 백인이 그 역할에 캐스팅된 것을 책은 예로 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읽으며, 각종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교육된 백인중심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은 이런 인종차별적 논의에서 더 확장되어 장애인의 역할을 일반인이 캐스팅 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 부분도 우리의 인식이 너무 "비장애"라는 것에만 한정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요즘 수험생들은 고등교육과정에 나오는 내용도 공부해야하고, 현재 사회의 시사이슈에도 밝아야 하니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지만, 책은 꽤 재미있었다. 단어의 설명, 단어가 사용되는 예, 그 단어에 얽힌 실제 대학별 기출문제가 적혀있어. 단어를 이해하고, 해당 어휘가 나타내는 의미를 곱씹고,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를 정리해보기에 좋았다.


개인적으로 수험생을 타겟으로 한 책이지만, 현재의 시사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두루 읽기에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신조어, 외래어등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및 노년층에도 좋은 책이라는 것에 한표!

Good. Good!


"사회에서 한 개인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올바른 시민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규법이라는 것을 신의성실의원칙은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p.129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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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의 용, 공정한 교육은 가능한가 - 사회적 교육정책을 위한 경험적 소론
박성수 지음 / 공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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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공정이라는 기준이 무엇일까.

최근 몇년간 입시관련하여 많은 비리들을 뉴스에서 보았다. 최순실, 아직 진행중이지만 모 여고에서 일어난 내신 관련 비리 등등 우리는 대체 대학을 왜 가려하는가? 나도 학생시절에는 공부가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나름 십수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학벌에 왜 집착했었는가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뭐 있는 분야가 기술적분야이다보니 학벌보다는 그사람이 그 일에 가지는 열정과 실력이 최우선이고, 그 실력에 있어 학벌이 미치는 영향보다는 그사람이 내는 성과가 우선인 곳에 있어 그런 생각을 더 했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마이클샌델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 토트로즈의 “평균의 종말”등의 책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믿는 그 “엘리트”라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던 중, 그런 사회에서 가장 시작이 되는 우리의 교육의 근본을 알고자 이 책을 읽게되었다.


책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부터, 해외 교육사례, 그리고 우리 교육의 시작, 그리고 현재 대학교육의 문제 등에 대해 짚고 있다. 책을 죽 읽으면서, 나름 조금 불편했던 점은 “엘리트”, “리더양성”등을 위한 고등교육을 말하고 있는 부분이였다. 왜 불편했을까? 우리 교육이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딱 저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것인데, 그래서 그 경쟁에서 도퇴되면 그 인생은 그저그런 인생처럼 여겨진다는것인데, 여전히 책에서도 같은 언급이 있는 부분이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고등교육을 필요로하는 분야가 분명히 있고, 사회적 리더를 양성해야 하는 분야도 있다. 그런 분야 포함 전반적으로 사람을 양성함에 있어 수능과 같은 정량적 평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수능과 같은 평가를 통해 선발되는것이 정말 공정한 기준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다르고,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성적하나로 줄세워서 등수를 매기는 사회는 이제 끝났다. 아니라면 끝나야한다. 사회 전반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있는것이다.물론 그런 평가가 필요한 분야도 있지만, 우리가 그런 분야만 그렇게 교육시키고 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것. 그래서 외국에서는교육에 대해 다양한 방안들이 나오고 적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일본이 만들어낸 입시제도 그 이상도 이하도 못벗어 나고 있는것이다. 

 이유는 공정하지 않을수 있다는 그저 걱정 뿐이 이유와, 어쩌면 줄세우기라는 가장 편한 방법을 고수하고 싶은 게으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년지대계라는 불리는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 기준도 보다 다양해져야 하고, 그에 발맞춰 대학교육도 유연해져야 한다. 그런 대학에 가는 사람들도 해당 분야에 맞춰 선발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초중고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결국 사회 전체가 같이 움직여줘야 하는 셈이다. 그 기반에 우리의 인식변화가 가장 우선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공정이라는 기준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 길에서 분명 단점도 보일 것이고, 그 길이 아닐수도 있으나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속에서 가장 근간이되는 교육이 그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더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속의 미네르바 스쿨, 공유전공제 등과 같은 유연한 대학, 여러 모습의 대안학교를 통한 다양한 고등학교를 어쩌면 불안이 아니라, 밝은 모습으로 지켜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유명 대학을 나와서 도배사를 하는 분이 TV에나오는 것을 보면서, 저게 왜? 그냥 고등학교 나와서 도배사를 할수도 있는건데, 뭐가 다르지?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결국 인식의 차이이고, 꼭 용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여도 되지 않을까! 내가 스스로 용이라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것에 부끄러움이 없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사회를 교육에서 시작해 주기를 바란다. 


“성적이 가리키는 계량적 신호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자각된 이해를 바탕으로 장래 진로를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학생의 삶을 고민하게 하고 준비하게 하는 것이니 진로교육이야 말로 교육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p. 94”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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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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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님의 추천사와 책의 띠지에 있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와 읽었다. 책을 받고 보니 유명한 작가님이고, 네뷸러상을 받은 책이라는 것을 알았고, 단번에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근미래 거의 마지막으로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회사는 그들에게 신기술로인해 자폐증이 나을 수 있으니, 치료를 권고한다. 주인공인 루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수요일에는 펜싱을 하고, 금요일에는 장을보며, 주말에는 빨래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취미로 하는 펜싱의 클럽 멤버중 하나인 마저리를 좋아하고, 펜싱 클럽의 주체자인 톰과 루시아와 친하다. 그들은 루를 좋아하고, 루도 그러하다.

책은 루의 시점으로 쓰여졌다. 루는 패턴을 인식하고 분석함에 있어 천재적인 사람이다, 그 능력으로 회사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내며, 펜싱클럽에서도 상대의 공격 및 수비 패턴을 알고 움직이기에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펜싱 토너먼트에 출전을 하기도 한다. 또한 루는 타인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읽고, 타인을 귀찮게 하거나,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타인이 루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뿐이지. 


이 책을 읽고있다보면, 루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얼까?!  책속의 루는 누구보다 정상이다. 우리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 추측할 뿐이지.  그리고 그런 행동은 우리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체득되는 것이다. 루 또한 그러했다. 오히려 정상이라고 분류된 이들이 더 이상하다!

기준이 없고, 때로는 분노라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폭팔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언가를 숨기기도 하고, 이편 저편에 서는 등의 줏대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정상인가?! 그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인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며, 하고싶은 말을 조리있게 하고, 예측이 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우리가 말하는 정상 아닌가?!

 펜싱을 할때에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 경기를 한다. 경기를 한다는 하나의 목표로 동일하게 움직이는 같은 사람인데, 마스크를 벗는 순간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 왜그럴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폐증은 루가 가진 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요인 하나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것이 맞는 일일까? 루는 그저 자폐인인것이 아니다. 그것을 포함하여 많은 것들이 루를 이루고 있고, 그런 루와 또 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어왔다. 그들은 루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루 역시 그런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생각한다.  


'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니- 우리가 자폐증을 없애도 당신은 같은 사람일 겁니다. 그저 자폐인이 아닐 뿐이죠"' p.394

그렇다면 그들은 왜 루에게 치료를 권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세상 속에 있는 것일까? 루는 계속해서 생각한다.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루라는 사람인 나.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관계와 그 관계 속의 추억을 가진 그에 대해 말이다. 그의 선택은 자폐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 한 발자국 나아감에 있다는 것, 그가 펜싱을  취미에서 토너먼트 출전으로 한발자국 나아갔듯이. 그가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변화를 통해 지금에 머물지 않기위해 선택한 결정이 내 눈에는 누구보다 멋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그 아득한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신이라는 환한 빛으로. 그의 자신감이 나는 참 부러웠다. 그만큼 나는 나자신에 대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한참 후에까지 작가가 던지는 일관된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를것 같다.

강력추천!


"그가 나를 응시하며 서 있다. 그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이윽고 "그럼, 얼굴보며 지내요"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물론 우리는 얼굴을 보며 지낼 것이다. 같은 건물에 산다. 나는 이 말이, 그가 나와 함께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왜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차로 몸을 돌리고 아파트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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