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 교양 100그램 7
김준형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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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협상을 하는것도 아닌데, 요즘 미국이랑 협상을 한다는 기사를 보면 하.. 하는 한숨부터 나온다. 트럼프가 워낙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니 우리 주변국은 물론 EU까지 휘둘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내세울만한 전략은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궁금했다. 지금의 상황은 왜.. 나온 것일까? 세계 외교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내란을 겪었지만, 민주주의의 절차적 기반하에 탄핵을 거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내란을 빠르게 종식 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였다.
 하지만 여전히 반탄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는 드높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말하는 유럽 역시 극우의 득세를 어쩌지 못한다. 그러던 중 미국은 다시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 책은 미국의 트럼프니즘의 등장을 통해 우리의 외교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분명한 적과 우방이 존재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9.11 사태. 미국은 '악의 축'이라는 미명하에 다시 적국을 만들어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금융위기를 맞았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단점을 들어낸 사건이 되었다. 제조업이 무너지고, 금융업이 발전하면서 부상한 월스트리트가 결국 타인의 돈으로 돈놀이를 하다가 망한 셈. 러스트밸트(녹이 슨 컨베이어 밸트라..) 등 제조업 라인이 무너진 곳에서부터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미국이 이토록 수렁을 헤매이던 시기  부상한 중국.
그리고 2016년 트럼프 당선. 영국도 브렉시트를 선언한다.

트럼프의 당선, 유럽 극우의 득세. 어쩌면 세계화와 기술 발달로 인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정치의 실패가 그 원인인 걸까? 아니면 그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실익을 취하고자하는 이들이 벌인 사기극인걸까? 무엇이 되었든 세계는 파시즘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요즘 한미 동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글에 나는 동의하는 바이다. 

냉전시대의 한미동맹은 이미 끝났다. 저자는 한미동맹의 축소 역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말을  우리가 바라보던 1950-60년대 한미 동맹이 아니라 이제는 2025년식 한미 동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 했다. 
미국이 우방인 것은 분명하나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던 대한민국은 과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장 다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실익만을 따지는 미국이라면, 우리도 실익을 따져야 하는 것. 그 대상은 전세계 누구와도 말이다.

 나는 우리에게 '주적'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G1, G2나 주적을 말하는 것이지, 이제 겨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나?라는 말을 듣는 우리에게 주적이 어디있단 말인가? 실익이 된다면 누구와도 동맹 맺고, 시장을 선점해야 하지 않나..? 
이제 이념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은 없다.  저자 역시 그렇기에 처음부터 우리의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을 언급하며 이 책의 서문과 결말에서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지도.
 
일단 현재까지 관세 15%도 어이가 없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다른 국가들에 뒤쳐지지 않는 협상을 보인것 같지만,, 트럼프 2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그리고 각국간 외교가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 반, 두려움 반인 요즘이다.

나같은 외교 문외한도 이해하기 쉬운 책.
그리고 지금의 미국의 상황을 알고싶은 이들이면 읽어볼만하다.

"트럼프의 외교 전략 : 각개격파와 삥뜯기"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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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두 구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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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는 도서카페에서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입모아 추천했던 책. 으흐흐 역시 정해연 작가님의 책은 숨쉴틈 없이 몰아친다.


더블 - 두구의 시체.
처음부터 몰아치는 스토리.
새벽 1시. 편의점에서 우동한그릇을 먹고 행주와 고무장갑과 종량제봉투를 사온 도진. 그가 들어선 집에는 그녀가 잠들어있었다. 아니, 죽어있었다.
이야… 시작부터 등장하는 살인사건. 피해자와 살인자가 모두 누구인지 알고 시작하는 스토리.
도진은 경찰이다. 그것도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도진이 근무하는 서의 장팀장. 장주호. 그는 도진이 싫다. 
도진의 파트너 우신은 그런 장팀장과 도진 사이의 좋지 않은 기류를 살피는 이.

도진은 휴가를 떠난다. 이미 가기로 휴가도 내놓은 상태고 갈곳도 정해진 상태. 같이 가기로 한 그녀는 죽고 없지만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머물렀던 팬션에서 시체한구를 발견한다. 신고를 하려다 그가 벌였던 다른 사건으로 그는 그 시체를 자체처리한다. 
그리고 그의 팀이 중요한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김태손 의원 실종사건“. 아차 싶었던 그는 그 시체가 김태손임을 알게된다.
누가 범인일까.
시체를 처리한건 그였지만, 모든 수사는 그를 향해 조여온다.

숨막히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읽고 있자면 누가 대체 왜.. 인지가 궁금해지면서도 나쁜X 도진만을 욕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달까. 아. 이 뭐지. 살인자가 살인자로 안보이는 이..
두구의 시체. 범인은 다르다. 
도진은 함정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 때 그곳에 있었던 김태손 살인의 피해자인걸까?

궁금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 속에서도 대체 왜!가 다시 궁금해지는 <더블>
정말 마지막 장까지 한숨에 읽게 만든 책이다.
근데,,
경찰이 이렇다면
우리 누구 믿어야 해요..ㅠ

‘“꼭 팀장님을 본 받겠습니다!“
이제 그 일이 목을 조인다.‘ - 마지막페이지
쯔쯔.. 이런 말 하지 말지..

ㅋㅋㅋ 재밌다!
킬링타임용 소설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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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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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알고리즘의 책 소개 영상을 잠깐..보고 구매한 책이다. 그냥 궁금했다. "사소하지 않은 감정"이란 무엇일까. 소수자의 삶, 미국에서 아시아인, 아시아인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감정을 설명한 책이다.

 고백하자면, 초반의 저자의 글이 오롯한 깊은 이해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다수자의 삶을 살았기에 당시 백인중심의 미국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아시안을 바라보았는지는 글과 뉴스로만 접했기 때문이였을까. 
캐나다에서 잠시 머문적은 있으나, 캐나다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고, 나 또한 외국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만 있었고, 언제든 그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였기에 저자의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긴 어려웠다. 다만 감히 짐작할 뿐.

어떤 주류사회에서 소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순간순간 뭔가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숨막히게 다가왔다. 
비행기에서 끌려나간 베트남인을 바라보던 시선.
음..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 아시아인은 이래야 해..라며 바라보는 주류의 시선.

그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분위기. 마치 그것이 정답인것 처럼 말이다. 
반대로 그런 정의 속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도 한편 흑인과의 비교 속에서 아시아인이 좀 더 낫지라 주류의 말들에 가해자의 행위가 동시에 발현되는 모순까지 가감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말들이 놀라우면서도 불편하고, 불편하면서도 슬프고. 아 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휘몰라치는 저자의 글들은 순간순간 가슴을 툭툭 치는것 같았다.

  보부아르가 여성성에 대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인종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것 같았다.
"리처드 프라이어가 농담한 대로다. '나는 여덟 살때까지 아이였어요. 그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p.108
흥미로운 점은  인종에 대해 "순수"라는 감정과 "모른다"라는 의미는 수치심이고, 그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우리 사회에 들어와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는 정말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모른척했었다. 그 때의 내가 생각이 났다. '모른다'라는 말 뒤에서 어쩌면 내가 가해자로써 행동했을지도 모를 무지의 소치인 것. 
"내가 말하는 수치심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p.109

이 글이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알듯 모를듯 미국내 아시아인은 이런 모습일 것이라라는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짚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미국의 아시아인(특히 재미교포)를 바라보았던 것과 미국내 주류 백인들이 아시아인에 대해 바라보는 바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아시아인은 근면하다, 성실하다"
이것은 미국내 주류세력이 우리를 그렇게 정의한 것이다. 그래야지만 존중받는 아시아인이 될 수 있다는 강요인 것이다.
이 정의(definition)는 결국 우리는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면죄부이면서, 그렇지 못해 차별받는것은 너의 잘못이라는 그들의 숨겨진 의미인것.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미국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식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최근 플로이드 사망으로 흑인인권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위협을 느낀 부유한 백인이 다시 루프탑코리안을 언급한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이 기사가 굉장히 언짢았는데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소수자의 인종적 트라우마가 미국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가 보여졌기에 그러했던것이다.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그들은 그저 소비되는 컨텐츠 중 하나였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불편함 중 하나였던 것.

서구국가에서 우리는 소수자이다. 나는 소수자이지만 내 나라에 살았기에 인종차별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깊이 체감한적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 소수자로써 살았기에, 매번 매순간이 어떤 긴장의 연속이다. 누군가의 차별적 언사에 매번 반응해야하나? 아니면 좋은 아시아인으로 웃고 넘겨야 하나? 그런 하나하나 사소한 어쩌면 그들은 인식도 하지 못하는 그런 말한마디에 나는 어떤 스텐스를 보여야하는지를 매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 순간순간이.. 아.. 너무 싫다.

 무지의 소치건 알고 그랬건 간에 그런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모든 순간의 감정이 "결코 사소한 감정"이 아니다라고 그것이 왜, 무엇에 기반해 나오는 말들인지를 직설적으로 설명한 그녀의 글은 뾰족하고 집요하게 그 감정의 중심을 찌르는 것 같이 찌릿하다.

또다른 맥락으로 최근 읽었던 소설에서 미국에서 아시아인 작가가 쓰는 주제들은 그들 민족의 서사 속 어려움 속에서 딛고 일어선 무엇을 그리는 것을 원한다라는 내용을 읽으며,... 아,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것 역시 같은 미국인이면서, 그들을 미국인이 아니라 타자화시켜 상품화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차별이였다 것을 알았따.  그렇기에 <딕테>를 썼다는 차의 죽음을 두고 차의 대리인이 작품을 작품으로 봐달라는 그 말이.. 참..
"소속되지 못한 상태" p.259


한편 소수자, 이민자들을 향한 적대의 말들이 조용히 뒤에서 이뤄지던 혐오의 말과 행동이 최근 트럼프 집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기에 저자의 분명한 언어가 시원함이 아니라 걱정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굉장히 미묘하고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들.
정말로 "너무 예민한거 아니야?" 라는 말들에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는 책 뒷표지의 글귀가 눈에 다시 들어오는 책.

"이 감정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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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 - 분열의 정치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시간 서가명강 시리즈 41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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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2.3 내란사태를 경험하며, 궁금했다. 분명 사람이 바뀌어도 우리에겐 민주주의의 토대가 비교적 탄탄한 나라라고 믿었는데, 그 토대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마침 서가 명강 시리즈에게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근원적인 원인의 진단을 한 책이 나왔기에 읽었다.  
 다른 서가 명강 시리즈는 각 학과 별 전문적인 주제들이 등장하기에 교수님들이 되도록 일반인의 언어로 쓰셨지만 살짝 어려운 부분들이 등장한다. 근데 이 책은 비교적 주제가 명확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 정치 현대사의 흐름을 다루고 있기에 술술 잘 읽혔다.
책은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를 톺아보며, 그 속에서 이뤄낸 것들 그 순간 순간을 돌이켜, 그토록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결단의 순간들을 설명하면서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금까지 흘러왔는지를 설명한다. 

유신을 지나 제 5공화국. 잠깐 서울의 봄을 꿈꿨으나, 군사 쿠테타는 다시 일어났고, 그로 인해 1980년 5.18 광주가 있었다. 
하지만 1985년 총선으로 등장한 거대 야당, 1987년 6월 항쟁은 5공의 종료와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헌법 개정 등의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노태우 정권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에 있었으나, 국민을 의식 야당과 자주 회담을하며,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음은 문민정부에서는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철폐, 그리고 내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상조사 위원회등으로 5공 청산을 비롯한 과거사 해결을 통해 당시 내란의 전범이였던 전직 두 대통령의 구속되었다.
 그리고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대 통합을 위해 과감히 수감되었던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당시는 정치적 결단이였으나, 결국 당시 수괴였던 전두환의 사과는 끝내 없었고, 피해자만 남았다.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결단은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공고히 했다는 평에는 글쎄..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거쳤다. 각 대통령 시대에 대하여 저자의 설명이 덧붙여졌으나, 이부분은 패쓰.
 그리고 정치 양극화의 본격화에 대해서 저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을 말한다. 
"'적폐'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폐단'이란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을 뜻한다." p.177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은 민주화 세력과 권위주의(보수) 세력의 협약의 부정과 해체를 뜻하는 것이라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시작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 아니였을까? 국정농단이 파면의 사유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다만 그 단어가 너무 과격했다는 점, 너무 포괄적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말이라면 모를까, 문 정부가 한 것이 김영삼 정부가 했던 과거사 청산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현대사의 흐림과 별개로 저자가 말하는 도전받는 민주주의의 원인 중 하나를 SNS, 유튜브 등의 신생언론매체, 소위 뉴 미디어라고 불리는 플랫폼의 등장을 짚는다. 해당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보, 내가 보고자하는 정보만을 노출시킴으로써 나의 편향을 더 확고히 하는 결과를 낳고, 이것은 결국 같은 말만 반복해서 듣는 "반향실"에 갖혀있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는 정보의 흐름이 통제하고 검증된 문지기가 있는 "중간매개자"가 있었기에 그런 허위 정보나 가짜 뉴스가 어느정도 걸러지는 효과가 있었지만, 뉴미디어는 그렇지 않다는 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뉴미디어가 가지는 분명한 문제점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분명한 장점도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신 및 군정부 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언론은 게이트키퍼로써 역할을 했는가라는 저자의 의견에는 글쎄..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언론개혁을 말하지 않았겠지.. 뉴 미디어의 등장의 뉴스의 다변화를 가져왔고, 어떤 것이 중요한 것 인지에 대해 정하는 어젠다 세팅을 독점하던 레거시미디어에서 어젠다의 다변화를 가져오고, 다양한 스피커의 등장은 분명 뉴미디어가 가져온 새로운 시대의 언론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분명 시험대에 오른 것은 맞다. 
분명 하나의 이유 만은 아니겠지. 정치적 양극화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등장, 기술발전으로 인한 소외받는 계층의 등장. 다만 저자의 설명에 나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나 이번 12.3 내란의 이유중 하나로 야당이 여당과의 협치에 부족함이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글쎄. 대통령 자체가 국회와의 협치를 말하지 않는 정권에서 당시 야당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사실 예측 가능하지 않았던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다시 여야 협의에 대해 칭찬한 저자가 22대 국회에 대해서는 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 탓을 하는지는 글쎄. 분명 지금의 (당시)거대야당은 국민의 뜻이다. 분명 거대 야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시민의 뜻을 무시한 대가가 그 수많은 탄핵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보다 복잡해지는 사회와 다변화되는 구조속에서 양당제의 분명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다당제의 필요. 그에 따른 선거제도 개편은 물론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분산 등에 대한 저자의 의견엔 진짜 찬성. 
만약 이번에 개헌이 이뤄진다면,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합의를 통해 반영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치에 무감하지 말고, 제대로 보고,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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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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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책의 소개글로 9.11 사태이후 외국에 나갔을 때, 중동사람들에 대한 이중입국절차를 밟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 생각나서 였는지도.

이 이야기는 주인공 찬게즈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미국 프린스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분석가로써 언더우드샘슨에 취직해 꽤나 높은 월급을 받는다. 에리카라는 여자친구와 잘 사는 친구들로 미국 상류층 사회로의 진출을 꿈꾼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이랄까…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 되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자신과, 미국에서 자신간의 괴리감에 묘한 이상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9.11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달라진 시선을 느낀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에서 미국이 제 3세계를 대하는 행위로 인해 파키스탄의 가족들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을 듣고 보면서, 스스로도 미국 안에 있는 이방인으로써 불편함이 생겨난다.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끓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74


찬게즈의 이 말은 미국의 상류층을 꿈꿨던 자신, 하지만 9.11 사태를 바라보며 이방인으로 미국에 대한 이상한 적대감에 대한 양가적 감정의 직접적 표현이다. 저 앞의 말이 9.11을 두고 
"어째서 나의 일부가 미국이 해를 입는 걸 보고 싶어했을까요? p.74" 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친구가 혹시나 저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다. 찬게즈는 에리카를 사랑했지만, 에리카는 전 남자친구 크리스를 잊지 못하면서도 찬게즈를 사랑한다. 하지만 에리카는 죽은 크리스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놓지 못하기에 스스로 어쩌지 못해 우울증이 더 깊어진다.  이런 두 사람은 그저  남녀의 애정관계에 얽힌 이야기쯤으로 보인다기 보다, 둘의 관계를 통해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 에리카와 외국인 찬게즈의 차이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무엇을 보여주는 느낌...?

“나는 만약 이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한테 최우선적이라면, 그런 살인자들과 같은 땅에 사는 우리들의 목숨은 어쩔 수 없는 민간인 희생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p.170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보이는 행위는 only 미국이다.  현재도 오로지 미국은 과거의 영광(Great America again!) 이라는 구호아래 미국과 비 미국 이렇게 이분법으로 미국이 아닌 대상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예니체리로 살았던 찬게즈의 독백은 슬프기도 하면서, 그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한편 이해가 되는 바이다. 나 역시 비미국인이니까.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뭘까? 찬게즈의 말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정확한 그의 의도,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상대의 직접적인 의도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 수록 찬게즈가 누구지? 상대는 누구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찬게즈는 파키스탄에서 대학강사로 일하며, 미국의 9.11 사태를 통해 이라크 공격을 공식화하며 민간인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판하는 사회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맨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찬게즈는 없다. 화자인 찬게즈가 만난 이와 찬게즈의 대화가 진짜 누구지?라는 의문이 더 크게 다가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도 미국인도 아닌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는 두 나라간의 관계. 그것도 평범한 시민이였던 찬게즈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결코 “정의”는 아니였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라고 분명한 기준이 있을까 누가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복잡한 세상.

역자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서구와 제 3세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담고 있어서 더욱 좋다 p.186“

이 말에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미국을 바라보는 이 양가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읽다가 그만두게하기보다는 차라리 두번 읽게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는 성공한 듯. 묘한 느낌의 이 책은 다시 첫장을 펴게 만들었으니까. 그 첫장은 처음 읽었을 때의 첫장이 아니다.


읽을수록 의문만 남는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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