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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25년 5월
평점 :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책의 소개글로 9.11 사태이후 외국에 나갔을 때, 중동사람들에 대한 이중입국절차를 밟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 생각나서 였는지도.
이 이야기는 주인공 찬게즈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미국 프린스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분석가로써 언더우드샘슨에 취직해 꽤나 높은 월급을 받는다. 에리카라는 여자친구와 잘 사는 친구들로 미국 상류층 사회로의 진출을 꿈꾼다.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이랄까…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 되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자신과, 미국에서 자신간의 괴리감에 묘한 이상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9.11 사태 이후, 미국 내에서,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달라진 시선을 느낀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에서 미국이 제 3세계를 대하는 행위로 인해 파키스탄의 가족들이 점점 위험해지는 것을 듣고 보면서, 스스로도 미국 안에 있는 이방인으로써 불편함이 생겨난다.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끓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P.74
찬게즈의 이 말은 미국의 상류층을 꿈꿨던 자신, 하지만 9.11 사태를 바라보며 이방인으로 미국에 대한 이상한 적대감에 대한 양가적 감정의 직접적 표현이다. 저 앞의 말이 9.11을 두고 "어째서 나의 일부가 미국이 해를 입는 걸 보고 싶어했을까요? p.74" 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친구가 혹시나 저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관계다. 찬게즈는 에리카를 사랑했지만, 에리카는 전 남자친구 크리스를 잊지 못하면서도 찬게즈를 사랑한다. 하지만 에리카는 죽은 크리스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놓지 못하기에 스스로 어쩌지 못해 우울증이 더 깊어진다. 이런 두 사람은 그저 남녀의 애정관계에 얽힌 이야기쯤으로 보인다기 보다, 둘의 관계를 통해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 에리카와 외국인 찬게즈의 차이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무엇을 보여주는 느낌...?
“나는 만약 이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한테 최우선적이라면, 그런 살인자들과 같은 땅에 사는 우리들의 목숨은 어쩔 수 없는 민간인 희생이라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죠.” p.170
지금 트럼프의 미국이 보이는 행위는 only 미국이다. 현재도 오로지 미국은 과거의 영광(Great America again!) 이라는 구호아래 미국과 비 미국 이렇게 이분법으로 미국이 아닌 대상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예니체리로 살았던 찬게즈의 독백은 슬프기도 하면서, 그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한편 이해가 되는 바이다. 나 역시 비미국인이니까.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뭘까? 찬게즈의 말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정확한 그의 의도,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상대의 직접적인 의도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 수록 찬게즈가 누구지? 상대는 누구지?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찬게즈는 파키스탄에서 대학강사로 일하며, 미국의 9.11 사태를 통해 이라크 공격을 공식화하며 민간인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판하는 사회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맨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찬게즈는 없다. 화자인 찬게즈가 만난 이와 찬게즈의 대화가 진짜 누구지?라는 의문이 더 크게 다가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도 미국인도 아닌 제 3의 눈으로 바라보는 두 나라간의 관계. 그것도 평범한 시민이였던 찬게즈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미국은 결코 “정의”는 아니였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라고 분명한 기준이 있을까 누가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복잡한 세상.
역자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서구와 제 3세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을 담고 있어서 더욱 좋다 p.186“
이 말에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미국을 바라보는 이 양가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읽다가 그만두게하기보다는 차라리 두번 읽게 만들고 싶었다는 의도는 성공한 듯. 묘한 느낌의 이 책은 다시 첫장을 펴게 만들었으니까. 그 첫장은 처음 읽었을 때의 첫장이 아니다.
읽을수록 의문만 남는 책.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