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치문서와 해방정국 - 미군정 중위의 눈에 비친 1945~1948년의 한반도
박태균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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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의 해방 이후 의 상황을 나는 정확히 몰랐다. 사실 국사시간에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이런 단편적인 날짜들로만 기억할 뿐.
지인이 재밌는 책이라며 이 책을 추천해주기에 읽으며 맞어..45년 해방, 50년 전쟁이면 그 중간 5년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뒷면에 있는 글귀이다.
"오늘 날 한국 정치의 '흑역사'는 어쩌면 미 군정기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혼란 정국이 45년 해방 직후의 정치 때문이라고..?
궁금해졌다. 왜?
참고로 진짜 해방 직후 우리의 정치는 혼란 그 자체였다. 냉전도 시작되고 있었고, 그래서 남과 북의 신탁통치로 인해  각자의 입장도 첨예했다. 거기에 친일세력 득세까지. 와....버치중위의 자료를 기반으로 정리된 내용임에도 사실 모든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힘들정도 였다. 그렇기에 더 궁금했다. 이 때가.

그 복잡한 정국에 대한 사실을 읽으며 나에게 든 의문은...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였다.
누구 였어야 했을까?
분명한건 저사람은 아닌데,, 싶은 인물은 정확히 보였다.(결과를 알고 봐서 그런지도;;)
그 소련과 미국의 말 그대로 신탁 통치의 시절 나라를 생각했던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안위 만을 생각했던 인물들이 권력을 잡았고, 그들의 목표는 하나 였다. 자신들을 몰아내려는 세력을 다 척결하고 권력을 놓지 않는 것.
누구는 미국에 붙었고, 누구는 소련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통해 자신의 재물과 권력만을 탐했다. 그 앞에 경찰이 있었고, 자본이 있었고, 언론이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전쟁이 일어났고, 통일은 요원한 남과 북의 분단 국가가 되었다.
나라를 생각했던 인물들을 암살했고, 그것을 또 다른 인물들에게 덮어씌웠다. 언론을 조작해 프레임을 만들고, 경찰을 이용해 탄압했다. 그 안에 친일 경찰들이 대거 있었다는 건 지금도 잘 알려진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과 너무 닮았다.
가짜뉴스 프레임, 정치검찰 등등등.(더 언급하기도..싫다..)

버치 중위의 문서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우리가 놓쳐버린 미래의 경고이기도 했다. 
가장 혼란스러웠지만,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경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닌 사람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누구였어야 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다가 책을 다 읽고보니,,,,

누구도 중요하지만, 
결국 상황을 제대로 보고,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는 날카로움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더 이상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 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였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 누구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아닐까..
(다만 당시의 정국이 워낙 혼란스럽고, 국민은 일제의 수탈로 먹고사는것 조차 불투명 하던 시절이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는 놓쳤지만, 지금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결국 과거는 미래의 스승인 셈!

굿.


"애국자는 평생 동안 나라를 위하여 봉사했다가 국민들로부터 선물로 받은 권력을 장악했다가 부패해진다는 사실이 늘 슬프다. 이 문장은 몇 가지 동의할 수 없는 사안을 빼고는 필자의 눈에 보이는 해임된 독재자 이승만을 잘 요약해준다."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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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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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기다리는 수상작품집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수상작품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의성과 시대성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핫 한 주제에 대하여, 소설을 통해 질문을 하고 있기에 그러했다.
올해는 꽤나 다양한 주제가 작품집을 채웠다. 역시.

백온유 작가님의 <반의반의 반>
돌봄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만큼 우리의 삶의 질도 높아지면 좋으련만, 수명만 길어진 지금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그 저변에 깔린 돈 5천만원.
5천만원은 영실에게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 였고, 딸인 윤지와 현경에게는 돈의 존재가 드러난 순간부터는 나의 것이 되어버렸다.
곁을 내어주지 않던 영실을 돌봐온 수경.
딸과 손녀는 그녀가 그돈을 가져갔다고 믿지만, 수경은 항변한다. 나는 아니라고, 그리고 영실은 그 말을 믿는다.
가족이 아니라 나를 2년간 돌봐주고, 나와 함께 밥을먹고, 시간을 보내주고, 나를 위해 분홍색 스웨터를 떠온 수경이 그녀에겐 딸이고 손녀가 되었다. 수경이 가져갔던 들 영실에겐 그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수경이 왜 가져갔는가, 무엇이 그리 힘들었던가가 더 궁금할 터.
나는 이 이야기가 변해가는 가족의 역할이 어디까지 일까를 생각케한다. 믿음에 대한 배신의 측면에서는 딸과 손녀, 수경이 뭐가다를까 싶어서.

이희주 작가님의 ”최애의 아이“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가장 흥미로웠다. 정자가 굿즈고, 내 아이가 나의 가장 최애가 주는 선물같은 의미라니. 정말 발칙하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설이랄까.
정자가 굿즈가 되고, 결국 그런 굿즈를 살 수 있는 것 조차 돈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남과 여의 관계 조차 돈 아래 있는 것이다.
아이돌의 상품화, 여성이라는 성이 무시된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잘못된 상품을 품은 나의 선택은 어쩌면 예상 가능한 결말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강간으로 변하고, 최애가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린 설정이 이만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있을까싶은 생각을 하게했다.
남자도 여자도 말 그대로 현 체재를 유지하기 위한 오롯한 도구로 쓰이는 사회. 돈 아래 어떤 가치도 없어진 사회를 정자와 난자, 여자와 남자의 상품화를 통해 이렇게 신랄하게 그리는 작가님이라니.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소설이였다.

그리고 성해나 작가님의 길티클럽 : 호랑이 만지기.
나의 우상. 그리고 나의 현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감독과 아이 학대에 대한 진실. 믿고 싶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욕했지만 믿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 대한 지지를 보내던 나였지만,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과 찜찜함을 애써 누르며 그에대한 열렬한 믿음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의 사과를 보며, 그 믿음은 일순간에 무너진다. 시간이 흐른후 치앙마이에서 이빨과 손톱이 다 빠져 무기력해진 호랑이를 만져보는 관광에서 왜 그가 떠오르는 것일까.
죄책감과 기쁨은 과연 동일선상에 놓어질 수 있는 단어인가? 자기기만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왜 옳은 선택을 할 수 없는 가?라고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나는 어떤 대답도 떠올릴 수 없었다. 몰인정할 수 없어서?...라는 대답에는 대체 누구에게 라는 질문이 되돌아왔기에 그러했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행위 속에 죄의식이 느껴진다면 기쁨을 더 나중에 두지 말라는 경고하는 이야기 같았다.

제 16회 젊은 작가상수상작품집에서 관통하는 주제는 나와 타인, 우리가 있었다. 우리라는 말이 참 좋은 단어이지만, 그 단어를 쪼게어 보면 나와 너 즉 나와 타인으로 구성되어있고, 타인을 대함에 있어 나의 태도, 나의 시선, 나의 관점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 같았다. 강보라 작가님의 “바우어의 정원”도 오랜만에 복귀하는 연극 무대에서 만난 후배와의 추억과 현실 속에서의 과장 조금 보탠 아귀 다툼 같은 느낌이였고, 
서장원 작가님의 “리틀 프라이드”는 사회적 소수자가 서로에 대한 위안이 되어주는 훈훈한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그 소수의 위치에서 벗어나기위해 타인을 멸시함으로써 우월감을 가지는 삐뚤어진 생각은 왜, 어디서, 누가 그 잘못의 시작을 만들어낸걸까..?를 생각케 했다. 

우리라고 묶인 그룹에서조차 나와 타인이 나뉘는 세상.
그런 무서움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가족, 동료, 우상, 사랑, 결국 나에게 까지.

재밌다.
역시 올해도 탁월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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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영어 필사 - 마음에 위로를 안겨주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 다온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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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재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내게 그 예외적인 책이 바로 어린 왕자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어린왕자, 대학교 때 읽었던 어린왕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읽는 어린왕자 매번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때는 언제일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생각이 어지러울 때 나도모르게 손에 들고 좌락 펼쳐 한 구절씩 읽게 만드는...그럴 때마다 낯선듯 익숙한 이 책은 내게 위로가 되어준다.

그러다 영어 필사 책이 있다는 소식에 냉큼 다시 시작. 오랜만에 읽는 어린왕자의 구절들은 읽을 때마다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 부분이 다르다. 아마도 읽는 때의 나의 마음이 다른것이겠지만,,, 
영어필사 책이라 일단 책을 한번 읽어보자~하는 마음으로 첫장을 열었는데, ㅎㅎ 다행히도 영어와 해석이 같이 있었다.(영어 울렁증..) 그래서 한글 부분을 한장한장 넘기며 1차 완독. 또 다른 새로운 느낌. 
그리고 필사를 위해 첫 장부터 영어를 한자 한자 따라 적으며, 또 다른 새로움을 느낀다.
"If, for example, you come at four o'clock in the after-noon, then at three o'clock I shall begin to be happy. I shall feel happier and happier as the hour advances. " p. 96
이 문장은 내가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던 그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문장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행복에 대해 맞어. 하며 머리를 탁 때리던. 그 문장을 영어로 쓰며, "happier and happier"이라는 부분이 "점점 더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더 크게 다가왔달까. 행복이라는 단어가 두번 등장하는 저 부분이. 꼭 "행복하고 더 행복해질"꺼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어떤 책을 원어 그 자체로 읽는다는 것은 이런 느낌이구나...
물론 번역을 읽었기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만,, 
더군다나 그걸 쓰면서 읽는 (김영하 작가님 말대로 극단적으로 느리게 읽는) 필사라는 방식이 주는 새로움이 느껴진다. 눈으로 읽으면서 뭉뚱그려졌던 단어와 문장이 한자 한자 눈에 아로새겨지는 느낌이랄까. 영어 필사 책이지만 나는 한글도 같이 써보는 중. (오랜만에 잡은 연필로 손이 좀 아프긴 하지만.ㅎ)

첫 필사로 어린 왕자를 택한건 탁월했다는 나의 결론.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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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를 만나다 - 구토 나는 세상, 혐오의 시대
백숭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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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구토 나는 세상, 혐오의 시대"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다. 사르트르 하면 막연히 어려운데, 싶었지만 부재가 나를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모든 것이 양극단으로 가고 있는 지금, 사르트르의 철학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는가.
참고로 나는 구토라는 책을 읽어보진 못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그런 느낌..ㅎ
그래서인지 저자가 철학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누구나 사르트르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는 이 책이 나는 반가웠다.

하루하루 살아가던 현실에 지겨움을 느끼던 청년P가 사르트르 살롱의 카드를 받아, 사르트르 살롱을 찾는다. 뭔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신사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를 통해 사르트르의 철학을 배워간다.
저자가 말한 "휴머니즘"의 철학을.

청년P는 현실의 어지러움과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며, 자신이 루저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사는 청년 P가 루저가 아닌  "내던져진 존재"라 말한다.  그저 우리는 모두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는 것. 그러니 흔들리는 당신은 결코 승자도 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불명확하고 불안전한 존재. 그것이 우리이며, 사르트르는 이것을 "구토"로 표현한다고. 그러니 당신의 혼란스러움은 당연한 것이라고. 
이렇게 사르트르 살롱은 시작된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 p.65
모두가 "내던져진 존재"인데, 누구는 명확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나는 왜 그렇지 못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다른 이와 나의 비교. 그래서 내가 더 루저같이 느껴지는 지금 이 부분에서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라 한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지옥은 타인의 시선 속에 갖힌 나라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그 안에 갖혀버린 내가 곧 지옥인 것이다. 그럼 사회라는 환경 안에서 타인과 함께, 끊임없이 누군가와 나의 우위를 비교해야하는 지금.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내가 나인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존재가 나다" p. 113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즉자존재로 태어나 대자존재로 향하는 것. 이말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나,  나에대해 탐구하며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에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또 다른 선택을 하며 만들어가는 나이기에 지금과는 다른 나인 것이다.
"인간은 그가 가진 것의 총합이 아니라 그가 가지지 않은 것, 그가 가질 수 있는 것의 총체다" p.128
이 말은 타인의 시선 속에 갖힌 내가 곧 미래의 나는 아니라는 위로를 사르트르는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그런 생각에 매몰되지 말라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또 바뀔 수 있다고, 그러니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을 제대로 보는 대자존재로써 나아가라고 말이다. 
 이런 사르트르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가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부분이 였다. 주인이 있어 노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예를 통해 주인이라는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진짜 발상의 전환 같은 신선함이였다. "독립적인 자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그 관계에서 진정한 주인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이나 사회의 제도 안에서 나를 규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나만이 만들어 나갈 수 있기에, 누구도 나를 규정하게 두지 말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었다. 

"죽은 자로 있는 것은 산 자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다." p.224
"내던져진 존재"로써 죽음, 그 죽음 중에서도 자살은 나의 선택 중 하나 일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했지만 사르트르는 죽음은 대자존재인 인간이 즉자존재로써 남는 행위가 죽음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은 산자의 즉 타자의 처분에 맡겨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죽음이 아닌 선택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니체는 자살조차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했는데,, 실존주의 철학자여서 그런 걸까. 살아있는 존재 로써의 인간에 더 의미를 두었던 것일까.

이 밖에도 인간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나는 즉 대타존재로써의 나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는지 등을 읽고 있다보면, 저자가 말한 "휴머니즘"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는 그가 말한 대로 참여하는 지성인으로써 
"참여는 행동이지 말이 아니다" p.270 살았다. 그래서 그의 철학이 더 빛나는 지도.. 앙가주망, 그것이 또한 독보적인 철학자로 이끌었다.
사랑에서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p.245 라는 말로 계약 결혼이지만 아내 보부아르와의 계약을 지켰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오롯한 나를 향해있었고, 또한 타인과 함께하는 관계 속의 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안에 사랑이 있고, 종교가 있고, 사회가 있었다. 
다만, 정말 타인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오롯한 나를 찾아가는 선택과, 대타존재로써 살아가는 나를 위한 선택. 그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어디쯤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어려운 건데,, 싶은 두려움도 들게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자였음을 알게 된 책.
<구토>를 시작할 때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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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크림빵 새소설 19
우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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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티뷰로 혼불문학상을 받은 우신영 작가의 신작. 기괴(?)한 제목과 그에 걸맞는 표지의 그림. 하지만 문득 깔끔해보이기도 하는 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달까.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나의 느낌은 작가님의 표현 그대로 어둑하다.

고산대학교의 허자은 본인 부고를 시작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허자은 교수. 그녀의 장례식에는 오빠만이 빈소를 지키고, 주변의 교수들은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 국어국문학과 조교였던 이종수 외에는.
허자은. 그녀는 누구인가?
낙원떡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학교의 서가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미친듯이 읽어내는 인물. 떡집 딸이기에 엄마는 매일 남은 떡을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고, 그녀는 그것 역시 다 먹어 치웠다. 마치 무엇을 매꾸려는 듯.
그렇게 어영부영 국문과에 진학했고, 졸업해 사립학교에 선생으로 취업했으나 반학기만에 잘렸다. 아이에게 손수건을 던졌다는 이유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녀는 고산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원래 교수를 하고 있던 견고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녀에게 행해지는 각종 성추행, 언어폭행을 그녀는 그저 견딘다.
때로는 학과 여학생에게 은근히 가해지는 교수들의 성추행을 조용히 막아주기도하고, 모두가 조교에게 당연히 시키는 심부름도 그녀는 시키지 않는다. 다 그녀의 일이니까.
그녀의 학생들도 그녀를 무시한다. 마치 대학내 서열을 안다는 듯. 냄새난다. 학과과정이 이상하다 등등 그런 그녀가 학교의 화장실에서 죽었다.

이 소설은 너무나 이상했다. 한사람의 이야기인듯. 어떤 한 사회의 고발소설인듯하며 다시 누군가의 이야기로 돌아와있는 이 스토리가.

허자은으로 시작해 이종수를 거쳐, 정하늬까지 이어진다. 허자은은 허기를 달콤한 크림방을 통해 채운다. 나의 몸에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야 완전한 내가 될 수 있다는 믿는 사람인 마냥..어떤 구멍속에서 나오는 진물은 냄새나고 더럽지만 깨끗해지기 위한 것이라 말하는 그녀는 달콤한 크림을 삼키고, 다시 토악질을 하며 뱉어낸다. 그녀를 더러워하고, 자신들의 세계에 들여놓고 싶지 않은 교수세계의 더러운 오물을 그녀의 몸을 통해 정화하는 과정인것 처럼 말이다.

반대로 허자은의 제자 정하늬는 자신의 몸에 모든 구멍을 뚫어 몸안의 더러운 것을 다 밖으로 빼내고 싶은 사람 같았다. 부모도 가지 말라는 학과를 택했고, 유일한 조교 종수조차 오지 말라 말하는 대학원을 선택한 그녀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피어싱을 한다. 온 몸에.. 진물이나고, 고름이 나도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이 마치 정화의 의식같은 그녀. 그러다 어느순간 그녀의 심장에도 구멍을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종수는 허자은과 정하늬의 매개이면서도 책속 인물중 부조리와 더러움에 가장 현실적으로 버티는 인물이다. 결국은 허자은의 죽음과 그녀가 남긴 기록을 읽으며, 제대로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을 더는 견딜 수 없었기에 그는 그곳을 떠난다. 


 그 세계를 먼 발치에서 바라볼 때는 아름다운 면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더 이상 내가 멀리서 보았던 그 아름다움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밖과 안의 간극으로 인한 허무를..우리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 
 허자은에게 그것은 책과 크림빵이였고, 정하늬는 피어싱이였고, 이종수는 그의 미래였다.

오롯이 나로써만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나를 지키고자하는 마음, 부조리 속에서 어느정도는 타협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어디까지 버텨내야할 경계인지 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지금이 지옥일지도. 결국 허자은의 크림빵은 불량 식품마냥 입안에서만 단맛을 흉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으니까.

작가님의 말처럼 이토록 어둑한 소설이 있을까.  이 소설이 소설로써만 읽히지 않았던 것은 내가 조금씩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면이 허자은을 통해, 정하늬를 통해, 이종수를 통해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곽용권의 몰락은 조금은 통쾌했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사람은 없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하는 것이지.

소설을 다 읽고난 지금 새삼 산뜻한 이 아침이 왜...더이상 맑아보이지 않는다.ㅠ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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