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와 함께 보는 세계의 미술 그림 보는 아이 7
브리기테 바움부쉬 기획·글, 이주헌 옮김 / 비룡소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디에고 리베라 <꽃장수> 1942.

세상의 많은 변화는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 상상력이라고 하면 예술과 영화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스티브잡스의 아이폰도 상상하는 힘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생각해 내는 힘, 이를 우리는 상상력이라고 한다면, 상상하는 힘 없이 인류는 한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건축, 스포츠, 정치제도 이 모든 것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상상력으로 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눈부
신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지려면, 상상력을, 창의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할 거에요.
그리고 아이들이 그런 힘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아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려면
어떤 책을 읽힐까요? 무엇보다 예술의 힘으로 그 잠재력을 키워보면 좋겠습니다.
비룡소에서 나온 <그림보는 아이>는 책은 작지만, 무한 공간, 무한 시간 속으로 뻗어나가 그림보기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림보는 아이>는 모두 16권으로 구성된 전집인데요, 처음 이 책들을 접한 순간 저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세상 구석 구석, 크레타에서 우즈베키스탄, 남태평양 작은 섬까지 뒤져 세상의 아름다운
미술이란 미술을 다 가져와 담았기 때문이지요.

브리기테 바움부쉬라는 기획자에 의해 탄생된 이 책은, 정말 멋집니다. 그는 세상의 미술품을 자기 연구실에
몽땅 가져와서 차근 차근 분류하고, 이야기를 지어 입혔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그림들은 <자연>, <사람의 몸>,
<바다>, <새>, <하늘>, <음식> 등의 주제로 한권 한권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그림의 출신성분은 무척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꽃>편에서 보면, ,400년전 크레타 섬에서 그려진 벽화의 꽃,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꽃, 러시아 민속예술품인 마른꽃, 조선시대 화가 이암의 화조도에 나온 꽃등 세계
각국의 꽃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였습니다. 글은 짧고, 배치는 깔끔합니다.

이 책은 6,7세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초등 전체, 나아가 그림보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화첩으로 펼쳐보며
즐기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미술작품을 어릴 때 부터 접하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단순한 주입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상상하는 힘과 새로운 것에 대한 꿈이 저절로 열리지 않을까요. 보고 있으
면 무척 행복해 지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깔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해 - 명화로 배우는 색깔 이야기
공주형 지음, 정은희 그림 / 토토북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 결- 함  >  김덕용  . 2004
 

그저 무난한 당신들의 색깔 

오피스 빌딩 근처 점심시간에 지나가다 보면, 어쩜 우리나라 남자들의 옷은(옷의 색깔은)  저렇게  천편일률적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회색, 감청색이 주를 이루고, 그 칙칙함과 지루함은 겨울이 되면 더 그 정도가 심해진다.
딱딱한 기업문화의 탓도 있겠지만, 자유직업의 사람들 역시 자기에게 맞는 색을 잘 찾는 이는 드물다. 한국에 유명
브랜드도 많이 있고, 옷값도 장난 아닌데, 그 많은 멋진 색상의 옷들은 다들 어디로 간걸까?

'지루한 ' 혹은 '무난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은 아저씨들 뿐 아니다. 일상용품을 사러나가면 그 색상의 단조로움에
답답하다. 같은 디자인에 색이 좀 다양하면 안되나? 하는 질문을 수없이 하게 된다. 가끔 유럽에서 온 물건들의 색
을 보면, 기능에 못지 않게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색을 생각해냈을까... 흠 너무 부럽다. 

우리가 이렇게 색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의 미술교육이 일정한 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그림감상 교육이
척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색깔이 많은데,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둔감함이,
일상의 디자인이나, 옷맵시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색에 대한 센스를 키워줄 책을 찾아보자.
< 색깔이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해 >를 만나보자.

책의 장점은

첫째, 어린이 눈높이에 다가가는 다정한 이야기 이다.
미술사는 어렵게 가면 한없이 어려운 분야다. 그것을 아이들 눈높이에 근접해서 쓴다니, 저자 공주형씨의 노력에 박수
를 보낸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림한편과 이에 따르는 다정한 이야기가 그림의 이해를 돕는다. 글의 제목을 한번 보자. 
<불이 난 걸까요?> < 엄마가 다 들어줄게> <오늘은 특별한 날 > <후다닥~ 숨어라!>등 제목만 보아도 생기있는 글들
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빨강, 노랑, 검정등 주제별로 그림을 모아, 색이 그림에서 차지하는 이미지와 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인기많은 친구'는 누구일까? 재미있는 친구는? 똑똑한 친구는? 꼭 필요한 친구는? 각각 어떤 색
이 그 답일지는 책을 보시면 알게 된다.

둘째, 색채이론을 재미있게 설명했다.
명도, 채도, 색상대비. 사실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힘으로 쉽게 풀어간다. 명도는 '비슷하지만 달라요"
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 노랑아, 너와 동생들은 정말 많이 닮았구나. 동생들을 어떻게 구별
하니"
중학교 때 삼원색에 대해 배울 때 선생님은 정말 애쓰며 설명하셨던 것 같다. 시험에도 많이 나왔고. 삼원색 이론은 이렇게
설명된다. "짝짓기 놀이를 해요"  어떻게 짝짓기 놀이를 하나면 이렇다. " 혼자 남은 초록은 뾰로통해졌어요. 초록의 마음을
눈치챈 노랑이 슬쩍 물러서네요" 귀엽고 유머스러운 비유다.


어른인 내가 읽어도 참 기분 좋은 책인 이유는 새롭게 만나는 그림들이다. 흔히 보아온 그림이 아니라 저자가 애써 발굴한
새로운 그림을 보는 것도 이 책의 즐거움이다. 예를 들면 이미지에 올린 <결-함> 김덕용의 그림은 볼 수록 좋다. 이 그림은
'황토와 주황, 사이좋은 친구들'이라는 테마에 출연한(!) 그림이다. 그림에 맞게 풀어간 이야기는 소박하고 다정하다. 어린이 미술책의 좋은 지표가 되는 책이다.

<색깔이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해>는 토토북에서 2006년 7월에 처음 나왔고,  그해 12월에 바로 재판을 찍었고(내가 본책),
지금껏 스테디 셀러다.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가나 음악가와는 달리 건축가가 쓴 자서전은 드물다. 안그라픽스에서 나온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그래서 반가운 책이다. 건축가란 화려하고 우아한 직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도 다다오는 이곳 저곳에서 '극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는 자신의 설계사무소 직원들에게 '게릴라 정신'을 강조하는데,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지닌 개인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열평 남짓한 소형주택을 '도시게릴라의 주거'라고 말한다.이는 각박한 도시환경에서도 개개인이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산다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이처럼 안도 다다오는 '게릴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건축사를 써왔다. 기성사회와 투쟁하는 삶을 선택한 채 게바라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만큼 안도 다다오, 그는 뜨겁다. 1960년대 오사카 우메다에서 사무실을 열었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건축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불합리에 저항하고자'하는 것이었다. 40년 동안 그는 건축가로서 어떻게 '저항' 해 왔을까?
 
프로 복서 안도 다다오 , 고졸 건축가 안도 다다오
 
그의 출발은 마이너였다. 그는 프로복서였다. 어렸을 적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밖에 나가 놀기만 했다. 열일곱에 프로복서가 되었고, 2년만에 자신의 한계를 느껴 그 길을 접었다. 그리고 고교졸업. 이것이 공식적인 그의 학력 전부다.  건축현장에서 일하면서 건축일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스물네살에 세계여행을 떠난다. 이때 만난 세계적인 건축물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독학으로 건축가가 되었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집을 베껴가면서 그리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대학교과서를 혼자서 해독해가면서 건축을 배웠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알고 보면 비전공자에 독학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희망을 던져주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일본 역시 한국사회만큼이나 학연과 지연의 벽이 높은 사회다. 그 사회에서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세계적인 자리에 서기까지 그의 삶은 도전 또 도전이었다. 그래서 소형주택 짓기부터 시작했고 좁은 토지, 모자라는 예산을 갖고 씨름하는 것이 익숙하다. 건축가로 성공한 후에도 꾸준히 주택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런저런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짓는 작은 집짓기가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4mx4m, 작은 집을 짓는 이유
 
그는 초기에 소형주택을 많이 지었다. 그 중에는  4m x 4m 의 집이 있다. 이 집은 25평방미터, 즉 10평이 채 되지 않는 대지 위에 지은 집이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집이 있을 수 있어?라는 의아해 했지만 사진을 보니 바닷가에 지어진 근사한 집이었다. 최대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필요한 것만으로 집을 지었다.
 


▲ 4m x 4m 집. 바다를 바라보는 멋진 집이다     ⓒ 인터넷   
 
바닷가에 지어진 이 집은 있을 것은 다 갖춘 집으로, 규모가 작지만 사람에게 꽤 유용한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크고 거창한 것만을 부르짖는 자본의 시대에 10평도 안 되는 공간으로 완성된 작은 집을 통해 우리는 건축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된다. 안도 다다오는 설계사무소 신입사원에게 반드시 작은 집 건축일을 맡긴다고 한다. 왜냐하면 작은 집을 쓸모있게 짓기 위해 머리를 짜고 노력하는 동안 '건축에 대한 가치관'이 길러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백평 되는 미술관, 박물관,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의 시작은 아주 작은 집이라는 것, 이것이 안도 다다오의 건축관이다. 

안도 다다오, 발상의 전환

 기존의 건축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다 싶은 발상을 한다. 빛을 무조건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차단하고 절제한다. 가정집을 지으면서 밖으로 창을 하나도 내지 않는다 등등.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오사까의 <빛의 교회>다.
 

 

  
▲ 오사까에 있는 < 빛의 교회 > 안도다다오의 대표작. 설교강단이 신자의 자리보다 낮게 위치해 있다 
ⓒ http://www.andotadao.org   
 
오사까 빛의 교회는 빛으로 조절해 십자가가 비치는 독특한 교회다. 건축형식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강단이 대중들이 앉는 의자보다 낮게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목사가 설교하는 강단은 대개 4,50미터 상단에 놓여 신자들은 목사와 십자가를 우러러 보게 된다. 목사가 신자보다 낮은 자리에서 설교하는 <빛의 교회>는 사람을 섬기고자 하는 십자가의 정신과 가장 일치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 <빛의 교회>를 지을 때 극한의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공간도 작았고, 예산도 빠듯했던 탓이다. 그러면서도 건축가는 완성도100%를 욕심내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시공을 맡은 회사는 거의 이익을 남길 수 없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신자들이 한푼 두푼 모은 모금으로 지어지는 교회'라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장인에게는 어쩌면 큰 건축물보다는 '극한 작업'을 해야 하는 작은 건물에 더 열정이 기우는 것이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또한 혼푸쿠지의 <미즈미도>라는 절은 지상에는 연못을 만들고, 지하로 법당을 구축한 독특한 건물이다. 말하자면 법당이 물을 이고 있는 형상이다. 논란이 많았고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건축물이 되었다.

공공건축의 중요성

안도 다다오는 건축은 도시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늘 묻는다. 그런 그는 건축의 공공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데,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하면서 그는 높이를 올리자는 건축주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건물의 높이는 오래된 가로수보다 높아서는 안되며, 이는 공공을 위하여 그 정도는 감수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집센 건축가를 이기지 못한 건축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접어야만 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탐욕의 건축, 탐욕스런 건축주들의 횡포를 생각하면, 건축가도, 그 고집에 져준 건축주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부야 전철역 건축이야기도 흥미롭다. 지하철 역이라 지하층의 환기가 문제가 되는데 그는 이를 자연적으로 환기되는 구조로 만든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지하철 환기 시스템'은 건설 당시 큰 이슈가 되었다. 그는 환경을 위해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학력사회와 싸우면서, 기존의 건축이라는 개념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까지 오뚜기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서고 했던 이력이 있다. 그는 끊임없이 건축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해 왔다. 작은 집을 아름답게 쌓아올린 것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미즈미도 법당>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나, 건축가 안도다다오>는 그런 고민의 결과를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건축가의 길이기도 하지만 한 인간이 기존질서에 어떻게 부딪히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왔는가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일어섰다 쓰러졌다를 반복하는 한 인간의 삶을 보고 용기를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 - 한국편 4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4
조정육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수묵. 79.2x138.2. 호암미술관 


서양화보다 동양화 감상이 어렵게 느껴진다. 김홍도의 발랄한 그림이 아닌 선비들이 그린 정통 그림들은 모두들 엇비슷한 먹그림, 몇세기에 걸쳐 큰 변화없는 그림의 기법이 지루했다. 대부분 풍경화, 신선도등 무겁거나 엄숙하거나 그랬다. 그런데 아이세움에서 나온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을 읽으면서, 동양화 한국화도 서양화 못지 않게 살아꿈틀거리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의 장점은

1. 조선선비들의 삶을 통해 그림을 이야기 하다

정선도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이고, 그의 그림 속에는 시대와 생활이 담겨있다. 주변사람들과 쌓아간 교분, 시와 그림을
나누었던 지인들의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여러가지 그림에 담긴 일화 가운데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선은 가깝게 지내던 이하곤을 병문안간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밤이 깊어졌고 갑자기 천둥과 번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하곤은 정선에게 하루 자고가라 붙잡았고, 정선은 폭우가 몰아치는 밤의 정취에 동하여 그림을 그리기에 나서니, 이때 완성된 것이  <사계절의 풍경>이다.

그는 조영석과 친했는데, 조영석은 자기집 문설주가 횅한 것이 걸렸다. 그래서 정선에게 문설주에 어울리는 그림을 부탁하였으
나 답이 없다가, 어느날 달이 아름다운 밤에 정선은 문득 감성이 동하여 조영석의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거센 격랑처럼'출렁이는 붓으로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또한 정선이 그림 금강산 그림이나 풍경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옛선비들과 나란히 걸으며 맑은 계곡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생생하다.

동양화, 특히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는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도닦듯이 그린 그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문
인화일지라도 화가의 '격정'과 '영감', '열정'들이  그 시대의 삶과 어우러져 탄생 되는 것인 줄 알게 되었다. 그림은 역시 생활과 삶의 끈끈함, 그리고 터져나오는 열정에 기초를 두는 것 같다. 그리고 화가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신비스러운 재능의 소유자인 것 같다. 

2.도판이 크고 선명하다.

책의 크기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그림들이 최선을 다해서 선명하다. 때로 어떤 책들은 작가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으나 그 형체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석탱이에 있거나 선명하게 인쇄되지 못했거나. 그럴 때마다 무척 짜증나고 실망스럽다. 그림에세이의 기본은 도판의 선명한 인쇄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가능하면 크게 그림을 뽑았고, 핵심적인 부분은 클로즈업해서 뽑았다. 그래서 설명과 그림을 함께 따라가기가 쉽다.

3. 동양화 기법에 대한 이해

피마준. 미점준, 부벽준, 진경산수...동양화의 기법 설명은 어렵다. 어디를 봐도 쉽게 설명한 곳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것이 많이 해소되었다. 그림 하나 하나를 예를 들어서 기법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감사하다. 어려운 책은 많지만 친절한 책을 드물다.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정선의 그림을 진경산수라 불리우는 이유도 잘 몰랐다. 그냥 진경산수 진경산수... 그랬을 뿐. 이 책을 읽어보면 확연히 이해된다. 그래서 정선 이전의 시대 그림과 정선의 그림이 왜, 어떻게 다른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정선은 우리나라의 실제 풍경 많이 그린 진경산수화가이다. 책은 또한번 증명해보인다. 오늘날의 동작동, 남산, 압구정의 사진을 찍어 그의 그림과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준다. 자, 이런 것이 정선의 그림이야! 라고. 그리고 그 그림들은 옛날 그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건너 살아숨쉬는 기록처럼 보인다.

4. 시대와 사회적 배경을 잘 설명했다

그림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이책은 정선이 살았던 영조시대의 정치와 사회 그림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기 담았다.
당시 화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림연습을 했을까? 정선은 어떤 벼슬을 했을까? 정선은 왜 영조와 친했을까? 이런 질문이
궁금하면 책을 사보시라. 



지금껏 봤던 한국화는 주로 어땠더라? 웅장한 기와집그림, 혹은 농부가 밭갈고 있는 그림, 신선이 동자랑 산에 오르는 그림... 매우 단순한 구도의 그림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정선은 오래전 사람이지만 그림에 무엇을 담을 지 아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시대를 초월한 천재다. 살아움직이는 시대를, 교우한 사람들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다.  먼시대를 건너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풀어낸 조정육선생님의 글이 매우 돋보인다. 서양미술 못지 않게 한국미술을 의미있게 풀어가는 작가도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것은 좋은 것인데 말이지. ^^

이 책은 아이세움의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시리즈다. 김홍도, 이중섭, 반고흐, 브리겔, 피카소등... 꽤 많은 권수가 나왔다. 지금껏 '정선'편에 늘어놓은 찬사는 공히 다른 책들에도 해당된다. 이 책은 아동, 청소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정말 좋은 미술교과서다. 피카소, 고호를 달달 외워서 미술시험을 치르고, 석고대생을 그려서 점수를 받았던 불행한 시대를 지나 어른이 되어 새삼 미술에 눈을 뜬 그대들에게 멋진 미술교과서가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마티스 <대화>   La Conversación[Conversation]. c. 1910 /   Oil on canvas. 177 x 217 cm.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오래전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미술관을 가지 않았다.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정도면 바티칸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파리에 와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오랑제리, 퐁피두
를 보며서 현대미술이 주는 경쾌함이 즐거웠다. 


친절한 그림해설자


그러나 최근 <웬디수녀의 유럽미술산책>을 읽으면서 빈에 있는 미술관에 가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그 그림이 그 그림'인
이유는 내가 '그림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문맹이 되면,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인
문맹의 처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비극은 그림읽는 법을 배워주는 학교는 없다는 점이다. 그림을 읽는다? 그건 보는 거
아닌가요? 누군가는 묻는다. 아니요. 그림은 읽는 거에요.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요.

그런점에서 웬디수녀는 훌륭한 길잡이다. 그녀는 굳이 사회사나 시대사, 철학사를 그림 앞에 끌고 오지 않는다. 서양신화의
몇가지 줄거리와 상징을 바탕으로 그림 속 인물이 지닌 표정, 눈빛으로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웬디수녀는 물론 그림을
많이 안다. 그래서 빨리 읽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몇번 연습하면 나도 엇비슷하게 나마 그림을 읽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을 읽을 땐 절반 정도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내린 이야기의 해석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대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그다음은 책의 본문을 읽기전 그림을 보며 하나씩 하나씩 그림이 던지는
이야기를 읽어내보도록 하자. 인물의 표정, 색채, 배경, 선의 느낌을 흩어보면 40%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 그런다음 본문을
읽어본다. 이쯤이면 그녀와 마주 앉아 그림보며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림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일지도...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보는 눈을 넓혀가는 도구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거나 뭔가 하나씩 넓혀가면,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감성이 깊어진다. 그림도 그런 것이다. 그림을 몰랐을 때 그건 그저
액자다. 문맹이 문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그림을 알자.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당신 삶이 훨씬 원더풀 ~ 해질 수 있다. 소설 정도를 읽는 사람이라면 그림의 세계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선생님은 웬디수녀로 수강신청하는 것이 좋겠다. 그녀는 충분히 1학년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학생들을 이끈다. 물론 그 속엔 알맹이도 탄탄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것은 진정한 실력자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책에서 만난 명구절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녀는 그냥 종교의 틀안에서 고요하게 있는 사람이라, 세상사의 복잡함이나 삶의 지난함은 모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미술해설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복장을 봐서는 배우(희극배우)이지만, 그의 얼굴 표정을 봐서는 원래 진지한 젊은이다. 그는 거기에 우뚝 서서 자신을
  내보이며 우리의 시선에 맞서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질은 아주 고귀하게, 심지어 영웅적으로 보인다. 그는 삶과 그 삶이 주는
  모욕에 대해 맞서고 싶어하는 우리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앙트완 와토 <질>)
 

  내가 루벤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인간 전체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육체를 찬미한다. 그것을
  함부로 다루거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문
  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만 유머와 서정성을 잃어버리지도 않는, 현명하고 균형잡힌 사람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 (필수적으로)필요로 하는 것임을 루벤스는 이해하고 있었다.(루벤스.<추운비너스)


이 책에서 2% 부족한 것은
 

이 책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들이 주로 17세기 이전의 미술에 많이 할애되었다는 점이다. 주로 고전시대의 그림이라서 신화나 종교화가 많다. 현대화의 역동적인 힘을 좋아하는 이라면, 좀은 답답한 그림들, 좀 밋밋해보이는  고전시대그림을 한권 내내 읽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한가지 아쉬움은 그림의 도판이 매우 작다. 그래서 웬디수녀의 설명을 따라가려니 힘들다. 아시다시피, 16,17세기그림들은 어둡다. 어둡고 희미한 형상에서 설명의 형상을 찾아내려고 하니 힘들다. 아마도 우리나라 인쇄기술의 한계일 수도 있고, 책의 판형 또는 편집에서 발생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미술에세이에서 그림이 선명하게 인쇄되지 않음은 큰 실수다.

아쉽게도 이책은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다. 검색해보니 다른 인터넷 서점에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