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 - 한국편 4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4
조정육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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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수묵. 79.2x138.2. 호암미술관 


서양화보다 동양화 감상이 어렵게 느껴진다. 김홍도의 발랄한 그림이 아닌 선비들이 그린 정통 그림들은 모두들 엇비슷한 먹그림, 몇세기에 걸쳐 큰 변화없는 그림의 기법이 지루했다. 대부분 풍경화, 신선도등 무겁거나 엄숙하거나 그랬다. 그런데 아이세움에서 나온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을 읽으면서, 동양화 한국화도 서양화 못지 않게 살아꿈틀거리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의 장점은

1. 조선선비들의 삶을 통해 그림을 이야기 하다

정선도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이고, 그의 그림 속에는 시대와 생활이 담겨있다. 주변사람들과 쌓아간 교분, 시와 그림을
나누었던 지인들의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실려있다. 여러가지 그림에 담긴 일화 가운데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선은 가깝게 지내던 이하곤을 병문안간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밤이 깊어졌고 갑자기 천둥과 번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하곤은 정선에게 하루 자고가라 붙잡았고, 정선은 폭우가 몰아치는 밤의 정취에 동하여 그림을 그리기에 나서니, 이때 완성된 것이  <사계절의 풍경>이다.

그는 조영석과 친했는데, 조영석은 자기집 문설주가 횅한 것이 걸렸다. 그래서 정선에게 문설주에 어울리는 그림을 부탁하였으
나 답이 없다가, 어느날 달이 아름다운 밤에 정선은 문득 감성이 동하여 조영석의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거센 격랑처럼'출렁이는 붓으로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또한 정선이 그림 금강산 그림이나 풍경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옛선비들과 나란히 걸으며 맑은 계곡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생생하다.

동양화, 특히 선비들이 그린 문인화는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서 도닦듯이 그린 그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문
인화일지라도 화가의 '격정'과 '영감', '열정'들이  그 시대의 삶과 어우러져 탄생 되는 것인 줄 알게 되었다. 그림은 역시 생활과 삶의 끈끈함, 그리고 터져나오는 열정에 기초를 두는 것 같다. 그리고 화가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신비스러운 재능의 소유자인 것 같다. 

2.도판이 크고 선명하다.

책의 크기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그림들이 최선을 다해서 선명하다. 때로 어떤 책들은 작가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으나 그 형체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석탱이에 있거나 선명하게 인쇄되지 못했거나. 그럴 때마다 무척 짜증나고 실망스럽다. 그림에세이의 기본은 도판의 선명한 인쇄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가능하면 크게 그림을 뽑았고, 핵심적인 부분은 클로즈업해서 뽑았다. 그래서 설명과 그림을 함께 따라가기가 쉽다.

3. 동양화 기법에 대한 이해

피마준. 미점준, 부벽준, 진경산수...동양화의 기법 설명은 어렵다. 어디를 봐도 쉽게 설명한 곳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몰랐던 것이 많이 해소되었다. 그림 하나 하나를 예를 들어서 기법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감사하다. 어려운 책은 많지만 친절한 책을 드물다.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정선의 그림을 진경산수라 불리우는 이유도 잘 몰랐다. 그냥 진경산수 진경산수... 그랬을 뿐. 이 책을 읽어보면 확연히 이해된다. 그래서 정선 이전의 시대 그림과 정선의 그림이 왜, 어떻게 다른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정선은 우리나라의 실제 풍경 많이 그린 진경산수화가이다. 책은 또한번 증명해보인다. 오늘날의 동작동, 남산, 압구정의 사진을 찍어 그의 그림과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준다. 자, 이런 것이 정선의 그림이야! 라고. 그리고 그 그림들은 옛날 그림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건너 살아숨쉬는 기록처럼 보인다.

4. 시대와 사회적 배경을 잘 설명했다

그림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이책은 정선이 살았던 영조시대의 정치와 사회 그림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기 담았다.
당시 화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림연습을 했을까? 정선은 어떤 벼슬을 했을까? 정선은 왜 영조와 친했을까? 이런 질문이
궁금하면 책을 사보시라. 



지금껏 봤던 한국화는 주로 어땠더라? 웅장한 기와집그림, 혹은 농부가 밭갈고 있는 그림, 신선이 동자랑 산에 오르는 그림... 매우 단순한 구도의 그림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정선은 오래전 사람이지만 그림에 무엇을 담을 지 아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시대를 초월한 천재다. 살아움직이는 시대를, 교우한 사람들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다.  먼시대를 건너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풀어낸 조정육선생님의 글이 매우 돋보인다. 서양미술 못지 않게 한국미술을 의미있게 풀어가는 작가도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우리것은 좋은 것인데 말이지. ^^

이 책은 아이세움의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시리즈다. 김홍도, 이중섭, 반고흐, 브리겔, 피카소등... 꽤 많은 권수가 나왔다. 지금껏 '정선'편에 늘어놓은 찬사는 공히 다른 책들에도 해당된다. 이 책은 아동, 청소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정말 좋은 미술교과서다. 피카소, 고호를 달달 외워서 미술시험을 치르고, 석고대생을 그려서 점수를 받았던 불행한 시대를 지나 어른이 되어 새삼 미술에 눈을 뜬 그대들에게 멋진 미술교과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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