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마티스 <대화>   La Conversación[Conversation]. c. 1910 /   Oil on canvas. 177 x 217 cm.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오래전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미술관을 가지 않았다.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정도면 바티칸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파리에 와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오랑제리, 퐁피두
를 보며서 현대미술이 주는 경쾌함이 즐거웠다. 


친절한 그림해설자


그러나 최근 <웬디수녀의 유럽미술산책>을 읽으면서 빈에 있는 미술관에 가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그 그림이 그 그림'인
이유는 내가 '그림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문맹이 되면,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인
문맹의 처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비극은 그림읽는 법을 배워주는 학교는 없다는 점이다. 그림을 읽는다? 그건 보는 거
아닌가요? 누군가는 묻는다. 아니요. 그림은 읽는 거에요.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요.

그런점에서 웬디수녀는 훌륭한 길잡이다. 그녀는 굳이 사회사나 시대사, 철학사를 그림 앞에 끌고 오지 않는다. 서양신화의
몇가지 줄거리와 상징을 바탕으로 그림 속 인물이 지닌 표정, 눈빛으로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낸다. 웬디수녀는 물론 그림을
많이 안다. 그래서 빨리 읽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을 따라 몇번 연습하면 나도 엇비슷하게 나마 그림을 읽어낼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을 읽을 땐 절반 정도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녀가 내린 이야기의 해석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대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그다음은 책의 본문을 읽기전 그림을 보며 하나씩 하나씩 그림이 던지는
이야기를 읽어내보도록 하자. 인물의 표정, 색채, 배경, 선의 느낌을 흩어보면 40%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 그런다음 본문을
읽어본다. 이쯤이면 그녀와 마주 앉아 그림보며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림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일지도...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보는 눈을 넓혀가는 도구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거나 뭔가 하나씩 넓혀가면,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감성이 깊어진다. 그림도 그런 것이다. 그림을 몰랐을 때 그건 그저
액자다. 문맹이 문학을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그림을 알자.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당신 삶이 훨씬 원더풀 ~ 해질 수 있다. 소설 정도를 읽는 사람이라면 그림의 세계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선생님은 웬디수녀로 수강신청하는 것이 좋겠다. 그녀는 충분히 1학년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학생들을 이끈다. 물론 그 속엔 알맹이도 탄탄하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것은 진정한 실력자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책에서 만난 명구절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녀는 그냥 종교의 틀안에서 고요하게 있는 사람이라, 세상사의 복잡함이나 삶의 지난함은 모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미술해설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복장을 봐서는 배우(희극배우)이지만, 그의 얼굴 표정을 봐서는 원래 진지한 젊은이다. 그는 거기에 우뚝 서서 자신을
  내보이며 우리의 시선에 맞서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질은 아주 고귀하게, 심지어 영웅적으로 보인다. 그는 삶과 그 삶이 주는
  모욕에 대해 맞서고 싶어하는 우리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앙트완 와토 <질>)
 

  내가 루벤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인간 전체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하게 육체를 찬미한다. 그것을
  함부로 다루거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문
  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만 유머와 서정성을 잃어버리지도 않는, 현명하고 균형잡힌 사람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 (필수적으로)필요로 하는 것임을 루벤스는 이해하고 있었다.(루벤스.<추운비너스)


이 책에서 2% 부족한 것은
 

이 책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들이 주로 17세기 이전의 미술에 많이 할애되었다는 점이다. 주로 고전시대의 그림이라서 신화나 종교화가 많다. 현대화의 역동적인 힘을 좋아하는 이라면, 좀은 답답한 그림들, 좀 밋밋해보이는  고전시대그림을 한권 내내 읽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한가지 아쉬움은 그림의 도판이 매우 작다. 그래서 웬디수녀의 설명을 따라가려니 힘들다. 아시다시피, 16,17세기그림들은 어둡다. 어둡고 희미한 형상에서 설명의 형상을 찾아내려고 하니 힘들다. 아마도 우리나라 인쇄기술의 한계일 수도 있고, 책의 판형 또는 편집에서 발생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미술에세이에서 그림이 선명하게 인쇄되지 않음은 큰 실수다.

아쉽게도 이책은 알라딘에서는 품절이다. 검색해보니 다른 인터넷 서점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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