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과학으로 본 동양과 서양의 창세 신화
隱名 지음 / 은명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깊이 있는 책은 아니다. 우주의 기원을 밝혀낸 지금까지 과학사의 과정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우주의 기원과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의 창세기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에 대해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 읽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을 그나마 종교와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한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거나 물리학에 대한 심도 있는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은 길잡이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조지 가모프의 빅뱅이론이 우주의 시작에 관한 이론으로 어떻게 인정받게 될 수 있었는지를 간단히 요약하고 있다. 은하들의 적색 편이(우리로부터 멀어지는 은하들이 붉은색을 띠는 현상을 말한다.) 현상과 별이 생성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헬륨의 양(이 헬륨의 양은 빅뱅과 함께 생겨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배경복사(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는 이 배경복사도 빅뱅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의 발견으로 인해 빅뱅은 드디어 정론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현재 예상되고 있는 우주의 미래는  닫힌 우주, 평평한 우주, 열린 우주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현재 물리학계에서 유력하게 생각하는 우주 모델은 열린 우주이다. 반면 이 책의 작가는 닫힌 우주의 관점에서 우주를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의 창세신화는 닫힌 우주의 관점에 적합하지 않지만 힌두교, 불교의 창조신화는 닫힌 우주에 적합한 창조관을 보여준다. 세상은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끝없는 윤회의 과정이라고 말하는 동양의 종교들은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되어 팽창을 계속하다가 다시 수축기를 맞아 특이점으로 사라지는 닫힌 우주의 관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과학은 빅뱅이 일어난 이후는 설명할 수 있지만 빅뱅이 있게 한 원인은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양의 종교는 무(無)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 종교의 직관에 따르면 무 자체가 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를 통해 생겨난 빛이 곧 신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한 것이다. 무를 통해 생겨난 빛을 통해 물질이 형성되었고 137억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주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인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신성을 지닌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신에 의해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입장에서는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이지만 동양적 세계관에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논리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우리의 우주가 열린 우주이며 팽창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닫힌 우주로 끝날 거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작가의 생각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논리가 약해보인다. 작가의 설명은 닫힌 우주를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이 있다는 정도에서 끝나고 있다. 닫힌 우주가 동양적인 사고와 잘 맞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는 좋다. 작가는 과학과 종교는 전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 모순없이 잘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지나친 비약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특이점을 무(無)와 연결한 것은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이 무(無)는 없음이면서 모든 것이 다 내재되어 있는 있음의 상태이고 이것에서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가정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나의 기원, 나아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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