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드로잉 - 종이 위에 유럽을 담다
리모 글.그림 / 재승출판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유럽 미술관 혹은 유럽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유럽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여행을 참 많이들 가는구나 싶기고 하고 유럽 관련 책들을 참 많이들 내는구나 싶기도 하고. 예전 책들은 뭔가 공부를 하는 듯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은 그냥 작가의 여행에 무임승차한 듯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작가의 손과 눈으로 그려낸 소박하고 아름다운 스케치로 눈요기를 하면서...

 

작가의 여행은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카메라 대신 드로잉북과 펜을 들고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대상을 차분히 관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림처럼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여행지에 관한 많은 지식들을 쏟아내려고도 하지 않고 여행지에서의 힘듦을 과장하지도 않고 일기를 써내려가듯 담담히 하루하루를 스케치해 나간다.

 

사실 작가가 드로잉을 위해 여행하는 곳은 우리에게는 전혀 낯선 곳이 아니다. 최근에 너무 많아진 TV 여행프로그램이나 책들로 인해 이제는 가보지 않았는데도 식상할 지경이다. 파리가 그렇고 스페인의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사그리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이 그렇고 로마의 건축물도 마찬가지고. 스케치가 없었다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는 수많은 건축물들과 도시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리고 길고양이들까지 아주 가깝에 느껴진다. 어딘지 따뜻하고 정감 있다. 아마도 사진이 아닌 그림의 힘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프라하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1938년 3월 15일, 히틀러의 군대가 프라하를 점령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었던 에밀 하하는 조국의 무력함을 통감하며 체코군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말라는 무기력한 명령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굴욕적인 순간이었지만 무모한 저항을 피함으로써 프라하의 시가지는 무자비한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404-

 

프라하 하면 자연스럽게 프라하의 봄이 먼저 떠오르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오른다. 그 외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의 없다. 사진에서 본듯 한 도시 전체의 차분한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프라하를 거쳐 이스탄불에서 작가의 스케치 여행은 끝난다. 여행 끝에 작가는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직장을 그만 두고 떠난 여행.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이 끝나면 잠시 비워둔 자리로 돌아가면 되지만 작가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다. 막연한 불안. 아마도 여행의 끝은 그렇지 않을까. 잠시 비워놓은 곳으로 돌아갈 자리가 있는 사람도 작가처럼 그렇지 못한 사람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