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술관 산책 미술관 산책 시리즈
전원경 지음 / 시공아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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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대략 100여 점이 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지 않다. 다섯 개의 미술관별로 나누고 다시 주제별로 나눠서 소개하기도 하고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국에 갈 예정인 사람들에게 특히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에게 가이드 북으로서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미술관에 가더라도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냥 그림일 따름이고 한참 보다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음악도 그렇고 미술고 그렇고 딱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셔널 갤러리: 명작들의 고요한 고향

 이 장에서는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가 인상깊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썩 잘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BBC 방송국에서 조사한 '가장 위대한 영국 그림 1위'라는 것이다. 이 전함은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대활약을 한 전함이었고 이 해전을 통해 나폴레옹은 영국침략을 포기해야했고 영국인들은 위대한 해군 제독 넬슨을 잃어야 했다. 역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영국의 역사를 모르는 우리는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유령선처럼 하얀배가 예인선에 의해 끌려 오는 그림을 보면서 위대함을 느끼지는 못할 테니까.

 

코톨드 갤러리: 인상파의 숨겨진 왕국

 새뮤얼 코톨드라는 부자 아저씨가 1971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파리 인상파 화가전을 보고 필이 꽂혀서 인상파 작품들을 컬렉션을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모아진 작품들을 기부해 만들어진 갤러리라고 한다. 이 갤러리는 유료이긴 하지만 사람이 많이 없어서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는 이 갤러리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인데 처음 볼 때 평소 알던 그림보다 좀 투박해보인다 싶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닌 마네가 직접 그린 복제품으로 친구의 부탁으로 원작보다 작게 그렸다고 한다.

 

국립초상화 미술관: 웃지 않는 영국인들

작가는 영국의 위대한 인물의 초상화를 감상하는데 굳이 시간을 할애할 이유는 없다고 했는데 오히려 이 장이 더 재미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인물소개가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연 으뜸은 한스 홀바인 2세의 '헨리 8세'가 아닐까 싶다. 작가도 말했다시피 헨리 8세의 초상화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잔인하지만 매력넘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심술궂고 뚱뚱한 아저씨의 모습이랄까. 화려한 여성편력을 지닌 매력적인 남자라기 보다는 실제의 헨리 8세는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낳기 위해 무자비하게 왕비를 죽이고 갈아치우는 폭군일 따름이다. 헨리 8세의 초상화에는 그런 모습이 여지 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블러드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 1세'의 초상화에는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는 소녀의 모습이 엿보이고 헨리 8세의 뒤를 이어 강력한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에는 냉정해 보이는 얼굴과 과장되게 부풀린 듯한 의상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테이트 브리튼: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이 장에 소개된 작품 중에는 로세티의 '페르세포네'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그림은 친구의 아내를 모델로 한 그림이다. 일화도 재미있는데 로세티의 친구는 로세티가 자신의 아내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왠지 '페르세포네'는 신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대의 슈퍼모델 같은 느낌이다. 혹은 영화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도 기억에 남는 그림이다. 저녁무렵 정원에서 등불을 켜고 있는 친구의 딸들을 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도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그림 자체가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작가의 말대로 저녁에서 밤으로 바뀌는 짧은 시간을 아주 아름답게 포착해내고 있는 그림이다. 난 그냥 예쁜 그림이 좋다. 현대의 개념미술인가 이런 장르는 뭔지 모르겠고 바라봐서 한눈에 좋아보이는 그림이 좋은 것이다.

 

테이트 모던: 미술 놀이터가 된 화력 발전소

매년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영국의 최고의 미술관이지만 작가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인 곳이 못 되는 모양이다. 이 미술관은 지금은 영국 최고의 미술관이 되었지만 화력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다는 발표를 할 당시에는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반대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미술관에서는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처형 삼부작'이 아닐까 싶다. 이빨이 강조된 괴수의 형상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테이트 모던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피카소의 '울고 있는 여인', 살바도르 달리의 '산 위의 호수'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영국의 미술관을 한 바퀴 빠르게 순례한 느낌이다. 너무 빨리 책장을 넘기면 앞에 보았던 작품들이 순식간에 묻혀버리므로 한 미술관씩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미술관을 먼저 보던 상관없다. 자신이 읽고 싶고 평소 관심있는 분야부터 읽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영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국립초상화 미술관을 먼저 둘러 보고 평소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했다면 코콜드 갤러리를 먼저 보면 된다. 도판이 그다지 크지 않고 글자가 작은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 책 한 권으로 런던 미술관을 돌아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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