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환상문학전집 28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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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소설만큼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도 없다. 특히 SF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단편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 SF를 읽다보면 상상의 폭이 무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을 여기저기서 몇 번 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처음이다. 3대 과학소설가라는 거장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름값(?)하는 작품들이 잔뜩 실려 있기를 바라면서... 이번 여름은 이 책들로 대충 떼울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실린 작품들은 과학용어들이나 기계적인 설명이 많고 과학기술을 소설로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어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적인 완성도가 있으면서도 SF적인 장치가 돋보이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초기 작품들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한편 읽어갈수록 역시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워낙에 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어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들 중에서는 '구조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그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생각났다. 40억년 쯤 뒤 태양이 수명을 다해 태양계를 집어삼킬 때 지구에 인간이 존재할까. 만약 그 때까지도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생명체(인간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금과는 다른 개념의 생명체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지구를 탈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등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풀어놓은 책이었다.  

  '구조대'는 바로 그 질문을 소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은하계의 다른 생명체가 곧 신성이 될 태양에 노출되어 있는 지구에 아직도 남아 있지모를 지구생명체를  구출하기 위해 온다. 폭발은 7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가 아무리 지구 곳곳을 뒤져도 살아있는 지구생명체는 발견하지 못하고 불타는 태양계를 뒤로 하고 지구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 공간에서 지구로부터 탈출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함선의 대열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생명체는 스스로 지구를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인간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표류'는 유려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과거의 인간도 먼 미래의 인류도 파충류도 다른 기이한 생물체도 아닌 공기보다 엷은 이온 구름이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독자는 이 이온 구름의 의식을 따라 흑점이 폭발한 태양으로부터 지구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우아한 비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둠의 장벽'도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어슐러 르 귄의 환상문학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는데 과학용어나 기술보다는 보다 은유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다. 호기심이 강한 셔베인이 사는 우주에는 하나의 행성만이 있고 그 행성에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의 태양, 트릴론이 있다. 이 행성에는 밤이 없었다. 트릴론은 언제나 저 멀리 북쪽 지평선 가까이 떠 있었고, 이 행성은 우리의 달처럼 같은 면만을 보이며 공전한다. 셔베인이 사는 곳은 북쪽의 타는 열기와 남쪽의 차갑고 어두운 지대 사이. 동서로 이어진 기다란 띠 같은 곳에서만 사람들은 거주할 수 있고 이 곳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딱  한번 1년간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 여행을 한다. 셔베인은 그 여행에서 아버지로부터 어둠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그것을 목격한다. 트릴론의 빛이 거의 다가가지 않는 남쪽 지평선 저 끝에 검은띠, 바로 어둠의 장벽이 땅과 하늘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후 셔베인에게는 금단의 영역, 어둠의 장벽 저쪽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게 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셔베인은 어둠의 장벽을 오를 수 있는 계단을 쌓는 엄청난 공사를 착수하게 되고... 드디어 어둠의 장벽을 오르게 된다. 암흑과도 같은 곳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뒤로는 그가 사는 세상이 점점 멀어져가고... 하나밖에 없는 태양 트릴론은 점점 작아지다 사라진다. 그리고 어둠의 장벽 너머 그가 걸어가는 있는 또다른 세상의 하늘 위로 트릴론과 똑같은 태양이 떠오른다. 한걸음 한걸음 모험은 계속되고... 결국 그는 자신이 출발했던 그 장벽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를 소설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놓은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긴장 탈출'도 매우 재미있게 읽은 단편에 속한다. 꼭 SF의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긴장감있게 읽힐 수 있는 소재였다. 금성에서 쏘아 올린 위성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우주선 스타퀸호, 우주선에는 두 사람만 타고 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고로 산소가 거의 새어버렸다. 금성까지 도달하는 데는 아직 30일이 남았고, 산소는 2명이 20일 동안 쓸 수 있는 산소만 남아 있다. 주위로부터는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일 후에는 두 사람 모두 죽게 된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금성에 도달하려면 10일 안에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그 말을 꺼내진 못하고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에는 나 아닌 상대가 희생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게 되고... 30일 후 금성의 위성에 우주선이 도달하고 그들 중 누군가는 살아 남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쩌면 끔찍할지도 모르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있는 단편이었다. 다만 '긴장 탈출'이라는 제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좀더 다른 번역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막 첫째권을 끝냈다. 아직 세권이나 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아서 클라크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말해보자면, 그의 SF는 정말로 가까운 미래나 먼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과학적 용어나 좀 딱딱해보이는 설명들 때문에 소설적 재미는 조금 덜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주적 상상력에 못지 않는 과학적 지식들을 엿보고 있노라면 픽션을 넘어선 신뢰감을 갖게 한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체험하지 못할 미래를 책으로나마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인간의 생명이 유한한 것이 때론 안타깝기도 하고. 단지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비록 인간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혹은 신이라는 존재가 이 장구한 우주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신이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아니면 이 무한한 우주를 지배하는 건 결국에는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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