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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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시드 폴을 싱어송 라이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가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는지도 몰랐다. 돌배게 출판사에서 루시드 폴의 단독 산문집이라는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책을 받아보니 표지의 질감이 색달랐다. 확인해보니 커버와 속표지가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종이라고 했다. 또한 비목재지(Tree-free paper)라는데 원료가 사탕수수 찌꺼기, 농업 부산물이란다. 뒷 표지 상단에는 점자가 찍혀있고 자신의 목소리로 오디오북도 제작했다. 그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일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그는 귀 기울이는 음악가다. 그는 세상 아주 작은 것들의 소리도 듣고, 듣는다는 게 가능할까 싶은 것도 들으려고 한다타자의 아픔까지도.


p.53


함께 있지만 아무도 애써 듣지 않는, 세상의 살갗 아래에 숨어 있는 소리들이 있다. 그런 소리로 음악을 만들면 어떨까. 그 음악을 함께 듣고, 들리지 않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타자의 아픔도 조금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타자의 아픔은커녕 제 옆에 있는 이의 말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세상이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신과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배척하고 비난하는 시절이다. 그의 생각들을 좇다보니 나는 얼마나 귀를 막고 살고 있는가 부끄러워졌다.


1나를 기울이면에서 그는, 듣지 않는 이들은 결코 자신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향해 기울이기만을 원하거나 혹은 강요한다 고 말했다. 속표지에도 싸인과 함께 나를 기울이는 마음” 이라고 썼다. 나를 기울여 세상 작은 소리마저 세세하게 들어보자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음악이라는 단어의 범주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노랫말이 있고 악기로 하는 연주를 음악이라고 한정지었던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소리를 내며 그것은 음악이 된다. 그는 들을 수 없는 소리는 세상에 없다고 했다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 그는 언제부터인가 나무를 만나면 나무의 상처부터 살피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만일 나무가 비명을 지를 수 있다면 나무들을 더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무가 잘릴 때 이웃 나무는 친구의 비명 소리를 듣고 상처를 보호할 물질을 미리 준비할 거라는 상상도 했다.


다큐멘터리 <수라>를 다룬 글을 읽으면서는 내가 눈물 흘린 이유를 찾았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p.217


스크린을 조용히 채운 수많은 아름다운 이들,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도 잠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던 거다.


나는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린 거 외엔 한 일이 없는데 음악가는 아름다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든다.


p.218


아름다운 갯벌과 갯벌의 아름다운 친구들을 떠올리며, 세상이라는 이 험하고도 아름다운 비단에 수를 놓듯 한 땀 한 띰 노래를 남기고 싶다. 마침내 쇠검은머리쑥새가 승준에게 다가와 노래를 불러주었듯 내 노래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언제라도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동필을 만나게 된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본 건 죄가 아니라고. 그건 축복이라고. 아름다운 당신들을 만나 나는 오늘 너무나 커다란 축복을 받았노라고.


그는 섬세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민하게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만들며 글까지 쓴다. 나는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나를 먼저 기울이면서 살고 있는가. 그의 글은 나를 많이 반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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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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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의 저자 임승남씨는 제 생시도 모른 채 전후의 서울 하늘에 내던져져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그의 인생사가 소설이라면 어쩌면 더 공감하기 쉬웠을까. 전후 한국 현대사를 역사책에서 배운 MZ세대는 어떨까.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핍진했던 그의 생을 진솔한 글로 만난 독자들은 저마다의 경험치에 따라 공감 포인트가 다를 것이나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느낄 것이다. 또한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독자들에게, 이해찬 전총리의 추천사처럼 ‘새로운 내일을 향해 서슴없이 한발짝 내딛을 용기를 선물’받게 되리라 믿는다.

저자는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던 책 <새 마음의 샘터>를 통해 거듭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이 책을 통해 배움에 눈을 떴고 그야말로 자기주도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고치기 위해 자신의 이전 삶을 반추해보았다. 그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였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지적 수준이 높은 다른 죄수들이 읽던 책 속 유명 지성인의 삶이 얼마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지 스스로 깨쳐나갔다

저자가 1976년 대전교도소에서 출감한 후 그해 11월 태두출판사의 월급 3만원 짜리 영업 배본사원이 된 것은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이었다. 그 후에 그가 돌베개 출판사의 사장이 되어 한국 출판계의 산 증인으로 활동한 이력들을 나는 몹시도 흥미롭게 읽었다. 70~80년대 출판 시장의 상황과 황석영 작가의 출간 이야기, 이해찬 전총리와의 인연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책과 작가, 출판에 관심이 있는 나로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저자는 출판사에서 진심을 다해 일했다. 비가 새는 사무실에 책이 젖지 않게 하려고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아예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 소파에서 자다가 바닥에 차는 빗물을 퍼냈다. 영업하는 서점에 가서 일을 거들다 사장과 같이 문을 닫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서점안 골방에서 자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그는 인문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좋은 책을 내면 사회를 맑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신처럼 교도소를 들락거린 이들을 인간쓰레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이 우리 사회를 더 흐리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악이 무엇이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소위 지식인들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 <지식인을 위한 변명>과 <프란츠 파농> 같은 책들을 기획 판매했던 저자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도 출간하였고 이소선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고 인세도 올려드렸다. 민중운동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무크지 <현장>을 1984년부터 3개월에 한번씩 발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전적 책 <걸밥>을 1986년에 출간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는 전두환 정권의 핍박을 받은 내용도 나오는데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젊은 독자라면,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한 전두환이 이후에 출판계에도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해찬 전총리와 엮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저자가 쓴 최후진술서는 그의 인생 요약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독했으면 좋겠다. 그의 생이 우리의 답답함을 위로해 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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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 - 입학에서 적응까지 초등 저학년 생활 마스터하기
송유진.최지원 지음 / 청어람M&B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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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입학에서 적응까지 초등 저학년 생활 마스터하기>는 첫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학부모에게 꿀팁을 전수할 책이다. 나는 첫째를 초등학교에 입할시킬 때 직장맘이어서 학교 급식 당번이나 학부모 모임에 참석을 못할 것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한결 불안한 마음을 덜었을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휴대폰 문제부터 시작해 저학년도 왕따나 폭력문제가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에 또 다른 결의 걱정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교육 심리학을 전공한 송유진·최지원 선생님이 10년이 넘는 교사 생활의 노하우를 담았다. 아이의 첫 학교생활을 돕고 싶은 학부모를 위한 62가지 초등 생활 정보들이다. 다양한 교육학 이론과 연구 결과, 실제 저학년 아이들과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부모가 가장 궁금해하는 48가지 주제에 따라 실제 저학년 생활 사례, 선생님 가이드, 실천 팁을 제공하며 부록으로 다룬 14가지는 막막하고 어려운 학교생활 궁금증도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예비 초등 엄마들의 질문 중 가장 많은 것은 한글 떼기에 관한 것인데 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31번에 나와 있어 내용과 함께 이 책의 구성을 소개한다. 소제목과 사례,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마지막엔 팁으로 구성했으며 한 사례에 3~4쪽 정도의 분량이다.



위 사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결론은 한글을 배우지 않은 채 입학해도 괜찮다고 한다. 1학년 국어 수업의 목표는 한글의 온전한 해독이기 때문에 국어 교육과정에 한글 교육 시간 68시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시간에 연필 잡는 바른 자세부터 자음과 모음의 결합, 어려운 받침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1학기에는 무리한 받아쓰기나 알림장 쓰기, 일기 쓰기는 지양하므로 한글을 충분히 익히지 않았더라도 적응에 무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학과 과학 통합 교과서에는 활동에 대한 안내나 내용이 문장으로 제시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교과서를 볼 때 무슨 말인지 몰라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자기 효능감이 저하되어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tip. 독서로 한글 공부하기 에서는 한글 학습을 무리하게 강요하기보다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책의 내용이 재미있으면 한글에도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보이게 되고, 글자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글자의 의미를 연결하며 읽는 능력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림과 큰 글자 책으로 시작해 조금씩 글의 비중이 높은 책으로 옮겨가면 한글을 제대로 읽고 글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나는 유, 초등학생과 독서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위 팁에 공감한다. 내가 만나는 1~2학년 아이들 중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는 없지만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있다. 즉 한글 해독은 되어도 문장을 독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유 중 대부분은 낱말의 뜻을 모르는 경우이다. 형용사나 부사의 경우는 앞뒤의 맥락에 따라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엔 안 쓰는 단어(주로 전래 동화에 나오는 것들)나 한자어는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에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고 문장을 다시 풀어서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학생이 다시 음독하면서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처럼 독서와 관련된 꼭지가 33번에 나온다.


33. 독서 : 저학년 독서는 어떻게 시켜야 할까? 의 고민 사례이다. 저학년은 독서의 시작 단계이므로 흥미와 관심사에 잘 맞는 책을 직접 고르도록 하여 독서 동기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는 다독보다 정독을 해야 글의 의미나 풍부한 어휘를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책을 가까이 하는 것만큼 탄탄한 기초 공사는 없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입학한 초등학생들은 언어 소통이 쉽지 않고 산만하다는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ADHD증상을 보이는 학생도 많아졌다고 한다. 산만함과 ADHD에 대한 내용은 물론 왕따나 사회성,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꼭지도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저학년 학부모의 궁금증은 거의 다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 시킬 학부모에겐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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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키 창비아동문고 332
전수경 지음, 우주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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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전에 애애앵~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 반사로 손을 휘젓거나 두 손바닥을 맞부딪쳐 잡는 시늉을 한다. 손아귀가 텅빈 걸 확인하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충제를 찾아 뿌리곤 했다. 모기만큼 잡아 죽여 마땅하다 여기는 생명이 있을까? 이러한 인간중심적 관점을 흔드는 동화가 출간되었다. 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대상 수상작인 전수경 작가의 <무스키>.


모기에 물리면 심각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스키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 수호는 친구들과 감정 교류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 수호가 은빛 날개를 가진 모기에 물린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알레르기 증상은 없었고 오히려 후각이 예민해졌다. 그 모기는 뎅기열을 일으키는 흰줄숲모기인 줄 알았는데 아카라는 외계 행성에서 온 무스키였다. 수호는 무스키와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게 된다.


SF적 상상력을 모기와 연결한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배경지식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모기가 해충이지만 생태 안에서는 그 어떤 곤충도 해충일 수 없다는 사례들과 시드볼트, 모기의 종류, 이동식 모기 측정기 등의 정보도 알려준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편협한 태도인지를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상대를 외면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면 멋모르고 동참한다. 자신의 잣대에 어긋나면 서슴없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대상(사람 포함)의 단면을 보고 섣부르게 단정 짓고 평가하기보다 찬찬히 다각도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무스키>를 읽은 어른들이 먼저 반성하고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눠보자. 수호가 무스키와 소통하면서 친구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듯 어린이 독자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곤충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라면 모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도 생길 것이 분명하다.


p.120

무스키는 인간이 생태계에서 가장 교만하고 독선적이라 했다. 작은 생명체들을 함부로 죽이고 다른 동물들과 협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p.164

징그럽고 귀찮고, 때로 인간에게 유해한 동물을 마주할 때가 있다. 비 온 뒤 거리에서 만나는 지렁이, 교실 구석에 사는 공벌레, 공터에 자주 등장하는 송충이, 아빠 차에 똥을 누는 비둘기, 학원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쥐 등이다. 그들을 보면 소리 지르며 피하면서도 한 가지는 기억하려고 한다. 모든 생명은 생태계라는 큰 우주 안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이유와 가치가 있으며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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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미학 일기 - 미학생활자가 바라본 미술, 음악, 영화
편린 지음 / 미술문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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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서평이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컬처블룸 카페에서 서평단 자격으로 <조각조각 미학일기>를 받아 읽었지만 감히 책을 평한다는 서평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글이 되지 못함을 미리 고백하고 시작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집안 일을 하고 sns를 둘러보며 잠시 쉬다 보면 종이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속독을 하게 되고 허겁지겁 마감일에 맞춰 서평을 써냈다. 그런데 이번 책 <조각조각 미학일기>는 빠르게 읽을 수 없었고 급하게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서평 마감일은 다가왔다. 이 책을 일독만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그 짓을 하고 있어서 낯부끄럽고 저자에게도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예술 관련 서적들을 읽어왔고 미술관을 다니며 보는 눈을 키우려고 노력했으며 영화를 보면 글을 남겼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쪼개지 않은 둥그런 수박의 겉만 핥아놓고 그 속의 색과 속살의 질감, 냄새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해왔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잘 아는 내 일상과 감정이 들어있는 글은 일기인데 그것은 또 공개하기 싫다. 서평단 자격으로 쓰는 글에 내 얘기를 넣는 게 주저되므로 결국 일반론적이거나 교훈적으로 마무리 짓게 된다. 이런 습관이 굳어져버린 것 같아 요즘 쓰는 글이 점점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확실해졌다. 잘 모르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말자! 그동안 영화를, 미술을, 음악을 이렇게 철학자와 그의 사상으로 연결한 글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각조각 미학일기>는 차원이 달랐다. 공부하듯이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저자는 미학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암호, 단서, 편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사용해 미술 작품, 영화를 9편 소개하고 그 안에서 종횡무진 철학의 세계를 내달렸다. 그 길을 따라가려니 버거웠다. 그가 소개한 철학자들의 이름과 저서의 제목 정도는 알아도 책을 읽어본 적은 없으므로 철학이론을 설명할 때는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 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저자는 편린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으며 서울대에서 미학과 국문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있다. 저자 소개에 단상을 짧게 메모한 촌평들을 오리고 붙이고 꿰매서 글을 쓰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구한다고 했는데 이 책의 각 꼭지보다는 짧은 글을 쓸 때 해당하는 것일까?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각 작품과 연결한 철학자들과 그 이론은 단상을 오리고 붙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책 속 작품들의 제목과 철학자 이름만 봤을 때는 대부분 아는 것이었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지 결코 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을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아는 게 아니니까. 이 책을 한 번 읽었다 해서 내가 다 이해했다 할 수 없으므로 평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아홉 꼭지 전체를 요약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인상깊게 보았던 영화 <헤어질 결심>과 알랭 바디우를 연결한 꼭지 완전히 붕괴된 시간을 읽은 소감만 써보려고 한다.


저자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압도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예술은 어떻게 우리를 압도하는가, 사랑은 어떻게 우리를 압도하는가였다.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을 가져와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태의 이름과 어부가 알고 있는 명태의 이름, 즉 종류의 차이를 말한 후 무한한 명태의 세계를 우리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것, 지극히 일부만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여기에서 바디우의 존재의 고유명은 공백이라는 말은 무한한 명태는 너무도 많아서 파악될 수 없는 자리, 아무리 베테랑 어부라도 절대로 다가볼 수 없는 자리, 그래서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무한한 지평에 위치하며 그곳을 바디우는 공백이라 부른다. 바디우는 지식이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리너구리의 발견이라는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물에 대한 이해, 우리가 확보한 진리의 지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바디우를 따라 진리가 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건이 진리를 만든다고 했다. 바디우가 사건에 의해 진리가 생산되는 시퀀스에는 예술, 과학, 정치, 그리고 사랑, 이 네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사랑을 진리 생산의 절차로 포함시킨 것을 인용했다.


사랑은 사건의 좋은 예입니다. 내가 사무실의 동료를, 또는 다른 누군가를 소개받습니다. 그것은 거의 가장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즉시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고, 또한 그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역에는 많은 편차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만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사건들은 비둘기의 걸음으로도래한다는 니체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아니지만, 엄청난 역사의 기원점일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붕괴=사랑이라는 생각이 이 영화의 근본적 메시지라고 하며 이것이 다른 통속적인 사랑 영화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우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호도되고 왜곡된 사랑의 모습(사랑이란 불완전한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 서로를 완전하게 만든다)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과 바디우는, ‘사랑은 붕괴되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나도 공감했으며 존중을 설명할 때는 존중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김주환 교수의 유튜브 강의에서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존중한다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을 때 심하게 고개 끄덕였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상대를 존중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며 존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로 간주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생긴 저항감을 사랑의 힘으로 무조건 억누르는 것이 존중이 아니라 심각한 태도로 마찰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상대와 자신의 차이를 내 안에서 소멸시키거나 그 차이가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 양 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주체에 대해 말해야 한다. 주체는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진리를 생산한다. 기존에는 사건이 입각하고 있는 진리는 주체가 생산한 것이고, 진리에 입각하여 사건을 만드는 것 역시 주체(주체진리사건)라고 보았으나 바디우는 사건진리주체의 순서로 뒤집었다. 사건이 진리를 생산하고 모종의 진리가 생산되는 과정의 일꾼으로서 참여하는 주체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주체였던 것이 아니라 몸을 던지는 순간에만 주체가 된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확신, 어딘가로 몸을 던지겠다는 결심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제목으로 연결해 보자면,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인 사랑이 주체 입장에서 본다면 곧 결심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사랑에 빠질 결심을 내릴 때 주체가 된다. 그런데 제목이 왜 사랑할 결심이 아니라 헤어질 결심일까. 진정한 존중을 위해서는 저항감이 있어야 하고,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혁명적 사건이 있어야 하듯 하나를 창조하고 서로를 치유하는 것에는 파괴와 상처라는 전제가 생략될 수 없다.


결국 아물게 될 상처, 나를 죽이지는 못하되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상처는 사실 상처가 아니다. 영원한 상처, 살 안쪽에 패인 상처, 나를 죽일 수 있는 상처, 그러니까 서래가 들어가 앉은 구덩이의 깊이만큼 패인 상처가 진정한 상처다. 우리는 그 상처의 깊이와 무늬로 인하여 우리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다. 또한 마침내 우리 자신이 된 그 상처는 사랑이라는 사건의 흔적이며, 사랑이라는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 그 파괴의 현장에 우리 자신이 있다. 이 모든 사건과 진리는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또한 그래서 아름답다고 저자는 말하며 평생 이 진리를 옹호할 결심이 되어 있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제목이 왜 헤어질 결심일까 생각해봤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통과하여 저자가 파괴의 현장에 있는 우리, 사건과 진리라고 말한 사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미학을 공부하면서 아름다움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중이라고 했다. 그 구덩이의 끝에 모든 아름다움의 이유를 알려줄 최종적 근거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파헤치고 있다. 파헤쳐 나온 돌조각들을 가지고 노는 법을 미학이 가르쳐주었다고. 그의 이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고 할 수 없고 철학을 모르는 내가 앞으로 만날 예술 작품과 철학을 서로 꿸 수도 없다. 그러니 이 책을 여러 번 꼭꼭 씹어 읽어야겠다는 결심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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