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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나는 1989년 MBC에서 방영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고 처음으로 해외 입양에 대해 알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받은 충격은 강력했다. 서양 가정에 입양된 한국 아이가 겪는 정체성 혼란과 인종 차별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그것이 생모를 찾는다 해서 나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잔이 생모를 찾는 과정을 응원했다. 더 놀랐던 건 한국 전쟁 때 시작된 해외 입양이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해외 입양 관련 기사나 책이 나오면 찾아 읽었다. 그럴 때마다 분노가 일었다. 한국 이젠 선진국이라며? 그런데 여전히 수잔 같은 이가 있다고?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오명이 부끄러웠다. 내 삶과 실질적 연관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이 문제에 촉각이 곤두섰다. 일반인인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된 <너의 한국 엄마에게> 책 소개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간 잊고 있던 해외 입양 문제를 오랜만에, 것도 전문가의 시각으로 만나겠구나 싶어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당첨되었다. 먼저 출판사에 고맙고 송구스럽다.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놓고선 사지 않고 무료로 받다니... 그래서 집 근처 도서관 세 군데에 희망 도서 신청을 했다. 역자 손화수씨 덕분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인이 쓴 책인가 싶을 정도였다. 번역서의 경우, 이 책처럼 분량이 400여 쪽에 달한다면 읽다가 덜컥덜컥 걸리는 부분이 꼭 있다. 그런데 문맥이 이해가 안 되어 여러 번 읽어야하는 문장이 전혀 없었다. 노르웨이의 기사나 자료, 통계가 있었음에도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찾아보니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도 손화수씨의 번역이었다. 이 소설도 인상 깊게 읽었는데 번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했다.
저자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사회학자의 저서인데 어렵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이 일정 부분 들어 있지만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한 때 내가 꾸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무슨 소리냐 싶고 뇌피셜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반가웠고 책을 덮으면서는 뿌듯했다. 내가 사회학자가 되어 쓰고 싶은 글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대리만족했으나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난 건 처음이다.
저자의 아들(한국 이름-박현욱)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장하다!”
이렇게 짧으면서 너른 품을 지닌 비슷한 낱말이 노르웨이어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심지 굳게 잘 자라준 것에 어울리는 한국어라 생각했다. 책 속에서 ‘너’로 등장할 때마다 체념한 듯, 달관한 듯 보여 마음이 아팠다. 친모와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그제야 편안해 보였다. 텍스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소가 피어올랐을 것이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사회학자이자 입양모이다. 첫 딸을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입양을 준비했다. 힘든 시간을 거쳐 한국에서 남자 아이를 입양했다. 그 아이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2년 후 여자 아이를 또 한국에서 입양했다.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참고 기다려 남매를 두게 되었다. 노르웨이인 엄마는 한국인 남매에게 무한 사랑을 쏟고 싶었다. 양육하기 힘든 사연이 있었을 게 분명한 미혼모(서류상 미혼모라고 쓰인 친모)의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면 그 미혼모에게도 좋은 일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북유럽 가정에 입양된 동양인 아이가 성장하며 받게 될 차별과 배제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가족, 친척, 학교, 사회까지 전방위적으로 벌어졌다. 게다가 입양한 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 아이를 케어하는데 온 신경을 쏟게 되었다. 먼저 입양한 아들에게 가는 손길과 마음의 빈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입양 가정이 아니어도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아이는 조숙해진다.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며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는 법도 일찍 깨친다. 현욱을 이방인으로 대하는 백인의 눈빛을 견디면서 괜찮으냐고 자꾸 묻는 노르웨이 엄마에게 아무 일 없다고 말해야 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랬던 현욱은 2020년 1월, 의문을 품는다.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올 때(1998년) 자신에게 딸려 온 몇 안 되는 정보를 보며 묻는다.
“정말 이게 전부인가요, 엄마?”
저자는 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하기로 한다. 그리고 자문해보았다. 아들을 낳은 친엄마에 대해 왜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한국은 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을까? 노르웨이는 어째서 입양 가정이 겪을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준비나 대책도 없이 입양을 허가했나?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데 저자의 전공이 큰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된 아동에 대해 조사하고, 한국의 해외 입양사 대해 알아본다. 문제점을 찾아냈고 신문에 그것을 알리는 기사를 냈다. 노르웨이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해외입양 사례를 찾아 인터뷰하며 자신이 무지하고 무신경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외입양’이 몇 십년간 두르고 있던 ‘선의’라는 옷을 벗겨냈다. 실체 없는 ‘선의’를 입고 있던 국가와 입양 알선 단체, 벌거벗은 줄 알면서 말하지 못한 채 눈 가렸던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아이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해외입양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어쩔 수없이 그에 속해버린 개인의 상황을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였다. 특히 당사자가 내는 목소리이기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엄마이기에 친모가 겪었을 고통에 비중을 두었다.
박현욱이 궁금해 했던 것들을 한국에 와서 찾게 되었는지, 한국 정부와 노르웨이 정부, 그리고 홀트 아동복지회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필독하시길!
나는 ‘대한민국 해외입양 숫자 0명!’이라는 통계를 빨리 보고 싶다.
사회과학 서적의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면서도 개인의 경험이 잘 녹아든 이 책이 노르웨이와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많이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