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처방합니다 - 삶을 다시 일으키는 미적 경험 너머의 힘
데이지 팬코트 지음, 조현욱 옮김 / 디플롯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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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적절하게 하는 사람들, 3백을 제한하고 5대 영양소가 든 음식을 챙겨먹는 사람들, 금연과 금주는 기본이고 체중 조절을 하는 사람들


모두 현대인이 건강한 삶을 위해 지켜야할 기본으로 인식된 것들이다. 이 지침들 외에 음악회를 가거나 악기를 연주하라고, 미술관을 가거나 그림을 그리라는 권유는 받지 못했다. 이러한 예술 관련 활동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나 하는 취미생활로 여겨졌다. 그런데 건강처방에 예술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가 있다.



영국 과학자 데이지 팬코트는 예술의 결핍이 초래할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위기에 대해 경고한다. 책 <예술을 처방합니다>에서 저자는 예술이 건강증진은 물론 질병 예방과 치료회복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련 실증 논문 3만 편이 넘는 연구를 토대로 웰빙, 정신 건강, 뇌, 움직임, 스트레스와 통증, 건강에 유익한 행동, 장수등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눠서 풀어냈다.


예술 활동을 하면 건강해진다고?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 저자는 각 장에서 실증 논문을 바탕으로 예술 활동을 한 이들에게 일어나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조도 제시한다. 예술의 효과를 의학언어로 검증한 무작위 대조시험들을 예로 들면 이렇다. 조산아에게 자장가나 부모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심박과 호흡, 산소포화도와 수유능력이 나아졌고 토원 시기까지 앞당겨진 사례도 있었다. 저자의 자녀가 신생아 집중실에 있었던 실제 경험도 보여준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박물관에 가면 치매가 예방된다거나, 음악이 우울증으로 치료한다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책 소개나 리뷰들만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오해다. 그래서 직접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예술을 사랑하고 만끽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1년간은 스트레스 받는 일로 인해 그럴 겨를이 없었는데 이 책의 제목과 책 소개를 보니 읽어보고 싶었다. 예술 활동을 하고 싶지만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핑계 그만대고 어서 뭐라도 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예술 활동을 한 환자나 일반인들에게 어떤 효과,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실제 사례와 실험, 논문으로 보여준다. 친정엄마가 경도인지장애라 치매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인용한다.


p.147~152

치매의 고통 없이 더 오래 지낼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인지 예비능을 끌어올릴 치료제 개발은 제약 업계에서 가장 치열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인지 예비능을 키우는 데는 일상에서 훨씬 간단한 일을 실천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그 중 하나가 운동이다. 아울러 최근 들어 점점 권장되는 것이 ‘인지적 여가 활동’이다.

인지적 여가활동은 다소 포괄적인 개념이다. 봉사 활동, 지역사회 모임 참여, 사교활동, 퍼즐 맞추기, 새로운 기술 배우기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수공예, 독서, 악기 연주 같은 수많은 예술 활동 역시 인지적 여가 활동의 큰 축을 이룬다. 20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통합한 메타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지적 여가 활동으 ㄹ주기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확연히 낮다. 심지어 연령, 성별, 건강 상태, 자산, 교육 ㅅ준, 생활 습관 같은 교란 변수들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그 감소 폭도 상당하다. 인지 장애 발생 위험은 약 31%, 모든 원인에 의한 치매 발생 위험은 23%,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은 34% 줄어든다. ‘쓰지 않으면 잃는다’는 격언은 과학적 사실이다. 문화활동 참여 빈도가 높을수록 인지 기능 보존 효과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본질적으로 이 모든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예술 활동이 인지 예비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향상할 뿐 아니라, 우리가 특정 시점에 보유한 신경생물학적 자산, 곧 뇌 유지 관리 같은 하드웨어적 요인까지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인지 예비능을 갖추면 경도의 인지 장애에서 완전한 치매로 전화되는 시기를 약 7년 정도 늦출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7년이라는 유예 기간이 치매를 겪지 않은 채 생을 마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친정엄마는 노래 교실을 다니고 있다. 뭐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고 하나 싶었는데 이 내용을 읽으며 더욱 독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예술을 당장 시작할 마음이 들 것이다. 나는 즐기던 음악회나 전시회를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자주 가던 음악 감상실에 못간지 몇 달째다. 다음주에는 꼭 가야겠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책 마지막에서 저자는 예술을 가로막는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은 교육 및 정책 관련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예술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예술 관련 예산도 늘여야 하며 예술가들이 활동할 기반도 조성해야 한다.


p.335

예술 기금을 줄이고, 예술 공간을 닫고, 유물과 예술가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완전히 반대쪽이다. 우리는 예술을 필수적이지 않은 것처럼 대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살펴 본 모든 사실은 정반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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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멸치 - 이름을 잊은 그대에게 ㅣ 더같이 그림책
전민걸 지음 / 한림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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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고양이 멸치, 제목이 특이하다. 고양이와 멸치가 무슨 관계일까? 우리집 막냉이 토르는 멸치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멸치 대가리를 다듬으면 어김없이 다가와 좀 달라고 냥냥거린다. 토르처럼 고양이가 멸치를 좋아한다는 뜻일까? 고양이 이름이 멸치일까? 멸치 이름일리는 없고...


그림책 <고양이 멸치>는 제목으로 궁금증을 유발한다. 주인공은 턱시도(턱시도:검은 턱시도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것처럼 가슴(얼굴이나 발 일부)은 흰색 털이고 나머지는 검정색 털인 고양이, 이 글에서 턱시도냥으로 부르겠음)인데 표정이 좀 뚱하고 얼핏 멍뭉미도 있어 귀엽다. 집 나가면 개고생인 줄 모르고 무단 가출한 턱시도냥은 길에서 냥고생한다. 그런데 스트릿 생활이 제법 재미있는 모양인지 집 생각이 별로 안 난단다. 1인칭 고양이 시점이라 실감나게 읽힌다.



밖에서 지내며 많은 걸 배웠는데 정작 자기 이름은 까먹어버린 주인공! 사람들은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도둑고양이, 길냥이, 유기고양이 등등으로 부르는데 우리의 턱시도냥은 이름을 원했다.


“누구라도 내 이름을 불러 주기를 바랐어.

이름이 잇다는 것은 누군가 먹을 것을 준다는 뜻이고

이름이 있다는 것은 배고프지 않다는 거니까.

나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


이름을 불리길 원했던 턱시도냥은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찾아다니다 문득 짭쪼름한 냄새를 머금은 바람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바닷가 출신이었다는 사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유화 느낌의 그림이라서 좋았는데 이 두 장면은 턱시도냥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다. 작은 부둣가를 배경으로 한 주황색 지붕 위 엄마냥과 아기냥의 평화로운 한 때가 사랑스럽다.



턱시도냥의 이름 찾기는 계속 된다. 어촌 마을 할머니에게서 이름을 얻나 싶었지만 실패! 배고파서 시도했던 꿩사냥도 실패! 철퍼덕 논바닥에 가라앉았다 개구리밥을 머리에 잔뜩 이고 올라온 모습은 안타깝지만 역시 귀엽다.



우리의 턱시도냥은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스포라서 비공개함)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주인, 아니 집사를 채용한다는 뜻인데, 과연?? 어찌됐든 턱시도냥이 행복하면 좋겠다. 얼마 전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는 길냥이 두 마리가 있다. 젖소와 치즈인데 형제는 아닌 것 같고 항상 같이 다닌다. 밥만 챙겨주고 이름을 부르지는 않는다. 안쓰러움이 애정이 될까봐 무섭기 때문이다.


전민걸 작가는 <고양이 멸치>로 처음 만났는데 다른 그림책들도 찾아봐야겠다. 그림들이 궁금하다. 이 책에 바다 풍광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고향이 부산이라고 한다. 고양이 표정도 다양해서 좋았는데 고양이 그림책 시리즈로 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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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묘세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돌베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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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p.64~65

눈물이 흘러내리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때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레인이 바닥에 늘어뜨린 내 손등 위에 앞발을 얹고 있었다. 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가 울고 있음을 레인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슬픔을 이해하고 나를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


저 장면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고, 지금 옮겨 쓰는 동안에도 눈앞이 부예진다. 2년 전 내 곁을 떠난 루키와 내가 저랬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루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루키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깊은 밤, 내가 꺼이꺼이 할 때마다 루키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몰라도 사람과 분명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대만 작가 천쉐의 소설 <묘생묘세>에서도 보여준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책의 두 화자이자 주인공인 고양이 레인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또 다른 주인공인 사람 샤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 아니냐며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물론 사람과 고양이와의 교감을 더욱 진지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일 수 있다.


그럼 내 고양이 루키도 사람의 말을 다 이해해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봐 준걸까? 지금 같이 있는 고양이 둘은 루키처럼 나를 보지 않는다. 고양이 셋과 함께 살았지만 내가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고양이는 루키뿐이다.


고양이와 사람이 교감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가능성을 먼저 차단하겠다는 뜻이니 이 책을 읽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도 소통 불가한 시대에 이런 소설로 감동받을 수 있다면 읽을 만하지 않은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무조건 추천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이 가을에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사랑과 관계에 서툴렀던 카페 사장 샤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흰색고양이를 들이고 이름을 레인이라 짓는다. 둘은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하며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샤텐은 레인만으로 충만하기에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샤텐이 레인에게 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레인의 호불호에 관심을 가지고 어디든 같이 다니며 함께 할 공간의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말을 하는 건 샤텐 혼자지만 둘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


고양이가 먼저 떠나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레인이 떠날 때 나는 또 다시 오열했다. 루키의 마지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전에 루키를 입원시켜 놓고 살짝 마음을 놓고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오후에 루키가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날 밤, 늘 그랬듯 루키는 내 곁을 지켰다. 병원에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슬픔이 옅어질까? 2년이 지난 지금도 루키만 생각하면 슬프다.


레인은,

“삶의 가치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의미에 있다.”

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니 살아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누구도 슬퍼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루키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그래도 루키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순간의 가치를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래 함께 하는 것도 좋겠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사실 우린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이런 문학작품을 읽으며 되새긴다.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이후로 얼마간이라도 각성의 시간을 가진다. 그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고양이가,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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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뿌리 - 제2회 주니어김영사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정은경 지음, 임나운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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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공기뿌리>는 주니어김영사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아 읽었다. 주인공 풍경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아빠와 동거 중인 아주머니의 집이었고 아주머니 아들 낙우도 있었다. 방이 두칸 뿐인지라 풍경이는 좁은 낙우의 방에서 같이 지내야 했다. 풍경이는 하루아침에 더부살이 신세가 되어 눈치를 보며 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어른으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빠의 무책임한 행동, 풍경이 눈에도 뻔히 보이는 고모의 회피,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결국 어른들의 상황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이가 견뎌내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또 미안하고 대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풍경이를 도와주는 어른들도 있었다. 건강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할 가정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사회가 어떤 안전막이 되어주어야 하는지도 보여주는 대목이다.

 

풍경이는 더 이상 낙우네 집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고 고모네에서 지낼 형편도 안 되어 사랑그룹홈에서 지내기로 결정한다. 쉼터나 위탁가정, 양육 시설보다는 사랑그룹홈을 선택한 것이다. 그곳에서 중학생 형 두 명과 풍경이, 그리고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 살며 복지사 선생님들도 돌아가며 같이 지낸다. 사랑그룹홈을 선택한 이유는 돌봐주는 김쌤이 할머니와 알던 사이었기 때문이고, 풍경이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스스로 살 곳을 선택할 기회를 주어서다. 내년에 아빠가 조금 큰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사랑그룹홈에서 지낼 것이라고 했지만, 타의에 의해 너무 일찍 독립심을 배운 풍경이가 아빠랑 같이 살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이 인상적인 점은 어린이의 선택과 행동에 자율성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어른의 개입 없이 갈등을 해소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풍경이는 낙우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 양가감정 때문에 힘들었다. 낙우의 공간을 뺏게 되어 미안한 반면 묘하게 자신을 약올리고 무시하는 낙우에게 미운 감정도 일었다. 할머니가 사준 패드를 풍경이가 숨기고(사실은 아껴 쓰려고) 있다 들킨 사건 때문에 낙우네 집을 나오게 되었다.

 

풍경과 낙우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사과하며 조금씩 이해하고 위로한다. 꽤 성숙한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풍경은 현장학습 과제를 하면서 식물의 사진을 찍고 나무의 생태 중 공기뿌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낙우가 낙우송의 공기뿌리에 대한 설명을 써놓은 것을 본 풍경은 낙우가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여겼던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낙우송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잎이 뾰족해서 소나무처럼 사계절 내내 푸를 것 같지만 가을이면 낙엽이 집니다. 또 물가에서 자라지만 물 때문에 숨을 쉬려면 뿌리를 땅 밖으로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니 겉만 보고 괜찮을 거라 여기지 말아요. 공기뿌리가 필요해요."

 

풍경은 공기뿌리가 있는 다른 식물들을 찾아보고 스스로를 담쟁이덩굴이라고 했다.



“나는 담쟁이덩굴이 꼭 나 같더라. 할머니 집, 너희 집, 그룹홈을 옮겨 다니며 붙잡을 곳을 찾아야 했잖아. 어쩌다 그렇게 되긴 했지만 나름 괜찮은 것 같아. 매일 똑같으면 심심하니까.”


 

공기뿌리를 만들어낸 식물들처럼 풍경과 낙우도 어떻게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처해있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현재 자신의 상황이 어렵고 답답한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 등장인물의 태도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어른 독자에게도 해당됨은 물론이며 아이들을 잘 돌봐야할 어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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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영화처럼 사랑은 명대사처럼 - 내 삶의 명장면은 결국 내가 편집한다
조은영화(조정구)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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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하면, 최애 배우부터 시작해서 인생 영화, 나만의 명대사가 줄줄이 나올 것이다. 지인과 혹은 모임에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을 땐 <인생은 영화처럼 사랑은 명대사처럼>을 권한다. 블로그 ‘영화세상’을 운영하는 에세이 작가 조정구씨와 이 책으로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작가는 ‘영상은 기억에 남고 감동과 명대사는 기록에 남는다’고 했다. 작가는 수많은 영화중에서 어떤 영화를 골랐는지 확인해보자.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사랑이 시작되고 만개하여 지는 과정을 영화와 대사로 보여주고, 작가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도 얹었다. 독자는 자신이 감동받았던 영화 이야기에 길게 머물며 지나간 사랑과 지금의 사랑을 톺아볼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사랑이야기가 더 재밌을 수도 있다. 꽤 영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한 장면이 영화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책의 부제는 ‘내 삶의 명장면은 결국 내가 편집한다’이다. 불같이 일었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반짝이던 젊음은 빛바래지며, 이루지 못해 애틋했던 사랑은 추억 속 사진으로 간직한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게 인생이다. 사랑의 유효기간 3년도 길다면서 3년 지났는데 가슴 뛰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부정맥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젊은 커플을 보면 그저 예뻐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날도 있다.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소설이나 영화에 눈물 흘리는 건 부러워서다. 실은 이루어지지 못해 아름다운 걸! 유난히 잊지 못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은 자신의 삶 속 장면과 오버랩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어떤 장면을 명장면으로 선택할 것인가는 내 인생의 감독인 내가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나는 작가가 고른 영화 대사 중 가장 공감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다.



우리의 일상과 사랑, 영화를 말하는 이 책의 문장들 중 어느 것이든 독자에게 가닿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추천 받은 영화를 보며 명대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보면 좋겠다.


p.204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다. 매순간이 애드리브이고 매 장면이 서툴다. 그저 가랑비에 옷 젖듯, 서로의 일상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상처 입은 마음에 스며드는 사랑은 은근하고 깊다. 멈춰있던 우리 인생 영화의 영사기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작은 이해를 만나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복이란 어쩌면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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