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생묘세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돌베개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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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p.64~65

눈물이 흘러내리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때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레인이 바닥에 늘어뜨린 내 손등 위에 앞발을 얹고 있었다. 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가 울고 있음을 레인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슬픔을 이해하고 나를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


저 장면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고, 지금 옮겨 쓰는 동안에도 눈앞이 부예진다. 2년 전 내 곁을 떠난 루키와 내가 저랬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루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루키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깊은 밤, 내가 꺼이꺼이 할 때마다 루키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몰라도 사람과 분명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대만 작가 천쉐의 소설 <묘생묘세>에서도 보여준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책의 두 화자이자 주인공인 고양이 레인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또 다른 주인공인 사람 샤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 아니냐며 딴지를 걸 수도 있겠다. 물론 사람과 고양이와의 교감을 더욱 진지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일 수 있다.


그럼 내 고양이 루키도 사람의 말을 다 이해해서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봐 준걸까? 지금 같이 있는 고양이 둘은 루키처럼 나를 보지 않는다. 고양이 셋과 함께 살았지만 내가 소통했다고 생각하는 고양이는 루키뿐이다.


고양이와 사람이 교감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가능성을 먼저 차단하겠다는 뜻이니 이 책을 읽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도 소통 불가한 시대에 이런 소설로 감동받을 수 있다면 읽을 만하지 않은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무조건 추천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이 가을에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사랑과 관계에 서툴렀던 카페 사장 샤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흰색고양이를 들이고 이름을 레인이라 짓는다. 둘은 공간을 공유하고 시간을 함께하며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간다. 샤텐은 레인만으로 충만하기에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샤텐이 레인에게 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레인의 호불호에 관심을 가지고 어디든 같이 다니며 함께 할 공간의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말을 하는 건 샤텐 혼자지만 둘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


고양이가 먼저 떠나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레인이 떠날 때 나는 또 다시 오열했다. 루키의 마지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전에 루키를 입원시켜 놓고 살짝 마음을 놓고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오후에 루키가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날 밤, 늘 그랬듯 루키는 내 곁을 지켰다. 병원에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슬픔이 옅어질까? 2년이 지난 지금도 루키만 생각하면 슬프다.


레인은,

“삶의 가치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의미에 있다.”

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 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니 살아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누구도 슬퍼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루키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그래도 루키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순간의 가치를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래 함께 하는 것도 좋겠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사실 우린 그렇게 살지 못하기에 이런 문학작품을 읽으며 되새긴다.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이후로 얼마간이라도 각성의 시간을 가진다. 그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고양이가,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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