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지음 / 시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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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최성현씨를 몇 년 전 <녹색평론>에서 처음 만났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이 그를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에 그의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읽지는 못했다. 이번에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소개를 읽는 순간,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래서 산에 산다>2006년 출간되었던 <산에서 살다>의 개정판으로 자작시 열세 편과 하이쿠 열다섯 수도 추가로 실었다.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농부의 일기, 혹은 에세이다. 이 책은 도시에 뿌리박고 살면서 언젠가는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심어줄 것 같다. 산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굳이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편하게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고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것이지만 자연을 여행 삼아 다녀온 사람의 단상이 아니다. 그 곳에서 직접 생을 영위하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꽃, , 산짐승, 하물며 작은 곤충까지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철새인 벙어리뻐꾸기의 이동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는 거의 법정 스님의 강독인 줄 알았다.

 

p.118

 

멀리 가는 것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삶에도 있다. 한곳에서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단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바뀐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일들을 통해 우리는 벙어리뻐꾸기처럼 먼 곳을 가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깊고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제가 있다.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젠가는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책 내용 중에 반야심경과 불교에 관한 것들이 꽤 있다. 저자의 책을 찾아보니 불교 역서도 있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라는 제목으로 반야심경 해설서이다. 불교의 생명 중시 사상이 몸에 베인 것일까, 아니면 산에 살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늘 자연과 대화한다. 더 나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말벌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말벌이 저자의 집에 집을 지어서 떠나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강제로 헐어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결국 쫓아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서로에게 고단했다고 표현한다. 그 다음 해에도 말벌이 집을 지어서 지인의 추천으로 모기향을 피워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모기향에 덤벼드는 말벌의 행동이 기이하여 벌집을 확인해보니 애벌레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벌집 곁에 창문이 있어서 비닐로 통로를 내어 그 창문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말벌님에게 편지를 썼다.

 

말벌님에게

평화롭게 살기 위한 조치입니다. 같은 문을 쓰다 보니 서로 부딪치는 등 그동안 서로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쏘이기도 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창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벌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말벌 한두 마리가 그 비닐통로를 통해 창문으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뒤로 말벌들이 모두 창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말벌집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스스로 처치하지도 못해 119를 불러 태워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말벌과 사람, 지위고하 없이 모두 같은 생명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말벌에게 사람에게 하듯, 오히려 더 깍듯하게 대했다. 책으로 자연보호를 배운 우리는 감히 생각도 못한 태도이다. 도시에 살면서 어쩌다 등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오르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따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나는 최근에 죽음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잘 죽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 중 사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 이후 장례 절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인간도 지구 전체로 보자면 엄청난 유기질 자원이라고 했다. 아마존 원주민 수아르 족의 풍장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런 장례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상 풍장을 하기 힘들고, 뭣보다 장소가 부적합하다. 저자는 아직도 매장과 화장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중이라한다. 최근 수목장도 하는 추세이지만 그것 역시 화장을 먼저 해야 한다. 자연속에서 사는 저자가 풍장을 가장 자연스런 장례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산에 사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해 뜨기 직전에 일어나서 논밭을 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좋고,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던 새가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준 날이 가장 기쁜 날이고, 가을엔 청설모 우렁각시에게 겉껍질을 깐 밤을 얻고, 왕소등에 아줌마에게 조공하는 피는 산에 사는 세금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산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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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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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설재인 작가를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로 처음 만났고 강렬한 어퍼컷을 기꺼이 맞았다. 그 책은 특목고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그만두고 복싱을 하면서 쓴 에세이였는데 그의 글빨에 매료되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고 글을 계속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을 만났다.

 

제목의 세 모양은 주인공 셋을 말한다. 중학교 2학년 유주와 상미, 그리고 어른 진영까지, 세 여성의 서사다. 진영은 교사도 부모도 아닌 남이었지만 그들에게 점심을 챙겨 먹인다.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그렇게 밥을 같이 먹으면서 유대감을 쌓아가고 솟았다 사그라지는 감정들 처리에 어쩔 줄 몰랐다.

 

유주와 상미의 부모는 어쩜 저럴 수 있을까!하며 뒷목 잡을 만큼 비정상적이다. 쉰밥이 분명한데도 아직은 괜찮다며 먹으라 하고, 용돈은커녕 밥값도 주지 않으니 여름 방학 중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같은 학교였지만 친구사이는 아니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대가없는 호의 덕분에 인간다운 식사가 무엇인지 맛보게 된다.

 

상미는 다섯 살 때 유괴 당할 뻔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준 여자를 따라 버스를 탔다가 큰고모가 발견해서 겨우 유괴는 면했지만 낯선 이를 따라갔던 대가는 혹독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먹을 걸 구걸하고, 배곯은 애처럼 행세해서 제 어미를 욕먹이는, '거지 같은 년' 이 되어 있었다. 자식에게 매일 돈타령만 하면서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그 때 그 사람을 따라갔다면, 상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자주 생각했다.

 

다섯 살 유주는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 어떤 아저씨가 꺼내주어 목숨을 건졌다. 자기를 구해준 후 멀쩡하게 인사를 받았던 그 아저씨는 2주후 돌연사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그 사람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남동생을 조산했고 그 아이는 삼일만에 죽었다. 유주는 '남동생 잡아먹은 년' 이 되었고 발뒤꿈치에 콕콕 찌르는 통증을 호소하면 절름발이, 절뚝이로 불렸다. 자신을 구해줄 때 그 아저씨가 뒤꿈치를 잡고 들어 올려준 후 시작된 통증은 정형외과에서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아도 여전했기에 꾀병 부린다며 욕을 먹었다. 유주는 부모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로 하지 못했고 눈물을 참으면 딸꾹질이 나왔다.

 

진영의 진짜 이름은 효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아빠의 성추행을 피해 가출을 시도했다가 이틀만에 잡혀와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쁜 딸년이 됐고 엄마의 비난이 더 심했다. 최대한 빨리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결혼 했다. 그러나 남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지옥같은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효윤의 남편은 유주를 구해주었다가 돌연사한 그 남자였다.

 

효윤은 남편이 구해준 그 아이, 유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유주 엄마의 SNS를 찾아 다니다가 유주가 도서관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 그냥 얼굴만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다가가서 밥을 사주게 되고 상미도 그 점심에 동석하게 되면서 그들은 식구가 된다.

 

식구가 별건가? 글자 그대로 밥 같이 먹으면 식구 아닌가? 꼭 혈연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따뜻한 밥 같이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읽어주며 공유하면 식구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감정 공유까지 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유주와 상미는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지 못했고 진심어린 공감도 받지 못했으며 학교에서도 왕따였다. 마음 붙일 곳 없던 두 아이의 허기를 채워 준 사람이 진영(아이들이 처음 이름을 물었을 때 급조한 이름)이었고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공유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아픔을 잘 아는 진영의 환대는 그들 사이를 강하게 결속시키는 아교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두려워졌다. 그들이 같이 있는 장면이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일 때 어딘가 숨어있을 불길한 그림자의 자장이 느껴졌다. 분명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들을 그대로 행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는 절정의 순간에 검은 자락을 펼칠 것이다!

  

역시 그랬다! 돈이 없어서 수련회를 가지 못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쉼터 같은 공간인 고시원에서 셋 만의 수련회를 했고 마지막 날 밤에 하려 했던 캠프파이어는 고시원의 화재로 성공아닌 성공이 되었다. 아니, 그들만의 캠프파이어는 실패했고, 단단해 보였던 그들의 결속력은 쉽게 풀어졌다. 미디어에 의해 그들의 관계는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사람들이 씹고 싶은 대로 씹어돌리는 안주거리가 됐다. 그들이 같이 밥 먹고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은 사라져버렸다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연대가 결코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했음에도 화재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보고 있기 힘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놀랐다. 작가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나? 아니면 이게 현실인가?

 

"어차피 세상은 계속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요."

 

5년이 지난 시점, 소설의 마지막에서 상미가 효윤에게 한 말이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 성인이 된 상미도 잘 알고 있으며 어른에게 위로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작가가 내린 결말을 읽으며 그들이 다시 수련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효윤은 살면서 배운 것 중 가장 유용했던 게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유주가 읽은 소설 줄거리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p. 125

 

새로운 사람을 만나잖아. 아니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돼.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게 되든, 뭐 신인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든, 방금 데뷔한 그룹의 노래를 듣든 간에, 새로움이라는 건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해. 그건 어쩔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일까? 조금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는데 만약 나와 잘 맞고 내 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잇는데 저쪽에서도 나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떨리는 게 아니라 심장이 마구 요동치는 거지. 이제야 찾았어! 내 운명의 친구, 운명의 작가, 운명의 사랑을 드디어 찾았어! 행복한 기분이 솟아올라. 지금껏 겪었던 모든 어려움이 다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쳐 왔던 시험처럼 느껴지고.

 

 

이 소설에서 건진 가장 밝은 문장이었고 희망적인 문장이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일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 속 등장인물이어도 좋고 작가여도 좋다. 내가 매일 새롭게 만나는 것은 책이니까.

 

나는 유주, 상미, 효윤이 새로운 만남으로 다시 시작할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세 모양이 삼각형의 마음이 되면 좋겠다. 서로를 잘 지지해 주는 세 변이 되길~~

 

그리고 설재인 작가의 차기작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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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 오랑우탄 클럽 25
이혜령 지음, 이윤희 그림 / 비룡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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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리뷰는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작성했습니다.

 

<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

제목부터 궁금하게 만듭니다.

 

도서관 이름이 왜 브로콜리일까?’

그 도서관에 마녀들이 산다는 걸까?’

해리포터처럼 마법이 펼쳐지는 이야기일까?’

 

아이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본다면 이런 궁금증을 가질법 합니다.

 

표지그림도 환상적입니다. 책장 사이에 서있는 소녀가 쥐고 있는 책에서 빛이 퍼져 나오고 바닥에는 뱀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어요. 표지 그림의 색감과 양장본이 고급스럽고 삽화도 적절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내지도 다른 책에 비해 두께감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외양까지 어린이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은 어린이 심사위원단 100명이 참여하여 최종 당선작을 고르는 스토리킹공모전 본심에 올랐던 작품이라고 해요. 최종심에까지 올랐지만 당선이 되지 못했던 이 동화가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베스트셀러, 내가 직접 골라 읽는 신나고 유쾌한 이야기비룡소 오랑우탄 클럽시리즈로 출간이 되었답니다. 심사를 담당했던 어린이들이라면 좋아할 것이고, 책으로 처음 만난다고 해도 반길 책입니다. 도서관과 마녀라는 선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 평범함과 특별함을 어떻게 버무렸을지 기대감을 부풀게 하니까요.

 

그럼 브로콜리 도서관이라는 이름부터 알아볼까요?

한빛 초등학교 도서관의 원래 이름은 느티나무 도서관이지만 아이들은 브로콜리 도서관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 안뜰에 자리잡은 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브로콜리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도서관 사서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온통 하얘서 별명이 백발마녀 샘입니다. 왠지 마녀의 분위기를 풍긴다구요? 글쎄요. 백발마녀 샘이 진짜 마녀일지 아닐지를 미리 밝히면 재미가 없지요.

 

주인공 강소율은 이 학교 5학년입니다. 정의롭고 호기심은 소녀였는데 왕따를 당하면서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중입니다. 그런 소율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곳은 도서관이지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녀 치치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치치는 아직 정식 마녀는 아니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도서관을 찾아 오고 있어요. 자꾸 인간 세상으로 오는 치치를 잡으러 다니는 마녀 삼인방이 있습니다. 위위, 보보, 양양이 그들의 이름인데요, 브로콜리 도서관에 마녀가 넷씩이나 들락거리니 마녀와 도서관이 관계가 있는 건 맞는데 마녀가 사는 건 아닌 것 같죠? 글쎄 과연 그럴까요? 치치가 이 도서관에서 살게 되진 않을까요?

 

실수로 둘의 몸이 뒤바뀌게 되어 치치가 소율이인 척 하게 된 어느날, 혜수와 (소율이 몸을 한)치치가 다투다가 혜수가 책으로 변하게 됩니다. 혜수는 소율이를 왕따시킨 아이에요. 소율이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던 기운과 대마녀가 준 반지가 만나 마법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소율이도 이제 마녀가 되는 걸까요? 책으로 변해버린 혜수는 제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점점 더 궁금해지지요?

 

이 책은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의 여자아이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여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왕따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접 겪는 일이기 때문에 친구 관게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과 책이 데칼코마니 같기만 하다면 아이들은 절망할지도 모릅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입장에서는 지옥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동화마저 현실과 같다면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가 없잖아요.

 

작가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마녀라는 소재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 질수는 없지요. 그러나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가능하기에 이 책은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힘을 당한다 하더라도 동화에서 복수의 쾌감만 줄 수는 없지요.

욕망과 분노, 원망 같은 마음의 씨앗을 땅에 심어서 꽃을 피우는 대마녀는 소율이 마음에 있는 씨앗을 달라고 하지만 소율이는 내놓지 않습니다. 소율이를 다독여주던 백발마녀 샘의 말을 떠올립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검은 늑대와 흰 늑대를 키운단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크게 자라느냐는 네가 누구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느냐에 달린 거고. 지금은 대마녀가 검은 늑대를 키워놨지만, 네 안에는 여전히 흰 늑대가 살고 있단다. 아무리 대마녀라도 흰 늑대를 없애진 못해. 네 마음은 온전히 네 것이야. 소율아, 너의 흰 늑대를 찾아 보렴.

 

소율이는 마음속의 흰 늑대를 키울 수 있을까요? 혜수는 책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대마녀의 행패로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곳이 되어버립니다. 소율이와 치치는 대마녀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뒷 부분에서 책 해리포터의 주인공들이 나와 그들을 도와주고 대마녀와 백발마녀 샘의 옛날 사연도 나옵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을 도서관으로 데려가 책이라는 환타지 세상으로 이끕니다. 작가는 몹시도 평범하고, 어떤 아이들은 관심 없어할, 도서관과 책이라는 소재에 마녀 소재를 맛깔나게 버무려 책이 마법이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에게 괴로움 유발 소재인 왕따 역시 극복 가능함을 알려줍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어린이 독자들은 마음이 딴딴해졌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치치같은 친구를 만나러 도서관으로 가는 아이들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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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사는 숲 낮은산 작은숲 21
임어진 지음, 홍선주 그림 / 낮은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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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아주 먼 공간적 차이가 있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이야기 전하는 것을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이 인류 지속의 원동력이었을 것으로 예상한 철학자도 있다. 인간은 입으로 전달하던 이야기를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더 멀리 퍼지게 했고, 그것은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라는 영상장르로 재현되어 즐기고 있다.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장르로 한정해보자. 문학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인간에게 상상력이 없다면 장르화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 그렇기에 문학 안에는 자유가 있다. 원하는 대로 상상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 그런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떨까?

 

동화 <이야기가 사는 숲>은 이런 상황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먼 옛날 어느 나라에는 이야기가 사람 모습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 나라의 왕과 왕비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기를 낳았는데 사내아이였고 이름을 해마루라고 지었다. 신하들의 덕담을 듣고 기분이 좋았던 왕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역관이었다.

 

열다섯 살이 되면 왕자님은 장차... 이 세상 이야기의 수호자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 따위를 수호할 자식은 바라지 않는다며 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이야기를 모두 쫓아내라고 지시한다. 왕자가 훌륭한 통치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이야기가 사라진 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이야기가 없어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사라진 이야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제목처럼 이야기는 숲으로 갔다. 왕자 해마루의 열다섯 번째 생일 날, 해마루는 노루를 쫓다가 이야기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여기서부터 환타지가 시작된다. 해마루는 숲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무들을 만나는데 왕에게 쫓겨난 이야기들이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루는 이야기가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 노루로 변해 해마루를 유인했던 달우물은 역관과 숲에서 살고 있었고 해마루에게 이야기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해마루는 숲 속 나무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진다. “나무 아이이야기와 노루와 왕자이야기가 은유하는 것이 자신과 달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늘 피리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p.92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 같았다. 이룰 수 없는 걸 간절히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에도 목숨을 거는 게 사람이다. 해마루는 자신도 지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언제 다 들을 수 있을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미련한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이야기를 다 듣겠다고...

 

 

오랜 시간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마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동안은 전쟁을 해서라도 땅을 빼앗아 나라를 크게 키워야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를 이루는 것은 그저 땅덩어리가 아니라 거기에 붙박고 사는 사람과 그 많은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자신이 이야기의 수호자가 되어야하는 이유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해마루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왕은 아들을 찾기 위해 숲을 없애려고 했다. 나무를 베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마루는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왕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돌려주겠어요. 아버지에게 두 번이나 버림받은 이야기를 살려 낼거예요. 이야기는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제구실을 하고 또 그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테니까요. 쓰러진 나무들,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어요.”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숲에 쓰러진 나무로 이야기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나무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오래오래 남기겠다는 해마루의 결심은 책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이 동화는 이야기의 영속성을 소재로 한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미와 활력을 주는 것인지, 또 그것이 계속 전해져야만 하는 이유를 말한다. 이야기가 숨은 곳이 나무였고 그 나무가 책이 되어 다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이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짚어주어야 할 부분이다. 책의 역사를 백과사전식 설명보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들려줄 때 이야기의 맛과 중요성을 더 재미있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있는 독후활동으로 연결하면 좋겠다. 아이들이 직접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저학년이라면 말로만 이야기를 지어내도 괜찮다. 어른이 재미있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술술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혹시 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한 컷의 그림을 그리게 한 후 그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보도록 해도 좋다. 상상화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경우 책의 삽화를 보고 따라 그리도록 해도 된다. 이 책의 삽화는 글과 잘 어울리면서도 다양한 그림 기법을 사용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살려주고 있다.

 

고학년은 자신이 상상한 내용으로 짧은 동화 쓰기를 해보면 좋다. 동화라고 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 책의 주인공 이야기부터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대부분 아이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것들임을 상기시켜주면 된다. 구전되는 이야기의 특성과 함께 편집의 공통점을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에 부담감을 덜어주면 좋다.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쁨과 서로 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맛보는 재미는 문학의 순기능을 직접 경험해보는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종이책보다 영상물을 더 재미있어 하며 직접 동영상을 만들기까지 하는데 책을 읽고 글쓰기를 유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영상 작업의 출발점이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가 있어야 하고 각 장면마다 필요한 것이 스토리보드라는 것도. 영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상의 기본은 탄탄한 스토리라는 것을 인식시키면 동화 쓰기도 부담없이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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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 - 말 따로 마음 따로인 당신을 위한 말투 공부
김범준 지음 / 유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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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중요성이야 시대를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까지 가지 않아도 요즘은 뼈때리는 말!이라는 금언으로 회자되는 말들이 많다. “라떼 is horse는 그만!” 에서부터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조언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안 하려고 했으면 하지마!”라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요즘 사람들은 충고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꼰대 마인드라 하겠다.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과 충고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저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 들었으면 이제 그만!’ 이라고 할까?

 

<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의 저자 김범준씨는 자신의 말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한다.

 

살다보면 아는 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게 말투로 굳어버리면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어.”

 

나이 50이 될 때까지 아무거나 말투가 기피대상이란 것을 본인만 몰랐다면서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50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은 총 5종에 걸쳐서 품격있는 말투를 사용했을 때 품격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각종 사례를 인용해 풀어놓는다. 본인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해 주위 사람들의 사례, 유명인까지 다양하다. 특히 성공한 CEO들의 사례는 그들의 성공 요인중에 분명 말투도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책 제목에서, 작가의 나이로, 50세를 중심에 두고 그 나이 정도라면 이런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꼭 50세만 품격있는 말투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책은 말투 때문에 아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잘 고쳐지지 않는 말버릇 때문에 고민인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각 장에서 공감한 내용 위주로 골라서 정리해 보았다.

 

[1장 말이 곧 나다]

 

p.25~26

언젠가 나이 마흔의 한 여성을 만났다.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문직 여성이다. 옷차림이 세련됐을 뿐만 아니라 표정도 그지없이 편안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하느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여성스러워졌네?”
그 말에 상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싶었다. 칭찬이라고 했지만 잘못된 말투였다. 이렇게 실수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나는 평소에 남자답다!’, ‘직장인답다!’ 같은 말을 답답하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xx답게 행동해’, ‘oo다운 모습을 보여야 해라는 말투가 폭력적임을 나는 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그런 말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 습관인 말투를 갑작스레 바꾸는 것은 힘들다. 그래도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저 말투 하나만 고치는 것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말투는 영혼의 숨결이며 말은 행동의 그림자다."

 

[2장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기계발서의 선구자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축하편지를 보냈다.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카네기 한 명 뿐이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서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챙기는 세심한 태도와 축하의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3장 나를 낮출수록 품격은 올라간다]

 

p.120

50이 된 사람의 말투가 내가 말이야, ! 동기 중에서 제일 먼저 대로로 승진했고, ! 팀장 될 때도 전사 최연소였고, ! 임원이 되는 것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 바로, !” 이런 식이라면 얼마나 없어 보이는가. 오히려 인생에서 실패를 맛보았던 경험을 자주 들려주는 50을 볼 때, 사람들은 그를 가깝게 느끼고 소통을 원하며 존경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오히려 높여주게 되는 겸손의 말투를 50에게 적극 추천한다.

 

"자기 비하 말투와 멀어지되, 자기 낮춤 말투와 친해질 것."

 

[4장 더 이상, 말로 상처주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의학과를 찾은 환자가 제가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이런 병은 어차피 완치라는 게 없어서 말이죠.”라는 말은 의사스럽다.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향해 원론적인 얘기만 하는 의사스러운 말투는 환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의사스럽지 않은 의사의 출현때문이었다. 실제 병원에서 만나고 싶은 의사를 드라마에서 보게 되니 환호할 수 밖에! 저자는 부정적인 예로 의사스러운 말투를 가져와 소통의 예의를 갖춘 ‘50스러운 말투를 장착해보자고 한다.

 

 

 

[550에는 조금 힘 빼고 말하기]

 

p. 225

중요한 사람이란 자기가 모두 행하고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 성과, 돈 등으로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다르다. 문득 떠올렸을 때 곁에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중요한 사람이기보다 누군가에게 잠시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 되기 이전에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

 

 

이 책의 내용은 어려운 이론이 아니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물리학 이론이 아닌데도 저자가 말하는 대로 해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말투를 고친다는 건 힘들다. 단번에 고치려하기 보다는 이 책을 옆에 두고 매일 아침 한 챕터씩 읽어보고 하루를 시작해 보자.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말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괜찮은 게 아닐까. 하루 아침에 품격있는 말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듯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되어가는 자신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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