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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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설재인 작가를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로 처음 만났고 강렬한 어퍼컷을 기꺼이 맞았다. 그 책은 특목고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그만두고 복싱을 하면서 쓴 에세이였는데 그의 글빨에 매료되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고 글을 계속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을 만났다.

 

제목의 세 모양은 주인공 셋을 말한다. 중학교 2학년 유주와 상미, 그리고 어른 진영까지, 세 여성의 서사다. 진영은 교사도 부모도 아닌 남이었지만 그들에게 점심을 챙겨 먹인다.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그렇게 밥을 같이 먹으면서 유대감을 쌓아가고 솟았다 사그라지는 감정들 처리에 어쩔 줄 몰랐다.

 

유주와 상미의 부모는 어쩜 저럴 수 있을까!하며 뒷목 잡을 만큼 비정상적이다. 쉰밥이 분명한데도 아직은 괜찮다며 먹으라 하고, 용돈은커녕 밥값도 주지 않으니 여름 방학 중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같은 학교였지만 친구사이는 아니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대가없는 호의 덕분에 인간다운 식사가 무엇인지 맛보게 된다.

 

상미는 다섯 살 때 유괴 당할 뻔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준 여자를 따라 버스를 탔다가 큰고모가 발견해서 겨우 유괴는 면했지만 낯선 이를 따라갔던 대가는 혹독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먹을 걸 구걸하고, 배곯은 애처럼 행세해서 제 어미를 욕먹이는, '거지 같은 년' 이 되어 있었다. 자식에게 매일 돈타령만 하면서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그 때 그 사람을 따라갔다면, 상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자주 생각했다.

 

다섯 살 유주는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 어떤 아저씨가 꺼내주어 목숨을 건졌다. 자기를 구해준 후 멀쩡하게 인사를 받았던 그 아저씨는 2주후 돌연사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그 사람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남동생을 조산했고 그 아이는 삼일만에 죽었다. 유주는 '남동생 잡아먹은 년' 이 되었고 발뒤꿈치에 콕콕 찌르는 통증을 호소하면 절름발이, 절뚝이로 불렸다. 자신을 구해줄 때 그 아저씨가 뒤꿈치를 잡고 들어 올려준 후 시작된 통증은 정형외과에서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아도 여전했기에 꾀병 부린다며 욕을 먹었다. 유주는 부모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로 하지 못했고 눈물을 참으면 딸꾹질이 나왔다.

 

진영의 진짜 이름은 효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아빠의 성추행을 피해 가출을 시도했다가 이틀만에 잡혀와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쁜 딸년이 됐고 엄마의 비난이 더 심했다. 최대한 빨리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결혼 했다. 그러나 남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지옥같은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효윤의 남편은 유주를 구해주었다가 돌연사한 그 남자였다.

 

효윤은 남편이 구해준 그 아이, 유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유주 엄마의 SNS를 찾아 다니다가 유주가 도서관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 그냥 얼굴만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다가가서 밥을 사주게 되고 상미도 그 점심에 동석하게 되면서 그들은 식구가 된다.

 

식구가 별건가? 글자 그대로 밥 같이 먹으면 식구 아닌가? 꼭 혈연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따뜻한 밥 같이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읽어주며 공유하면 식구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감정 공유까지 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유주와 상미는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지 못했고 진심어린 공감도 받지 못했으며 학교에서도 왕따였다. 마음 붙일 곳 없던 두 아이의 허기를 채워 준 사람이 진영(아이들이 처음 이름을 물었을 때 급조한 이름)이었고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공유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아픔을 잘 아는 진영의 환대는 그들 사이를 강하게 결속시키는 아교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두려워졌다. 그들이 같이 있는 장면이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일 때 어딘가 숨어있을 불길한 그림자의 자장이 느껴졌다. 분명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들을 그대로 행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는 절정의 순간에 검은 자락을 펼칠 것이다!

  

역시 그랬다! 돈이 없어서 수련회를 가지 못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쉼터 같은 공간인 고시원에서 셋 만의 수련회를 했고 마지막 날 밤에 하려 했던 캠프파이어는 고시원의 화재로 성공아닌 성공이 되었다. 아니, 그들만의 캠프파이어는 실패했고, 단단해 보였던 그들의 결속력은 쉽게 풀어졌다. 미디어에 의해 그들의 관계는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사람들이 씹고 싶은 대로 씹어돌리는 안주거리가 됐다. 그들이 같이 밥 먹고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은 사라져버렸다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연대가 결코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했음에도 화재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보고 있기 힘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놀랐다. 작가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나? 아니면 이게 현실인가?

 

"어차피 세상은 계속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요."

 

5년이 지난 시점, 소설의 마지막에서 상미가 효윤에게 한 말이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 성인이 된 상미도 잘 알고 있으며 어른에게 위로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작가가 내린 결말을 읽으며 그들이 다시 수련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효윤은 살면서 배운 것 중 가장 유용했던 게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유주가 읽은 소설 줄거리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p. 125

 

새로운 사람을 만나잖아. 아니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돼.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게 되든, 뭐 신인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든, 방금 데뷔한 그룹의 노래를 듣든 간에, 새로움이라는 건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해. 그건 어쩔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일까? 조금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는데 만약 나와 잘 맞고 내 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잇는데 저쪽에서도 나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떨리는 게 아니라 심장이 마구 요동치는 거지. 이제야 찾았어! 내 운명의 친구, 운명의 작가, 운명의 사랑을 드디어 찾았어! 행복한 기분이 솟아올라. 지금껏 겪었던 모든 어려움이 다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쳐 왔던 시험처럼 느껴지고.

 

 

이 소설에서 건진 가장 밝은 문장이었고 희망적인 문장이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일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 속 등장인물이어도 좋고 작가여도 좋다. 내가 매일 새롭게 만나는 것은 책이니까.

 

나는 유주, 상미, 효윤이 새로운 만남으로 다시 시작할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세 모양이 삼각형의 마음이 되면 좋겠다. 서로를 잘 지지해 주는 세 변이 되길~~

 

그리고 설재인 작가의 차기작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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