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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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작가의 신작에세이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이 출간되었다. 올해 일흔여섯 된 노작가는 이 책에서 지나온 시간 속에서 사람들을 불러낸다. 작가는, 늙어갈수록 자신이 소중하게 지켜온 것을 보호하기 힘들어지기에 서글퍼진다고 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곁에서 가족을 이루며 함께 지낸 이들에 관한 글과 어린 시절을 지켜주고 보살펴주셨던 은사들과의 추억을 관한 모아두었다 , 이제는 이런 글을 써도 좋은 나이가 되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 오래전부터 그의 소설을 읽어온 팬이라면 옛 추억을 함께 회상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작가를 처음 만난다면 한수산 필화사건같은 야만적 시대의 초상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의 기억의 편린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 슬며시 미소가 삐져나올 수도 있다.

 

나는 어젯밤에 읽다가 작가의 옛일이, 작가의 소심한 뒤끝이 내 경험과 똑같아서 반가웠다. 작가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 그의 팔을 잡고 흔들며 웃었을 것이다. 웃기거나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할 때 내가 자주하는 짓이다.

 

작가는 한 때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세 자릿수의 장미를 기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니까 100그루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장미를 심고 싶었다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는 갔지만 워낙 땅이 안 좋아서 서른 그루 정도 심는 것으로 만족했단다. 그 때 아침마다 장미를 꺾어 아이들 방에, 식탁에 꽂아 두고는 가족의 눈치를 살폈다고 한다. 누가 향기를 맡고,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관찰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을 쓴 문장은 이렇다.

 

어쩌다 탄성을 지르는 것은 아내였고, 도대체 아비가 꽂아놓은 장미에 단 한 번도 반응을 보이지 않기는 아들 녀석이었다. 네 이놈아,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저렇게 감성적인데 어쩜 아들이 그럴까 싶으면서도 우리 집 세 남자들도 똑같다며 공감했다. 우리 아이들 중학교 때 백장미 다발을 화병에 꽂아 둔 적이 있는데 아들 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예쁜 꽃이 우리 집에 온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도 그랬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프리지아를 들였는데 무반응보다 심각한, 꽃에게 언어폭력에 가까운 발언을 한 남자가 있었으니 저 글을 읽으며 폭풍공감 할 밖에.

 

예술을 사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글들을 읽으며 작가는 다정다감하고 감성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니까 그렇겠지 싶긴 하다. 평범한 한국 남성들이 저런 감성이기는 힘들 것이다. 1장에서 그의 예술적 감성을 만나볼 수 있었다.

 

2장에서는 아들, , 강아지와의 사연을 읽으며 부정도 이렇게 애틋하구나 감탄했다. 딸이 어렸을 때 자신이 작사 작곡해서 불러주던 자장가를 기억하며 이렇게 썼다.

 

아빠 머리에 흰 서리 내리고

네가 네 생의 주인이 될 때

저무는 바다도 함께 보겠지

바람 같던 세월도 얘기할 거야.

 

어느새 아빠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렸구나. 너 또한 네 생의 주인이 되어……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 저무는 바다도 함께 바라보고, 그 바닷가를 걸으며 바람 같던 세월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돌이 안 된 딸을 데리고 내려가 3년을 살았던 제주 시절을 회상한 글에서 작곡가 길옥윤 선생과의 추억이 나온다. 자신이 작사를 하고 길옥윤 선생이 작곡하여 자장가를 만들어 딸에게 남겨주고 싶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길옥윤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사연이었다.

 

무언가를 후회하는 것은 그때 거기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일본드라마에서 들은 말을 인용하며 작가는, 사랑이 있었기에 후회라는 괴로움도 남는다고 했다. 위 문장처럼 감성적인 문장들을 인용해본다.

 

소년기의 추억을 넘어서서 참으로 따스하게 김환기의 그림을 껴안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오래 그의 그림 앞을 서성거릴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속에 행복해했었다.” p.50

피아노 음악은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주로 들었지만, 거의 빼놓지 않고 매일 듣던 것은 젊은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실황녹음 레코드였다. 음향관리도 방음장치도 없는 목조 다방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섞여 들었던 음악은 그렇게 우리들만의 주제곡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어쩌다 그 음악이 들리면 눈물이 핑 돌게 그 시절이 다가와 서성거린다.”  p.101 

 

"봉봉이로 하여 오늘도 내 하루의 비늘 하나가 아름답다. " p.113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는 어떠했던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호소하는 목소리조차 가혹하게 봉쇄되던 노동운동의 새벽, 여공들이 기숙사에서 뛰어내리다 죽고, 강제연행에 맞서 웃옷을 벗어던지며 서로를 부둥켜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를 달이 뜨면 가리라하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달 밝은 밤에 가자는 낙관이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 어두우니 달이라도 뜨면 가리라하는 비원의 희망이었다."  p.121

 

"담배여, 잘 있어. 지난 봄 흩날리는 벚꽃 그늘에 서서 한 모금의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바라보던 세상의 황홀함을 네가 앞으로 어찌 알겠느냐고 유혹하지는 말아줘. 고마웠다, 담배여."  p. 251

 

 

3장에서는 독자와 은사님과의 사연이, 4장은 취미와 일상을, 5장에서는 평생 친구였던 술과 담배에게, 그리고 수녀님에게 쓰는 편지이다.

 

양장본에다 점묘화 느낌의 표지 그림에, 내지에는 오수환 화백의 추상화도 4점이나 실려 있는데 예술을 사랑하는 작가의 취향을 잘 살려 만든 것 같다. ‘작가의 말마지막 문단에서 회한어린 마음을 드러냈으나 독자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다. 이 책으로 작가의 지난 시절을 독자와 나눌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언제 다시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랴. 기억에도 없이 잊어버렸던 편지들을 꺼내 읽듯이, 마음의 다락방 한 곳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마음이 이럴까 싶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 모아놓은 글들을 바라보는 오늘, 밖에는 또 하루가 꽃처럼 지고 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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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야타가라스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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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시리즈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책, <변두리 로켓:야타가라스>가 출간되었다. 1,2권은 각기 다른 밸브 제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연결성이 있다. 지난달에 나온 <변두리 로켓:고스트>는 쓰쿠다 제작소가 농업용 트랜스미션 제작에 들어가고 신생 중소기업 기어 고스트와 합작을 위해 물심양면 도와준다. 하지만 기어 고스트의 대표 이타미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끝이 났다.

 

마지막 책 <변두리 로켓:야타가라스>에서 어떻게 연결될지 책이 올 때까지 자못 기대하고 있었다. ,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변두리 로켓단 활동이 이제 마지막이라니 아쉽다.(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변두리 로켓> 시리즈 전권을 받고 서평을 쓰는 서평단, 일명 변두리 로켓단을 모집했는데 당첨되어 몇 달간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제목 야타가라스는 일본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삼족오), 소설 속에서 쓰쿠다 제작소의 뛰어난 밸브로 완성된 로켓에 실어 보낸 길잡이 위성의 명칭이다.

 

이 책의 시작은 3권에서 연결되는 내용으로 이타미가 다이달로스와 손을 잡은 것은 옛 직장이었던 데이코쿠 중공업에 복수를 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데이코쿠의 마토바 이사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다. 과연 기어고스트와 데이코쿠가 한판 승부를 벌일까? 그런데 앞부분에서 작가가 어찌나 고구마를 먹이는지 너무 답답했다. 데이코쿠 중공업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 자이젠 부장과 쓰쿠다가 농업용 자율주행 로봇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김없이 난관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주역은 마토바 이사다. 두 회사 합작인데 어떻게든 힘을 합쳐야되는데 마토바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뿐이다. 옛 친구인 노기 교수까지 끌어들였는데 쓰쿠다 제작소의 상황은 더더 늪으로 빠져든다.

 

이러니 답답하지 않겠나! 하지만 이제는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갈지 알기에(나 변두리 로켓 네 권째 읽는 사람이니까!) 쓰쿠다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읽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3권에서 고향으로 돌아간 경리부장 도노무라는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벼농사를 짓는 데 여념이 없다. 농사에만 신경 써도 정신이 없는데 도노무라는 고향에서, 고향친구에게까지, 견제를 받게 되었다. 아버지 대부터 품종벼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지역의 조합에서 합류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누가 농촌이 인정이 넘친다고 했나? 몇 십년간 회사라는 조직에서 겪은 문제들이 농촌에서도 유사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도노무라는 놀랐다. 게다가 무인로봇을 논에서 시험운행하는 문제 때문에 도노무라는 또 겉돌게 된다.

 

왜냐하면 도노무라의 논에서 운행하게 되는 로봇은 쓰쿠다 제작소와 데이코쿠 중공업에서 만든 것이고, 그 동네 조합에서는 기어고스트를 위시한 중소기업 연합체들이 제조한 것이었다. 크게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데이코쿠 중공업의 마토바 이사가 온갖 비열한 방식으로 중소기업을 괴롭힌다. 이 시리즈의 대표적 빌런인 마토바가 왜 그런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번 책에서 상세히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그를 동정할 뻔했다. 그 정도로 자세히 불쌍하게? 다뤄주었지만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모든 인간이 마토바 같지는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연합체의 싸움에서 과연 중소기업이 승리할까? 궁금하다면 책으로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힌트는 기술력이다. 처음 트랜스미션 개발 당시에는 몰랐던 결함이 완제품에서 드러난다. 이타미와 시마즈의 회사 기어고스트에서 출발한 문제이며 시마즈는 쓰쿠다에 합류하게 되고 이타미는 계속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지 못해서 헤맨다. 모든 제품(특히 로봇)이 그렇겠지만 눈꼽만큼의 오류가 손 쓸 수 없이 크게 발전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기술이니 로봇공학이니 그런 거 몰라도, 소설로만 읽어도!

 

농업용 자율주행 로봇은 세계적으로 대세가 되었다. 책 속에서 일본은 농사인구의 고령화 때문에 더욱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농사 짓는 젊은이들은 특수작물, 즉 수익성이 높은 작물 재배로 몰리고, 벼농사는 예전부터 해오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버튼 한번으로 가능한 로봇은 이제 필수품이 되었다. 작가가 시리즈 첫 번째에서 우주를 향한 인간의 무한한 꿈을 주제로 삼았다면 마지막에는 인간이 발 딛고 사는 땅으로 내려왔다. 꿈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다. 꿈을 꾸려면 살아있어야 하고 살려면 먹어야 한다. 그 주식인 벼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쓰쿠다 제작소가 큰일을 해낸다.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벼농사를 짓는 데에 쓰쿠다는 진심을 다한다. 현장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쓰쿠다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어려움에 처한 농업을 구하는 게 무인 농업로봇의 목표이자 이념이라는 쓰쿠다의 일성은 작가의 목소리가 아닐까! 쓰쿠다의 기업 정신 역시 작가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예상해 본다.

 

이타미에게 쓰쿠다가 한 말이다.

"도구는 자신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야.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거지. 그런데 당신들의 비전에는 당신들밖에 없잖아. 중소기업의 기술력이라느니, 변두리 공장의 의지라느니 내세우지만, 누가 만들었든 그건 사용자와 아무 관계없어. 정말로 중요한 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야. 당신들에게 그런 마음가짐은 있나?"

 

사용자를 위한 진심, 그 진심을 다하는 마음이 기업 정신과 결합할 때 쓰쿠다 제작소 같은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변두리 로켓> 시리즈는 과학이나 공업(밸브 제조)관련 기술을 전혀 몰라도, 라이벌 기업 간 경쟁구도 속에서 벌어지는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며 소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우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주인공 쓰쿠다 고헤이까지! 몹시 착하게 생겼을 것 같은데 책에서는 인물의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묘사를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기에 검색해보니 잘 생긴 배우가 쓰쿠다 역을 맡았다. 책으로 상상하며 읽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잘생긴 쓰쿠다라니...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 쓰쿠다에게 내 마음도 진심이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제공받아 작석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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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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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적 질문 하나!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는가?

오늘, 한국에서, 먹고사니즘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이 가닿을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이자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은 저 질문 안에서 다시 묻는다!

p. 124

우리가, 또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가, 종종 잊고 있는 것은 이런 근원적 질문이며 그 중요성이다. 돈 벌어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잘산다는 것의 의미는 ‘행복’을 떠나 존재하지 않고, 행복은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 속에서만 의미를 부여받는다.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느 때 가장 행복한가? 잘 먹고 잘살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그 이유는?

-<만인의 인문학> '근원적 질문 던지기' 中-

<만인의 인문학>은 도정일 선생이 각종 매채애 기고했던 글 들을 모아 2월에 출간한 책이다. 인문학자이므로 그의 글이 인문학적이겠지만, 이 책은 특히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의 부제에 적합한 글들을 모아 묶었다. 위 인용한 내용(질문)은 1995년 글이다. 25년도 더 전에 했던 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시간을 초월해 언제든 화두가 될 만하다.

1995년과 2021년,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태도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일 것이다. 그 때는 각 가정에서 PC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때였고, 지금은 누구나 내 손안에 컴퓨터를 들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컴퓨터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원하는 정보를 취하고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사고 싶은 것을 산다. 정보의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만 과연 그러한가? 한편, 그 때나 지금이나, 아니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삶의 양식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탄생부터 지금껏 변치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잘 먹고 잘 살고 그리하여 행복하길 원한다. 이것은 하나의 명제다!

선생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느 때 가장 행복한가?"

"잘 먹고 잘살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그 이유는?"

내가 감히 명제라고 했던 문장은 위 세 질문의 그물에 모두 걸린다.

우리에게 행복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인데 가장 행복한 때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잘 먹고 잘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이유 역시 제각각이며 몹시도 개인적인 이유일 터이다.

나는 어제 지인의 모임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는 거의 도박판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과 코인투자에 달려들고 있다. 어제 들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지인은 한 달 전부터 코인 투자(투자인지 도박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를 시작했다. 주식이고 코인이고 평생 해본 적 없었는데 다니고 있는 회사(케이블제조납품업체)의 직원들이 대부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동료의 권유로 시작했다. 20년 넘게 그 회사에 몸 바쳐 다닌 창립멤버라 할 수 있는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끼고 있으며 이런 투자라도 해서 급여 외에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 가내공업으로 출발했던 회사는 이제 어엿한 중소기업이 되어 매출이 수직상승하고 있음에도 직원들의 복리후생은 초창기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으며 사장은 어떻게든 급여를 적게 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회사를 그만둘 순 없으니 남들 다 한다는 주식투자를 하고 싶지만 그건 어려우니 코인투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 회사 이야기를 자세히 한 이유는 지인을 포함한 그들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만나온 그 사람이 그렇게 들떠서 무슨 종교 전도하듯이 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동료들이 수익을 얻은 사례까지 자랑스레 말했다. 회사를 이전보다 즐겁게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지인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와 표정을 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먹고 사는 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이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니 나도 하고 싶다! 그렇게 발을 들인다! 재미있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냐! 고 했다.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 투자의 끝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악담이 아니고 지인의 사례로 일반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제 젊은이들이 영끌해서 주식투자한다는 뉴스는 새롭지도 않다. 나는 그런 뉴스를 보며 남의 일인줄, 20~30대들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내 주위의 사람들까지 투자 바람에 빠져들 줄은 몰랐다. 나이가 많건 적건 대한민국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려우므로 각자도생의 한 방편이 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선생의 마지막 질문, 잘 먹고 잘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충족을 너머 자신이 하고 싶은 뭔가를 하며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돈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면서 행복하다면, 역시 그것으로 되었다. 시한부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도정일 선생의 질문 속 행복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가 말한 부자는 이러하다. 위 글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한다.

p. 125

구석기 인류는 왜 동굴벽에다 그림을 그려야 했던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해당 분야의 학자가 되고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근원적 질문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궁금증과 호기심을 촉발한다. 바로 이 상상력, 궁금증, 호기심이 인간의 힘이고, 그의 상표가 아니던가? 그것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 던지기의 능력은 어쩌면 당신의 상상력을 키워 큰 부자가 되게 해줄지도 모른다. 더더욱 좋은 일 아닌가.

예술로서의 인문학을 말하면서 선생은 동굴벽화를 자주 인용했다.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어 보이는 그 활동, 벽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석기 시대 사람들은 왜 한 걸까? 저자는,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직접적 생계 유지가 되지 않을지언정 인문학적 질문이, 인문학적 사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만인의 인문학>에 실린 글들은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유효하다. 선생은, 자신의 모습을 타인을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주문한다. 몇몇 철학자는 ‘행복’을 일시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며칠 혹은 몇 시간 지속되지 않을지라도, 내가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가? 그 감정이 드는 순간을 자주 만들어 보려 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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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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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존재하는 한 비리와 부패는 늘 우리 주위에 독버섯처럼 자라왔다. 이 지구촌에 비리와 부패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부패 공직자를 응징하고 처단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 아마 우리나라만큼 그들에게 국민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제 깨어있는 시민들이 나서야 할 차례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법기관에 더 이상 맡길 수는 없다. 대안이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철저한 감시자가 되고 집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 시민으로서의 직무다.

 

감시자로서의 국민의 역할이라는 책 속 칼럼 내용이다. 국민이 집행자가 되어야 한단다! 직접 나서라고? 대한민국 국민은 세상이 요지경 속이어도 각자도생하기 벅차다. 친일파 후손들이 독립운동가 후손보다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정경유착으로 재벌이 대를 이어 경제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며. 감시견제 해야 할 언론은 정치권력으로 변신한 검찰과 쿵짝을 맞추고 있다. 언론이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포털싸이트에 편집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뉴스 기사를 AI가 띄우기 때문에 회사의 개입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으나 MBC의 취재에 의하면 아니었다.

 

이러한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기 바쁜 시민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나쁜 놈들 벌주는 집행자가 되라고? 어불성설이다. 소설 속에서라도 대신 집행해주길 바란다. 조완선 작가의 <집행관들>에서 그들이 행동한다. 소설 초반에 사망한 4명은 악질 고문형사이자 민족 반역자, 부패정치인과 공직자, 악덕 기업가이다. 우리 사회 기득권이면서 적폐세력이다. 그런 이들을 하나하나 처단해나가는 작업이 작가에게는 카타르시스였을 것 같고, 독자에게는 대리만족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실제로는 저런 인간들 처리 못하고 책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요즘 드러나는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 둘의 행태를 보면 놀랍지도 않다. 저들이 하는 짓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이 드러나도 거짓말로 일관하며, 무엇보다 국민들 앞에 너무나 당당한 저 태도에 치가 떨린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거리낌 없이! 너희들도 할 수 있으면 해봐! 못할 거면 닥치고 있든가!” 이러는 것 같다. 침묵하는 언론, 별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알아도 정치인들 저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냐며 체념하는 사람들... 그렇게 기득권은 공고해지고 시장 후보들보다 더 심각한 이들도 잘 먹고 잘 산다.

 

집행관들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모두 가족을 잃었거나 억울하게 당한 경험이 한이 되었다.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는 허동식은 아내가 철거현장을 촬영하다가 깔려 죽었고, 아주일보 정기자는 남동생이 군대에서 의문사했다. 역사학 명예교수 송기백과 최주호 교수, 정보요원등 집행관들도 각계 각층에서 제 목소리를 내거나 음지에서 활약하는 이들이다.

 

집행관들이 위정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장면에서는 통쾌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검찰에게 꼬리가 밟혀서 한발한발 뒤를 옥죄어 올 때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이렇게 빨리 잡히고 마는 건가? 그럼 너무 싱겁잖아? 싶었다.

 

우리나라 검찰이 비리의 온상임이 계속 드러나면서 신뢰를 잃은 조직이 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래도 집행관들의 꼬리를 잡는다. 팔 다리까지 뜯겨져 나갔으나 몸통은 잡지 못했다. 마지막에 집행관 조직이 와해되면서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몸통이 살아있는 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암시했다. 집행관들의 일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400여쪽이 넘는 분량이었으나 대사 장면이 많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영화 한편 본 기분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이기에 뒷맛은 씁쓸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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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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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의 서평단에 신청했다.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즐겨보고 있기 때문에 영화와 철학을 버무리는 시도를 했다니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소리도 없이>를 보고나서 검색하다가 라이너가 해석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좋다는 건 알겠는데, 아니 배우들의 연기 훌륭하고 연출도 좋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뭔가 찜찜했다. 뭐랄까? 모순된 감정이 든다고 해야 할까... 분명 유아인(태인)과 유재명(창복)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맞는데 나는 그들이 별로 잘못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자꾸만 두둔하려는 맘이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마지막 씬에서 정점을 찍었다. 유괴당했던 문승아(초희)가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태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초희의 당연한 행동을 보며 배신감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싶었던 거다. 내 맘을 나도 몰라 숙제의 답을 찾듯 돌아다니다가 보게 된 라이너의 <소리도 없이> 해설을 보고 이마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리도 없이>에서 잡아낸 단어는 위장이었다. 영화 후반부 화목한 가족의 한때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시민가장의 가면을 쓴 창복, 순박한 장남의 가면을 쓴 태인, 착한아이 가면을 쓴 초희까지 그들은 유사가족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찍으며 하하호호 웃고 있는 그들이 하는 그 행동은 사실 협박을 하기 위해서다. 유괴범이 돈을 뜯기 위해 유괴당한 아이에게 직접 편지를 쓰게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가면을 쓴 모습과 유사가족으로 위장한 그들을 진짜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당연한 초희의 행동에 놀란 것이다. 라이너는 이렇게 내가 눈치 채지 못해서 어리둥절하는 지점을 딱 집어 설명해 주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만큼 라이너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서 책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는 뜻이다.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는 한 권으로 영화와 철학을 같이 만날 수 있다. 11편의 영화에 11명의 철학자를 접목시켰고 최신영화부터 고전까지 망라했다. 철학이 들어가서 어렵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구독하는 사람이나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영화를 해설하고 라이너의 스타일로 해석해내는 것에 철학이 조금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썼다.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철학이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늘 안타깝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내가 지닌 재산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 11명의 사유를 말하려면 책 11권이 더 있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을 빼고 그저 영화를 읽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 어렵게만 받아들이는 철학을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대로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화라는 돋보기를 갖다 댄 것이지요. 영화와 철학이 동시에 다루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유가 가능함을 말하고 싶었으나 때로 깊이가 얕은 부분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한 영화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영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를 살펴보고 자신이 본 영화부터 읽기 시작해도 되고, 아직 안 본 영화라도 관심 가지고 있었다면 그 꼭지부터 읽어도 될 것이다. 이런 책은 그냥 읽고 싶은 것부터 읽어도 된다!

 

나는 목차를 보고 그래비티 x 쇼펜하우어를 가장 먼저 읽었다. 영화 <그래비티>를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었는데 라이너가 이 꼭지의 제목도 잘 뽑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꼭지를 소개할텐데 다른 꼭지도 유사하게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비티>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 것 같다고 시작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생은 곧 고통이고, 이 세상은 모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영화의 주인공 라이언 스톤의 생도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선택은 고립되는 것, 고요함 속에 침전되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쇼펜하우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체념과 맥이 닿아 있다는 설명 다음으로 서양 철학사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개별화의 원리’ ‘범신론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철학과 영화 사이를 오가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p.160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세상은 약한 의지를 지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말한 체념과 금욕의 덕은 결코 삶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곳은 적막과 체념의 세계가 아니라, 지겨울 정도의 소음이 존재하고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입니다. 집착은 버리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고, ‘놓아주는 것에는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삶을 향한 의지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라이언의 뒷모습처럼.

 

 

각 꼭지의 마지막에는 ‘Inside the Moivie’‘Inside the Philosopher’라는 페이지를 두어 영화와 철학자를 한 번 더 정리해주는데 앞 내용과 겹치지는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와 철학을 접목시킨 이 책도 흥미로울 것이다. ‘라이너의 컬처쇼크구독자라면 눈으로 읽는 텍스트가 라이너만의 독특한 억양으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진심 놀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너가 읽어주더라~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단점이 있라이너만의 영화 해석에 더 비중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면 철학시사회라는 제목에 안 맞았겠다. 그러면 철학은 빼고 영화만 얘기하는 건 어땠을까? 각 꼭지가 짧더라도 영화의 숫자를 늘려서 라이너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을 하는 거다. 이 글의 서두에 쓴 <소리도 없이>처럼 말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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