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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의 서평단에 신청했다.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즐겨보고 있기 때문에 영화와 철학을 버무리는 시도를 했다니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소리도 없이>를 보고나서 검색하다가 라이너가 해석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좋다는 건 알겠는데, 아니 배우들의 연기 훌륭하고 연출도 좋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뭔가 찜찜했다. 뭐랄까? 모순된 감정이 든다고 해야 할까... 분명 유아인(태인)과 유재명(창복)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맞는데 나는 그들이 별로 잘못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자꾸만 두둔하려는 맘이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마지막 씬에서 정점을 찍었다. 유괴당했던 문승아(초희)가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태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초희의 당연한 행동을 보며 배신감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싶었던 거다. 내 맘을 나도 몰라 숙제의 답을 찾듯 돌아다니다가 보게 된 라이너의 <소리도 없이> 해설을 보고 이마를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리도 없이>에서 잡아낸 단어는 ‘위장’이었다. 영화 후반부 화목한 가족의 한때처럼 보이는 장면 속에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시민가장의 가면을 쓴 창복, 순박한 장남의 가면을 쓴 태인, 착한아이 가면을 쓴 초희까지 그들은 유사가족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찍으며 하하호호 웃고 있는 그들이 하는 그 행동은 사실 협박을 하기 위해서다. 유괴범이 돈을 뜯기 위해 유괴당한 아이에게 직접 편지를 쓰게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가면을 쓴 모습과 유사가족으로 위장한 그들을 진짜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에 당연한 초희의 행동에 놀란 것이다. 라이너는 이렇게 내가 눈치 채지 못해서 어리둥절하는 지점을 딱 집어 설명해 주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만큼 라이너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서 책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는 뜻이다.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는 한 권으로 영화와 철학을 같이 만날 수 있다. 11편의 영화에 11명의 철학자를 접목시켰고 최신영화부터 고전까지 망라했다. 철학이 들어가서 어렵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므로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라이너의 컬처쇼크’를 구독하는 사람이나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영화를 해설하고 라이너의 스타일로 해석해내는 것에 철학이 조금 추가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썼다.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철학이 어렵고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늘 안타깝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내가 지닌 재산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 11명의 사유를 말하려면 책 11권이 더 있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힘을 빼고 그저 영화를 읽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 어렵게만 받아들이는 철학을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대로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화’라는 돋보기를 갖다 댄 것이지요. 영화와 철학이 동시에 다루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사유가 가능함을 말하고 싶었으나 때로 깊이가 얕은 부분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명한 영화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영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차를 살펴보고 자신이 본 영화부터 읽기 시작해도 되고, 아직 안 본 영화라도 관심 가지고 있었다면 그 꼭지부터 읽어도 될 것이다. 이런 책은 그냥 읽고 싶은 것부터 읽어도 된다!

나는 목차를 보고 ‘그래비티 x 쇼펜하우어’를 가장 먼저 읽었다. 영화 <그래비티>를 감명 깊게 봤기 때문이었는데 라이너가 이 꼭지의 제목도 잘 뽑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꼭지를 소개할텐데 다른 꼭지도 유사하게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그래비티>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 것 같다고 시작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생은 곧 고통이고, 이 세상은 모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영화의 주인공 라이언 스톤의 생도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선택은 고립되는 것, 고요함 속에 침전되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쇼펜하우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체념과 맥이 닿아 있다는 설명 다음으로 서양 철학사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개별화의 원리’ ‘범신론’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철학과 영화 사이를 오가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p.160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세상은 약한 의지를 지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말한 체념과 금욕의 덕은 결코 삶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와야 하는 곳은 적막과 체념의 세계가 아니라, 지겨울 정도의 소음이 존재하고 중력이 지배하는 지구입니다. 집착은 버리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고, ‘놓아주는 것’에는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삶을 향한 의지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라이언의 뒷모습처럼.
각 꼭지의 마지막에는 ‘Inside the Moivie’와 ‘Inside the Philosopher’라는 페이지를 두어 영화와 철학자를 한 번 더 정리해주는데 앞 내용과 겹치지는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와 철학을 접목시킨 이 책도 흥미로울 것이다. ‘라이너의 컬처쇼크’구독자라면 눈으로 읽는 텍스트가 라이너만의 독특한 억양으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진심 놀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너가 읽어주더라~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단점이 있라이너만의 영화 해석에 더 비중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면 철학시사회라는 제목에 안 맞았겠다. 그러면 철학은 빼고 영화만 얘기하는 건 어땠을까? 각 꼭지가 짧더라도 영화의 숫자를 늘려서 라이너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을 하는 거다. 이 글의 서두에 쓴 <소리도 없이>처럼 말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