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아빠의 바다
김재은 엮음, 김무근 그림 / 플랜씨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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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우체국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유치환의 시, “행복”속의 그 우체국 말이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짝사랑 그녀 이영도에게 편지를 2000통이나 써서 부친 곳이 바로 통영 우체국! ‘행복’이라는 시와 유치환의 짝사랑 사연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내게 통영이라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해나 거제는 가봤지만 통영엔 가지 못했다. 부산과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을 오랜 시간이 지나 백석의 시 ‘통영’을 읽고 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백석의 ‘통영’은 오감을 일깨우는 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짭쪼름한 맛이 혀 끝에 묻어나는 듯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꽝꽝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시, 통영 중에서-

 

이 시에 등장하는 명정골 사는 난이라는 여성, 백석은 그 이가 명정골에 있을 것만 같아 만나러 갔지만 몇 번이나 허탕을 친다. 이 사연 속엔 배신자 친구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진진하다.

아, 처음 통영에 가서 내가 찾은 곳은 바다가 아니라 우체국이었다. 그런데 감성이라곤 티끌도 없는 그저 관공서일뿐이었다. 절절하던 사랑의 감정을 시어에서 낚아낼 감성충만하던 시기가 다 지나 당도한 통영우체국은 문이 닫혀 있었다.(찾은 날이 토요일이라ㅠ)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지 아닌지 확인을 못했다. 맥없이 동피랑 마을을 한바퀴 돌고 그 언덕에서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여봤다. 배가 뿡뿡하고 우는가 싶어서...

사실 통영은 유명 예술가들이 활동한 도시다. 예술가들은 통영 바다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일반인도 통영 바다에 서면 예술가가 되는가 보다. 책 <통영, 아빠의 바다>에 그림을 그린 김무근씨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일산에서 살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 후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통영으로 아예 내려왔다. 50년만의 귀향이었지만 그의 눈에 바다는 그대로였다.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 자릴 잡고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침바다”를 보는 순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겹쳐졌다. 두 그림은 분명 차이가 있다. 물감이 다르고 붓 터치가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뜨는 바다에 나간 화가의 감성은 비슷했으리라 짐작된다.

 

 ↑↑ "미래사"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또 “수련연못”이 떠오르는 그림을 발견했다. 구도와 다리가 “수련연못”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 분이 모네를 좋아하지 않을까? 또 짐작해봤다.

"엄마가 또 다리를 건너고 계시네요? 저 뒤에 손잡고 따라가는 아이랑 아이 엄마는 주원이랑 미라죠?"

 

"아이다, 그냥 절에 온 사람들이다. 철수 아저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 보고 그린기라."

 

편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통영 미륵산 남쪽 기슭, 미래사 가는 길. 통영에 가면 엄마가 앞장서서 온 가족을 끌고 가시는 단골 등산 코스라 당연히 엄마랑 올케, 조카인 줄 알았는데... 휠체어 탓에 같이 등산을 못 가시는 아빠가 직접 보신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책을 받아서 그림만 먼저 보고,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읽었다. 딸 김재은씨는 아빠의 그림을 자신의 페이스북 배경이미지로 썼다가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 아빠의 그림을 계속 올리게 되었다. 그림에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그러기 위해 통영에 계신 아빠와 자주 전화를 하고 카톡을 했다. 젊어서는 일만 하신 아빠를 보며 일을 정말 좋아하시는가보다, 딸은 생각했다. 30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온라인으로 전시회를 하며 부모님과 가깝게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보통의 부녀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없다. 멀리 떨어져 산다면 자주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안부 전화나 가끔 주고 받는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취미생활인 그림을 딸이 관심가지고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대화하게 되었다. 참 부러운 부녀사이다. 가족 간에 공통의 소재로 대화하기 쉽지 않은데 그림이 매개역할을 했으니 역시 예술이다.

그동안 통영은 나에게 시인의 도시였는데 이젠 바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내 머릿 속에 통영 바다의 이미지는 이 책의 그림, 김무근씨의 고향 바다, 김재은씨의 아빠의 바다로 각인되었다. 요 근래 통영 소개 책을 몇 권 읽었다. 마침 이번 토요일, 통영에서 홍승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어서 갈 예정이다. “등대가 있는 풍경” 그 바다를 찾아볼 시간까지 될진 모르겠지만, 통영 바다는 꼭 보고 와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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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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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이제 두 달 여 남짓 남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의 기대감이란 거의 비슷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보다 더 희망적으로 시작했다. 같은 숫자가 두 개씩 반복되는 것이 시각적으로 동글동글하고, 이공이공이라 발음하면 청각적으로도 듣기 좋지 않은가! 그저 내 기분탓이었던 거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족적으로 현대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을 냈고 문학계에서도 기획물들이 속속 출간되었다. 최근에 다양한 앤솔로지 소설집이 출간되고 있다. 아르떼 S 시리즈 7번째로 출간된 <쓰지 않을 이야기>는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다. 10개월가량 지나온 코로나 시대를 소설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를 포함하여 4편이 실렸다.

첫 작품 조수경 작가의 “그토록 푸른”의 주인공 주소영은 여행사에서 일했지만 전염병 때문에 해고되어 새벽배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냉동고다. 주문명세서대로 냉동제품을 찾아 바구니에 담고 분류하는 일이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영하 20도가 넘는 냉동고에서 일하는 걸 시원한 곳이라 다행이라 여긴다. 그만큼 그녀가 생계를 잇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행인지 아닌지 전염병의 확산은 주문량 증가로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물류센터에 확진자가 생기면 폐쇄가 되므로 모두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소영은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고 있고 아직 젊으니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영의 발가락 끝에 푸르스름한 색이 보였다. 이 전염병의 증상중 하나가 손발끝이 푸르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그런데 점점 손끝도 푸른빛을 띠게 되어 출근 시 검사에 걸리지 않으려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간다.

그런데 정육코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직원이 피부가 진한 녹색빛을 띤 것을 확인하고 소영이 팀장에게 묻는다.

“이제 어떡하죠?”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독자는 예상할 수 있다. 소영이 파운데이션을 바르면서 했던 생각 때문이다.

‘좀 더 지켜보다가 상태가 나빠진다 싶으면 그때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게 나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에서 지급하는 일당에 생계가 걸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잔인하고 비루한 현실이다. 전염병의 위험보다 내게 닥칠 생계의 위협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은폐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 행동을 한 개인은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물류센터가 문을 닫으면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을테니까. 그렇게 속이는 것이 가능할까? 금방 드러나지 않을까? 다른 이들에게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만 같다. 냉동고의 그 두 명이 한 생각과 행동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우울한 예측을 하게 하는 결말이었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과학의 발전으로 지극히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염병 하나를 막지 못해서 직장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현실이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하루살이 인생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국가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돈을 풀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진척이 더디던 ‘기본소득’문제가 이번 기회에 화두로 치고 올라온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생존의 기본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소설 속 사람들처럼 거짓말로 문제를 더 키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소설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은 코로나 발생 초기에 청도 요양병원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한 상황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는 4편의 소설 중 이 소설에 가장 공감이 되었다.

주인공 일남은 일찍 엄마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살림을 살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돌봤고, 남매를 키웠다. 그정도면 그만할 때도 됐건만 그녀의 돌봄노동은 계속 됐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낳은 딸을 거두어야했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그 둘을 한 집에서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전염병 때문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욕하다, 부친은 사망했고 일남의 평생 가장 황량한 장례식을 치르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지 않나?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평생을 가족 챙기는 일만 하며 살아야 하나? 더 기막히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을 일남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 피해 지원금을 받으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집에만 있는 남편과 손녀의 삼시 세끼를 해먹여야 하는 일상에 지쳐간다. 딸은 시집가서 자기 살림을 살고 있지만,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줄 알았던 아들은 연애하다 덜컥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엄마는 저런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는 못 키우겠다며 일남에게 맡기고 가버렸다. 그래서 끝날 것 같았던 육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10년 동안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혀서 이쁘게 키웠는데 그 가영이 성착취물 피해자가 됐다.

일남은 도무지 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했는데 장례식장에, 필리핀 사는 남동생도 서울서 아직도 시험 공부하는 아들도 오지 못했다.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인 거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녀가 온라인상으로 피해자가 되다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막막하다.

이 소설은 코로나19와 n번방 사건을 섞었다. 여성은 늘 가사와 육아의 당사자였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도 늘어난데다 외출도 못하다보니 가족구성원이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주부의 가사노동량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코로나로 파생된 문제가 많지만 돌봄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소설 주인공 일남처럼 평생을 해온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런 문제가 닥치면 대부분 여성의 차지가 된다. 거기다 손녀까지 얄궃은 일을 당했으니 일남에게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가중된 것이다. 그녀는 교묘히 진화하는 온라인 성범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아들에게 가영이에게 신경쓰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소설 마지막에 일남은 익명으로 온 택배 박스를 받는다. 내용물인 어린이용 마스크를 의심의 눈초리로 요리조리 살펴보다 바닥으로 떨어진 종이에

"힘내라, 대구 경북!"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본다. 그 문구가 일남에게 정말 힘을 주었을까?

나는 공허하게 들렸다. 현실에서 “해시태그 힘내라! oo”운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속 일남이 처한 상황에서 그 문구는 모순적이다. 그녀의 일상은 또다시 남편과 손녀를 위해 삼시세끼 차려야 하고 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아마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가영의 친구들이 알게 되면 안 되니까...

나머지 두 소설도 전염병이 소재이지만 “두”는 성병으로 의심되는 병이 시골 분교에서 퍼지고 있는 이야기다.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는 중국에서 20년간 일하던 아버지가 전염병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와 예전에 가족이 살던 동네를 남자친구와 다니는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4편 모두 전염병이 일상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 같았다. 우리가 어디 이런 날이 올 줄이나 알았나! 삼복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게 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세상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현타시간도 주었다. 마스크 속 입 냄새에 화들짝 놀라 자신이 이런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인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나이가 몇이건 태어나 살아온 시간들과 전혀 다른 일상을 1년 가까이 살았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한 방에 소탕되길 바란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던 일을 예전처럼 하길 원한다. 허나 그 일은 점점 요원해 보인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것이 일상이라는 것도 안다.

현실 속 뉴스에서 듣고 본 것을 소설에서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처절하고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코로나를 소재로 한 밝은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소설가들도 앞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지 않어서 제목을 <쓰지 않을 이야기>로 정한건 아닐까? 내 맘대로 생각해봤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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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 하니? - 잠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마음
이현경 지음, 선미화 그림 / 책밥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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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밤중에 뭔가를 한다. 주로 책 읽기와 리뷰 쓰기이다. 사위가 고요함으로 깊숙이 물드는 때는 자정 즈음이다. 자정을 지나 한시, 두시로 넘어가며 들리는 일정한 소리는 시계 초침 소리뿐이다. 음악도 라디오도 틀지않고 메트로뇸처럼 똑딱거리는 초침만이 배경음이 되는 시간이다. 가끔 고양이 토르가 놀아 달려며 우애앵 거리거나 저 혼자 종이 박스를 들락거리며 내는 소리는 안도감을 준다.

 

 

 

그렇게 오롯한 내 시간을 즐기다보면 가끔 어슴프레한 새벽 기운이 창안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예전에 이 시간대에는 라디오를 주로 들었었다. 요즘이야 유튜브나 팟캐스트처럼 듣고 볼거리들이 늘어나다보니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허나 아직 라디오라는 매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새벽시간까지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하니?>는 늦은 시간? 아니 이른 시간이라 해야 할까? SBS 러브FM에서 “이현경의 뮤직토피아”를 진행하는 이현경 DJ가 낸 책이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보내온 청취자들의 사연과 DJ의 목소리를 토대로 구성되었다. 그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보내온 사연들은 공통점이 있다. 새벽 2시부터 4시라는 시간대는 조용해서 그런지 조금은 분위기가 다운되는 또는 센티멘털한 사연들이 많았다. 일과를 마치며 늦은 마무리를 짓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싶어 했고,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8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이현경 아나운서는 베테랑답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주로 책의 문구를 인용했는데 그 책들은 마지막에 “디제이의 목소리에 도움을 준 책들”로 소개해주고 있어 더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각 사연(챕터)뒤에 어떤 음악을 선곡해서 틀어주었을지가 궁금했다. 뮤직토피아 애청자라면, 책에 자신의 사연이 채택된 사람은 음악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음악 덕분에 더 위로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같이 이 프로를 듣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 정보도 제공해 주었다면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청취자 사연에서 노래를 신청한 경우도 몇 건 있긴 했다.

 

 

 

 

 

 

p.58

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면 안 되죠.

왜 이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일에 파묻히면 안 되죠.

자꾸만 기분이 처지거나 힘들 땐

묻어두고 감추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토해내고 내뱉어야 해요.

힘들다고 이야기해야 해요.

(……)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답답한 가슴, 멍울이 짓누르기 전에

차안에서 혼잣말로 심경을 토로하고

노래방에서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요.

글로 끼적이고 저장 버튼 클릭하세요.

문자로 적어 보내기 버튼 눌러버리세요.

 

수신은 이현경의 뮤직토피아로요.

 

 

 

 

 

 

p.74

며칠 전 어떤 분이 제가 참 부럽다며 사연을 보내주셨지만

저도 주변을 돌아보면서 ‘왜 나만 이러고 있지?’ 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 많거든요.

다들 고만고만하게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하지만 힘은 내야 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우리가 행복하진 못해도 의미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지친 하루 많이 힘드셨죠?

힘 좀 달라고 하셨죠?

제 힘 나눠드릴게요.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각각일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음성을 통해 같은 사연을 공유하고 같은 음악을 들을 때는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뉴미디어가 출현해도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 그림들이 내용과 꼭 어울리고 내 취향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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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새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92
김용대 지음 / 길벗어린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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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작가의 그림책 <곰과 새>는 글자 없는 그림책입니다.

무채색 그림에 첫 장면부터 좀 으스스합니다.

곰이 집에 들어가 꿀을 훔쳐 먹다가 노란새가 들어있는 새장을 물고 나옵니다.

 

위 두 페이지에서 곰은 맹수같습니다.

사실 맹수 맞지만 우리가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만난 곰은 좀 어리석거나 귀여운 이미지였지요.

그런데 흑백처리된 그림 때문인지 곰의 표정 때문인지 좀 무시무시합니다.

집주인이 돌아왔어요. 사냥꾼과 개가 곰을 쫓습니다.

곰은 외나무다리를 건넌 후 더이상 사냥개가 따라오지 못하게 합니다.

곰은 숲 깊은 곳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다른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새를 지켜줍니다.

 

산 언덕배기,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새장을 입에 문 채로요...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새장을 물어뜯습니다.

마침내!!

노란새는 새장 밖으로 나오고,

하늘을 날아갑니다.

 

 

위는 곰과 새가 인사를 나눈 마지막 장면입니다.

둘의 표정은 흐릿하지만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제일 마지막 두 페이지는 전체가 채색되어 있습니다.

창공과 구름과 새가 제 색을 드러낸 장면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2차원의 평면이지만 퍼덕거리며 솟구치는 노란새의 날개짓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마지막 그림은 사진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책 전체에서 흑백의 무채색이 주는 무거움은 곰의 무시무시함을 나타내고, 노란새는 밝지만 연약한 이미지로 검정색과 대비를 이룹니다.

그러나 자신의 색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니고 있는 노란새의 자유로움은 갇혀있어도 풀려나도 변함없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과 색만으로도 충분히 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이런 글자 없는 그림책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텍스트가 나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이 책을 같이 읽는 어른이라면,

아이가 그림을 보며 내용을 지어내도록,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습니다.

곰과 새가 대화를 주고 받도록 유도해주면 더욱 좋겠지요.

새가 어쩌다 새장에 갇히게 되었는지,

곰은 왜 새를 새장에서 꺼내주고 싶었는지를 말이죠.

역할놀이처럼 대사를 주고받은 후 역할을 바꿔서 해보세요.

몇 번 주고받다보면 아이의 대사가 업그레이드 되는 걸 확인하게 될 겁니다.

이 책을 꼭 유아나 초등 저학년하고만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고학년, 중고생이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림 속에서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거나 우리가 가진 선입견에 대해서 얘기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곰처럼 외모 때문에 오해를 받은 경우, 혹은 오해를 했거나 목격했던 경우를 말해보는 거죠.

겉으로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 소통의 중요성으로 확장해서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림책 토론까지 가능합니다.

좋은 책은 누가 읽어도 공감하고 할 말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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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시대 여행처방전 - 지금은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시간
이화자 지음 / 책구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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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병 중에 코로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공항장애를 앓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공황장애? 아니고! 공항장애는 공항에 가지 못해 걸리는 병이다. 아무리 해외여행 못 간다고 그렇게 힘들까 싶지만 아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상품이 다 나왔겠는가!

얼마 전 대만에서 출발해 제주까지 왔다가 돌아간 스카이라인 투어의 순서는 이러하다.

 

1. 비행기에 탑승 후 이륙한다.

2. 목적지 영공을 돈다.

3. 착륙은 하지 않는다.

4. 출발 공항으로 돌아온다.

이 상품은 완판되었다고 한다.

 

올 들어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가서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끙끙 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관광비행처럼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이들도 있다.

 

해외로 못 간다면 국내 여행을 하면 될 게 아닌가!

국내도 좀 주저된다 싶은 사람들은 남이 다녀온 여행서를 읽으면 된다!

어쨌든 해외여행의 아쉬움을 대체할 방법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다음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 나왔다.

 

<언택트 시대 여행 처방전>이다.

이 책의 작가 이화자씨는 카피라이터 10, 광고학 교수 15년 경력에 세계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고 책을 쓴 여행 작가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간 밖으로만 눈을 돌리느라 별로 가보지 못했던 국내 여행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늘 하던 동네 여행부터 언젠가 가겠지 하고 미뤄두었던 소도시 여행까지, 단체 관광객 없는 한적한 섬 여행과 그 안에 보석처럼 박힌 미술관 카페들에서 세계 여행 못지않은 국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보니 국내에도 가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은데 해외여행에 목을 맸다. 작가가 24가지 테마별로 엄선한 국내 여행지를 보며 공항장애를 달래보았다.

 

 

이런 여행책은 순서대로 읽기보다 목차를 보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나 맘에 드는 테마를 골라 먼저 읽어보면 더 맛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테마는 한적한 미술관 박물관 여행이다. 그 중에서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가 본 적 있는데 가까이에 저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순교한 44인을 형상화한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은 가슴 시린 역사를 복원하여 작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서울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다. 에휴... 서울도 일 년에 최하 두 번은 갔었는데 올해는 꼼짝도 못했다.

 

↑↑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을 연상시킨다.

 

그 다음 관심 가는 장소는 완주다. 경상도에 살고 있다보니 교통편이 편리한 서울은 자주 가지만 전라도는 참 가기 힘든 곳이다. 가본 곳을 꼽아보니 거의 10여년 전 전주 한옥마을, 그보다 더 전에 기억도 가물한 변산반도 정도다. , 광주 5.18 묘역과 무령왕릉도 가봤다

 

 

완소 고택에서 특별한 하룻밤에서 소개하는 장소는 전북 완주에 있는 소양고택과 아원고택이다. 완주 소양면 대흥리에 한옥 23채가 모여 있는 오성 한옥마을에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미와 현대적 실용성을 겸비한 품겪있는 문화공간이다.

 

한옥 서점 플리커 책방과 두베 카페는 이미 인스타 성지란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커피인데 BTS덕분에 유명해진 곳이라는데 난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역시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그만 깝죽거려야 한다...)

 

 

이 책은 각 장소의 마지막에 이렇게 “Travel Tips”를 두어 찾아가는 법, 추천 코스, 근처 유명장소까지 소개하고 있다. 여행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마지막으로 눈 여겨 본 장소들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사실 멀리 가기는 쫌 무섭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마음을 내볼까 싶다. 작가가 섬을 좋아하는지 이 책엔 섬 소개가 많다. 경상도 쪽에서 작가가 꽂힌 곳은 통영인 모양이다. 통영의 섬 연화도와 비진도를 소개하고 동피랑과 서피랑 벽화 마을과 통영의 대표서점 봄날의 책방도 소개한다. 대한민국 제 1의 항구도시 부산은 딸랑 한 군데 소개하고 있다. 벽화마을 테마로 통영 동피랑 서피랑과 함께 감천문화마을을 소개한다.

 

 

 

연화도와 비진도를 읽으며 이번엔 꼭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몇 달전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통영을 읽고 가보려고 동선까지 짰는데, 허영만 화백이 추천한 시락국집 위치까지 확인했는데, 계획은 무산됐다. 마침 또 통영 책에 당첨됐다. 며칠 전 <통영, 아빠의 바다>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었으니 통영 관련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되었다. 거의 평생을 부산에 살았지만 바닷가 근처에 살지 않았기에 일 년에 해수욕장 근처에 한 번도 안 가본 적도 있었다. 2년전 양산으로 이사 와서는 더욱 바다와 멀어졌다. 이젠 바다가 애틋해졌다. 통영 앞바다에 핀 연꽃과 산호빛 바다를 보러 꼭 갈 것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론가 떠날 계획을 세우는 건 역시 설렌다. 이 책을 읽으며 나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 직접 찾아가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책만 읽고 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만 읽고 움직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마치 그 장소에 갔다온 것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있다. 코로나 블루를 날려버릴 수 있는 책으로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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