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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ㅣ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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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이제 두 달 여 남짓 남았다. 새해를 맞이할 때의 기대감이란 거의 비슷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보다 더 희망적으로 시작했다. 같은 숫자가 두 개씩 반복되는 것이 시각적으로 동글동글하고, 이공이공이라 발음하면 청각적으로도 듣기 좋지 않은가! 그저 내 기분탓이었던 거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족적으로 현대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책을 냈고 문학계에서도 기획물들이 속속 출간되었다. 최근에 다양한 앤솔로지 소설집이 출간되고 있다. 아르떼 S 시리즈 7번째로 출간된 <쓰지 않을 이야기>는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다. 10개월가량 지나온 코로나 시대를 소설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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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를 포함하여 4편이 실렸다.
첫 작품 조수경 작가의 “그토록 푸른”의 주인공 주소영은 여행사에서 일했지만 전염병 때문에 해고되어 새벽배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냉동고다. 주문명세서대로 냉동제품을 찾아 바구니에 담고 분류하는 일이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영하 20도가 넘는 냉동고에서 일하는 걸 시원한 곳이라 다행이라 여긴다. 그만큼 그녀가 생계를 잇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행인지 아닌지 전염병의 확산은 주문량 증가로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물류센터에 확진자가 생기면 폐쇄가 되므로 모두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소영은 자신의 몸관리를 잘 하고 있고 아직 젊으니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영의 발가락 끝에 푸르스름한 색이 보였다. 이 전염병의 증상중 하나가 손발끝이 푸르게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그런데 점점 손끝도 푸른빛을 띠게 되어 출근 시 검사에 걸리지 않으려고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간다.
그런데 정육코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직원이 피부가 진한 녹색빛을 띤 것을 확인하고 소영이 팀장에게 묻는다.
“이제 어떡하죠?”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독자는 예상할 수 있다. 소영이 파운데이션을 바르면서 했던 생각 때문이다.
‘좀 더 지켜보다가 상태가 나빠진다 싶으면 그때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게 나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를 위한 일이고, 물류센터에서 지급하는 일당에 생계가 걸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다.’
잔인하고 비루한 현실이다. 전염병의 위험보다 내게 닥칠 생계의 위협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은폐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 행동을 한 개인은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물류센터가 문을 닫으면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을테니까. 그렇게 속이는 것이 가능할까? 금방 드러나지 않을까? 다른 이들에게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것만 같다. 냉동고의 그 두 명이 한 생각과 행동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우울한 예측을 하게 하는 결말이었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과학의 발전으로 지극히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염병 하나를 막지 못해서 직장을 잃고 생존을 위협받게 되는 현실이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하루살이 인생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국가에서 보조금 명목으로 돈을 풀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진척이 더디던 ‘기본소득’문제가 이번 기회에 화두로 치고 올라온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생존의 기본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소설 속 사람들처럼 거짓말로 문제를 더 키우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소설 김유담 작가의 “특별재난지역”은 코로나 발생 초기에 청도 요양병원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한 상황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는 4편의 소설 중 이 소설에 가장 공감이 되었다.
주인공 일남은 일찍 엄마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살림을 살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돌봤고, 남매를 키웠다. 그정도면 그만할 때도 됐건만 그녀의 돌봄노동은 계속 됐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낳은 딸을 거두어야했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그 둘을 한 집에서 케어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전염병 때문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욕하다, 부친은 사망했고 일남의 평생 가장 황량한 장례식을 치르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지 않나?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평생을 가족 챙기는 일만 하며 살아야 하나? 더 기막히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을 일남이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 피해 지원금을 받으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집에만 있는 남편과 손녀의 삼시 세끼를 해먹여야 하는 일상에 지쳐간다. 딸은 시집가서 자기 살림을 살고 있지만,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줄 알았던 아들은 연애하다 덜컥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엄마는 저런 무책임한 남자의 아이는 못 키우겠다며 일남에게 맡기고 가버렸다. 그래서 끝날 것 같았던 육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10년 동안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혀서 이쁘게 키웠는데 그 가영이 성착취물 피해자가 됐다.
일남은 도무지 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했는데 장례식장에, 필리핀 사는 남동생도 서울서 아직도 시험 공부하는 아들도 오지 못했다. 이게 다 전염병 때문인 거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녀가 온라인상으로 피해자가 되다니!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막막하다.
이 소설은 코로나19와 n번방 사건을 섞었다. 여성은 늘 가사와 육아의 당사자였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재택근무도 늘어난데다 외출도 못하다보니 가족구성원이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주부의 가사노동량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코로나로 파생된 문제가 많지만 돌봄 노동 문제도 심각하다. 소설 주인공 일남처럼 평생을 해온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런 문제가 닥치면 대부분 여성의 차지가 된다. 거기다 손녀까지 얄궃은 일을 당했으니 일남에게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가중된 것이다. 그녀는 교묘히 진화하는 온라인 성범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아들에게 가영이에게 신경쓰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소설 마지막에 일남은 익명으로 온 택배 박스를 받는다. 내용물인 어린이용 마스크를 의심의 눈초리로 요리조리 살펴보다 바닥으로 떨어진 종이에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을 본다. 그 문구가 일남에게 정말 힘을 주었을까?
나는 공허하게 들렸다. 현실에서 “해시태그 힘내라! oo”운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 속 일남이 처한 상황에서 그 문구는 모순적이다. 그녀의 일상은 또다시 남편과 손녀를 위해 삼시세끼 차려야 하고 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아마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가영의 친구들이 알게 되면 안 되니까...
나머지 두 소설도 전염병이 소재이지만 “두”는 성병으로 의심되는 병이 시골 분교에서 퍼지고 있는 이야기다. 표제작 “쓰지 않을 이야기”는 중국에서 20년간 일하던 아버지가 전염병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와 예전에 가족이 살던 동네를 남자친구와 다니는 이야기가 같이 진행된다.
4편 모두 전염병이 일상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소설 같았다. 우리가 어디 이런 날이 올 줄이나 알았나! 삼복 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게 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모든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세상이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현타시간도 주었다. 마스크 속 입 냄새에 화들짝 놀라 자신이 이런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인간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나이가 몇이건 태어나 살아온 시간들과 전혀 다른 일상을 1년 가까이 살았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한 방에 소탕되길 바란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던 일을 예전처럼 하길 원한다. 허나 그 일은 점점 요원해 보인다. 이제는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것이 일상이라는 것도 안다.
현실 속 뉴스에서 듣고 본 것을 소설에서 확인하는 과정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처절하고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코로나를 소재로 한 밝은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소설가들도 앞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지 않어서 제목을 <쓰지 않을 이야기>로 정한건 아닐까? 내 맘대로 생각해봤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