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아빠의 바다
김재은 엮음, 김무근 그림 / 플랜씨북스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통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우체국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유치환의 시, “행복”속의 그 우체국 말이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짝사랑 그녀 이영도에게 편지를 2000통이나 써서 부친 곳이 바로 통영 우체국! ‘행복’이라는 시와 유치환의 짝사랑 사연은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내게 통영이라는 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해나 거제는 가봤지만 통영엔 가지 못했다. 부산과 그리 멀지도 않은 그곳을 오랜 시간이 지나 백석의 시 ‘통영’을 읽고 나서야 가보게 되었다.

백석의 ‘통영’은 오감을 일깨우는 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짭쪼름한 맛이 혀 끝에 묻어나는 듯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꽝꽝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시, 통영 중에서-

 

이 시에 등장하는 명정골 사는 난이라는 여성, 백석은 그 이가 명정골에 있을 것만 같아 만나러 갔지만 몇 번이나 허탕을 친다. 이 사연 속엔 배신자 친구 이야기가 들어있어 흥미진진하다.

아, 처음 통영에 가서 내가 찾은 곳은 바다가 아니라 우체국이었다. 그런데 감성이라곤 티끌도 없는 그저 관공서일뿐이었다. 절절하던 사랑의 감정을 시어에서 낚아낼 감성충만하던 시기가 다 지나 당도한 통영우체국은 문이 닫혀 있었다.(찾은 날이 토요일이라ㅠ)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지 아닌지 확인을 못했다. 맥없이 동피랑 마을을 한바퀴 돌고 그 언덕에서 통영항을 내려다보며 귀를 기울여봤다. 배가 뿡뿡하고 우는가 싶어서...

사실 통영은 유명 예술가들이 활동한 도시다. 예술가들은 통영 바다에서 예술적 상상력과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그러나 일반인도 통영 바다에 서면 예술가가 되는가 보다. 책 <통영, 아빠의 바다>에 그림을 그린 김무근씨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일산에서 살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 후 친구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통영으로 아예 내려왔다. 50년만의 귀향이었지만 그의 눈에 바다는 그대로였다. 등대가 있는 바닷가에 자릴 잡고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제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침바다”를 보는 순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겹쳐졌다. 두 그림은 분명 차이가 있다. 물감이 다르고 붓 터치가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해뜨는 바다에 나간 화가의 감성은 비슷했으리라 짐작된다.

 

 ↑↑ "미래사"

한 장 한장 넘기다가 또 “수련연못”이 떠오르는 그림을 발견했다. 구도와 다리가 “수련연못”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 분이 모네를 좋아하지 않을까? 또 짐작해봤다.

"엄마가 또 다리를 건너고 계시네요? 저 뒤에 손잡고 따라가는 아이랑 아이 엄마는 주원이랑 미라죠?"

 

"아이다, 그냥 절에 온 사람들이다. 철수 아저씨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 보고 그린기라."

 

편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통영 미륵산 남쪽 기슭, 미래사 가는 길. 통영에 가면 엄마가 앞장서서 온 가족을 끌고 가시는 단골 등산 코스라 당연히 엄마랑 올케, 조카인 줄 알았는데... 휠체어 탓에 같이 등산을 못 가시는 아빠가 직접 보신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책을 받아서 그림만 먼저 보고, 다시 처음부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읽었다. 딸 김재은씨는 아빠의 그림을 자신의 페이스북 배경이미지로 썼다가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 아빠의 그림을 계속 올리게 되었다. 그림에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그러기 위해 통영에 계신 아빠와 자주 전화를 하고 카톡을 했다. 젊어서는 일만 하신 아빠를 보며 일을 정말 좋아하시는가보다, 딸은 생각했다. 30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온라인으로 전시회를 하며 부모님과 가깝게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보통의 부녀 사이에는 별로 대화가 없다. 멀리 떨어져 산다면 자주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안부 전화나 가끔 주고 받는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취미생활인 그림을 딸이 관심가지고 물어보면서 자연스레 대화하게 되었다. 참 부러운 부녀사이다. 가족 간에 공통의 소재로 대화하기 쉽지 않은데 그림이 매개역할을 했으니 역시 예술이다.

그동안 통영은 나에게 시인의 도시였는데 이젠 바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내 머릿 속에 통영 바다의 이미지는 이 책의 그림, 김무근씨의 고향 바다, 김재은씨의 아빠의 바다로 각인되었다. 요 근래 통영 소개 책을 몇 권 읽었다. 마침 이번 토요일, 통영에서 홍승은 작가의 북토크가 있어서 갈 예정이다. “등대가 있는 풍경” 그 바다를 찾아볼 시간까지 될진 모르겠지만, 통영 바다는 꼭 보고 와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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