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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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소설Y 대본집 <다이브>를 읽고, 줄거리 요약보다는 소설 속 문제의식을 토대로 할 수 있는 독후활동 위주로 정리해보았다.


2057, 세상이 물에 잠겨버렸다. 고층 건물 옥상만이 섬처럼 남아있고 잠수하는 물꾼들이 있다. 물꾼들은 침수된 것들 중에서 쓸 만한 것을 찾아낸다. 댐 때문에 수몰된 마을엔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듯 물에 잠기기 전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느 날 능숙한 물꾼 소녀 선율은 큐브를 발견해서 건져 올리는데, 그 안에 든 것은 기계인간 채수호였다.


<다이브>sf 소설이다. 35년 후의 미래 배경은 두 가지 설정 아래에 있다. 하나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은 대부분 물에 잠겨버린 상황이다. 또 하나는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큐브 속 기계인간 수호가 만들어진 때는 2038년이었고 서울이 물에 잠긴 건 2042년이다. 기계를 인간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 발전을 이루었지만 15년 전에 거의 모든 게 침수된 상황이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눈부신 기술발전도 무용해진다는 것!


이러한 배경에 심어놓은 문제의식도 크게 두 축이다. “AI, 즉 기계인간(일종의 복제인간처럼 설정한 책 속의 기계인간)에게도 자의식이 있을까?” 맞춤아기로 만들어낸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인가?”이다. 큐브 속 기계인간 수호의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이다. 기계인간 수호는 암으로 죽은 딸을 대신해 부모가 주문 제작한 것이다. 기계인간 수호의 몸은 기계이나 의식은 인간 수호의 것을 그대로 장착하고 있다. 생각은 수호의 자의식 그대로인데 몸은 기계이므로 겪는 불편함 때문에 수호는 고통스럽다. 기계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기 힘들다. 이것은 넓게 보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말한다. 마음대로 자식을 키우고 싶은 부모와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자식과의 갈등이 그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35년 후의 미래이긴 하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10대이기 때문에 인류사에 꾸준히 이어져온 갈등 구조의 자장 안에 있다. 이 소설이 영어덜트 소설’, ‘소설 Y’라는 이름을 표방하므로 청소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성장소설로 맞춤하다. 물론 그 대상을 청소년에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부모 자식 간에 발생하는 보편적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읽고 아이들과 토론해보면 좋겠다. 기계문명에 관한 윤리적 문제 역시 토론 주제로 삼기에 충분하다.


또한 sf 소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 다양한 토의를 해볼 수도 있다. 소설 속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 나아가 sf적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해보는 것이다. 2백 여 년 전 쥘 베른이나 스티븐슨이 상상했던 미래는 오롯이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이루어 놓은 기술적 기반 아래에서 더 디테일하고 실현가능한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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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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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호미>가 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분홍빛 표지로 단장하여 출간되었는데 출판사에서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1년에 여든 나이로 돌아가셨으니 2007년 초판본은 일흔대에 쓰신 산문들이다. 나는 초판과 2014년 개정판(맏딸 호원숙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은 못 읽었고 이번 3판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산문집의 글들을 눈으로 쫓는데마치 작가 북토크에 앉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의 어릴 적 이야기, 가족들, 생활 속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풀어내 주셨다.


그래서일까. 작가님의 인생 장면 장면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은 것 같았고, 다 읽고 보니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이었다. ‘맞아요, 맞아!’ 하며 고개 끄덕이게 되거나 같이 흥분하게 만든 일화들, ‘나라면 어땠을까?’ 싶은 상황들을 보니 15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공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런 표현을!’ 하며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다.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작가님은, 당신이 거둔 결과를 보잘 것 없다고 표현하면서 그래도 늘 안팎에 김 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고 하셨다.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는 문장은 펜을 호미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를 관두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그럼에도 펜을 놓지 않게 했던 동력은 바로 가족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산문집에는 그런 감사의 글이 많다. 신여성으로 키우려고 했던 친정어머니, 손주들을 보석처럼 대했던 시어머니,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남편, 아주 어릴 때부터 믿고 의지했던 맏딸까지 모두 작가 박완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사람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에서 익히 친정어머니의 지극정성을 읽었지만 이 산문집 우리 엄마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인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엄마에게서 벗어났으며 잘 사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자신에게 걸었던 과도한 기대는 늘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p.223


자식 낳고 살림 늘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도 문득 엄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초라하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처녀작을 쓸 때, 잘 안 써져서 때려치울까 하다가도 이게 만일 당선이 돼서 내가 신문에 나며 엄마가 얼마나 으스댈까, 아마 딸 기른 보람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채찍이 되어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

내가 <휘청거리는 오후>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나서 기자가 엄마에게 인터뷰를 청한 적이 잇다. 따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싸늘하게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매몰찬 혹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마 생전 엄마를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작가님은 엄마를 극복하셨을까? 내 생각에는 그런 친정어머니가 없었다면 박완서라는 작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가족들이 작가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된 것도 맞지만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작가는 되었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다른 박완서로 기억했을 것이다.


또 작가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대라는 이름에 많은 빚을 졌다며 2006년 서울대학교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쓴 글에 이렇게 밝혔다.


p.205


(8군 피엑스에 취직된 것은) 순전히 서울대 학생이라는 자기소개 때문이었습니다. 담당자는 가장 초라한 저를 군계일학처럼 바라보았고, 거짓말처럼 쉽게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서울대 학생이라는 레테르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구나 저를 아껴주고 존중해주었습니다. 그런 대학의 후광에 힘입어 저는 돈 벌기도 쉽지만 타락하기도 쉽다고 알려져 질시와 멸시를 동시에 받던 피엑스 생활을 홀로 고고한 척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식구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똘똘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고, 그 직장에서 알게 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박수근 화백은 저의 처녀작 <나목>의 주인공이 되어, 저를 주부에서 작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마흔에 등단하여 40여년 간 소설가로 살 수 있었던 건 탁월한 필력 때문이라는 식의 뽐냄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한 인간으로, 작가로 무탈하게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쓴 저 글은 박완서 작가의 인생과 성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감사의 마음을 저리도 아름답게 쓸 수 있구나 감탄했다.


"작은 기적처럼, 또는 오랫동안 뒤통수만 보고 흠모하던 이가 뒤돌아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짜릿한 기억처럼, 저 혼자만의 밀실에 두고 삶이 진부하고 지루해질 때마다 꺼내보고 위안을 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포인트를 잡아 리뷰를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남은 글들을 골라보니 작가 박완서를 만든 이들로 수렴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고마워했지만 모두 다 리뷰에 쓸 수는 없어서 친정어머니와 서울대학교만 썼다. 마지막으로 딸 호원숙 작가에게 쓴 글, ‘딸에게 보내는 편지중 일부를 인용한다.


p.259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일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딴 누구도, 네 동생들도, 나의 친한 친구도 너만큼 해줄 수는 없단다. 근심이 생겨 너한테 털어놓은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기만 해도 근심의 반은 사라지고, 미운 사람 욕을 너한테 하고 나면 미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도저히 인력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너한테 기도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하니 나는 얼마나 한심하고 뻔뻔스러운 엄마냐. 그러나 이해해다오. 내 기도발보다는 네 기도발을 더 믿는 것은 모성애보다 더 깊은, 네 진국스러운 인간성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을. 너는 딸이요 친구인 동시에 근래에는 내 문학의 적절하고 따뜻한 비평가 노릇까지 겸해주었다.


호원숙 작가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돈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던 맏딸이었다고 한다. 딸이자 친구이자 따뜻한 비평가라는 표현은 딸에게 하는 최상의 표현이 아닐까. 당신 생에서 뽑아버릴 수 없는 말뚝 같은 존재였던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부 혹은 맘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무한 신뢰한다는 편지를 받은 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부럽고 부러웠다.


이 산문집은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앞부분에 정원을 가꾸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못했다. 그런 글을 포함하여 작가님의 생활이 녹아있는 글들이 많으니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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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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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의 신간 <크게 그린 사람>은 인터뷰집이다. 20201월부터 20213월에 걸쳐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은유의 연결에서 만난 16인에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한 2인을 더해 책으로 엮어냈다. 제목을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한 이유가 에필로그에 나오는데, 작가 자신이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시지를 확대해서 쓴 글이므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면서 18명의 인터뷰는 증명사진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인터뷰하던 시점에 천착하던 문제를 깊게 파고 들 수밖에 없으므로 양해해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유독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 몇몇은 있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 혹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인물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졌으리라. 은유 작가의 스펙트럼을 투과하여 자신 앞에 도착한 것과는 다른, 어쩌면 더 큰 그림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인물화 18편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다. 동시에 독자만의 스페셜한 한 명을 그릴 화폭을 제공해준다. 작가가 책장을 덮는 독자에게 감사를 전했듯 독자도 크게 그려보고 싶은 인물을 떠올리며 감사해하리라 생각한다.


인터뷰이 18명은 목차대로 아래와 같다.


1부에서는 누구나 가는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름으로써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들.

2부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힘을 믿고 긍정하며 나아가는 이들.

3부에서는 나의 힘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존가들.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에서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청년 예술가 조기현씨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의 작가로 최현숙 작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읽을 책 리스트에 몇 년 전부터 올려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조기현씨를 이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셈이다.


조기현씨는 1992년 생으로 스무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쓰러져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병원비를 구하고 보호자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치매까지 온 아빠를 돌본 세월이 9년이다. 병원비를 구하려고 가난을 증명해야했고, 제도가 있어도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 중심의 복지정책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아버지를 돌보며 오히려 자존감을 지키려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낸 후에야 세상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의사들과 한 가지 의제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자리가 주어진다.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 대화기구의 공동위원장을 맡게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규정한 기특한 젊은이에 맞서 나는 효자가 아니고 시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정의하는 시민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감독, 작가가 꿈이었던 조기현씨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왔다. 자신이 말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이미 작가의 꿈은 이루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화감독 조기현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부당하다고 느낀 일들을 바꾸어 낼 그를 응원하며 계속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 이젠 진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을 시점이다.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에서는 의사 두 명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과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어떤 면모 때문에 은유 작가가 인터뷰했을지 궁금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고 의사의 자리에서 역할을 굳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영전 교수가 말하는, 공감능력과 회복력이 있는 의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의사는 공감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쿠션이 튼튼한 사람이다. 의사는 건강을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켜야하기 때문이라고.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을 읽고 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씨를 알게 되었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는 1부에 나온다. 김미숙씨는 각종 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김도현씨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삶은 각각 동생과 아들의 죽음이전과 이후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도현씨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한다. ‘다시는2019년에 발족했는데 누구도 다시는 산재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버티어낸 부모님들이 동생을 잃은 그에게 힘을 주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산재로 한해에 2400명이 죽어나가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작지만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의 사고 후 생업을 포기하고 고용노동부, 경찰서, 현장을 돌며 도생의 죽음에 관련된 자료를 하나하나 모았다. 증거를 제시해 재수사를 진행시켰음에도 2심 판사가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라면서 합의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 생명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계속 외칠거라고 했다. 은유작가는 김도현씨를,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앞으로도, 김도현씨는 그런 사람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답답한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오고 이런 세상에 살아야하냐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은유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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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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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대체 2000년이 오기나 올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다. 지구는 1999년을 끝으로 종말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실제 종말론을 펼치는 사이비종교도 있었고 Y2K바이러스가 컴퓨터를 오작동 시킬 거란 소문도 무성했다. 그러나 2000년의 해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랐고 우려했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1900년대 후반에 우리는 연도 앞에 붙을 2자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의 동의어라고 여겼다.


그런데 벌써 2000년이 시작된 지 21년이 지났고 지난 2년 동안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의 시대를 살았다. 2년 후면 2024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의 재창궐이 벌어지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비화되지 않는 한, 2024년에도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1993년에 2024년을 예상했다면 어땠을까?


1999년에 2000년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는데 1993년에 30년이나 지난 뒤의 지구를 예상한다는 건 SF적 상상력을 동원해야했을 것이다. 인간이 제 몸처럼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지금처럼 누구나 사용하게 된 것도 불과 10년 남짓이다. 미국 흑인 여성작가 옥타비아 버틀러(1947~2006)의 소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가 1993년에 2024년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그 당시에는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로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영사에서 출간된 이 소설을 읽으니 기분이 좀 묘했다.


기후 변화와 경제 위기로 무너진 국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거대 기업, 이방인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는 사람들, 신종 노예제도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소설 속 2024년 미국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작 SF소설에 비해 이 작품은 현실적인 내용이라는 출판사의 설명을 보니 70~80년대에 쓰인 소설들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의 주인공 ‘로런 오야 올라미나’는 15살 흑인 소녀다. 로런은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작가가 창작한 이 질병은 타인의 고통이 그대로 자신에게 느껴지는데 누군가가 칼에 찔리는 것을 보면 나도 그 통증을 그대로 느끼고 피가 흐를 정도가 되기도 한다. 목사인 아버지, 동생들과 함께 장벽 안에서 그나마 안전하게 지내던 로런은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 다른 동생과 아버지의 실종으로 혼자가 되고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2024년부터 2027년까지 4년의 시간을 로런의 일기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로런은 아버지의 종교를 떠나 ‘변화’를 신으로 믿는 ‘지구종Earthseed’의 창시자가 된다.


시적인 문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로런의 글은 <지구종:산 자들의 책>에서 발췌한 것럼 인용되는데 아포리즘 같은 이 문장들이 지구종의 바이블의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대가 손대는 모든 것을

그대는 변화시킨다

그대가 변화시킨 모든 것은

그대를 변화시킨다

변치 않는 진리는 오로지

변화뿐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


"스스로의 잿더미에서

날아오르려면

불사조는

반드시

먼저

불타야 한다."


"살아 있는 세상이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이 소설에서 로런이 추구하는 공동체가 농업으로 자급자족한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지독한 양극화 시스템 안에서 부품화된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로런이 글쓰기 외에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씨앗을 챙기고 파종하여 먹거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소설 후반부에 만난 남자 반콜레가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 것도 그들의 공동체가 반콜레의 땅에서 완성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로런과 같은 초공감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그녀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한 후 반콜레의 땅에 당도한다. 만나리란 희망을 안고 왔으나 여동생 가족은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그들을 땅에 묻은 뒤 떡갈나무를 심는다. 로런은 그 땅을 도토리라는 뜻의 ‘에이콘(Acorn)'으로 정한다. 마지막에 이들이 행한 수목은 그곳에서 그들의 공동체가 번성하리라는 희망을 암시한다.


30년 전 작가가 했던 상상들 중에 현재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중에서 지금 의미깊게 받아들여야할 것은 바로 공동체의 복원이며 그 바탕이 땅과 씨앗, 즉 농업이다. 나아가 점점 파편화되어가는 인간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연대의 씨앗을 찾아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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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디지털 지능
박유현 지음, 한성희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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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감성지수를 키워야 한다며 교육 관련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었다. IQ(지능지수)보다 EQ(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더니 어느 순간 다중지능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다중지능은 IQ EQ의 개념을 아우르고 단점을 극복하는 이론이다. 이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신조어 DQ(Digital Intelligence Quotient 디지털 지능)이 나왔다.


 DQ의 창시자이자 디지털 교육·윤리 전문가 박유현씨의 <DQ 디지털 지능>가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바이오통계학 박사학위를 받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 및 디지털 미디어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디지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디지털 역량을 교육하는 사회적 활동에 매진해오고 있다.


DQ란 보편적 윤리에 기반하여 개인이 디지털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인지적, 메타인지적, 사회·정서적 역량을 포괄하는 역량을 말하며 DQ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우리 아이들이 AI와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자는, AI 시대에 성공하려면 DQ가 필요하며 DQ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은 물론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Q가 높은 사람은 똑똑하다고 하고 EQ가 높은 사람은 공감적이라고 한다면 DQ가 높은 사람은 현명하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인류가 계속 주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여덟 가지 DQ역량을 주창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디지털 우리가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민의식은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개인의 기본 능력으로, 특히 어릴 때 이 역량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이 디지털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할 때 초대한 빨리 시민의식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게임,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폰은 디지털 기기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할 때가 가장 좋은 시기다


개인에게 필요한 디지털 시민의식 역량 8가지는 아래와 같다.


- 디지털 시민 정체성: 현실뿐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도 자신의 잠재성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역량

- 균형 잡힌 디지털 사용: 디지털 사용 시간을 스스로 자제하고 조절하는 역량

행동 디지털 위험 관리: 사이버불링, 악플 등 온라인 행동 속 위험에 주도적으로 대처하는 역량

- 개인 디지털 보안 관리: 스팸, 피싱, 해킹 등 디지털 보안 위협을 경계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역량

- 디지털 공감: 디지털 세계에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마음에 공감하는 역량.

- 디지털 발자국 관리: 디지털 발자국이 자신과 타인에게 미칠 수 영향을 이해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역량

- 미디어 및 정보 리터러시: 가짜 정보와 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하는 역량

- 사생활 관리: 사생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자신 및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역량

 

어릴 때 디지털 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부모나 교사들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시대에서 성장한 세대와 디지털 세대차가 날 수밖에 없으며 아이들에게 디지털 역량을 어떻게 적절하게 준비시켜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게 큰 문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기술 중독,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인터넷상의 집단 괴롭힘), 온라인 그루밍 같은 디지털 위험에 자주 노출되고 있는데 이 위험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저자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우리아이들에게 필요한 디지털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장에서 디지털 시민의식에 대해 상술하며, 8장에서는 개인과 학교, 기업, 국가에 제언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국가 단위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2020년 새로운 국가 수준의 지수인 아동온라인안전지수(COSI:Child Online Safety Index)를 개발했다. COSI는 국가가 자국 아이들의 온라인 안전과 디지털 시민의식 상황을 더욱 잘 살필 수 있도록 돕는 세계 최초의 실시간 분석 플랫폼이다. COSI는 특정 국가의 현재 디지털 생태계가 모든 아이들이 디지털 미래에 안전하게 확실히 잘 사는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모든 아이들을 위해 다음의 목표가 적용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다시, 첫 장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교육이란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 진자 잠재력, 바깥 세상에 숨겨진 새로운 기회를 볼 수 있는 것이 먼저라고! 디지털 기기를 제 몸처럼 사용하는 요즘 아이들을 위해 지난 10여 년 간 자신이 연구하고 만들어낸 것들을 이 책에 모두 실었다. 디지털 안전을 보장하는 디지털 윤리 원칙을 정하고, 국가는 디지털 세계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역량과 리터러시를 길러주는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책이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그래서 우리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또 누가 알겠는가. 10년 뒤에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 - 프롤로그 인용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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