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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그린 사람 - 세상에 지지 않고 크게 살아가는 18인의 이야기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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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의 신간 <크게 그린 사람>은 인터뷰집이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3월에 걸쳐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은유의 연결’에서 만난 16인에 다른 매체에서 인터뷰한 2인을 더해 책으로 엮어냈다. 제목을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한 이유가 에필로그에 나오는데, 작가 자신이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시지를 확대해서 쓴 글이므로 공정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 면서 18명의 인터뷰는 증명사진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크게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인터뷰하던 시점에 천착하던 문제를 깊게 파고 들 수밖에 없으므로 양해해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유독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 몇몇은 있었을 것이다. 현재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 혹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와 관련된 인물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졌으리라. 은유 작가의 스펙트럼을 투과하여 자신 앞에 도착한 것과는 다른, 어쩌면 더 큰 그림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인물화 18편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다. 동시에 독자만의 스페셜한 한 명을 그릴 화폭을 제공해준다. 작가가 책장을 덮는 독자에게 감사를 전했듯 독자도 크게 그려보고 싶은 인물을 떠올리며 감사해하리라 생각한다.
인터뷰이 18명은 목차대로 아래와 같다.
1부에서는 누구나 가는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름으로써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들.
2부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힘을 믿고 긍정하며 나아가는 이들.
3부에서는 나의 힘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존가들.
1부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에서 반가운 사람을 발견했다. 청년 예술가 조기현씨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의 작가로 최현숙 작가를 통해 알게 되었고 읽을 책 리스트에 몇 년 전부터 올려두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조기현씨를 이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된 셈이다.
조기현씨는 1992년 생으로 스무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쓰러져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병원비를 구하고 보호자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치매까지 온 아빠를 돌본 세월이 9년이다. 병원비를 구하려고 가난을 증명해야했고, 제도가 있어도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 중심의 복지정책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체감했고, 아버지를 돌보며 오히려 자존감을 지키려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책을 낸 후에야 세상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의사들과 한 가지 의제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자리가 주어진다.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 대화기구’의 공동위원장을 맡게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규정한 ‘기특한 젊은이’에 맞서 ‘나는 효자가 아니고 시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가 정의하는 시민은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감독, 작가가 꿈이었던 조기현씨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왔다. 자신이 말하는 시민이 되기 위해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그는 이미 작가의 꿈은 이루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화감독 조기현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부당하다고 느낀 일들을 바꾸어 낼 그를 응원하며 계속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아, 이젠 진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을 시점이다.
2부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에서는 의사 두 명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과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어떤 면모 때문에 은유 작가가 인터뷰했을지 궁금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고 의사의 자리에서 역할을 굳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영전 교수가 말하는, 공감능력과 회복력이 있는 의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의사는 공감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몸과 마음에 쿠션이 튼튼한 사람이다. 의사는 건강을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켜야하기 때문이라고.
3부 사는 일 자체로 누군가의 해방을 돕는 사람을 읽고 청년 노동자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씨를 알게 되었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는 1부에 나온다. 김미숙씨는 각종 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김도현씨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삶은 각각 동생과 아들의 죽음이전과 이후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김도현씨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서 활동한다. ‘다시는’은 2019년에 발족했는데 누구도 다시는 산재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버티어낸 부모님들이 동생을 잃은 그에게 힘을 주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산재로 한해에 2400명이 죽어나가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작지만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의 사고 후 생업을 포기하고 고용노동부, 경찰서, 현장을 돌며 도생의 죽음에 관련된 자료를 하나하나 모았다. 증거를 제시해 재수사를 진행시켰음에도 2심 판사가 “이건 비일비재한 추락사”라면서 합의를 종용했다고 한다. 그는 사람 생명에 경각심을 가지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계속 외칠거라고 했다. 은유작가는 김도현씨를, ‘비일비재한 죽음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앞으로도, 김도현씨는 그런 사람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답답한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오고 이런 세상에 살아야하냐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은유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위 리뷰는 한겨레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