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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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호미>가 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분홍빛 표지로 단장하여 출간되었는데 출판사에서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1년에 여든 나이로 돌아가셨으니 2007년 초판본은 일흔대에 쓰신 산문들이다. 나는 초판과 2014년 개정판(맏딸 호원숙 작가의 그림이 들어간)은 못 읽었고 이번 3판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산문집의 글들을 눈으로 쫓는데마치 작가 북토크에 앉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의 어릴 적 이야기, 가족들, 생활 속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풀어내 주셨다.


그래서일까. 작가님의 인생 장면 장면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은 것 같았고, 다 읽고 보니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이었다. ‘맞아요, 맞아!’ 하며 고개 끄덕이게 되거나 같이 흥분하게 만든 일화들, ‘나라면 어땠을까?’ 싶은 상황들을 보니 15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공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런 표현을!’ 하며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도 많았다.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작가님은, 당신이 거둔 결과를 보잘 것 없다고 표현하면서 그래도 늘 안팎에 김 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고 하셨다.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는 문장은 펜을 호미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를 관두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그럼에도 펜을 놓지 않게 했던 동력은 바로 가족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산문집에는 그런 감사의 글이 많다. 신여성으로 키우려고 했던 친정어머니, 손주들을 보석처럼 대했던 시어머니,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남편, 아주 어릴 때부터 믿고 의지했던 맏딸까지 모두 작가 박완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사람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에서 익히 친정어머니의 지극정성을 읽었지만 이 산문집 우리 엄마의 초상이라는 글에서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인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 엄마에게서 벗어났으며 잘 사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자신에게 걸었던 과도한 기대는 늘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p.223


자식 낳고 살림 늘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가도 문득 엄마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면 초라하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처녀작을 쓸 때, 잘 안 써져서 때려치울까 하다가도 이게 만일 당선이 돼서 내가 신문에 나며 엄마가 얼마나 으스댈까, 아마 딸 기른 보람을 느끼겠지, 하는 생각이 채찍이 되어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

내가 <휘청거리는 오후>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나서 기자가 엄마에게 인터뷰를 청한 적이 잇다. 따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엄마는 싸늘하게 원 그것도 소설이라고 썼는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매몰찬 혹평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가 되었다. 나는 아마 생전 엄마를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작가님은 엄마를 극복하셨을까? 내 생각에는 그런 친정어머니가 없었다면 박완서라는 작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가족들이 작가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된 것도 맞지만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작가는 되었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다른 박완서로 기억했을 것이다.


또 작가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서울대라는 이름에 많은 빚을 졌다며 2006년 서울대학교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쓴 글에 이렇게 밝혔다.


p.205


(8군 피엑스에 취직된 것은) 순전히 서울대 학생이라는 자기소개 때문이었습니다. 담당자는 가장 초라한 저를 군계일학처럼 바라보았고, 거짓말처럼 쉽게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서울대 학생이라는 레테르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직장 생활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구나 저를 아껴주고 존중해주었습니다. 그런 대학의 후광에 힘입어 저는 돈 벌기도 쉽지만 타락하기도 쉽다고 알려져 질시와 멸시를 동시에 받던 피엑스 생활을 홀로 고고한 척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식구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똘똘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고, 그 직장에서 알게 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박수근 화백은 저의 처녀작 <나목>의 주인공이 되어, 저를 주부에서 작가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마흔에 등단하여 40여년 간 소설가로 살 수 있었던 건 탁월한 필력 때문이라는 식의 뽐냄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서울대라는 이름이 한 인간으로, 작가로 무탈하게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쓴 저 글은 박완서 작가의 인생과 성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감사의 마음을 저리도 아름답게 쓸 수 있구나 감탄했다.


"작은 기적처럼, 또는 오랫동안 뒤통수만 보고 흠모하던 이가 뒤돌아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준 짜릿한 기억처럼, 저 혼자만의 밀실에 두고 삶이 진부하고 지루해질 때마다 꺼내보고 위안을 삼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포인트를 잡아 리뷰를 써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남은 글들을 골라보니 작가 박완서를 만든 이들로 수렴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고마워했지만 모두 다 리뷰에 쓸 수는 없어서 친정어머니와 서울대학교만 썼다. 마지막으로 딸 호원숙 작가에게 쓴 글, ‘딸에게 보내는 편지중 일부를 인용한다.


p.259


집안 대소사를 의논하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일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딴 누구도, 네 동생들도, 나의 친한 친구도 너만큼 해줄 수는 없단다. 근심이 생겨 너한테 털어놓은 말을 머릿속으로 굴리기만 해도 근심의 반은 사라지고, 미운 사람 욕을 너한테 하고 나면 미움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도저히 인력으로는 해결 안 되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는 너한테 기도 좀 해달라는 부탁까지 하니 나는 얼마나 한심하고 뻔뻔스러운 엄마냐. 그러나 이해해다오. 내 기도발보다는 네 기도발을 더 믿는 것은 모성애보다 더 깊은, 네 진국스러운 인간성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을. 너는 딸이요 친구인 동시에 근래에는 내 문학의 적절하고 따뜻한 비평가 노릇까지 겸해주었다.


호원숙 작가는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돈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믿음직스러웠던 맏딸이었다고 한다. 딸이자 친구이자 따뜻한 비평가라는 표현은 딸에게 하는 최상의 표현이 아닐까. 당신 생에서 뽑아버릴 수 없는 말뚝 같은 존재였던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부 혹은 맘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무한 신뢰한다는 편지를 받은 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부럽고 부러웠다.


이 산문집은 백일홍 에디션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앞부분에 정원을 가꾸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못했다. 그런 글을 포함하여 작가님의 생활이 녹아있는 글들이 많으니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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