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토끼 - 2023 문학나눔 선정도서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93
최영아 지음 / 북극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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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보름달을 가리키며 정말 달에 토끼가 사냐고 묻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 이가 있다.


토끼 귀처럼 보이는 저건 크레이터, ... 울퉁불퉁한 달 표면의 그림자가 토끼 귀처럼 보여서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산다고 생각했대.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토끼가 산다고 생각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당나귀, 페루에선 두꺼비가 산다고 생각했다네.”


제 얄팍한 지식을 애 앞에서 뽐내는 동심파괴자, 엄마였다.


이런 어른들을 위한 필독 그림책 <달토끼>가 나왔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이 마음에 재 뿌리지 않고 토끼 이야기를 아름답게 들려주고 싶은 어른들에게 도움이 될 그림책이다.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달토끼>는 기획에서 출간까지 5년이 걸렸으며 최영아 작가의 상상력은 아름다운 민화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으림책에 글이 들어갔다면 군더더기가 될 뻔했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풍성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게 한데는 한국적 색채가 큰 역할을 했다. 한옥, 한복, 한국의 자연, 한국의 놀이가 쨍한 색감으로 민화 속에 살아 움직인다.


어린이들도 이 책에 환호할 것이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그림이다. 그림만으로 완성된 <달토끼>는 두말 할 것 없이 그림에 푹 빠지게 만든다. 표지부터 내지를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아이와 함께 펼친다면 그림만 봐도 그저 좋겠지만 역할놀이를 해보면 좋겠다. 엄마는 달, 아이는 토끼도령이 되어 장면마다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정답은 없다. 감탄사만 연발해도 된다. 두 번째 읽을 땐 역할을 바꾸면 대사에 변화를 줄 수 있는데, 7세 이상의 아이에게는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하도록 해보자. 평소 이야기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해설을 길고 자세하게 지어내도록 유도해 뿌듯함을 느끼도록 하면 더욱 좋다.



그림 사진을 많이 넣으려니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이 리뷰에는 최소한의 그림 사진만 공유했고, 내용도 모두 다 넣지 않았음을 밝힌다.



☞ 첫 두 장면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토끼도령은 혼자 놀고 있다. 아니다.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님이 친구다.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과 달님의 얼굴 사이에 하트를 그려 넣었다. 서로 얼굴만 봐도 마냥 즐거워하던 그 때!


어디선가 날아온 돌덩어리가 달님의 머리에 부딪혔고, 반달만한 파편이 똑 떨어지고 만다. 그걸 보다 깜짝 놀라는 토끼도령의 표정이 너무 귀엽다.




토끼도령은 얼른 연못으로 달려가 떨어진 달 조각을 주워온다.


달님에게 이것을 어떻게 전달한다?

부리나케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 토끼도령! 이 방을 비추는 장면이 예술이다. 전면에 보이는 6폭 병풍하며, 왼쪽 장위에 정갈하게 개켜진 이불, 좌탁 위의 붓과 벼루와 먹, 그리고 종이위에 그리다만 달님의 얼굴이! 토끼도령이 얼마나 달님을 오매불망하는지 이 한 컷에 드러난다.




토끼도령은 달 조각을 달님에게 무사히 돌려줄 수 있을까? 최대한 높이 뛰어 올라 하늘에 있는 달님에게 닿아야만 한다. 토끼도령이 시도한 방법은 한국 전통 놀이다. 널뛰기, 그네외줄타기다. 각 놀이 장면은 2차원이지만 동영상의 효과를 내는데 한 장면 안에서 컷을 절묘하게 분할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들에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과연 어떤 놀이의 점프력이 가장 높을까? 마침내 달님에게 닿은 토끼도령은 달 조각을 끼워주고 둘은 비로소 환하게 웃는다.




뒷면지의 양쪽 그림은 이를 데 없이 아름답다. 밤 하늘에 두둥실 솟아오른 보름달이 연못을 비추면, 반딧불이가 너울너울 연꽃 위를 넘나들고 나비도 개구리도 조용히 잠을 청한다. 저 달 속엔 분명 토끼도령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 리뷰 맨 처음에 크레이터 어쩌구저쩌구 했던 동심파괴 엄마가 바로 나라는 사실!은 안 비밀...


그림책 <달토끼>는 가히 작품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다. 달과 토끼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소장욕 뿜뿜하게 만들 책이 되리라 장담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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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와 쥐
바두르 오스카르손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아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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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와 쥐>는 어떤 사이일까요? 친구 사이? 앙숙?표지를 본 아이는 동물들이 화가 난 것 같다고, 싸운 것 같다고 합니다. 이제 면지를 열어봅니다. 조명이 켜진 구석에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동물 친구들은 셋인데 소파는 왜 하나일까요?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서지 정보와 제목을 훑어본 후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쥐, 고양이, 개가 순서대로 소개됩니다. 이들은 각각 혼자 서 있고, 뭘 해도 심드렁해요. 셋은 이제 친구가 되었는데 모두 심심해하고 있어요. 쫓고 쫓기던 예전을 그리워하네요.

‘페로 제도’출신 그림책 작가 ‘바두르 오스카르손’은 단순한 그림체와 색감으로 표현한 그림책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납작한 토끼>로 국내에 첫 소개되었고, 신작 <개와 고양이와 쥐>로 다시 찾아왔어요. 이번 책의 색감은 연한 갈색으로 통일되었지만 톤의 변화와 그림자의 음영, 얇은 선으로 양감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동물들의 눈은 펜터치로 표정의 변화를 표현했는데 아이 역시 동물의 눈을 보며 대사를 말할 정도였습니다.​​



개와 고양이와 쥐는 거실에 모였어요. 자기에게 맞는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 있지만 표정은 몹시 무료하지요. 모이긴 했는데 뭔가를 한 건 아니에요. 그날 밤 개는 쉬이 잠들지 못했어요. 몸이 근질근질해서요. 너무너무 짖고 싶었거든요. 왠지 화가 나는 것도 같았어요. 고양이가 자기를 이제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자, 날이 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다음날 아침, 개는 어젯밤의 계획대로 목청껏 왈왈왈 짖어서 고양이를 깜짝 놀라게 했고, 고양이는 쥐가 개를 꾀었을 거라며 쥐에게 달려들었고, 쥐는 깜짝 놀라 쥐구멍으로 숨었어요. 쥐는 개를 어떻게 골려주었을까요? 

각 동물들이 상대방을 골탕먹일 때 그림은 정지 상태지만 양육자가 실감나게 읽어준다면 아이에게는 영상처럼 느껴질 겁니다. 뒷장으로 넘기기 전에 목소리를 한껏 낮춰 ‘어떻게 했을까?’라고 주의를 집중 시킨 후 다음 그림을 펼쳐 보이며 큰 소리로 읽어줍니다.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2~3초 쉬었다가 동물이 행동하는 그림을 보게 하고 텍스트를 읽어줍니다. 클라이맥스가 지나면 3면으로 분할된 그림 안에 개와 고양이와 쥐가 혼자 앉아있습니다. 모두 잠들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있어요. 그 밤에 셋은 거실에 모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나눕니다. 왜 그랬어? 셋은 이유를 말합니다. 


이 때 아이와 함께 역할을 나눠 읽으면 좋습니다. 동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직접 읽음으로써 동물에 감정이입 될 수 있지요. 만약 아이가 글을 읽지 못한다면 양육자가 다 읽어준 뒤에 각 동물들의 입장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게 좋습니다. 

다 읽은 후,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 수 있습니다. 6~7세의 경우 오해, 소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친구와 같이 놀고 싶었는데 놀자고 말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지, 싸웠을 때 먼저 화해하자고 한 적이 있는지 경험을 물어봅니다.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 다시 묻고, 이 책 속 동물들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먼저 말했더니 친구의 생각을 알 수 있었지?

"오해한 것 같지?"

마지막 그림, 동물들의 표정이 어떤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손가락질 하는 거보니 싸우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고 공감해주고 해당 텍스트를 읽어주며 서로의 마음을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해줍니다. 그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건, 필요했던 건 대화였겠죠?

마지막 쥐의 생각,

'오랜만에 참 좋다...'를 보니 이야기 나눠서 좋아졌다고 한 거겠지요.

이제 개와 고양이와 쥐는 어떻게 지낼까요?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양육자가 모범답안을 요구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연스레 동물친구들이 어떻게 어떻게 지낼거라고 대답한답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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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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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의 묘미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초반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와 경찰 혹은 탐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이 벌어지는 와중에 독자는 경찰과 경쟁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흩어놓은 단서를 토대로 독자는 자신의 추리가 경찰의 사건 해결 과정과 부합하는지 맞춰보며 쾌감을 얻는다. 애거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을 읽으며 추리의 맛을 배운 독자들이 그런 소설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 출간되는 장르 소설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독자의 이해 정도와 몰입도가 높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나 cctv를 비롯, 최첨단 수사기법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을 모티브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이번에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받아서 읽게 된 소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TELL NO ONE)>는 미스터리 장르 소설의 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20여 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건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작가 할런 코벤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인 에드거상, 앤서니상, 셰이머스상을 최초로 석권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2000년대 초반 <밀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독자들의 지속적인 복간 요청으로 이번에 재출간 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화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원작을 먼저 읽어본 뿌듯함을 안고 리뷰를 쓴다.


소설은 주인공 소아과 의사 벡이 8년 전에 죽은 아내 엘리자베스가 보낸 이메일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는 이메일을 아내가 보낸 게 맞는다고 확신한다. 둘 만 아는 비밀 암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도 따져봤지만 그럴 리가 없다. 게다가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까지 첨부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이제 벡은 죽은 아내가 살아돌아왔다고 아니, 아내는 8년 전 그 사건에서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내와 만나야 한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일곱 살에 처음 만났다. 열두 살에 첫 키스를 했고 스물 다섯에 결혼했다. 8년 전 죽었지만 그는 소울메이트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그 날, 결혼한 지 7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벡은 둘 만의 비밀 장소인 호수에서 아내에게 어떤 고백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수영을 하고 있던 아내는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자신은 둔기에 맞아 쓰러졌다. 깨어나 보니 장인은 아내가 죽었다고 했고 시신을 확인했다고 알려줬다.


죽은 지 8년이 지난 후 살아있다는 메일을 보낸 아내가 만나자고 하면서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부터 벡에게 불리한 정황 사고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아내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분명 살인자가 따로 있었는데 새롭게 드러난 증거들은 벡을 가리킨다벡은 자신이 살인자라는 뉴스를 무력하게 지켜보며 FBI의 감시 속에서 아내를 만나야만 한다. 과연 둘은 만날 수 있을까?


처음엔 벡의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그가 용의주도한 범인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뭔가 석연찮은 경찰 출신 장인, 너무나 아귀가 딱 맞는 아내 살인의 증거들이 헷갈리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를 죽이려 한 그들, FBI는 아닌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어떤 세력이 과연 누구인지, 나는 계속 그 실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작가는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엘리자베스의 죽음이 왜 그런 식으로 포장되었는지 하나하나 벗겨나가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독자들이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벡의 누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그녀의 친구, 위험에 빠진 벡을 도와주는 사람들 등등. 이 과정이 좀 길다보니 뭔가 깔끔하게 똑 떨어지지 않고 너무 많이 벌여놓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의 치밀한 준비로 그들 부부가 만날 뻔했던 순간과 그녀가 경찰에 잡힐 것 같았던 상황은 심장 쫄깃하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쉽게, 단번에 만나면 재미없지! 작가는 끝까지 독자를 약올린다. 그녀가 왜 살해된 사건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궁금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터뜨린다. 그 사건을 빌드업 했던 사람이 누군지 이 리뷰에서 밝히면 김이 새니까 그럴 순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엘리자베스 사망 사건의 전말이 복잡했던 실타래를 풀리듯 스륵 드러나고, 첫 장면에서 벡이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가장 끝에 알려준다. 그것은 크다면 큰 반전에 해당되는데 효과는 미미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다 읽은 후 확인하게 되다보니 이것이 반전인지 모르고 넘어갈 독자도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처음부터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더라면......’하고 벡이 생각하는 부분을 읽고 나는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샤르메인 호수에서 불길한 심정으로 벡의 독백 같은 내용을 읽었을 때 음침한 그곳에서 뭔가 사고가 발생할 것만 같긴 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에 촉각을 세워서 그랬는지,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했다고 한 부분을 대충 읽었던 가보다. 그 다음 내용에서 엘리자베스가 사라지고 벡은 둔기로 맞고 쓰러지니 그 쪽으로 시선이 쏠리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가 하려했던 고백이란 것을 흔히 나오는 불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돌아와 보니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반전에 해당하는 복선이었다. 이 리뷰를 읽고 반전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물론 끝까지 읽어야 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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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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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한다는 낱말을 사용할 때, 그 대상은 보통 이성을 일컫는다. 대부분 이성애를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곧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이성끼리의 관계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도 내포한다. 김혜나 작가의 소설집 <깊은 숨>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에 내가 의문을 품었던 문제를 떠올렸다.


남녀 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나?’

남녀가 사랑하면 꼭 섹스를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사랑이 완성되는가?’


20대 초반에 천착했던 문제였고,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절어있던 시기에 그런 문제를 떠올리는 건 사치였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세월을 지냈다.


<깊은 숨>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 주인공은 20대에서 50대의 여성이다. 크게 보면 사랑이 소재다. 동성애를 포함하며 이성이라해서 섹스를 포함하는 관계는 아니다. “레드 벨벳코너 스툴은 남녀 관계에서 친구란 성립할 수 없는 것인가를 묻는다. 두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비슷한 일을 하는 남성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영혼이 통한다는 것을 느끼며 충만함을 느낀다. 그런데 여성이 싱글이고 남성이 유부남일 경우, 그들은 불륜이 된다


레드 벨벳의 영어 강사 해럴드는 아내가 있다는 이유로 주인공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길 거절한다. 주인공이 불륜을 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영문학 번역 및 토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해럴드의 행동을 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대면 만남을 피하면서도 주인공에게 그녀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길 바라는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다.


해럴드가 학원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에 사용한 수업 교재는 엘리자베스 버그의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라는 책이었고, 그녀에게 전자책 파일을 보내주었다. 주인공은 어리둥절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친구이고 어디서부터 연인일까? 사람들은 애초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인간이 언제나 연애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p.236~237


내가 예전에 궁금해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소설에서 만났다.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는 10대 소녀와 여든 다섯 살 할아버지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를 집어넣은 것 같다.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가 밀리의 서재에 있기에 바로 다운로드 받았다.


코너 스툴의 주인공 소설가 이오진 역시 책방지기 박호산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었고 만족스러웠다. 호산은 자신이 쓴 습작 소설을 오진에게 한 번 읽어봐 달라고 해서 두어 번 만남이 이루어졌으나 호산의 아내가 둘의 관계를 오해하게 된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본 아내가 오진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아이, 씨발. 진짜 이 개 같은 년이 어디서 자꾸 호산 씨래? , 어디서 감히 남의 남편을 함부로 만나고 이딴 걸 써서 보내? 왜 남의 남자한테 수작을 부려? ?”


오진은 그런 거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고, 이렇게 생각했다.


박호산씨를 남자로 대한 적이 없다고, 나는 그와 연애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를 남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나와 같은 존재로, 나와 같은 영혼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고, 그게 다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리고 나는,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오지 않은 미래에서도 애인이 있는 남자와 만남을 회피하려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 남자가 주인공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셋이 만나고 있는 동안에 커플 진수와 민서가 주인공 여경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진수가 여경의 글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여경은 부다페스트에서 진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거리감을 두려고 노력했고, 한국에 돌아와 셋이 같이 만났을 때도 그 만남을 얼른 끝내고 싶어 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여경의 행동은 몹시 조심스럽다. 상대 커플이 부부관계가 아님에도, 커플의 여성, 즉 민서가 여경을 경계하지 않음에도, 여경이 먼저 철벽을 친다.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 본능적 행동이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간관계의 협소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녀 간의 만남은 사랑과 섹스뿐이라는 단순성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오랜 시간 재생산 되어온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사랑의 원형처럼 읽히는 소설들로 인해 우리 인식에 자리 잡은 것이란 생각이다. 내 생각엔 원조 러브스토리로 로미오와 줄리엣”, “마담 보바리같은 불륜 소설이 대표주자인 것 같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다양한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고 있지만, 사랑을 소재로 한 것들은 여전히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녀가 만나면 사랑하고, 섹스하고, 결혼하거나, 불륜인 내용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김혜나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인간애를 말하고 있다. 이성끼리 만나서 사랑만 하는 건 아니라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만나면 죄다 불륜인 것은 아니라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도 있다고. 사랑조차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는 인간애가 성별 구분이 없어지길 바란다. 나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좋겠다. 남자여도 여자여도,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다. 공통 관심사로 손뼉치며 웃고 떠들고 밤새도록 이야기 하고 싶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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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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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글은 <살고 싶다는 농담>으로 처음 만났고, <최소한의 이웃>으로 두 번째다. 앞부분을 읽다 갸웃했다. 지난 책이 좋아서 이번에 김영사 서포터즈 지원도서라서 신청해서 받아 읽었는데 이전 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절반 정도를 읽었는데 여전해서 내가 썼던 <최소한의 이웃> 리뷰를 꺼내 읽어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와 차이점을 글에서 발견했고 그의 스타일을 꽤나 맘에 들어 한 기억이 났다.


그럼 이번 책은 왜 다를까? 물론 감동받았던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래도 독자의 독서 컨디션이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독자가 그 책을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당시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이었나에 따라 감상의 폭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작가의 말에 나와 있는 대로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 는 것이다. 공감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웃과 교류가 없어서일까? 꼭 옆집 사람만을 이웃이라 지칭한 것이 아님은 안다. 그럼 나는 주위 사람들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걸까? 소설 속 인물들에는 관심이 많은데... 몸은 현실에 있지만 머릿속은 가상 세계를 헤매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머릴 굴려보다 책으로 다시 돌아갔다. 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책의 중간 중간엔 사이즈를 줄이고 조금 두터운 질감의 내지에 메모하듯 프린트된 문장들이었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한 바닥 혹은 두 바닥 정도로 짧은 글이 20편 이상 실려 있다. 각 글의 소재는 우리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뉴스에 실린 각종 사건 사고들, 작가의 일상 속 일들이다. 이런 간단한 일화 소개 후 마지막에 작가의 단상을 다는 형식이다. 독자가 그와 유사한 경험이 있거나 접해 본 기사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고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나는 그 단상에 살짝 거부반응이 들었다. 너무 교훈적으로 마무리 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언뜻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런 짧은 글을, 이렇게나 많이 모아서 책으로 내다니, 역시 작가라서 가능한 거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썼던 전작 리뷰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발췌해두었던 문장을 다시 옮긴다.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심과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되기를.“


다시 <최소한의 이웃>으로 돌아왔고 끝까지 읽고 보니 위 인용문의 해설서가 <최소한의 이웃>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p.128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p.252

지금 이 순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는 모든 이를 떠올리며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p.303

고통에 잠식되어 있을수록 눈앞의 일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희망이 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있으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평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평정을 찾아 희망에 닿기 위해선 이미 벌어진 일에 속박되지 않고 감당할 줄 아는 담대함, 그리고 타인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찾을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다만 잠시 희미해졌을 뿐입니다. 나의 일을 감당하고 남의 일을 염려하다 보면 반드시 평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렇게 짧은 글 한편 정도야 나도 쓰겠다며 허장성세 부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토록 밝은 눈으로 세상에 귀 열고 분주히 글을 써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허지웅 작가의 글을 후루룩 읽은 후 밥 뜸을 들이듯 잠시 포즈 상태를 유지해보자. 내 모습이 어떤지, 최소한의 이웃이 되려면 나는 어떠해야 할지 눈 감고 그려보자. 어떤 이웃이 될지 안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담백함이었다. 두 번째 책으로 만나니 짱짱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휘둘리며 살았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의와 상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를 믿어선 안 됩니다. 당신은 달랐으면 합니다. 당신이 충분히 많이 읽고 많이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상을 구분할 수 있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갖는 데 행운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는 옛날 드라마를 보며, 함께 공감하고 응원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고맙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만이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우 기뻐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과거시험 문제를 낸 왕을 불러온 후 어린이날이 오는 걸 손꼽아 기다렸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누군가에게 별 의미 없는 휴일이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볼 여유와 평정을 찾는 하루가 될 수 있다면 꼭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기다릴 수 있는 어린이날이 될 거란다.


그의 짧은 글은 이런 저런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단번에 다 읽는 것보다는 한 두 꼭지의 글을 읽은 후 생각을 정리해보거나 글을 써보기를 추천한다. 날 지키는 파수꾼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전에 내가 이웃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 또 이웃의 범위를 길고양이, 집 근처 하천 등 사람을 너머 생태 전반으로 확장시켜야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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