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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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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의 묘미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초반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와 경찰 혹은 탐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이 벌어지는 와중에 독자는 경찰과 경쟁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흩어놓은 단서를 토대로 독자는 자신의 추리가 경찰의 사건 해결 과정과 부합하는지 맞춰보며 쾌감을 얻는다. 애거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을 읽으며 추리의 맛을 배운 독자들이 그런 소설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 출간되는 장르 소설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독자의 이해 정도와 몰입도가 높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나 cctv를 비롯, 최첨단 수사기법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을 모티브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이번에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받아서 읽게 된 소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TELL NO ONE)>는 미스터리 장르 소설의 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20여 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건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작가 ‘할런 코벤’은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인 에드거상, 앤서니상, 셰이머스상을 최초로 석권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는 2000년대 초반 <밀약>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독자들의 지속적인 복간 요청으로 이번에 재출간 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화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원작을 먼저 읽어본 뿌듯함을 안고 리뷰를 쓴다.
소설은 주인공 소아과 의사 벡이 8년 전에 죽은 아내 엘리자베스가 보낸 이메일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는 이메일을 아내가 보낸 게 맞는다고 확신한다. 둘 만 아는 비밀 암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조작했을 가능성도 따져봤지만 그럴 리가 없다. 게다가 아내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까지 첨부했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이제 벡은 죽은 아내가 살아돌아왔다고 아니, 아내는 8년 전 그 사건에서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내와 만나야 한다.
그는 엘리자베스와 일곱 살에 처음 만났다. 열두 살에 첫 키스를 했고 스물 다섯에 결혼했다. 8년 전 죽었지만 그는 소울메이트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그 날, 결혼한 지 7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벡은 둘 만의 비밀 장소인 호수에서 아내에게 어떤 고백을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수영을 하고 있던 아내는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자신은 둔기에 맞아 쓰러졌다. 깨어나 보니 장인은 아내가 죽었다고 했고 시신을 확인했다고 알려줬다.
죽은 지 8년이 지난 후 살아있다는 메일을 보낸 아내가 만나자고 하면서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때부터 벡에게 불리한 정황 사고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아내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분명 살인자가 따로 있었는데 새롭게 드러난 증거들은 벡을 가리킨다. 벡은 자신이 살인자라는 뉴스를 무력하게 지켜보며 FBI의 감시 속에서 아내를 만나야만 한다. 과연 둘은 만날 수 있을까?
처음엔 벡의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그가 용의주도한 범인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뭔가 석연찮은 경찰 출신 장인, 너무나 아귀가 딱 맞는 아내 살인의 증거들이 헷갈리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를 죽이려 한 그들, FBI는 아닌 것 같은 보이지 않는 어떤 세력이 과연 누구인지, 나는 계속 그 실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작가는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엘리자베스의 죽음이 왜 그런 식으로 포장되었는지 하나하나 벗겨나가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독자들이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벡의 누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그녀의 친구, 위험에 빠진 벡을 도와주는 사람들 등등. 이 과정이 좀 길다보니 뭔가 깔끔하게 똑 떨어지지 않고 너무 많이 벌여놓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자베스의 치밀한 준비로 그들 부부가 만날 뻔했던 순간과 그녀가 경찰에 잡힐 것 같았던 상황은 심장 쫄깃하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쉽게, 단번에 만나면 재미없지! 작가는 끝까지 독자를 약올린다. 그녀가 왜 살해된 사건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궁금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터뜨린다. 그 사건을 빌드업 했던 사람이 누군지 이 리뷰에서 밝히면 김이 새니까 그럴 순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엘리자베스 사망 사건의 전말이 복잡했던 실타래를 풀리듯 스륵 드러나고, 첫 장면에서 벡이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려고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가장 끝에 알려준다. 그것은 크다면 큰 반전에 해당되는데 효과는 미미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다 읽은 후 확인하게 되다보니 이것이 반전인지 모르고 넘어갈 독자도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 ‘처음부터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더라면......’하고 벡이 생각하는 부분을 읽고 나는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샤르메인 호수에서 불길한 심정으로 벡의 독백 같은 내용을 읽었을 때 음침한 그곳에서 뭔가 사고가 발생할 것만 같긴 했다.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에 촉각을 세워서 그랬는지, ‘그녀에게 고백하기로,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했다고 한 부분을 대충 읽었던 가보다. 그 다음 내용에서 엘리자베스가 사라지고 벡은 둔기로 맞고 쓰러지니 그 쪽으로 시선이 쏠리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가 하려했던 고백이란 것을 흔히 나오는 불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읽고 다시 돌아와 보니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반전에 해당하는 복선이었다. 이 리뷰를 읽고 반전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물론 끝까지 읽어야 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