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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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기에 김영사 서포터즈 도서로 올라온 것을 보고 당연히 신청했다. 교수라는 직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제목에도 떡하니 공부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책을 집필했는데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는 10여 년 전부터 이런 책을 꼭 쓰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줍시다.”

이땅의 모든 부모님들을 불러모아 촛불을 들고 싶다고 하면서 부모 세대가 받은 교육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걸맞는 교육을 하자고 주장했다.


이 책은 놈 촘스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리베카 솔닛, 마사 누스바움, 이해인 수녀 등을 인터뷰한 안희경 저널리스트와 최재천 교수가 1년 여에 걸쳐 나눈 대담을 토대로 출간되었다. 여러 인터뷰집을 읽어봤지만 이렇게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 내린 책은 처음이었다. 안희경 작가의 밀도 높은 질문과 최재천 교수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답변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책으로 삶 전체가 공부임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최재천 교수의 인생관을 알게 되었다.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쓰려니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퉁박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최교수는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교육부가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얽히고설키게 만든 주범이라고 했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발언을 한 현 대통령이 떠올라 얼굴이 찌푸려졌다. 예전에 학생들을 산업 역군을 양성하던 시대로 되돌리려는 교육의 기역자도 모르는 자는 이런 책을 읽고 공부 좀 해야 한다. 어쨌든 시작부터 내 기분은 다운되었지만 그런 자 때문에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어떻게 되찾아 줄 수 있을지 얼른 확인하고 싶었다.


수포자였던 그가 하버드에서 수학을 잘 하게 된 사연과 이화여대에서 15년째 인기 강좌인 환경과 인간을 수강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점점 기분이 업되어갔다. 내가 이대 학생이 된 듯 막 신이 났다. 나는 중학교 때 물상은 싫어했고 생물은 좋아했었다. 생물과 지리과목을 좋아했는데 나도 환경과 인간을 수강했다면 그 두 과목을 콜라보하여 분과위원회를 만들어서 즐겁게 참여했을 것 같았다. 미국과 한국의 교수집단이 중시하는 것의 차이점을 보니 두 사회가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명확하게 비교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 사회도 서서히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 더디다.


최교수는 자신의 우선순위는 혼자 연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안작가는 이에 긍정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선생의 말을 인용한다.


창의력은 혼자서 몰입한 시간이 만들어낸다.”

여기에 최교수는 행운을 보태고 싶다며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요,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조건과 그 시간을 제법 잘 운용했다는 데 있어요. 혼자 생각하다 보면 완전히 엉뚱한 데로 빠지기 쉬운데 보편적 범주 안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조금 다른 발상을 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홀로 있으면서 창조적인 활동의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는 말에 공감했지만 다음에 나오는 말, “1주일 앞서 한다!” 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그는 계획하고 정돈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튜터를 할 때 만난 학생을 보고 자신도 따라하면서 바뀌었다. 그 학생은 5일 후에 제출할 리포트를 써야하기 때문에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5일전에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치는데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미리 한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고 35년 간 1주일 전에 미리 마감해둔 습관은 엄청난 생산성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교수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면서 책 리뷰를 쓰면서 늘 마감에 허덕인다. 그들만큼 일이 많진 않지만 책 욕심에 서평단용 책을 너무 많이 받아 놓았거나 집안 일이 생겨서 책 읽을 시간을 뺏기게 되면 리뷰는 자꾸 뒤로 밀리게 되면 마감일에 턱걸이 하게 된다. 미리미리 해두면 여유롭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앞의 변명적 상황들이 겹치다보니 마감 날짜까지 끌고 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할 일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교수도 1주일 전에 마감한다는데 난 뭔가 싶어 부끄러웠다. 이제 1주일 전 마감으로 습관을 들여야겠다.


최교수는 하버드에서 배운 리포트 쓰기를 자신의 수업에도 적용했는데 미국학생들과 달리 한국학생들은 너무 버거워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가서 설렁설렁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게 여실히 확인되었다. 그의 수업에서는 쓰지 않으면 학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에세이 11편을 써서 실수한 하나가 있다면 뺄 수 있다. 10편을 쓴 사람보다 11편을 쓴 사람이 더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는 학생들에게 작은 인생을 한번 살아본다고 여기고 잘해보자고 독려한다.


교수라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할 것 같은데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놀랐다. 나는 책 욕심과 지적 허영의 강박 때문에 다독하려고 애쓴다. 속독하게 되니 꼼꼼하게 읽지는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번 책처럼 줄긋고 메모하며 읽는 경우도 있지만. 최교수는 입으로 읽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배우처럼 연기하며 읽기 때문에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서고를 개방하면서부터는 책에 직접 메모하지 않고 포스트잇에 쓴 후 떼어낸단다. 엄선한 책을 숙독하며 깊게 소화한다. 이렇게 자신의 독서법을 소개한 후 독서는 빡세게 하는 거라고 말한다.


p.144~146


독서는 일입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져요. 책은 인류의 발명품 중에서도 최악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3차원을 보게끔 진화했어요. 책은 평면에 글자를 새겨서 만든 2차원 물건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눈이 아파요. 책은 눈을 망가뜨린 원흉이에요.

우리는 기획서를 작성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죠.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분야의 책을 공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 번도 배우지 않았는데 술술 읽힐까요? 난생처음 붙든 양자역학 책의 책장이 척척 넘어갑니까? 진화심리학이 하도 뜬다니까 좀 읽어 봐야지라고 생각하곤 붙잡았는데, ‘! 잘 읽히네!’ 하면 거짓말이에요. 당연히 안 읽힙니다. 그런데 그 책을 있는 힘을 다해서 끝까지 읽고, 또 비슷한 진화심리학 책을 사서 읽다보면, 세 번째 책은 참 신기하게 술술 넘어갑니다. 어느 순간 그 주제가 내 지식의 영토 안으로 들어와요

(……)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 나가다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실 거예요. 100세 시대에 20대 초반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변명이고, 쉽고 가벼운 책만 읽겠다는 취미생활은 필요없다는 단호한 일성을 들으니 느슨해졌던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일을 시작하며 그전보다 확연히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나, 절대 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합리화를 위해 말랑한 e-book을 읽던 짓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기획해서 씨름하듯 읽는 일은 힘들고 피곤하다.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교수의 말처럼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을 거라면 책이 도구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싸고 쉬운 방법이 독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하게 손에 쥐었던 책들보다는 전혀 접하지 않았던 책들을 기획하여 일처럼 읽어보기를 시도해야겠다. 그 시작은 물리학 서적으로! 좀 두렵지만 도전할 것이다.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다. 엄마 침팬지는 새끼 침팬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침은 없이 배움만 있다. 새끼 침팬지는 옆에서 그냥 보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너무 가르치려고 한다. 침팬지가 배우듯 몸으로 익히면 긴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한 학습이 될 텐데, 급하게 욱여넣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우리가 교육하는 이유는 사회에 진입할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최소한 알아야 원만히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거라면 아주 기본적인 배움을 합의해내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335


요샛말로 뭣이 중헌디예요. 늘 국영수만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게끔 기본적 훈련을 교육이 담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재앙을 겪을 거예요. 국영수만 잘해서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졌다가, 또 국영수를 하고 좀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지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은 늘 평탄하게 즐겁게 사는 것 아닌가요.



출신 고등학교와 수능 성적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고, 대학교 잠바가 마치 계급을 결정하는 옷처럼 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작가가 물었을 때 최교수는 자신의 학력 세탁을 이야기한다. 하버드 대학을 선택하게 된 드라마틱한 과정에 놀랐다가 하버드 졸업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재확인하며 공고한 학벌사회에 씁쓸했다. 문학작품도 아닌 책을 읽으며 이렇게 감정이 요란스레 널뛴 적은 없었다. 우리의 교육 현실과 답답한 교육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언짢았다가, 그래도 희망 담은 미래를 제시하면 머릿 속에 환하게 밝아졌다. 최교수가 공부했던 과정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처럼 뿌듯했고, 교수로서 자신의 연구 성과보다 제자들을 위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 책의 제목에 공부가 들어갔다고 해서 학생들만 읽어야 한다고 여길까봐 살짝 걱정된다. 워낙 유명한 교수인 최재천이라는 이름이 들어있으니 학부모나 교사들은 읽어볼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읽으면 좋겠다. 산다는 건 무엇이든 알아가는 과정이고, 특히나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계속 공부해야 하는 시대다. 공부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없진 않으나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이 주는 기쁨도 분명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공부하는 삶의 즐거움을 알길 바란다. 최교수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으라고 말한다. 하다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마지막으로 최교수 부부가 서로에게 활력을 주는 사이라고 한 부분은 부부관계를 너머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되는 것 같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p.293


서로의 뜻을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삶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배움 속에서 다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는 바로 그 존중이 바탕으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각자가 뿜어내는 가치가 보입니다.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의 가치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 저마다의 삶 속에 저마다의 공부가 있습니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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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해방의 괴물 - 팬데믹, 종말,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
김형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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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해방의 괴물>은 문화연구자 김형식씨의 신간이다. 그는 2020년에 좀비를 혁명적으로 재사유한 <좀비학>을 출간했는데 이번 <좀비, 해방의 괴물>을 통해 팬데믹을 둘러싼 사회현상, 담론, 장르영화와 소설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번에도 제목에 좀비가 들어간 것처럼 좀비 영화와 소설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끌어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는 우리 시대에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1장에서 8장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나 각 장의 제목과 소제목을 보고 관심 가는 분야를 먼저 읽어도 괜찮다. 좀비 영화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다루는 작품들을 분석하는 내용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좀비에서 가지를 뻗어 철학적 담론과 종말론으로 연결하는 필력에 감탄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위기가 무사유의 결과물로 돌아온 재난이라는 것과 종말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사유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내는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좀비물에 관심이 없지만 부제와 책 소개에 끌려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처럼 좀비물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시기에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저자가 소개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좀비물과 뱀파이어물들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좀비와 팬데믹, 재난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자본주의와 종말을 천착한 후 사유를 강조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졌다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아니 꼭 일상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염원했다. 그러나 저자는 일상의 회복을 향락주의의 유혹이라고 일갈했다. 우리가 겪은 재난을 그저 흘러간 고난이나 힘든 시절로 회상하지 말자며, 감상에 빠지는 대신 냉철하게 사태를 진단하고 근본적인 대응방법을 모색하자고 했다.


p.20


우리의 목표는 일상의 수호나 유지가 아니라 일상을 끝장내는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폐허 위에서 다른 시작을 예비해야 한다. 오늘날 만연한 절망과 체념의 교설은 우리에게 애써봐야 소용없으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속삭인다. 세계는 우리에게 되지 않을 일을 시도하면서 헛되이 힘쓰지 말라고,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즐기는 삶을 향유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종류의 종말의 테제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현실의 가능한 열매들에게 만족하라는 달콤한 향락의 테제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늦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대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실질적인 변화가 여전히 가능하며, 다른 삶은 얼마든지 실존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책 전체로 설득하고 있다. 동의할지 부동의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3장 자본주의를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으며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자본주의 통치의 거스를 수 없는 지배력을 강조하는 지식인들에게서 체념어린 태도를 보았다. 지식인들은 결국 자본주의 권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패배할 것으로 전망하며 급진적인 사회운동들은 지속적인 변화를 창출하거나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기존 제도권 정치에 포섭되거나 패퇴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훌륭한 체제로서 입증되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자본 축적이 극적으로 편중되기 시작하여 생산의 전반적 과정이 탈영토화 되었다. 축적의 전 과정이 추상화되고 기호화되어 지역사회와 무관하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끝없는 번영을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글로벌 자본주의는 영토화라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착취기계로 한 지역을 초토화한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윤 창출을 극대화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폭력성과 불완전성이 여실히 증명되었으므로 기존의 체제로부터 탈주해 다른 제체로 신속히 이동하자고 주장한다. 세계의 종말에 맞서기 위해 자본주의를 파괴해야 한다고. 재난을 끝장내기 위한 해결책은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유의 종말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이다.


4장 팬데믹 에서도 자본주의와 연결한다.


p. 167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생태계 파괴, 도시로의 인구 밀집, 모빌리티의 끝없는 연결은 지구를 전염성 질병이 창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놓았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지역과 존재자에 도달해 기어이 착취하고야 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팽창과 끝없는 탐욕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며, 팬데믹의 본질이다. 이것을 바꿀 수 없다면 사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일단락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더욱 치명적인 형태의 신종 질병이 반복적으로 유행하게 될 거라 경고한다.

 


저자는 좀비와 바이러스를 이렇게 비교했다.


p.199


좀비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또한 주변 환경이나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미리 입력된 명령어를 끝없이 실행하고 재실행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무심한 컴퓨터와 같은 존재다. 그것은 새로운 명령어를 삽입하거나 코드를 수정할 수 없이, 사전에 설계된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기계인 셈이다. 파괴되기 전까지 끝없이 인간에게 침투하고 감염시켜 숙주로 만든 뒤, 스스로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좀비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유사하다. 좀비는 스스로 번식하거나 개체 수를 늘리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인간을 매개로 경유해서만 수를 불리고 세력을 늘려나갈 수 있다. 단세포 생물에 해당하는 세균은 독립적으로 복제와 번식이 가능하다. 반면, 바이러스는 좀비와 마찬가지로 숙주가 되는 유기체가 없이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생체다.



저자는 이번 재난을 눈여겨보고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개발과 팽창을 하루라도 끝장내야만 한다고.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회적 재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인류적 재난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 현재 세계의 환경이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족족 언제든 인류적 재난이 또다시 도래하게 될 거라는 암울한 미래를 예시한다.


오늘날 세계는 모든 관심을 시장의 원활한 작동과 자본의 증식에만 두고, 다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인질이라 주장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자신을 해친다면 세계 또한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협박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추방해야만 세계의 안녕과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일상은 재난이 종식되면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저자는 사태의 본질이 정반대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 이전에 일상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그동안 영위해온 자본주의적 일상이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불러왔다는 주장에도 나는 동의한다. 종말을 끝장내기 위해 종말을 실행하는 결단이 필요하듯 일상의 회복을 위해서는 일상을 끝장내야 한다.


종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험의 세 단계를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1. 가능성들의 스펙터클에 현혹되지 말 것 : 가능성들이 보여주는 거짓말과 환상에 속지 말자.

2. 환영들을 피해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나아갈 것 : 자유로운 세계가 제안하는 선택지를 고를 자유를 거부하고 가능성들을 소진해 침묵에 빠뜨리자.

3. 소진의 끝에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두고 볼 것 : 가능한 모든 것을 제거할 때 세계의 끝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상황이 우리를 어떻게 예속하는지 이 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를 끝장내고 흐름을 바꿀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가능성에 열려 있지 않은 삶은 예속된 좀비의 삶이다. 틀에 박힌 일상의 반복으로 채워지는 삶이란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이다.


재난은 세계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시시각각 일깨운다. 잠재된 세계는 가능성들 너머에 있다. 그것은 상황과 일상으로부터 해방될 때 떠오른다. 물론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인간에게 종말이란 마땅한 대가이며 자연스러운 종착지다. 사유하는 인간은 세계를 무너뜨려온 파괴력의 방향을 뒤집어 세계를 건설할 탁월한 역능으로 발현한다. 올바르게 사유하고,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함으로써 끝내 현실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다가오는 종말의 운명을 거스를 방법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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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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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 김수영을 잘 몰랐다. 나는 김수영을 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철학자 강신주에게서 배웠다. 10여 년 전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그 책을 읽은 후 김수영 시인의 시들을 통독하고 혼자 온몸으로 읽어냈더라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읽으며 강신주의 해석과 내가 느낀 바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강신주는 나를 김수영의 시 세계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지만 나는 시라는 매체의 매력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기에 김수영의 시집을 스스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김수영을 위하여> 이후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이 쓴 <김수영의 연인>을 사서 읽었다. 자료에 기댄 제삼자의 시선보다 아내가 직접 회고한 글에서 김수영 시인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두 권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에 읽기도 했거니와 그 때 김수영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 이 글은 변명이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가 어려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말고 나는 책장을 뒤졌다. 10여 년 전에 읽고 한 번도 다시 꺼내보지 않았던 김수영에 관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그 때는 리뷰는 쓰지 않을 때라 당시 느낌을 찾아낼만한 흔적이 책에라도 남아있는지 펼쳐보았다.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로 돌아왔다.

 

이 책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거대한 100, 김수영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된 평론 26편 모음집이다. 연재 글에 더해 육필 원고와 발표 지면 등 최초 공개되는 자료 및 특별 대담과 함께 엮어 출간되었다. 이러한 김수영 시인 관련 서적과 연구는 아직도 활발하며 시집 역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여전히 뜨거운 시인임이 분명하다. 시도 김수영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서 그런 연재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한겨레 서포터즈 선정 책으로 올라온 것을 보고 반가워서 신청했다. 나처럼 김수영 시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한겨레 연재 글을 매번 읽지 못한 일반 독자들에게 이번 책은 유용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두에 했던 변명처럼 시인의 이름과 유명 시 몇 편만 읽어본 입장으로서 키워드로 조망한 김수영의 시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김수영에 관심을 놓지 않고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물론 김수영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관심 가는 키워드 먼저 읽어도 되지만 시인의 연대기 순으로 펼쳐놓았기에 순서대로 읽어도 무방하다. 마지막에 실린 대담을 먼저 읽는 것도 추천한다. 평론에 참여한 4명의 대담자가 자신의 키워드에서 못다 풀어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김수영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한다. 무수한 연구가 있어왔으나 번역 같은 시인의 저작물 중 아직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다. 그를 연구함에 있어 해석도 중요하나 기록과 자료는 무엇보다 주요한 재료인데 백수를 바라보는 시인의 아내 김현경씨가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맹문재 시인이 김현경씨와 함께 출간할 책들도 대기 중이고 시인의 발자취 답사 책도 예정되어 있다. 김수영 읽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나아가 세계에 그를 알릴 과제도 우리에게 있다. 단순히 그의 시를 알리는 차원을 넘어 그의 시에는 우리 현대사가 오롯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다. 소설 <파친코>OTT 드라마로 전 세계인들에게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미디어가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시인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 역시 유효하다. 아직 김일성만세를 외치지 못하는 사회이고 우리는 포로민간억류인의 차이도 잘 모르며 그가 욕했던 언론은 지금 더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의 대담 중 학계에서 김수영을 과대평가하거나 우상화신화화한다는 비판에 관한 내용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독자입장에서 시를 어렵다고 느끼게 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시어를 이해하고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방식처럼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독자가 자유롭게 느낀 대로 감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족을 키워드로 쓴 이경수 교수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p.282

김수영이 앞으로 100년 뒤에도 계속 읽히려면, 김수영을 오래 읽어온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자유롭게 김수영을 읽을 수 있는 자유, 발언권을 줘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김수영 시의 어떤 유산이 계승되어야 하는지, 우리 시대에 왜 김수영을 읽어야 하는지, 김수영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신주는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진정한 시는 절대성 즉, 단독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했다. 시를 쓰기에 앞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내려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수영의 시론이 자기의 삶만 돌보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으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를 인용하며 삶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시를 알고 싶거나 시를 쓰려는 이는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물론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통해 김수영을 26가지 키워드로 접할 수 있으니 조금 어렵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읽어보길 권한다.

 



시인의 생생한 육필 원고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덤이다.이 책을 통해 김수영의 시세계를 만난 후 비판적 사유나 토론의 장을 펼친다면 김수영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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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예방과 치유, 물이 최고의 약 - 치매 걱정 없이 사는 슬기로운 치매 처방전
김영진 지음 / 성안당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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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예방과 치유, 물이 최고의 약>은 건강관련 서적을 여러 권 쓴 홀리스틱 영양 지도사 김영진씨의 신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치매를 예방하는 약이 물이라고 표현한다. 치매 치료약은 계속 개발중이긴 하나 아직 이렇다할 치료 성과를 보이는 약은 없다. 그래서 치매 관련 책은 예방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보통 식이 습관, 생활 습관, 그리고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들을 다룬다. 이번 책도 그런 책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물이 어떻게 약이 된다는 뜻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먼저 목차부터 살펴보자면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치매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2부는 치매를 일으키는 식품과 치매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나쁜 식습관을 소개한다. 3,4부에서는 체내 물 부족이 어떻게 치매에 영향을 미치는지와 물이 치매의 예방과 치유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5부는 물, 소금 섭취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으로 치매를 예방하고 치유하는데 도움 받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치매를 다룬 서적을 읽어왔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분야는 수시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1부에서 새롭게 확인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최근 치매환자 발병 나이대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대 이하의 청년에게도 발생하는 탓에 젊다는 의미의 영young과 치매의 약 76%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결합한 영츠하이머 치매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다음으로는 치매가 남성보다 여성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령별 치매환자에서 남녀 비율을 확인하니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6배정도 더 많이 치매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나와 있는 치매 치료제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한다.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치매 치료제가 가장 널리 처방되는 도네페질이라는 약의 부작용 사례는 아주 많다. 이에 저자는 물과 소금을 등한시하면 뇌 질환은 물론,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부가 치매를 유발하는 식품과 식습관이지만 사실 여기서 다루는 것들은 치매뿐 아니라 다른 질병을 유발한다. 청량음료, , 담배, 커피, 액상과당, 고기 등등. 상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저자는 이런 식품들이 치매를 유발한다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 커피에 대한 설명은 좀 놀라웠다. 카페인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춘 정보만 믿고 매일 여러 잔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눈여겨 봐둘 정보다. 여러 실험과 연구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해마의 신경세포 생성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는 나도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다. 커피에 관련된 설명은 하루에 다량의 카페인을 섭취하는 사람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내용이라서 요약 소개한다.


- 카페인은 혈관을 축소시켜 여름철에는 혈액 순환을 느리게 만들어 체내에 발생한 열을 피부의 땀구멍으로 신속하게 운반하지 못하고, 겨울철에는 열을 발생시키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게 한다.

- 카페인의 영향으로 수축된 혈관은 딱딱해져서 주변의 부드러운 피부 위로 혈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 카페인이나 마약, 담배는 두뇌로 가는 모든 영양소를 체크하는 글리아세포를 무사 통과해 뇌를 흥분시키는 물질이므로 중독성이 있다. 중독성 물질을 끊는 방법은 평소 충분한 양의 물과 적당량의 소금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


3부에서는 체내 물 부족이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는 내용이다. 신체 특성상 여성의 몸은 아래 표처럼 남성보다 물 보유량이 적다



여성에게 치매 발병률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체내 물 부족은 치매가 아니어도 만성 변비나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안구건조증과 결막염, 구강건조증, 피부경화증, 요실금 등의 원인이 된다. 요실금은 요도 괄약근 기능저하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뇌에 물이 부족해서 뇌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킨 결과라고 하면서 일본 곡사이의료복지대학의 다케우치 다카히토 교수의 책 <치매는 뇌 질환이 아니다>라는 책을 인용했다. 85세 남성의 사례를 들었다. 하루에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게 하고 운동과 산책을 꾸준히 하도록 도운 결과, 환각 증상과 요실금이 사라졌다.


3부에서 상식과 다른 내용은 소금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음식을 짜게 먹어서 고혈압이 되는 경우는 매우 극소수라고 했다. 고혈압이 걱정되어 소금 섭취량이 적으면 오히려 치매 예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에 음식을 지나치게 싱겁게 먹으며 부정맥과 콜레스테롤로 인해 고민이 많던 지인에게 이전보다 짜게 먹고 생수에 소금을 섞어 마시도록 했더니 부정맥이 사라지고 콜레스테롤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4부는 물의 효과와 물을 제대로 마시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혁신적 실마리를 제공한 사람은 이란 출신 미국인 뱃맨겔리지 박사였다. 각종 뇌 질환의 주요 원인이 물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수많은 질병을 물과 소금으로 치유했다. 그의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사람이 일본의 다케우치 교수다. 치매 환자의 여러 증상 중 80% 정도는 물과 운동만으로 치유되는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경우를 살폈더니 신경 안정제, 수면제, 항우울증 약 등을 복용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다케우치 교수가 성공한 여러 사례들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물을 많이 마실수록 뇌 속의 쓰레기를 깨끗이 씻어내 치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뇌신경 세포를 보호할 뿐 아니라 노년기를 건전한 정신으로 품위 있고 활기차게 생활하도록 돕는 가장 좋은 천연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하루에 1,5~2리터 이상을 마셔야 한다.그러나 주의할 점은 적당량의 천연 소금과 함께 섭취해야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 제대로 마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상온의 물을 마신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신다.

- 식사 전후에, 식간에도 마신다.

-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하루 2.7리터를 마셔야 한다.


, 심각한 심장 질환이나 신장 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을 때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물 마시기를 해야 하다. 또한 물 중독을 막으려면 소금과 같이 마시거나 음식을 약간 짜게 먹어야 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소금은 볶은 천일염과 죽염이다.


5부에서 권유하는 운동 중에 맨발 걷기 운동을 소개한다. 걷기 운동을 하면 뇌신경 세포가 새로 생성된다는 실험 사례가 있다. 그냥 걷는 것보다 맨발로 걸으면 몸의 정전기가 빠져나가므로 흙길이나 모래사장을 한 시간 정도는 걷는 것이 좋다. 맨발로 걷기는 꼭 치매 때문이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시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 외 치매 예방법은 다른 건강관련 서적이나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습관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


- 1주일에 241~42도의 물로 반신욕을 한다.

- 치주염 예방을 위해 양치질을 소금으로 한다.

- 흐르는 수돗물로 손을 자주 싯어 몸의 정전기를 없앤다.

- 뇌를 보호하기 위해 휴대폰은 스피커폰이나 이어폰으로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지시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의 현재 건강 상태에 맞춰, 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 보면 된다. 치매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위해, 그동안 시도했으나 잘 안 지켜진 것들을 지키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족 중에 치매가 의심되거나 초기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거나 저자의 방법을 권유해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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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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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씨의 에세이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식물상담소에서의 대화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식물상담소라고 하니 식물에 대한 Q&A일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은 일부다. 그럼 인생 상담이라는 건가? 물론 인생 상담도 포함된다. 식물상담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책 날개에 있어서 그대로 인용한다.


식물상담소를 처음 찾은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해 하세요. 처음에는 식물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는 이야기, 꿈과 미래, 고민과 즐거움, 재미난 농담 등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흐르는 대화 속에 식물에 대한 지식을 나누었고 식물에게서 지혜를 얻으며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갔습니다. 숨 가쁜 날들 속에, 진솔하고 깊은 대화로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준 것만 같습니다.



책에 실린 상담 사례들을 보면 독자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고민했던 내용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저자의 조언에 고개 끄덕이게 되고 위로에 안도하게 된다. 상담 에피소드의 시작은 식물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p.58~59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사랑을 조금 줄여보면 우리 인생에도 관계에도 기다리던 꽃이 필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식물에 대한 생각을 뒤집는 낯선 사고를 만날 수 있다. 꽃이 예뻐서 무심코 샀다던 상담자가 있었다. 가까운 데서 키운 꽃을 소비해야한다는 다큐멘터리 자막 작업을 한 후부터는 잘린 꽃을 보면 자신이 아픈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지는 저자의 절화(잘라서 파는 꽃)에 대한 언급은 이렇다.


p.48


나는 한 번도 잘린 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뿌리도 잎도 없이 꽃만 댕강 잘려서 팔리는 꽃은 죽은 거다. 꽃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잎이나 뿌리보다 꽃에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꽃이 잘렸다는 인식보다 예쁜 꽃을 모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

생물은 진화를 통해 탄생하고 각자의 생태적 지위를 가진다. 그 지위에 맞춰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동물이라 식물을 먹고 이용한다. 그런데 나는 잘린 꽃을 파는 것을 보면 이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이 행위가 인간의 욕심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절화로 판매되는 꽃은 대부분 원예품종인데 이런 원예품종을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원예품종은 인간이 더 예쁘다고 느끼도록 개발해 만들어낸 식물이고 이 또한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진 않으니까.


나는 작년에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꽃꽂이를 시작했고 평생 사지 않았던 꽃을 직접 사게 되었다. 꽃을 화병에 꽂아 집을 꾸미는 재미에 빠지다보니 화병도 종류대로 샀다. 꽃뿐 아니라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을 자꾸 사들이며 한편 양심에 찔렸다. 예쁜 꽃을 보고 싶고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또 소비로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꽃바구니를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뿌듯함은 소비 욕심에 동반된 죄책감을 상쇄시켰다.


그런데 위 내용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꽃은 죽은 것이라는 말! 나는 굳이 시체를 먹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가 없지 않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절화를 소비하는 행위는 저자의 말대로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인간의 욕심 위한 것이 맞다. 저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꽃을 죽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꽃꽂이라는 활동을 하며 꽃과 그 관련 도구들을 사들이는 소비에 죄책감을 느꼈지 그것이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소비행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행위는 아름다움을 누리겠다는 허영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어떤 어린이 상담자는 친구들이 식물을 좋아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이에 저자가 해준 상담 내용은 꼭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던 저자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이 많았으며 지금도 새벽에 집에서 혼자 현미경을 보다가 발견한 환희를 함께 해줄 사람이 없어 고양이에게 설명다고 고백했다.


p. 116


나는 어린이 상담자에게 그런 외롭지만 즐거운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가서 식물분류학실험실에 들어가고 학회에 가니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9년을 잘 기다리면 꼭 함께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혼자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함께 좋아할 사람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그 길을 꿋꿋이 가다 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지면 나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런 때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건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식물학자가 무슨 진로상담까지 할까 싶지만 식물 관련 공부를 하거나 전공은 달라도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담은 거의 진로상담에 가까웠다. 미술을 아주 좋아하고 서양학 전공을 하는 어떤 상담자는 4학년이 되어서야 부전공으로 산림환경학을 선택해 식물분류학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 수업을 듣는 서양학과 학생을 양쪽의 교수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둘 다 좋아하니 답하기 어려웠다고, 그러면서도 미술로 돈을 번다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에 저자는 좋아하는 게 많아도 상관없다고, 평생 이것저것 해보며 살아도 된다고, 꿈과 직업을 구분해서 생각해보자고 한 상담이 인상적이었다. 요즘이야 융합이나 통합이 자연스럽지만 이전에는 하나만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한다. 자신도 그랬다고. 좋아서 한 선택이 가보니 생각했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잘못한 선택으로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보고 결정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밖에 있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고 경험한 후에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고. 좋아하는 일 앞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응원했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나 권위를 가진 어른의 조언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서 그들이 하는 조언 대부분은 그들의 경험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들은 박문호박사의 강의 내용이 겹쳐졌다. 어떤 뇌과학자의 우리의 셀프도 쳐들어온 타인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타인의 시선이 나의 사회적 셀프를 규정하는 것이니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셀프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만 전혀 아니라는 주장이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셀프는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만들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칭찬에 부응하려는 태도,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주위 어른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과 충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추종하는 분위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선택에 오롯한 자신의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가지라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때가 오면 당연한 것이니 모두 경험해보고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식물 그림들이 중간중간 실려 있는데 사진과는 다른 세밀화만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저자의 식물세밀화 이력을 모르더라도 얼마나 전문가인지 금방 알게 될 것이며 수상 이력을 확인하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식물 그림에 이름을 써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눈에 익은 식물 그림을 보니 반가웠고, 이름을 몰라 확인하고 싶었는데 나와 있지 않아 조금 답답했다.


식물을 키우며 겪는 애로를 상담하는 책일 줄 알고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식물을 매개로 한 인생 상담이었다. 상담관련 책은 대부분 내담자가 성인인데 이번 책에는 어린이들 사례가 꽤 있었다. 아이들이 뭐 그리 식물에 관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식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으며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 책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식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식물관련 상식 및 새로운 정보를 포함하여 식물을 기르며 흔하게 겪는 어려움, 나아가 인생 상담으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식물 집사들에게는 필독서로, 식물 집사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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