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해방의 괴물 - 팬데믹, 종말,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
김형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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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해방의 괴물>은 문화연구자 김형식씨의 신간이다. 그는 2020년에 좀비를 혁명적으로 재사유한 <좀비학>을 출간했는데 이번 <좀비, 해방의 괴물>을 통해 팬데믹을 둘러싼 사회현상, 담론, 장르영화와 소설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번에도 제목에 좀비가 들어간 것처럼 좀비 영화와 소설을 바탕에 두고 다양한 철학적 담론들을 끌어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는 우리 시대에 사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1장에서 8장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나 각 장의 제목과 소제목을 보고 관심 가는 분야를 먼저 읽어도 괜찮다. 좀비 영화나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저자가 다루는 작품들을 분석하는 내용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좀비에서 가지를 뻗어 철학적 담론과 종말론으로 연결하는 필력에 감탄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위기가 무사유의 결과물로 돌아온 재난이라는 것과 종말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사유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내는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좀비물에 관심이 없지만 부제와 책 소개에 끌려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나처럼 좀비물에 관심이 없더라도 이 시기에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저자가 소개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좀비물과 뱀파이어물들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좀비와 팬데믹, 재난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자본주의와 종말을 천착한 후 사유를 강조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졌다며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아니 꼭 일상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염원했다. 그러나 저자는 일상의 회복을 향락주의의 유혹이라고 일갈했다. 우리가 겪은 재난을 그저 흘러간 고난이나 힘든 시절로 회상하지 말자며, 감상에 빠지는 대신 냉철하게 사태를 진단하고 근본적인 대응방법을 모색하자고 했다.


p.20


우리의 목표는 일상의 수호나 유지가 아니라 일상을 끝장내는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폐허 위에서 다른 시작을 예비해야 한다. 오늘날 만연한 절망과 체념의 교설은 우리에게 애써봐야 소용없으며 상황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속삭인다. 세계는 우리에게 되지 않을 일을 시도하면서 헛되이 힘쓰지 말라고,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즐기는 삶을 향유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종류의 종말의 테제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현실의 가능한 열매들에게 만족하라는 달콤한 향락의 테제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늦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대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실질적인 변화가 여전히 가능하며, 다른 삶은 얼마든지 실존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책 전체로 설득하고 있다. 동의할지 부동의 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3장 자본주의를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으며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자본주의 통치의 거스를 수 없는 지배력을 강조하는 지식인들에게서 체념어린 태도를 보았다. 지식인들은 결국 자본주의 권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패배할 것으로 전망하며 급진적인 사회운동들은 지속적인 변화를 창출하거나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기존 제도권 정치에 포섭되거나 패퇴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훌륭한 체제로서 입증되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자본 축적이 극적으로 편중되기 시작하여 생산의 전반적 과정이 탈영토화 되었다. 축적의 전 과정이 추상화되고 기호화되어 지역사회와 무관하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끝없는 번영을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글로벌 자본주의는 영토화라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착취기계로 한 지역을 초토화한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윤 창출을 극대화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폭력성과 불완전성이 여실히 증명되었으므로 기존의 체제로부터 탈주해 다른 제체로 신속히 이동하자고 주장한다. 세계의 종말에 맞서기 위해 자본주의를 파괴해야 한다고. 재난을 끝장내기 위한 해결책은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유의 종말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이다.


4장 팬데믹 에서도 자본주의와 연결한다.


p. 167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생태계 파괴, 도시로의 인구 밀집, 모빌리티의 끝없는 연결은 지구를 전염성 질병이 창궐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놓았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지역과 존재자에 도달해 기어이 착취하고야 마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팽창과 끝없는 탐욕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며, 팬데믹의 본질이다. 이것을 바꿀 수 없다면 사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일단락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더욱 치명적인 형태의 신종 질병이 반복적으로 유행하게 될 거라 경고한다.

 


저자는 좀비와 바이러스를 이렇게 비교했다.


p.199


좀비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또한 주변 환경이나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미리 입력된 명령어를 끝없이 실행하고 재실행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무심한 컴퓨터와 같은 존재다. 그것은 새로운 명령어를 삽입하거나 코드를 수정할 수 없이, 사전에 설계된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기계인 셈이다. 파괴되기 전까지 끝없이 인간에게 침투하고 감염시켜 숙주로 만든 뒤, 스스로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좀비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유사하다. 좀비는 스스로 번식하거나 개체 수를 늘리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인간을 매개로 경유해서만 수를 불리고 세력을 늘려나갈 수 있다. 단세포 생물에 해당하는 세균은 독립적으로 복제와 번식이 가능하다. 반면, 바이러스는 좀비와 마찬가지로 숙주가 되는 유기체가 없이는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생체다.



저자는 이번 재난을 눈여겨보고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개발과 팽창을 하루라도 끝장내야만 한다고. 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회적 재난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인류적 재난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 현재 세계의 환경이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족족 언제든 인류적 재난이 또다시 도래하게 될 거라는 암울한 미래를 예시한다.


오늘날 세계는 모든 관심을 시장의 원활한 작동과 자본의 증식에만 두고, 다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인질이라 주장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자신을 해친다면 세계 또한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협박하고 있으므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추방해야만 세계의 안녕과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일상은 재난이 종식되면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저자는 사태의 본질이 정반대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 이전에 일상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그동안 영위해온 자본주의적 일상이 팬데믹이라는 파국을 불러왔다는 주장에도 나는 동의한다. 종말을 끝장내기 위해 종말을 실행하는 결단이 필요하듯 일상의 회복을 위해서는 일상을 끝장내야 한다.


종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실험의 세 단계를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1. 가능성들의 스펙터클에 현혹되지 말 것 : 가능성들이 보여주는 거짓말과 환상에 속지 말자.

2. 환영들을 피해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나아갈 것 : 자유로운 세계가 제안하는 선택지를 고를 자유를 거부하고 가능성들을 소진해 침묵에 빠뜨리자.

3. 소진의 끝에서 무엇이 떠오르는지 두고 볼 것 : 가능한 모든 것을 제거할 때 세계의 끝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는 상황이 우리를 어떻게 예속하는지 이 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를 끝장내고 흐름을 바꿀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가능성에 열려 있지 않은 삶은 예속된 좀비의 삶이다. 틀에 박힌 일상의 반복으로 채워지는 삶이란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이다.


재난은 세계가 이대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근본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시시각각 일깨운다. 잠재된 세계는 가능성들 너머에 있다. 그것은 상황과 일상으로부터 해방될 때 떠오른다. 물론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인간에게 종말이란 마땅한 대가이며 자연스러운 종착지다. 사유하는 인간은 세계를 무너뜨려온 파괴력의 방향을 뒤집어 세계를 건설할 탁월한 역능으로 발현한다. 올바르게 사유하고,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고, 결단을 내리고 행동함으로써 끝내 현실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다가오는 종말의 운명을 거스를 방법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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