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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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씨의 에세이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식물상담소에서의 대화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식물상담소라고 하니 식물에 대한 Q&A일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은 일부다. 그럼 인생 상담이라는 건가? 물론 인생 상담도 포함된다. 식물상담소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책 날개에 있어서 그대로 인용한다.


식물상담소를 처음 찾은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해 하세요. 처음에는 식물 이야기로 말문을 열어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는 이야기, 꿈과 미래, 고민과 즐거움, 재미난 농담 등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흐르는 대화 속에 식물에 대한 지식을 나누었고 식물에게서 지혜를 얻으며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갔습니다. 숨 가쁜 날들 속에, 진솔하고 깊은 대화로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준 것만 같습니다.



책에 실린 상담 사례들을 보면 독자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고민했던 내용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저자의 조언에 고개 끄덕이게 되고 위로에 안도하게 된다. 상담 에피소드의 시작은 식물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p.58~59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살아가며 우리가 겪는 많은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사랑을 조금 줄여보면 우리 인생에도 관계에도 기다리던 꽃이 필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식물에 대한 생각을 뒤집는 낯선 사고를 만날 수 있다. 꽃이 예뻐서 무심코 샀다던 상담자가 있었다. 가까운 데서 키운 꽃을 소비해야한다는 다큐멘터리 자막 작업을 한 후부터는 잘린 꽃을 보면 자신이 아픈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지는 저자의 절화(잘라서 파는 꽃)에 대한 언급은 이렇다.


p.48


나는 한 번도 잘린 꽃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뿌리도 잎도 없이 꽃만 댕강 잘려서 팔리는 꽃은 죽은 거다. 꽃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잎이나 뿌리보다 꽃에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꽃이 잘렸다는 인식보다 예쁜 꽃을 모아서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한다.

생물은 진화를 통해 탄생하고 각자의 생태적 지위를 가진다. 그 지위에 맞춰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동물이라 식물을 먹고 이용한다. 그런데 나는 잘린 꽃을 파는 것을 보면 이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이 행위가 인간의 욕심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절화로 판매되는 꽃은 대부분 원예품종인데 이런 원예품종을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원예품종은 인간이 더 예쁘다고 느끼도록 개발해 만들어낸 식물이고 이 또한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이진 않으니까.


나는 작년에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꽃꽂이를 시작했고 평생 사지 않았던 꽃을 직접 사게 되었다. 꽃을 화병에 꽂아 집을 꾸미는 재미에 빠지다보니 화병도 종류대로 샀다. 꽃뿐 아니라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을 자꾸 사들이며 한편 양심에 찔렸다. 예쁜 꽃을 보고 싶고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또 소비로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꽃바구니를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뿌듯함은 소비 욕심에 동반된 죄책감을 상쇄시켰다.


그런데 위 내용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꽃은 죽은 것이라는 말! 나는 굳이 시체를 먹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가 없지 않냐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절화를 소비하는 행위는 저자의 말대로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인간의 욕심 위한 것이 맞다. 저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꽃을 죽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꽃꽂이라는 활동을 하며 꽃과 그 관련 도구들을 사들이는 소비에 죄책감을 느꼈지 그것이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소비행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행위는 아름다움을 누리겠다는 허영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어떤 어린이 상담자는 친구들이 식물을 좋아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이에 저자가 해준 상담 내용은 꼭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던 저자도 어렸을 때 비슷한 경험이 많았으며 지금도 새벽에 집에서 혼자 현미경을 보다가 발견한 환희를 함께 해줄 사람이 없어 고양이에게 설명다고 고백했다.


p. 116


나는 어린이 상담자에게 그런 외롭지만 즐거운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가서 식물분류학실험실에 들어가고 학회에 가니 드디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9년을 잘 기다리면 꼭 함께할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혼자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함께 좋아할 사람이 없어 외로울 수 있지만 그 길을 꿋꿋이 가다 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좋아하는 것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지면 나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도 될 수 있다. 그런 때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가는 건 특별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지 않을까?


식물학자가 무슨 진로상담까지 할까 싶지만 식물 관련 공부를 하거나 전공은 달라도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담은 거의 진로상담에 가까웠다. 미술을 아주 좋아하고 서양학 전공을 하는 어떤 상담자는 4학년이 되어서야 부전공으로 산림환경학을 선택해 식물분류학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 수업을 듣는 서양학과 학생을 양쪽의 교수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둘 다 좋아하니 답하기 어려웠다고, 그러면서도 미술로 돈을 번다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에 저자는 좋아하는 게 많아도 상관없다고, 평생 이것저것 해보며 살아도 된다고, 꿈과 직업을 구분해서 생각해보자고 한 상담이 인상적이었다. 요즘이야 융합이나 통합이 자연스럽지만 이전에는 하나만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한다. 자신도 그랬다고. 좋아서 한 선택이 가보니 생각했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잘못한 선택으로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경험해보고 결정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밖에 있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고 경험한 후에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고. 좋아하는 일 앞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응원했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나 권위를 가진 어른의 조언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서 그들이 하는 조언 대부분은 그들의 경험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며칠 전 들은 박문호박사의 강의 내용이 겹쳐졌다. 어떤 뇌과학자의 우리의 셀프도 쳐들어온 타인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타인의 시선이 나의 사회적 셀프를 규정하는 것이니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셀프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만 전혀 아니라는 주장이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셀프는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만들었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칭찬에 부응하려는 태도,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주위 어른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과 충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추종하는 분위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선택에 오롯한 자신의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가지라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때가 오면 당연한 것이니 모두 경험해보고 선택하면 될 일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식물 그림들이 중간중간 실려 있는데 사진과는 다른 세밀화만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저자의 식물세밀화 이력을 모르더라도 얼마나 전문가인지 금방 알게 될 것이며 수상 이력을 확인하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식물 그림에 이름을 써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 눈에 익은 식물 그림을 보니 반가웠고, 이름을 몰라 확인하고 싶었는데 나와 있지 않아 조금 답답했다.


식물을 키우며 겪는 애로를 상담하는 책일 줄 알고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식물을 매개로 한 인생 상담이었다. 상담관련 책은 대부분 내담자가 성인인데 이번 책에는 어린이들 사례가 꽤 있었다. 아이들이 뭐 그리 식물에 관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식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으며 심도 깊은 고민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 책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식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식물관련 상식 및 새로운 정보를 포함하여 식물을 기르며 흔하게 겪는 어려움, 나아가 인생 상담으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식물 집사들에게는 필독서로, 식물 집사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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