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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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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 김수영을 잘 몰랐다. 나는 김수영을 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철학자 강신주에게서 배웠다. 10여 년 전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그 책을 읽은 후 김수영 시인의 시들을 통독하고 혼자 온몸으로 읽어냈더라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읽으며 강신주의 해석과 내가 느낀 바를 비교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강신주는 나를 김수영의 시 세계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지만 나는 시라는 매체의 매력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기에 김수영의 시집을 스스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김수영을 위하여> 이후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이 쓴 <김수영의 연인>을 사서 읽었다. 자료에 기댄 제삼자의 시선보다 아내가 직접 회고한 글에서 김수영 시인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두 권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에 읽기도 했거니와 그 때 김수영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렇다. 이 글은 변명이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가 어려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말고 나는 책장을 뒤졌다. 10여 년 전에 읽고 한 번도 다시 꺼내보지 않았던 김수영에 관한 책 두 권을 찾아냈다. 그 때는 리뷰는 쓰지 않을 때라 당시 느낌을 찾아낼만한 흔적이 책에라도 남아있는지 펼쳐보았다.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로 돌아왔다.
이 책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거대한 100년, 김수영」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된 평론 26편 모음집이다. 연재 글에 더해 육필 원고와 발표 지면 등 최초 공개되는 자료 및 특별 대담과 함께 엮어 출간되었다. 이러한 김수영 시인 관련 서적과 연구는 아직도 활발하며 시집 역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여전히 뜨거운 시인임이 분명하다. 시도 김수영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서 그런 연재가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한겨레 서포터즈 선정 책으로 올라온 것을 보고 반가워서 신청했다. 나처럼 김수영 시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한겨레 연재 글을 매번 읽지 못한 일반 독자들에게 이번 책은 유용할 것임에 틀림없지만 쉽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두에 했던 변명처럼 시인의 이름과 유명 시 몇 편만 읽어본 입장으로서 키워드로 조망한 김수영의 시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 김수영에 관심을 놓지 않고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물론 김수영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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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가는 키워드 먼저 읽어도 되지만 시인의 연대기 순으로 펼쳐놓았기에 순서대로 읽어도 무방하다. 마지막에 실린 대담을 먼저 읽는 것도 추천한다. 평론에 참여한 4명의 대담자가 자신의 키워드에서 못다 풀어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김수영 연구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한다. 무수한 연구가 있어왔으나 번역 같은 시인의 저작물 중 아직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다. 그를 연구함에 있어 해석도 중요하나 기록과 자료는 무엇보다 주요한 재료인데 백수를 바라보는 시인의 아내 김현경씨가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맹문재 시인이 김현경씨와 함께 출간할 책들도 대기 중이고 시인의 발자취 답사 책도 예정되어 있다. 김수영 읽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나아가 세계에 그를 알릴 과제도 우리에게 있다. 단순히 그의 시를 알리는 차원을 넘어 그의 시에는 우리 현대사가 오롯이 투영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다. 소설 <파친코>가 OTT 드라마로 전 세계인들에게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미디어가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시인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 역시 유효하다. 아직 ‘김일성만세’를 외치지 못하는 사회이고 우리는 ‘포로’와 ‘민간억류인’의 차이도 잘 모르며 그가 욕했던 언론은 지금 더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의 대담 중 학계에서 김수영을 과대평가하거나 우상화‧신화화한다는 비판에 관한 내용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독자입장에서 시를 어렵다고 느끼게 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시어를 이해하고 주제의식을 파악하는 방식처럼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독자가 자유롭게 느낀 대로 감상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족’을 키워드로 쓴 이경수 교수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p.282
김수영이 앞으로 100년 뒤에도 계속 읽히려면, 김수영을 오래 읽어온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자유롭게 김수영을 읽을 수 있는 자유, 발언권을 줘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김수영 시의 어떤 유산이 계승되어야 하는지, 우리 시대에 왜 김수영을 읽어야 하는지, 김수영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신주는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진정한 시는 절대성 즉, 단독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했다. 시를 쓰기에 앞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내려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수영의 시론이 자기의 삶만 돌보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으나,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의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를 인용하며 삶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시를 알고 싶거나 시를 쓰려는 이는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물론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를 통해 김수영을 26가지 키워드로 접할 수 있으니 조금 어렵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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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생한 육필 원고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덤이다.이 책을 통해 김수영의 시세계를 만난 후 비판적 사유나 토론의 장을 펼친다면 김수영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