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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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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기에 김영사 서포터즈 도서로 올라온 것을 보고 당연히 신청했다. 교수라는 직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제목에도 떡하니 ‘공부’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책을 집필했는데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는 10여 년 전부터 이런 책을 꼭 쓰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줍시다.”
이땅의 모든 부모님들을 불러모아 촛불을 들고 싶다고 하면서 부모 세대가 받은 교육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걸맞는 교육을 하자고 주장했다.
이 책은 놈 촘스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리베카 솔닛, 마사 누스바움, 이해인 수녀 등을 인터뷰한 안희경 저널리스트와 최재천 교수가 1년 여에 걸쳐 나눈 대담을 토대로 출간되었다. 여러 인터뷰집을 읽어봤지만 이렇게 몰입해서 단숨에 읽어 내린 책은 처음이었다. 안희경 작가의 밀도 높은 질문과 최재천 교수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답변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 책으로 삶 전체가 공부임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최재천 교수의 인생관을 알게 되었다.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쓰려니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퉁박이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최교수는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교육부가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얽히고설키게 만든 주범이라고 했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교육부를 없애겠다는 발언을 한 현 대통령이 떠올라 얼굴이 찌푸려졌다. 예전에 학생들을 산업 역군을 양성하던 시대로 되돌리려는 교육의 기역자도 모르는 자는 이런 책을 읽고 공부 좀 해야 한다. 어쨌든 시작부터 내 기분은 다운되었지만 그런 자 때문에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아이들에게 삶을 즐길 권리를 어떻게 되찾아 줄 수 있을지 얼른 확인하고 싶었다.
수포자였던 그가 하버드에서 수학을 잘 하게 된 사연과 이화여대에서 15년째 인기 강좌인 ‘환경과 인간’을 수강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점점 기분이 업되어갔다. 내가 이대 학생이 된 듯 막 신이 났다. 나는 중학교 때 물상은 싫어했고 생물은 좋아했었다. 생물과 지리과목을 좋아했는데 나도 ‘환경과 인간’을 수강했다면 그 두 과목을 콜라보하여 분과위원회를 만들어서 즐겁게 참여했을 것 같았다. 미국과 한국의 교수집단이 중시하는 것의 차이점을 보니 두 사회가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 명확하게 비교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 사회도 서서히 변화되어 가고 있지만 더디다.
최교수는 자신의 우선순위는 혼자 연구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안작가는 이에 긍정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선생의 말을 인용한다.
“창의력은 혼자서 몰입한 시간이 만들어낸다.”
여기에 최교수는 ‘행운’을 보태고 싶다며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요,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조건과 그 시간을 제법 잘 운용했다는 데 있어요. 혼자 생각하다 보면 완전히 엉뚱한 데로 빠지기 쉬운데 보편적 범주 안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조금 다른 발상을 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홀로 있으면서 창조적인 활동의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는 말에 공감했지만 다음에 나오는 말, “1주일 앞서 한다!” 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는 계획하고 정돈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튜터를 할 때 만난 학생을 보고 자신도 따라하면서 바뀌었다. 그 학생은 5일 후에 제출할 리포트를 써야하기 때문에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5일전에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치는데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미리 한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고 35년 간 1주일 전에 미리 마감해둔 습관은 엄청난 생산성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교수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면서 책 리뷰를 쓰면서 늘 마감에 허덕인다. 그들만큼 일이 많진 않지만 책 욕심에 서평단용 책을 너무 많이 받아 놓았거나 집안 일이 생겨서 책 읽을 시간을 뺏기게 되면 리뷰는 자꾸 뒤로 밀리게 되면 마감일에 턱걸이 하게 된다. 미리미리 해두면 여유롭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앞의 변명적 상황들이 겹치다보니 마감 날짜까지 끌고 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할 일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교수도 1주일 전에 마감한다는데 난 뭔가 싶어 부끄러웠다. 이제 1주일 전 마감으로 습관을 들여야겠다.
최교수는 하버드에서 배운 리포트 쓰기를 자신의 수업에도 적용했는데 미국학생들과 달리 한국학생들은 너무 버거워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가서 설렁설렁 하는 문화가 있다는 게 여실히 확인되었다. 그의 수업에서는 쓰지 않으면 학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에세이 11편을 써서 실수한 하나가 있다면 뺄 수 있다. 10편을 쓴 사람보다 11편을 쓴 사람이 더 여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는 학생들에게 ‘작은 인생’을 한번 살아본다고 여기고 잘해보자고 독려한다.
교수라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할 것 같은데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도 놀랐다. 나는 책 욕심과 지적 허영의 강박 때문에 다독하려고 애쓴다. 속독하게 되니 꼼꼼하게 읽지는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번 책처럼 줄긋고 메모하며 읽는 경우도 있지만. 최교수는 입으로 읽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배우처럼 연기하며 읽기 때문에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서고를 개방하면서부터는 책에 직접 메모하지 않고 포스트잇에 쓴 후 떼어낸단다. 엄선한 책을 숙독하며 깊게 소화한다. 이렇게 자신의 독서법을 소개한 후 독서는 빡세게 하는 거라고 말한다.
p.144~146
독서는 일입니다. 빡세게 하는 겁니다.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그늘에 가서 편안하게 보는 건 시간 낭비이고 눈만 나빠져요. 책은 인류의 발명품 중에서도 최악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은 3차원을 보게끔 진화했어요. 책은 평면에 글자를 새겨서 만든 2차원 물건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눈이 아파요. 책은 눈을 망가뜨린 원흉이에요.
우리는 기획서를 작성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공략해야죠.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분야의 책을 공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 번도 배우지 않았는데 술술 읽힐까요? 난생처음 붙든 양자역학 책의 책장이 척척 넘어갑니까? 진화심리학이 하도 뜬다니까 ‘좀 읽어 봐야지’라고 생각하곤 붙잡았는데, ‘와! 잘 읽히네!’ 하면 거짓말이에요. 당연히 안 읽힙니다. 그런데 그 책을 있는 힘을 다해서 끝까지 읽고, 또 비슷한 진화심리학 책을 사서 읽다보면, 세 번째 책은 참 신기하게 술술 넘어갑니다. 어느 순간 그 주제가 내 지식의 영토 안으로 들어와요.
(……)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 나가다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실 거예요. 100세 시대에 20대 초반에 배운 지식으로 수십 년 우려먹기가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다시 들어갈 게 아니라면, 결국 책을 보면서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야 하죠. 취미 독서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독서는 기획해서 씨름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변명이고, 쉽고 가벼운 책만 읽겠다는 취미생활은 필요없다는 단호한 일성을 들으니 느슨해졌던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일을 시작하며 그전보다 확연히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나, 절대 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합리화를 위해 말랑한 e-book을 읽던 짓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기획해서 씨름하듯 읽는 일은 힘들고 피곤하다. 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최교수의 말처럼 대학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을 거라면 책이 도구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싸고 쉬운 방법이 독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하게 손에 쥐었던 책들보다는 전혀 접하지 않았던 책들을 기획하여 일처럼 읽어보기를 시도해야겠다. 그 시작은 물리학 서적으로! 좀 두렵지만 도전할 것이다.
동물 세계에는 선생님이 없다. 엄마 침팬지는 새끼 침팬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침은 없이 배움만 있다. 새끼 침팬지는 옆에서 그냥 보고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너무 가르치려고 한다. 침팬지가 배우듯 몸으로 익히면 긴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한 학습이 될 텐데, 급하게 욱여넣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최교수는 말한다. 우리가 교육하는 이유는 사회에 진입할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최소한 알아야 원만히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거라면 아주 기본적인 배움을 합의해내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335
요샛말로 ‘뭣이 중헌디’예요. 늘 국영수만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게끔 기본적 훈련을 교육이 담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재앙을 겪을 거예요. 국영수만 잘해서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졌다가, 또 국영수를 하고 좀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지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은 늘 평탄하게 즐겁게 사는 것 아닌가요.
출신 고등학교와 수능 성적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고, 대학교 잠바가 마치 계급을 결정하는 옷처럼 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작가가 물었을 때 최교수는 자신의 학력 세탁을 이야기한다. 하버드 대학을 선택하게 된 드라마틱한 과정에 놀랐다가 하버드 졸업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재확인하며 공고한 학벌사회에 씁쓸했다. 문학작품도 아닌 책을 읽으며 이렇게 감정이 요란스레 널뛴 적은 없었다. 우리의 교육 현실과 답답한 교육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언짢았다가, 그래도 희망 담은 미래를 제시하면 머릿 속에 환하게 밝아졌다. 최교수가 공부했던 과정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처럼 뿌듯했고, 교수로서 자신의 연구 성과보다 제자들을 위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 책의 제목에 공부가 들어갔다고 해서 학생들만 읽어야 한다고 여길까봐 살짝 걱정된다. 워낙 유명한 교수인 최재천이라는 이름이 들어있으니 학부모나 교사들은 읽어볼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읽으면 좋겠다. 산다는 건 무엇이든 알아가는 과정이고, 특히나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계속 공부해야 하는 시대다. 공부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없진 않으나 새로운 것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이 주는 기쁨도 분명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공부하는 삶의 즐거움을 알길 바란다. 최교수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으라’고 말한다. 하다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마지막으로 최교수 부부가 서로에게 활력을 주는 사이라고 한 부분은 부부관계를 너머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되는 것 같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p.293
서로의 뜻을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삶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배움 속에서 다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데는 바로 그 존중이 바탕으로 자리 잡혀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각자가 뿜어내는 가치가 보입니다.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다양성의 가치도,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네, 저마다의 삶 속에 저마다의 공부가 있습니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