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탐구 - 내 삶의 지적 연대기
칼 포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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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단순히 언어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생겨난 수수께끼가 아닌,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이 세상에 분명히 있으리라고 오래전부터 믿어 왔다. (29면)




2. 내 지적 발달에 있어 결정적인 것이 된, 난생 최초의 철학적 논제에 관한 첫 번째 토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논제는 이른바 말과 그 의미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입장을 내가 거부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32면)




3. 당시 내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었던 생각이라면, 언젠가는 학교를 하나 세워서 젊은이들이 지루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함으로써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68면)




4. 나는 칸트의 첫 번째 비판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곧이어 나는 그의 중심 사고는 과학적 이론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이 세계에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우리의 지성은 자연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칙을 자연에 부과하는 것이다.” (98면)




5. 나는 바흐와 베토벤이 각자의 작품에 대해 지닌 두가지 상이한 태도를 구별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객관적’과 ‘주관적’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물론 아주 적절하게 선택한 용어는 아니며... 하지만 나는 1905년에 이미 알베르트 슈베이처가 쓴 바흐에 대한 뛰어난 저서의 서두에서 그 용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기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도 한 작곡자와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서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접근방식, 또는 태도의 상이함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인식론에 대한 내 시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101면)




6. ‘합리적’이라는 말의 동의어로 ‘비판적’이란 말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141면)




7. ‘열린 사회’의 주요 논증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한 반대로 제시한 것이었다. (191면)




8. 내가 보기에 그 ‘철학적 수수께기’라는 표현은 곧 비트겐슈타인의 공식화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배후에는 철학에는 진정한 문제란 것이 없으며 오로지 언어학적 수수께끼가 있을 뿐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논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논제는 내가 무엇보다도 혐오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나는 ‘철학적 문제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로 작정했다. (201면)




9. 길버트 라일: “인간의 합리성은 원칙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법이 없다는 데 존재할 것이다. 즉 정평이 난 원리에 집착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206면)




10. 설명은 항상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즉 우리는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왜라는 질문은 단지 예전의 질문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예전의 이론을 바로잡는 새로운 이론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216면)




11. 근래의 내 연구 가운데 상당 부분은 객관성을 옹호하여 주관주의적 입장을 공격하거나 반격하는 것이었다. (229면)




12. 내가 읽어본 바 정말로 훌륭하고 충격적인 작품들은 플라톤의 ‘소크라데스의 변론’, 칸트의 저술 가운데 일부, 특히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그리고 칸트의 엄숙주의를 재치있게 비판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만가풍 대구 정도였다. 여기다 하나 더하자면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의 두가지 문제’ 정도일까. (315면)




13. 책은 끝났으되 탐구는 끝나지 않았노라. (3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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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 진정한 나와 대면하는 변화의 기술
구본형 지음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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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박영사




1. 자신에 대한 투자는 미래 인생의 깊이를 결정한다. (25면)




2. 세상이 시들해 보이는 이유는, 세상이 시들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열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늘 거기에 그렇게 눈부시게 서 있다. (43면)




3.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다. (50면)




4. 미쳐 있다는 것, 뜨겁다는 것, 그것이 모든 승리자들의 공통점이다. (53면)




5. 우리는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미쳐야 한다. 적어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미쳐야 한다. 마리아 칼리스는 말했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분야를 떠나야 한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70면)




6. 토마스 사스(Thomas Szasz)는 “제2의 죄”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물의 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먹느냐 먹히느냐이다.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누가 규정하고 누가 규정당하느냐이다.” (109면)




7. 잭 웰치(John F. Welch)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창조이다. 그리고 창조는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하다는 믿음에서부터 비롯된다.” (113면)




8. 동주 이용희는 남명을 그리며 한탄했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143면)




9. 우리는 삶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아마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카뮈(Albert Camus)는 “미래를 향한 진정한 관용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모든 것에 바치는 사람만이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최선의 지금’이 곧 ‘최선의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이것이 준비하는 사람의 자세이다. 바라는 미래는 지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마술처럼 나타나 당신을 기쁘게 해 주지 않는다. (149면)




10. 많은 사람이 범하고 있는 잘못은, ‘지금’ 자기가 원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정이 없다. (155면)




11.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취미를 추구하는 능동적 여가 활동은 인간에게 훨씬 더 많은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 준다. 능동적 여가는 아주 긍정적인 경험을 낳는다. 운동, 악기연주, 화초가꾸기, 요리 등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의욕에 넘쳐나며 집중력이 높아진다. 행복은 몰입의 결과이다. 몰입한 상태에서는 내면의 상태를 음미할 수 없다. 따라서 행복한지 불행한지조차 알 수 없다. 경험의 다양한 차원이 밀도있게 집약되면서 조화를 이룬다. 시간조차도 1시간이 1분처럼 지난다. 몰입의 상태가 끝났을 때, 그 일이 무엇이었던가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159면)




12. 시인 김수영은 다시 말한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189면)




13. 철학은 말로써 잘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선택한 것으로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무엇을 택하건, 결국 스스로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엘리노 루즈벨트, 193면)




14. 독서(미셀 투르니에): “작가가 출판한 한 권의 책은 가볍과 피가 없는 한 마리 새에 불과하다. ... 피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자는 생명의 피를 애타게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이 살아서 날 수 있게 되려면, 바로 이 가벼운 새가 독자의 심장에 내려않아 그의 피와 영혼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독서이다.” (202면)




15. 브랜드라는 것은 시장에서 불리는 당신의 이름이다. 당신의 이름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장 가치를 모두 망라한 것이다. 브랜드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편견을 가지게 하고 믿게 만든다. 일관성을 유지시켜 줌으로써 신뢰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당신과 세상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시켜 준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206, 2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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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개역판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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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악함으로는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없다. (61면)




2. 현명한 군주라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시민들이 정부와 자기를 믿고 따르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시민들은 그에게 항상 충성할 것이다. (73면)




3.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무력에 근거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처럼 취약하고 불안한 것은 없다”라는 격언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100면)




4.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체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107, 108면)




5.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사람들은 모두 인색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실패했다. (111면)




6. 왜냐하면 타인에게 속하는 것을 후하게 주는 것은 결코 당신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해가 되는 경우란 단지 당신의 것을 함부로 주는 경우이다. (113면)




7. 관후함처럼 자기 소모적인 것이 없다. 당신은 그 덕을 실천함에 따라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113, 114면)




8.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115면)




9. 내 견해는 사랑도 받는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얻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친다. ... 그러나 당신이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방비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이다. (117면)




10.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117, 118면)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미움을 받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118면)




12.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 (122면)




13. 반인반수를 스승으로 섬겼다는 것은 군주가 이러한 양면적인 본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그중 어느 한쪽을 결여하면 그 지위를 오래 보존할 수 없다는 점을 상징한다. (123면)




14.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는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 된다. (123면)




15. 여우의 기질을 가장 잘 모방한 자들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우다운 기질은 잘 위장하여 숨겨야 한다. 인간은 능숙한 기만자이며 위장자이여야 한다. 또한 인간은 매우 단순하고 목전의 필요에 따라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 능란한 기만자는 속고자 하는 사람들을 항상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24면)




16.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125면)




17.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132면)




18. 군주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미움을 받는 일만큼은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는 것이다. (134면)




19. 중립은 적은 만든다. ... 왜냐하면 승자는 자기가 곤경에 처했을 때 자기를 돕지 않았던 신뢰하기 어려운 자를 동맹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자는 당신이 그를 군사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공동 운명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않을 것이다. (155면)




20. 차악을 선으로 받아들여라. (158면)




21. 누구든지 당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당신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164면)




22. 따라서 군주는 항상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들어야 한다. (165면)




23. 왜냐하면 인간이란 과거의 일보다는 현재의 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마련인데, 만약 그들의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들은 만족하게 되고 변화를 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67면)




24. (날씨가 좋을 때 폭풍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이다) 그러다가 역경에 처하면, 그들은 방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도망할 궁리만 했다. (169면)




25. 마키아벨리의 경우 정치는 변전무상한 생성과 현상의 영역이기 때문에 철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의 적용을 거부한다. (역자해제, 224면)




26. 무릇 정치사상가가 이론화하는 정치세계란 재화(부, 권력, 명예 등)의 상대적 희소성의 상황하에서 인간의 가치, 야심 및 이기심이 부단히 충돌하고 운동하는 변전무상한 ‘현상의 세계’이다. 하지만 서구의 많은 사상가들은 이러한 생성의 세계를 거부하고 불변적이고 확실한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변화로 뒤엉킨 세계에서 확실하고 안정된 정치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상가들의 노력은 종종 변화가 동결된, 운동이 없는 고정불변의 정치체제에 대한 구상(정당한 권위의 문제에 대한 탐구)으로 귀결되었다. (역자해제, 228면)




27. 정치세계의 역동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이론 틀을 제시하는 정치 형이상학으로 마키아벨리는 ‘역사’를 선택했다. 역사적 설명이 가지는 장점은 그것이 운동과 변화를 서술하는 한편, 인간사회에 작용하는 일정한 항구적인 요인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역자해제, 229면)




28. 제12장의 서두에서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한다. 군주국의 다양한 유형을 논의한 후 이제 그는 군주의 인물됨에 관한 논의로 전환한다. ... 마키아벨리의 대답은 제15장에서 제18장에 걸쳐 논의되고 있는데, 이 논의들이야말로 의심할 여지없이 ‘군주론’의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마키아벨리적인’ 부분이다. (233, 2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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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1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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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의 역사가 대체로 ‘이념 속에서 현실’을 탐구하는 이상주의의 줄기와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는 현실주의의 줄기로 나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마르크스의 철학은 철학의 커다란 한 줄기를 대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자서문, 8면)




2. 자본의 논리로 야기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함으로써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역자서문, 9면)




3.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이 연합하여 이 유령을 잡기 위한 성스러운 몰이 사냥에 나섰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 경찰들이. (15면)




4.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16면)




5. 부르주아지는 개인의 존엄을 교환 가치로 용해시켰고, 문서로 확인되고 정당하게 획득된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비양심적인 상업 자유로 대체했다. ... 부르주아지는 이제까지 존경받으며 경외의 대상이었던 모든 직업에서 그 신성한 후광을 걷어내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 등을 자신들에게서 돈을 받는 임금 노동자로 바꿔놓았다.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 위에 드리워졌던 감동적이고 감상적인 베일을 찢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전환시켰다. (19면)




6.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형상에 따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21면)




7. 부르주아지에 대한 그들의 투쟁은 그들의 존재와 더불어 시작된다. (26면)




8. 노동자가 빈민이 디고, 사회적 빈곤은 인구와 부가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31면)




9. 공산주의자들의 다음 목적은 나머지 모든 프롤레타리아 정당들과 동일하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계급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 지배를 타도하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통해 정치 권력을 정복하는 것이다. (33면)




10.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40면)




11. 프롤레타리아들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60면)




12. 마르크스는 ‘이념 속에서 현실’을 탐구했던 플라톤을 비판하면서 ‘현실 속에서 이념’을 찾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이러한 의도를 통해 이미 스스로를 독일 관념론과 차별화했다. (해제, 119면)




13. 이런 과정에서 이들(헤겔 좌파)은 헤겔 철학에서 ‘국가 이념’을 강조하는 부분을 평가 절하하고 , 그 대신 ‘변증법’을 사회 변혁의 원리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해제, 120면)




14. 헤겔 우파가 철학은 ‘당대를 사상으로 포착하는 것’이라는 헤겔의 말에 충실한다면, 헤겔 좌파는 철학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철학이 완성한 후에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철학의 실현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제, 120면)




15. 헤겔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은 단호하다. “국가는 추상적인 것이다. 민중 만이 구체적인 것이다.” (해제, 1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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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2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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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식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 볼 때, 이것만큼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임에도, 이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심각한 낙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3면)




2. 공인된 제1원리가 없다 보니 윤리학은 인간의 실제 감정을 정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17면)




3. 효용과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고 있는 이 이론은, 어떤 행동이든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것이 되며, 행복과 반대되는 것을 낳을수록 옳지 못한 것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서 ‘행복’이란 쾌락, 그리고 고통이 없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쾌락의 결핍과 고통은 ‘행복에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24면)




4. 즉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며, 바람직한 모든 것(다른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에서도 바람직한 것은 무수히 많다)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또는 고통을 막아주고 쾌락을 늘려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가 된다. (25면)




5. 쾌락 이상으로 더 좋은 욕망과 더 고상하게 추구할 만한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극단적으로 야비하고 천박한 이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옛날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을 돼지에 비유하면서 심한 야유를 보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공격자들로부터, 비록 표현이 점잖기는 하지만,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반격을  취했다. 즉 자신들을 그렇게 비웃지만, 인간이 돼지가 즐길 수 있는 쾌락 이상의 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정하는 그들이야말로 인간을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25면)




6. 나는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이 공리주의 원리에서 자신들의 행동규범을 도출해내는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려면 기독교뿐 아니라 스토아 학파의 여러 요소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26면)




7.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가장 적합한 개념은 인간으로서의 품위sense of dignity다. ... 그리고 그런 의미의 품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품위가 행복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따라서 품위와 대립되는 것은 일시적인 순간을 제외하면 결코 진정한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28, 29면)




8. 혹시 이런 인간적 품위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행복을 잃게 된다고, 다시 말해 상황이 비슷할 경우 우월한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에 비해 행복을 덜 느끼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과 만족content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한 결과다. 즐거움을 향유하는 능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29면)




9. 결국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데스가 더 나은 것이다. (29면)




10. 사람이 지적 호기심을 잃고 나면 보다 높은 것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그런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사그라지게 된다. 그 대신 열등한 쾌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것은 그런 쾌락을 의식적으로 더 선호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들을 접근 가능한 또한 그나마 비교적 오래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30면)




11. 왜냐하면 효용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행을 방지하거나 완화시키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34면)




12. 공적이든 사적이든 애정을 쏟을 일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삶을 흥분시킬 만한 것이 훨씬 적다. (36면)




13. 우리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은 이기심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정신교양의 부족이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삶 주변에서 흥미로운 일을 무궁무진하게 찾아낸다.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의 발전, 시적 상상력, 역사적 사건,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통해 살아가는 길과 그 미래의 모습 등 수많은 일들이 그 사람의 관심을 끈다. (36면)




14. 올바르게 양육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애정을 쏟고 공공선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37면)




15.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목표라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지성인이라면 그런 싸움의 과정에서 고상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기적 자기 만족이라는 유혹 앞에서도 끝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9면)




16. 때로는 영웅이나 순교자가 자기 개인의 행복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 또는 그 행복에 없어서는 안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고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39면)




17. 한편 스토아 학파나 초월주의자 못지않게 공리주의자들도 자기 헌신self-devotion의 도덕성을 주장할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리주의 도덕률에서는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마저 희생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그런 희생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의 총량을 증대시키지 않거나 증대시킬 경향이 없는 희생은 한마디로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다른 사람들, 즉 집단적 의미로서의 인류 또는 인류의 집단적 이해관계에 의해 설정되는 한계 속의 개인의 행복 또는 그 행복에 이르게 해주는 수단을 위해 헌신하는 자기 부정만을 찬양하는 것이다. (41면)




18.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황금률에서 바로 그러한 공리주의 윤리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를 너 스스로 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가르침이야말로 공리주의 도덕의 완벽한 이상을 담고 있다. (41, 42면)




19. 첫째,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보다 실감나게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가능하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교육과 여론은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모든 개인이 자신의 행복과 전체의 이익 사이에, 특히 보편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동 양식과 자신의 행복이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누구든 공공의 이익과 배치되는 행동을 통해서는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해야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직접적인 충동이 각 개인의 습관적인 행동 동기 중 하나가 되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서 크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42면)




20. 그러나 그 어떤 윤리 체계도 의무감이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유일한 동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43면)




21. 대다수의 선한 행동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 개인들의 이익이 모여 사회의 이익이 형성된다. (44면)




22. 공리주의 윤리에 따르면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이 덕스러움의 목표이다. (1000명에 한 사람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44면)




23. 이를테면 공리주의가 무신론에 바탕을 둔 이론이라면서 호되게 비난하는 것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 만일 우리가 신이 무엇보다도 그의 피조물의 행복을 원하고 있으며 k로 이것이 그가 만물을 창조한 목적이라고 진정 믿는다면, 효용은 신을 배제한 이론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오한 종교적 성격을 띤다고 보아야 한다. (48면)




24. 마찬가지로 모든 합리적인 존재는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을 구분하는 훨씬 어려운 여러 문제뿐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상적인 문제에도 대처하기 위해 마음을 미리 일정한 방향으로 잡고서 인생이라는 바다에 나서는 것이다. (53면)




25. 따라서 행동 규칙에 예외가 생기는 것은 특정 신념 체계의 결함이기보다는 인간사 자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행동도 언제나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거나 반대로 항상 지탄받아야 마땅하다고 이분법적으로 잘라서 말할 수 없다. (54면)




26. 왜 우리는 그 도덕률에 복종해야 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이유 때문에 그것을 의무적으로 따르게 되는가? 그 구속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59면)




27. 왜냐하면 도덕적 의무의 근거로서 일반 행복을 제외한 다른 무엇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은 진정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본인의 실제 삶은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켜준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행동해주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기 때문이다. (61면)




28. 이런 느낌이 특정한 의무의 형태나 그저 단순히 부수적인 환경이 아니라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의무 관념과 연결될 때, 양심의 본질을 이루게 된다. (62면)




29. 도덕적 의무감의 근거를 초월적 사실 즉 ‘물자체things themselves'의 영역에 속하는 객관적 실체에서 발견하는 사람은 도덕을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의식적 차원으로만 파악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그 의무를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 (63면)




30. 목적에 관한 질문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바람직한가desirable 하는 데 대한 질문이다. 공리주의 이론은 행복이 바람직하다고, 다시 말해 행복이 하나의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서만 바람직하다. (75면)




31. 예를 들면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상태와 쾌락 못지않게 덕virtue을 강력하게 바라고 악이 생기지 않도록 간절하게 고대한다. 덕을 갈망한다는 것이 행복을 갈망하는 것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와 비슷한 정도로 진실하기는 하다. ... 그러나 과연 공리주의가 사람들이 덕을 갈망한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덕이 갈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사실은 정반대다. 공리주의는 덕이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아무 사심 없이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76, 77면)




32. 공리주의 이론에 따르면 덕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원래부터 목적의 일부였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심 없이 덕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덕이 목적의 한 부분이 되고,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한 부분으로서 갈망되고 소중히 여겨진다. (78면)




33. 권력과 명성이 지닌 가장 강력한 매력은 우리가 원하는 다른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매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 한때 행복을 얻기 위한 도구로 갈망되던 것이 그 자체로 갈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갈망의 대상이 되면서 행복의 한 부분으로서 갈망되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그것을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지거나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79, 80면)




34. 결론적으로 공리주의 철학은 일반 행복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이 습득하게 된 다른 욕구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일반 행복을 달성하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을 최대한 사랑하며 쌓을 것을 명령하고 요구한다. 이런 논의 끝에 우리는 행복을 제외하면 사람이 진정 갈망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1면)




35. 아직 덕스러운 의지가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떻게 그 의지를 심어주거나 일깨울 수가 있을까? 방법은 딱 하나, 그 사람이 덕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덕에 대해 생각할 때 즐거움을 느끼고, 반대로 덕이 결여되면 고통을 느끼게 해야 한다. 옳은 일을 하면 즐거움이,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고통이 연상되게 하거나 아니면 전자의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내포된 즐거움이, 후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고통이 생긴다는 것을 그 사람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닫고 깊이 인식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만 덕스러워지고자 하는 의지가 단련을 거듭하면서 쾌락이나 고통에 대해 따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절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85면)




36. 철학이 시작된 이래, 효용이나 행복이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이론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를 제기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의justice에 관한 생각이다. (89면)




37. 나는 한 단어가 맨 처음 내포했던 의미를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원학적으로 따지는 것은 어떤 단어의 현재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말이 어디에서 파생했는지 추적하는 일에는 도움이 된다. (98면)




38. 정의가 정책policy보다 더 신성한 것이며, 후자는 전자가 충족되고 나서야 관심을 기울여볼 만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오랜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 나는 효용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정의에 관한 가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든 이론을 반박하는 한편, 효용에 바탕을 둔 정의가 모든 도덕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 그 어느 것보다 더 신성하고 구속력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1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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