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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2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둘러싼 논쟁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식의 발전 과정을 되돌아 볼 때, 이것만큼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또 있을까?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임에도, 이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심각한 낙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3면)
2. 공인된 제1원리가 없다 보니 윤리학은 인간의 실제 감정을 정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17면)
3. 효용과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고 있는 이 이론은, 어떤 행동이든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것이 되며, 행복과 반대되는 것을 낳을수록 옳지 못한 것이 된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서 ‘행복’이란 쾌락, 그리고 고통이 없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쾌락의 결핍과 고통은 ‘행복에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24면)
4. 즉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며, 바람직한 모든 것(다른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리주의에서도 바람직한 것은 무수히 많다)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또는 고통을 막아주고 쾌락을 늘려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가 된다. (25면)
5. 쾌락 이상으로 더 좋은 욕망과 더 고상하게 추구할 만한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극단적으로 야비하고 천박한 이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옛날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을 돼지에 비유하면서 심한 야유를 보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공격자들로부터, 비록 표현이 점잖기는 하지만,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반격을 취했다. 즉 자신들을 그렇게 비웃지만, 인간이 돼지가 즐길 수 있는 쾌락 이상의 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정하는 그들이야말로 인간을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25면)
6. 나는 에피쿠로스 학파 사람들이 공리주의 원리에서 자신들의 행동규범을 도출해내는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하려면 기독교뿐 아니라 스토아 학파의 여러 요소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26면)
7.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가장 적합한 개념은 인간으로서의 품위sense of dignity다. ... 그리고 그런 의미의 품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품위가 행복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따라서 품위와 대립되는 것은 일시적인 순간을 제외하면 결코 진정한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28, 29면)
8. 혹시 이런 인간적 품위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행복을 잃게 된다고, 다시 말해 상황이 비슷할 경우 우월한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에 비해 행복을 덜 느끼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과 만족content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한 결과다. 즐거움을 향유하는 능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손쉽게 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29면)
9. 결국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데스가 더 나은 것이다. (29면)
10. 사람이 지적 호기심을 잃고 나면 보다 높은 것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그런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도 사그라지게 된다. 그 대신 열등한 쾌락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이것은 그런 쾌락을 의식적으로 더 선호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들을 접근 가능한 또한 그나마 비교적 오래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30면)
11. 왜냐하면 효용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행을 방지하거나 완화시키는 것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34면)
12. 공적이든 사적이든 애정을 쏟을 일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삶을 흥분시킬 만한 것이 훨씬 적다. (36면)
13. 우리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은 이기심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정신교양의 부족이다. 교양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삶 주변에서 흥미로운 일을 무궁무진하게 찾아낸다.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의 발전, 시적 상상력, 역사적 사건,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통해 살아가는 길과 그 미래의 모습 등 수많은 일들이 그 사람의 관심을 끈다. (36면)
14. 올바르게 양육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애정을 쏟고 공공선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37면)
15.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목표라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지성인이라면 그런 싸움의 과정에서 고상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기적 자기 만족이라는 유혹 앞에서도 끝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9면)
16. 때로는 영웅이나 순교자가 자기 개인의 행복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 또는 그 행복에 없어서는 안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니고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39면)
17. 한편 스토아 학파나 초월주의자 못지않게 공리주의자들도 자기 헌신self-devotion의 도덕성을 주장할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리주의 도덕률에서는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마저 희생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그런 희생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의 총량을 증대시키지 않거나 증대시킬 경향이 없는 희생은 한마디로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다른 사람들, 즉 집단적 의미로서의 인류 또는 인류의 집단적 이해관계에 의해 설정되는 한계 속의 개인의 행복 또는 그 행복에 이르게 해주는 수단을 위해 헌신하는 자기 부정만을 찬양하는 것이다. (41면)
18.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황금률에서 바로 그러한 공리주의 윤리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를 너 스스로 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가르침이야말로 공리주의 도덕의 완벽한 이상을 담고 있다. (41, 42면)
19. 첫째,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보다 실감나게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가능하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교육과 여론은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모든 개인이 자신의 행복과 전체의 이익 사이에, 특히 보편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동 양식과 자신의 행복이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누구든 공공의 이익과 배치되는 행동을 통해서는 지속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해야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직접적인 충동이 각 개인의 습관적인 행동 동기 중 하나가 되고, 이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서 크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42면)
20. 그러나 그 어떤 윤리 체계도 의무감이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유일한 동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43면)
21. 대다수의 선한 행동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이 개인들의 이익이 모여 사회의 이익이 형성된다. (44면)
22. 공리주의 윤리에 따르면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이 덕스러움의 목표이다. (1000명에 한 사람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44면)
23. 이를테면 공리주의가 무신론에 바탕을 둔 이론이라면서 호되게 비난하는 것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 ... 만일 우리가 신이 무엇보다도 그의 피조물의 행복을 원하고 있으며 k로 이것이 그가 만물을 창조한 목적이라고 진정 믿는다면, 효용은 신을 배제한 이론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심오한 종교적 성격을 띤다고 보아야 한다. (48면)
24. 마찬가지로 모든 합리적인 존재는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을 구분하는 훨씬 어려운 여러 문제뿐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상적인 문제에도 대처하기 위해 마음을 미리 일정한 방향으로 잡고서 인생이라는 바다에 나서는 것이다. (53면)
25. 따라서 행동 규칙에 예외가 생기는 것은 특정 신념 체계의 결함이기보다는 인간사 자체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행동도 언제나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거나 반대로 항상 지탄받아야 마땅하다고 이분법적으로 잘라서 말할 수 없다. (54면)
26. 왜 우리는 그 도덕률에 복종해야 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이유 때문에 그것을 의무적으로 따르게 되는가? 그 구속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59면)
27. 왜냐하면 도덕적 의무의 근거로서 일반 행복을 제외한 다른 무엇이 있든 없든 간에 사람은 진정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본인의 실제 삶은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켜준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행동해주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기 때문이다. (61면)
28. 이런 느낌이 특정한 의무의 형태나 그저 단순히 부수적인 환경이 아니라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의무 관념과 연결될 때, 양심의 본질을 이루게 된다. (62면)
29. 도덕적 의무감의 근거를 초월적 사실 즉 ‘물자체things themselves'의 영역에 속하는 객관적 실체에서 발견하는 사람은 도덕을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의식적 차원으로만 파악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그 의무를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 (63면)
30. 목적에 관한 질문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바람직한가desirable 하는 데 대한 질문이다. 공리주의 이론은 행복이 바람직하다고, 다시 말해 행복이 하나의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서만 바람직하다. (75면)
31. 예를 들면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상태와 쾌락 못지않게 덕virtue을 강력하게 바라고 악이 생기지 않도록 간절하게 고대한다. 덕을 갈망한다는 것이 행복을 갈망하는 것만큼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와 비슷한 정도로 진실하기는 하다. ... 그러나 과연 공리주의가 사람들이 덕을 갈망한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덕이 갈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사실은 정반대다. 공리주의는 덕이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아무 사심 없이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76, 77면)
32. 공리주의 이론에 따르면 덕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원래부터 목적의 일부였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심 없이 덕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덕이 목적의 한 부분이 되고,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의 한 부분으로서 갈망되고 소중히 여겨진다. (78면)
33. 권력과 명성이 지닌 가장 강력한 매력은 우리가 원하는 다른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매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 한때 행복을 얻기 위한 도구로 갈망되던 것이 그 자체로 갈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갈망의 대상이 되면서 행복의 한 부분으로서 갈망되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그것을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지거나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79, 80면)
34. 결론적으로 공리주의 철학은 일반 행복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이 습득하게 된 다른 욕구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일반 행복을 달성하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을 최대한 사랑하며 쌓을 것을 명령하고 요구한다. 이런 논의 끝에 우리는 행복을 제외하면 사람이 진정 갈망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1면)
35. 아직 덕스러운 의지가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떻게 그 의지를 심어주거나 일깨울 수가 있을까? 방법은 딱 하나, 그 사람이 덕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덕에 대해 생각할 때 즐거움을 느끼고, 반대로 덕이 결여되면 고통을 느끼게 해야 한다. 옳은 일을 하면 즐거움이,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고통이 연상되게 하거나 아니면 전자의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내포된 즐거움이, 후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고통이 생긴다는 것을 그 사람의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닫고 깊이 인식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만 덕스러워지고자 하는 의지가 단련을 거듭하면서 쾌락이나 고통에 대해 따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절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85면)
36. 철학이 시작된 이래, 효용이나 행복이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이론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를 제기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의justice에 관한 생각이다. (89면)
37. 나는 한 단어가 맨 처음 내포했던 의미를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원학적으로 따지는 것은 어떤 단어의 현재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말이 어디에서 파생했는지 추적하는 일에는 도움이 된다. (98면)
38. 정의가 정책policy보다 더 신성한 것이며, 후자는 전자가 충족되고 나서야 관심을 기울여볼 만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것은 오랜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 나는 효용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정의에 관한 가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든 이론을 반박하는 한편, 효용에 바탕을 둔 정의가 모든 도덕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 그 어느 것보다 더 신성하고 구속력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1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