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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주주의인가 - 한국 민주주의를 보는 하나의 시각, 민주주의총서 06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이 책을 쓰면서 우리가 가진 공통의 현실 인식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로의 발전 경로는 점차 봉쇄되고 있는 반면 ‘국가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는 정당과 의회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 사이의 싸움으로 치환되었고, 시민사회는 국가 관료제와 거대 사익의 영향력이 더욱 공고화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7면)
2. 승자는 결국 능력있는 사회적, 경제적 강자이거나 엘리트이다. (13면)
3. 사츠슈나이더도 읽었고 로버드 다알도, 테오도어 로위도 읽었다. 그런데 이 책들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최근이다. 민주화가 되고 진짜로 민주주의의 현실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책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내용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전까지는 주로 한국이 직면한 권위주의 현실에 대해 읽고 생각했다.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는 민주화 이후 새로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경험된 민주주의의 현실’이라는 기초 없이 민주주의를 책을 통해 상상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15면)
4. 정치적 실현으로서 민주주의의 어려움을,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은 ‘도망치는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라는 말로 표현했다. (16면)
5.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존 던은 ‘민주주의’라는 ‘말’의 역사에 관해 책을 썼다. (17면)
6. 여기서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정치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영역,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의 정치 참여 확대와 보편적 시민권의 향유와 같은 요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19면)
7. 적어도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다음,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추상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민주주의냐” 하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 (25면)
8. 민주주의는 각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민주주의 제도의 틀 안에서 타협하고, 일정한 내용의 잠정적인 합의를 이루어 결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정치적 방법 내지는 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27면)
9.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제의 책임을 개개인의 도덕성으로 환원하는 의식 개혁 운동이나, 현실의 여러 다층적 요소들을 희생시키는 운동 정치, 민족주의나 국익을 정서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여론 동원 정치 등의 도덕주의 정치관은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위축시키고 정치가 창출하는 개혁이나 변화의 가능성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28면)
10.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커다란 문제는, 정당을 부정하고 정치를 부정적으로 공격하면서 보수파나 진보파 모두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에 공조해 왔다는 것이다. (29면)
11.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는 국가기구를 관장하는 엘리트들을 순환시켰다는 것 이상의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운동권 인사들이 모든 부문에서 최대 다수 집단으로 부상했지만 정치체제의 작동 양식이나 주요 정책에서 변화는 사실상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해 민주화 운동 경력은 민주화 이후 통치 엘리트가 되는 효과적 통로로 작동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30, 31면)
12. 운동은 이제 무익하다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운동을 강조하면서 정치와 정당을 부정하는 어떤 이념적 태도에 대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대중 정당은 운동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이 사회적 요구를 표출하는 기능을 하는 한 운동은 정당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31면)
13. 오늘의 대중 매체는 공익적 역할도 하지만 사익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사적 목적을 갖는 대중 매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대중을 특정 방향으로 동원하는 막대한 영향력이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의 한 특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39면)
14. 국가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지 않는 한, 그리고 복지를 위해 증세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기술 관료적 결정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증세와 국가의 확대는 사회복지의 증대와 빈부 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보다 비선출직 관료들의 사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4면)
15. 국방비 지출이 OECD 평균보다 세 배나 크지만, 사회복지 부문은 4분의 1수준에 머물려 있다. (44면)
16. 내가 자유주의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인간의 평등을 철학적으로 규정하는 천부인권과 불가양도의 자연권 사상이다. 이 사상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사상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46면)
17.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그 철학, 이념의 인식론적 근저에 인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경쟁에서의 승자와 사회 경제적 강자를 정당화하고 상찬하는 가치,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이념이자 제도로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대에서 구현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로 보이고, 자유주의가 기초를 두었던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부정,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는 철학으로 이해된다. (47면)
18. 권위는 기본적으로 제도 속에서의 역할, 즉 상하 관계나 역할 관계 등의 관계구조에서 행위하는 쌍방이 동일한 가치와 규범, 역할을 서로 수용할 때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한 유형이다. 그것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 또는 탁월한 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인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강제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영향력이다. ... 권위있는 지도자가 없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붕당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49면)
19. 내가 했던 정치학을 되돌아 볼 때, 권위주의 시기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다분히 운동론적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규범적인 판단이 중요했기 때문에 정치학의 정체성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학의 장점과 묘미에 빠지게 된다. (54면)
20. 헤로도토스는 투키디데스와 함께 역사학의 두 아버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조적인 역사관과 서술로 역사학 방법론의 두 기원이 되었다. 투키디테스가 위대한 인물, 리더십, 정부, 교회, 정치 등 영웅들이 주도하는 웅장한 정치의 드라마를 보여 주는 역사학을 열었다면, 헤로도토스는 민중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역사학을 개척했다. (55면)
21. 고대 그리스 고전학자인 조시아 오버는 권위주의 등 다른 체제가 갖지 못한 민주주의의 핵심 덕목을 ‘자체 수정 능력’revisability이라고 말한다. (56면)
22.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 행위의 목적이 공익에 봉사하고 사회적 윤리성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 윤리’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 또한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이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는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공동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이 주관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즉 객관적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75면)
23. 그 많은 학회지, 연구논문을 보면서 죽은 논문, 죽은 글쓰기, 죽은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로부터인가 문제가 주어져서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아다가 늘여놓은 것 같은 글들, 문제의식 없는 공부가 너무 많다. 훌륭한 학문은 뜨거운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수련을 필요로 한다. (78면)
24. 원래 민주주의는 철학자나 학자들이 이론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현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외부에서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정답을 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고 매력이기도 하다. (78면)
25. 보통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가장 선호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정치체계들에 비해 이 체계가 그 자체의 여러 매커니즘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의사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83면)
26. 주권자인 인민과 대표 사이의 관계, 이를 주인-대리인 관계로 바꿔어 말하면 대리인이 아무리 주인의 권익과 의사를 잘 대변한다 하더라도 양자는 동일인이 아니기에 양자 간의 간극은 사실상 필연적이며 구조적이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은 거의 태생적인 것으로 보인다. (87면)
27. 요컨대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체계의 전환, 즉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점에서는 성공했지만, 1960-70년대에 성립된 국가-재벌 연합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소외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성장 모델로부터 ‘발전 경로에 대한 대안적 출구’exit option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고 하겠다. (111면)
28. 금융 시장 자유화, 기업 구조 조정, 노동 시장 유연화, 공공 부문 민영화, 재정 지출의 감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IMF 개혁안은 민주 정부에 의해 신속하게 실행되었고, 이후 민주 정부들은 자유 시장 근본주의와 정통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로 나타났다. (113면)
29.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위한 친재벌, 친기업, 노동 억압, 노동 배제 정책은 보수정당에 의한 보수적 정부가 아니라 이른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를 통해 수행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해체 효과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OECD 국가 가운데 사회복지비 지출이나 노동 소득 분배율 등의 사회경제 지표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더욱 급증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113면)
30. 사회경제 정책에서 이른바 담론으로 표현되는 차이와는 무관하게 정당들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실제의 사회경제적 갈등이 정치 경쟁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 영역에서 이 문제를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흔히 ‘지역당 체제’로 불리는 지역 간 엘리트 경쟁체제 내지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을 둘러싼 경쟁이 갈등의 중심축이 되는 상황, 나아가 대북 정책, 한미 관계, 외교정책을 포함한 민족 문제와 대외 정책의 차이를 중심으로 한 정당 간 갈등 상황은, 사회경제적 이슈가 배제된 정당 체제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14면)
31. 시장 효율성 대 국가 비효율성과 같은 대립항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을 만들고 나아가 도덕적 선악 개념으로 전환하면서 확대 해석되기에 이른다. 시장은 경제, 효율성, 성장을 의미하는 반면, 국가는 부패, 낭비, 기생적 제도와 같은 것을 상징하면서 도덕적 규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21면)
32. 정치 경쟁의 대립항을 진영 간 대립으로 설정할 때, 그것은 수구적인 것과 변혁적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등 마치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과 유사한 도덕적 선악의 이분법적 구조로 나타나기 쉬우며, 문제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정조와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태도는 사회경제적 이익과 그 차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정당과 민주 대 반민주라는 하나의 단일 축에 바탕한 이분법적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운동의 경향과 많은 친화성이 있다. 민주화 이후 운동으로부터 일상 정치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과 정조는 정당과 운동을 상호 배타적인 선택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정당보다는 운동에서 민주화의 동력을 끌어내고자 하는 경향을 지속하게 했다. (124, 125면)
33.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보통선거권의 전면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정당의 계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27면)
34. 흥미로운 것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중심 가치인 생산성과 효율성이 민주주의 원리를 대체했다는 사실이다. (128면)
35. 오히려 한국의 정당들은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개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141면)
36.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냉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 시기에 그 틀이 갖추어진 한국의 정당 체제는 제도권 내에서 경쟁하는 모든 정당이 극우 내지 우파의 보수정당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에서는 서구식 사민주의 정도의 이념과 정책을 표방하는 좌파 정당은 차치하고라도 중간파 정당의 존립조차 허용되지 못했다. 냉전 반공주의의 가장 뚜렷한 유산은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논의되고 경쟁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노동 문제를 말할 때,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 전통적인 생산자 노동자를 조직기반으로 하고 고전적인 사회주의와 같은 어떤 이념성을 가진 노동자계급 정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넓은 의미에서 노동 문제가 정치적 이슈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노동운동의 정치조직이 정치과정의 중요한 행위자로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체제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조직하는 정치 행위 자체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147면)
37. 키르히하이머의 포괄 정당은 유권자지지 시장에서 좌파 정당이 보수적 정당에 접근함으로써 양대 세력 간 경쟁이 중산층의 지지 획득을 위해 중간으로 수렴하고, 이 과정에서 좌파 정당의 조직 구조가 관료화되고 전문화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148면)
38. 왜냐하면 한국에서 대중정당은 역사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의 차이로 말미암아 19세기 말로부터 발전된 유럽 대중정당의 특성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49면)
39. (이하 박찬표 글) 국가의 주요한 정책 결정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으로 이전되어 해소되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현상이 그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 호주제, 국가보안법 등 전통적인 시민권 이슈 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이라크 파병 등 핵심적 국가정책들이 법원이나 헌재를 중심으로 쟁투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대통령 탄핵과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 판결일 것이다. 전자는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포함한 권력 행사의 범위를 축소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주적으로 구성된 의회의 입법이 사법적 판단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그 사안이 집단적 갈등과 관련된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관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197면)
40. 4대 개혁 입법의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개폐, 사학 개혁, 언론 개혁의 의제는, 한국의 냉전, 보수세력의 역사적 뿌리와 그 체제적 근거에 관한 것이며 또한 시민사회의 보수 헤게모니의 심층을 겨눈 것이었다. (203면)
41. 결국 자유의 개념을 둘러싼 이런 논쟁은, T. H. Marshall이 제시한 근대적 시민권의 확대 과정 즉 시민적 권리에서 정치적 권리로, 나아가 사회적 권리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Marschall의 논의에 기초하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단순화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내용이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에 머물렀던 단계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사회적 권리가 의제로 제기되면서 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 이념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자유주의는 내부 분화되기 시작했고, 고전적 자유주의를 견지하는 입장은 민주주의와 갈등 관계를 노정하게 되었다. (209면)
42. 그 결과 현재 우리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노동의 해체와 사회 양극화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중산층을 축소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급속히 심화시켰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보는 권리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민주화와 함께 사회민주화의 이슈들도 분출되고 있다. 사학개혁이나 언론개혁 외에도, 가정 및 양성 평등의 관건인 호주제 폐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위한 사립학교 종교 자유화 등의 이슈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이 모든 것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217, 218면)
43. 이와 같이 시민권 확대의 요구는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주의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18면)
44. 하지만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영역은 급속히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 다른 한편 이들은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개혁이나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시장’과 ‘사유 재산의 신성함’을 내세우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그 결과 한국의 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기득권층을 방어하는 논리로 전유되고 있다. (219면)
45. 현재 담론 영역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정경분리 담론이다. 그 핵심은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대와 관련된 의제를 사적 영역의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정치와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지배담론의 또 다른 한 축은, ‘사회 공익을 대표하는 불편부당하며 초월적인 권위’로 사법부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헌재의 물신화가 그것이다. 최장집이 지적하듯이 탄핵 심판이나 위헌 심판에서 재판관들은 ‘법리’를 강조한다. 이때 법리는 민주주의의 규범으로부터 독리적이거나 혹은 그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논리는 파당적 정치를 초월하여 공익에 충실한 이성적인 법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회에 부과하며, 동시에 법의 해석자로서 법관들은 민주주의 밖에서 법리를 근거로 민주주의를 심판하고 계도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최장집 2005, 62-65). 신자유주의의 법치 민주주의 개념에 이보다 부합되는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 (223면)
46. 진보적 사법 적극주의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결국 민주주의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본질적 측면을 간과하는 점이다. 허쉴에 의하면, 세계적인 사법 지배의 경향은 헤게모니적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정책적 신호를 민주 정치과정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고자, 정책 결정권을 다수결주의적 정책 결정의 영역으로부터 준자율적인 전문가적 정책 결정 기구로 옮김으로써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좀 더 광범한 시도의 일부로 파악한다(Hirshl 2004). 즉 민주주의의 축소라는 것이다. (225면)
47. 한국에서 산업화를 통해 생산직 노동자가 대거 형성된 시기는 1970-80년대였다. 하지만 이 시기 노동의 정치적 조직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중욯나 제약 요인은 분단, 반공체제였다. 냉전과 분단 체제는, ‘노동자’라는 단어조차 이념적으로 재단하여 ‘근로자’로 부르도록 강요할 만큼 노동의 계급화를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이었다. 노동운동 탄압에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것은 이런 사정의 반영이었다. (235면)
48.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 대 반민주’ 대립 구조에서 점차 여당은 국가에 편입된 국가권력의 종속물이 되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제도권 정치 안에서 경쟁하는 ‘제도권 내 정당’이 아니라 국가에 반하는 시민사회와 연대한 ‘제도권 밖의 정당’으로 변해 갔다. 결국 시민사회의 반정부 운동에 야당이 참여하는 민주화 대연합이 형성되고 이는 권위주의 체제 종식에 기여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38면)
49. 정당 정체성의 후퇴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지표는 선거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의원들의 당적 변경이다. (240면)
50. 엘리트 이론에 맞서 다원주의로 미국 정치를 정당화했던 다알 역시, 기업 집단의 과도한 힘으로 다원주의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Dahl 1985). (260면)
51. (이하 박상훈) 한국 현실에서 대중조직 정당이 비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은 그 근거로서 한국사회가 이미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했음을 제시한다. 탈물질주의 균열의 등장, 정치적 무관심층의 증가, 투표율 하락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서구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서구가 복지국가를 거치면서 물질주의적 갈등이 이완되었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산업사회의 균열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265면)
52. 그간 대통령들은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시민사회를 통합하는 데에서 정당을 기반으로 삼기보다는 정당을 우회하거나 초월하려는 욕구를 자주 드러냈다. 정당의 매개 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 로비 기능은 극대화될 수 밖에 없었고, 전문가 집단의 자문과 정책‘작성’기능에 대한 의존 역시 커졌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노무현 정부 시기 이른바 삼성과의 정치적 연계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 결정에 투입 기능을 압도한 것은 정당이 아니라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사태 전개에 대한 아래의 단순한 기술만으로도 정부가 정당에 기반을 두지 않을 때 그 힘의 공백을 누가 차지하게 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인수위 시절부터 최근 한미 FTA 추진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 핵심정책의 이면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벌의 정책 로비용 보고서가 갖는 영향력은 컸다(손재민, 2006).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에서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 주도형 경제론, 산업 클러스터론 등의 개념도 모두 이들의 보고서를 통해 발전되었다. (314면)
53. 한국에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권위주의를 퇴출시킨 중심 힘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져온 운동의 힘은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대면해야 할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