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 개정증보판 현대사상신서 6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 옮김 / 교보문고(교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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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 여기서 나는 미셸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과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담론이라는 개념을 원용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18면)




2. 서양, 특히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에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거의 완전히 일치된 여론이다. (60면)




3.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역사적 발전의 법칙은, 선택성의 증대가 아니라 영역의 확대에 있다. (99면)




4. 사실 오리엔탈리즘의 태도 일반도 참으로 반경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마술이나 신화처럼 폐쇄된 시스템이 갖는 자기충족적이고 자기강화적인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133면)




5.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동양을 묘사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언어와, 동양 그 자체 사이에 있는 대응관계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언어가 부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35면)




6. 나아가 근대 서양의 용어로 동양을 서술해 온 순수한 힘은... 지금까지는 무시된 그대로 방치해 온 무언의 어두움으로부터 동양을 끌어 올려, 근대 유럽 학문의 명료함 속으로 포함시켰다. (160면)




7. 과거에 서양에서 아시아란 거리감과 소원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언의 표상이었고, 이슬람이란 유럽 기독교 세계에 대한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상대였다. 이러한 무서운 불변의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을 알아야 하고, 이어 동양에 침입하여 그것을 소유하며, 그 뒤에 학자, 군인, 재판관의 손으로 재창조하여야 한다. 곧 그들은 잊혀진 언어, 역사, 민족, 문화를 발굴하여, 그것을 동시대의 동양을 판단하거나 지배하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참으로 고전적인 동양으로 (동시대의 동양인 눈을 벗어나) 진열했다. 애매함은 없어졌고, 대신 온실에서 기른 실체가 대체되었다. (168, 169면)




8. 어떤 경우이든 그 근본에 있는 것은, 인간과 장소와 경험이 한 권의 책에 의해 언제나 묘사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며, 그 결과 책(텍스트)이 그 속에 묘사된 현실보다도 더욱 큰 권위를 얻어 더욱 널리 이용된다. (173면)




9.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서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 현실 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과 현실이란, 일종의 전통, 즉 미셸 푸코가 담론이라고 부른 것을 낳게 된다. 그리고 담론의 내부에서 생긴 텍스트의 내용을 결정하는 본질은, 특정 작가의 독창성이 아니라, 실은 그러한 담론의 실체적 존재나 그 무게이다. (174면)




10. 패권주의, 즉 헤게모니즘hegemonism이란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용한 개념으로서, 소수가 다수를 문화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고, 그것이 소수와 다수 모두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되는 것을 말한다. (역주, 180면)




11. 동양은 관찰되고 있다. (190면)




12. 오리엔탈리스의 동양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화된 동양이다. (192면)




13. 이 경우 이데올로기의 공급원은 어중간한 지식을 가진 기술자만이 아니라 고도의 학식을 지닌 오리엔탈리스트들이었다. (198면)




14. 이러한 견해에 끊임없이 잠복되어 있는 것은, 서양인 소비자가 수로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또는 그 두가지 모두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양인과는 달리 서양인은 참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면)




15. 어떤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다른 문화, 민족, 지리적 구분 속의 인간존재를 무시하고, 그 정수를 뽑아 버리며, 그것을 박탈하는 결과로 생기는 한계이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은 이 한계를 넘어서 더욱더 나아간다. 그것은 동양을 단지 서양을 위한 구경거리로 볼 뿐만 아니라, 서양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고정된 그대로의 존재로 본다. 오리엔탈리즘이 대상을 서술하고 텍스트에 의존하여 거둔 성공이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 정치, 사회의 모든 역사적인 단계는 서양에 대한 단순한 응답에 불과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한 관찰자, 재판관, 배심원이다. (199면)




16. 인문학자는 전문적으로 분화된 연구 주제에만 자신의 주의를 한정하는 정도가 너무나도 극심하다. (201면)




17. 오리엔탈리즘의 끊임없는 야심은 하나의 세계를 전부 지배하는 것이었지, 그 세계의 일부분 곧 특정한 저자나 텍스트의 일정한 집합과 같이 쉽게 한정할 수 있는 범위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201면)




18. 낱말 하나의 일생과 그 모험을 얘기한다면, 얼마나 훌륭한 책을 쓸 수 있겠는가? 의심할 바 없이 하나의 낱말은 그것이 사용된 사건의 여러 가지 인상을 받아 왔다. 그것이 사용된 장소가 변함에 따라 그것은 여러 가지로 상이한 사람들에게 상이한 종류의 인상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러나 하나의 낱말을 영혼, 육체, 운동이라는 3면에서 생각하면 더욱 위대하지 않겠는가? (235면)




19. 그들은 결코 그 학문의 뿌리에 이를 수 없다. 그들은 결코 문헌학을 하나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는다. (니체, 236면)




20. 니체가 생각한 문헌학 역시 인간적인 사업의 상징으로서, 비코가 말한 대로 발생하고 만들어진 거시며, 인간적 발견, 자기발견, 독창성의 한 범주로 창조된 것이다. (236, 237면)




21. “나는 중앙에 앉아서 모든 것의 향기를 빨아들이고 판단하며 비교하고 결합하며 귀납한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사물의 체계 그 자체에 도달하게 된다.” 문헌학자의 주변에는 명백한 권력의 분위기가 있다. (237면)




22. 퀴네의 정식에 의하면, 동양을 문제를 제기하고 서양은 그것을 해결한다, 곧 아시아는 예언자를 가지며 유럽은 전문가(학자와 과학자: 이는 말장난이다)를 갖는다는 것이다. (245면)




23. 르낭에 의하면, 문헌학자는 향락보다 행복을 좋아해야 한다. 그것은 성적인 쾌락이 아니라,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고상한 행복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260면)




24. 샤토브리앙에게는 쓴다는 것이 곧 삶의 행위였다. 그는 살아 있는 한, 모든 것에 대하여,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의 돌에 대해서도 문자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308면)




25. ... 또 생생한 그대로의 현실을 동양 그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의 관찰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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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종속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4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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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는 몇몇 중요한 측면에서 18세기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주 특징적인 것이 바로 이성적 요소에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18세기와는 달리, 인간 본성의 비이성적 요소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성Reason을 떠받드는 대신 본능instinct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17면)




2. 여성의 복종심을 더 키우기 위해, 온순하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며 자기 생각 없이 그저 남성의 뜻을 맞추어 사는 것이 여성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주입시키는 것이다. (38면)




3. 이미 현대사회에서는, 그리고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할수록, 명령하고 복종하는 삶은 예외적인 것인 반면 평등한 관계는 대세가 되고 있다. 역사가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강자의 힘에 복종하는 것이 도덕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는 그것이 강자의 관용과 보호 아래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89면)




4. 여성은 늘 사물을 집단보다는 개별적으로 다루려 하고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지만) 사람들의 현재 감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여성은 현실에 적용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118면)




5. 여성이라고 해서 그런 놀라운 발상을 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을까? 아니다. 지적 역량이 뛰어난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과 연결시켜줄 수 있을 만큼 지식을 가진 남편이나 친구가 없는 탓에 그것은 대부분 사장되고 만다. (139면)




6. 비평가들이 싫증날 정도로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왜 로마 문학은 독창적이지 못하고  그리스 것을 모방하고 있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스 것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만일 여성이 남성과 다른 세상에 살고 남성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더라면, 분명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138, 139면)




7. 우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성이 매우 드물다. 이것은 역설로 보일지 몰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이다. 모든 여성은 전통적 관례에 따라 자신의 시간과 생각을 일상적 실무에 쓸 수 밖에 없다. (1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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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체성, 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7
이현재 지음 / 책세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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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그렇다면 왜 여성 문제를 인정 이론과 접목해 풀어나가고자 하는가?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당연하다. 다른 사람의 인정 없이는 긍정적인 정체성이 실현되거나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8면)




2. 여성문제를 조망하는 데 있어서 인정이론을 도입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정 이론이 ‘상호성’의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인정은 반드시 ‘상호 인정’이어야 한다. 즉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 나 혹은 너만 일방적으로 인정되는 구조에서는 진정한 자아실현이 이루어질 수 없다. (9면)




3. 상호 인정 이념은 여성성 혹은 여성주의가 왜 희생 논리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왜 여성이 노예처럼 일방적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왜 여성이 타자를 노예로 희생시키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도 설명해준다. (10면)




4. 상호 인정 이념은 타자를 소멸시키거나 객체로 부정해버리는 주체(주인)의 논리를 통해서는 여성을 위한 정체성이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며 나아가 새로운 여성의 정체성은 오직 타자의 인정을 자기실현의 조건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10면)




5. 첫 번째 물음은 ‘여성철학feminist philosophy이란 무엇인가’다. (17면)




6. 두 번째 물음은 ‘여성주의는 어떤 정체성을 규범적인 것으로 제안해 왔는가’다. (17면)




7. 마지막 세 번째 물음은 ‘여성철학의 관점에서 이제 어떠한 정체성이 희망되어야 하는가’다. ... 따라서 나는 헤겔의 이론을 빌려 타자를 소멸시키거나 객체로 부정해버리는 주체의 희생논리를 통해서는 여성을 위한 규범적 정체성은 마련될 수 없으며, 나아가 여성은 오직 타자 혹은 차이의 인정을 자기실현의 조건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17, 18면)




8. 철학의 진수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 즉 철학자의 ‘그럼 아닌가?’를 묻는 태도를 통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20면)




9. 따라서 사람이 아름다움을 욕구하는 것은 그가 자신이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자신 안에 아름다움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완전히 소유하지 않고 있을 경우에만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21면)




10. 이처럼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하며 이를 통해 늘 자신을 열어두어야 한다. 철학자는 스스로에게 반문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 (22면)




11. 이성의 확실성에 대해 ‘그럼 아닌가?’를 묻게 되었다는 것이다. (25면)




12. 이들(라캉, 데리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의 이론에 따르면 이성은 인간의 모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성을 통해서만 인간을 설명하고자 하면 인간의 본능이나 무의식, 욕망이나 감정 등은 배제되거나 무시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 의하면 보편적 이성이란 사실상 특정한 힘에의 의지의 산물이다. 따라서 자신의 진리를 모든 사람의 진리로 만들면 이것은 곧 차이와 다양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자신의 권리를 전체의 진리로 만들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이성과는 다른 것 즉 무의식이나 본능, 욕망, 타자성 등을 배제하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철학자들은 ‘어떻게 이성의 폭력을 극복하는 새로운 이념을 창출할 것인가’ 같은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26면)




13. 남성과 같은 인간이고 싶어라 (여성주의 1세대). (32면)




14. 그리스테바는 이와 같은 주체의 역사적 완성 과정이 여성과 남성을 모두 포괄하는 인간의 역사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시간’이자 ‘그의 이야기his-story'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33면)




15.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녀(잔다르크)는 자신의 여성성을 가차 없이 버려야 했다. ... 결과적으로 여성을 남성화하고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했다고 본 것이다. (34, 35면)




16. 남성과 다른 여성이고 싶어라 (여성주의 2세대). (35면)




17. 그들은 인간 해방을 보증하는 이론이 규범으로 삼는 인간 주체라는 개념이 결과적으로 타자로서의 여성을 배제한다고 보고, 여성적인 것의 차이를 긍정적으로 부각하는 이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즉 이제 여성주의는 여성을 인간 주체로 파악하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성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규범적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한다 (여성중심적 여성주의). (35면)




18. 이들은 여성적인 것이 남성적인 것 혹은 인간적인 것과 달리 타자를 제외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본다. ... 타자로서의 여성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주성이나 독립성보다는 타자와의 결합을, 통일성보다는 분열을 안고 사는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36면)




19. 여성적 시간은 남성의 시각에 의해 즉 하나의 일관된 원리에 의해 파악될 수 없으며 단지 그러한 원리의 부정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 (38면)




20. 관계 이론은 아이의 정체성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보며 이러한 점에서 독립이나 자유보다 타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특히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로In a different Voice'에서 정의를 중시하는 남성과 달리 타자에 대한 보살핌을 강조하는 여성 특유의 도덕적 태도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다른 목소리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여성의 이러한 태도를 보살핌의 윤리로 명명하고 그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38면)




21. 다시 말해서 보편적 인간 주체를 거부하려는 2세대의 운동은 모든 것을 타자화하고 파편화함으로써 어떤 것도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게 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40면)




22. 동일성과 차이를 공존시키다. (여성주의 3세대) (41면)




23. 2세대 여성 중심주의는 여성적인 것의 긍정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쾌거를 거둔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적 감성과 타자 연관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통일적인 행위 주체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안게 된다. 그뿐 아니라 여성 간의 차이를 급진화하는 과정에서 여성 혹은 여성주의자 간의 연대 가능성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41면)




24. 그리스테바는 이제 비판해야 하는 것은 ‘동일성’이나 ‘차이’가 아니라 ‘배제의 논리’ 그 자체라고 본다. 즉 비판해야 하는 것은 특정 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희생의 대상으로 만들어 배제하는 논리 자체라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3세대 여성주의는 동일성이나 차이, 주체성이나 타자성 중 어떤 것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성주의 안에 동일성과 타자를 공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42면)




25. 3세대 여성주의의 핵심은 배제되지 않음 즉 배제의 논리를 극복하는 데 있다. 3세대 여성주의의 정체성은 ‘여성성의 배제’나 ‘남성성의 배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배제되지 않음’의 정신 속에서 구현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서 크리스테바는 ‘배제의 배제’라는 소극적 개념을 넘어 ‘병존’이라는 적극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3세대 여성주의는 대립적 이원론의 도식을 넘어서 양자의 공존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42면)




26. 인정이론은 타인과의 공존 없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준다. 인정 이론에 따르면 개별자의 정체성은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고 실현될 수 있다. 개별자의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연관이 필요하며, 차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차이를 공존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동일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정 이론이다. (43면)




27. 용감한 영웅,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다. (44면)




28. 어리석은 주인, 노예의 희생을 요구하다. (47면)




29. 지혜로운 노예, 상호 인정을 요구하다. (50면)




30. 3세대 여성주의자는 바로 이러한 상호 인정의 원리를 규범적 정체성을 위한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대자적이면서도 대타적인 존재로, 독립적이면서도 타자 의존적인 존재로, 나아가 주권적이면서도 한계를 갖는 존재로 정립해야 한다. 대자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대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며, 독립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인정 행위가 필요하다는 인정 이론의 논리를 깨달아야 한다. 여성의 정체성은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에서 타자를 인정하는 논리로 나아갈 때 실현될 수 있다. (54면)




31. 보부아르 (제2의 성) - 여성의 인간화 (58면)




32. 길리건 (다른 목소리로) - 보살피는 여성 (76면)




33.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로’에서 콜버그의 단계 이론이 여성을 평가절하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길리건은 콜버그의 단계 이론에 따르면 여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도덕적 태도는 “여섯 단계 도식 중 3단계”에 해당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콜버그의 도덕이론은 반여성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편적인 정의의 관점을 중시하는 콜버그의 단계 이론에 따르면 자신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합일과 일치감을 중시하는 여성은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존재가 된다. (79, 80면)




34. 길리건은 정의가 유일한 도덕적 관점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의 도덕적 정체성을 미궁에서 구해낸다. 여성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81면)




35. 버틀러는 성을 규정하는 고정불변의 실체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덕의 배후에서 그것을 영원히 참으로 만드는 실체 같은 것은 없다는 니체의 논리처럼 버틀러도 사회적 젠더의 배후에 그것을 고정불변의 진리로 만드는 성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115면)




36. 영은 여성이 서로 다른 맥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여성 모두를 위한 여성주의 이론을 구축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 여성들은 각각 다른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저마다 느끼는 고통의 원천도 다르다는 것이다. ... 따라서 여성 간에는 통일적 여성성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곧 통일적 여성운동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은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다. (136, 137면)




37. 여성주의자의 연대와 실천은 동일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여성주의자의 연대는 구성원의 분열과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여성 안에서 이방인은 추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환영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의 인정을 통해 ‘우리’의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41면)




38. 의사소통적 ‘우리’에서 타자나 문화적 이방인은 우리에 의해 추방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153면)




39. 우탈은 영미 여성주의 집단의 여성주의자가 담론적 실천에 있어서 집단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듣고는 있지만hearing 실제로 귀담아듣지listening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 이와 반대로 유색인 여성주의자는 담론적 실천에 있어서 다른 목소리를 귀담아듣는다. 귀담아듣는다는 것은 그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반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며, 차이를 소멸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담론적 실천은 소란하다. 이들은 기꺼이 “난상토론을 한다”. (157면)




40. 반성적 연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내용적 합의가 아니다. 반성적 연대의 궁극적 지향점은 차이의 표명과 상호 작용이다. (160면)




41. 인정이론의 패러다임 안에서 인간 주체의 자율성은 여성의 타자 연관성과 모순되지 않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차이는 동일성을, 동일성은 차이를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1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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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주주의인가 - 한국 민주주의를 보는 하나의 시각, 민주주의총서 06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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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쓰면서 우리가 가진 공통의 현실 인식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로의 발전 경로는 점차 봉쇄되고 있는 반면 ‘국가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는 정당과 의회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 사이의 싸움으로 치환되었고, 시민사회는 국가 관료제와 거대 사익의 영향력이 더욱 공고화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7면)




2. 승자는 결국 능력있는 사회적, 경제적 강자이거나 엘리트이다. (13면)




3. 사츠슈나이더도 읽었고 로버드 다알도, 테오도어 로위도 읽었다. 그런데 이 책들의 가치를 발견한 것은 최근이다. 민주화가 되고 진짜로 민주주의의 현실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책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내용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전까지는 주로 한국이 직면한 권위주의 현실에 대해 읽고 생각했다.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는 민주화 이후 새로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경험된 민주주의의 현실’이라는 기초 없이 민주주의를 책을 통해 상상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15면)




4. 정치적 실현으로서 민주주의의 어려움을,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은 ‘도망치는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라는 말로 표현했다. (16면)




5.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철학자인 존 던은 ‘민주주의’라는 ‘말’의 역사에 관해 책을 썼다. (17면)




6. 여기서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정치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영역,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의 정치 참여 확대와 보편적 시민권의 향유와 같은 요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19면)




7. 적어도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다음,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추상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민주주의냐” 하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 (25면)




8. 민주주의는 각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대표되어 민주주의 제도의 틀 안에서 타협하고, 일정한 내용의 잠정적인 합의를 이루어 결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정치적 방법 내지는 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27면)




9.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제의 책임을 개개인의 도덕성으로 환원하는 의식 개혁 운동이나, 현실의 여러 다층적 요소들을 희생시키는 운동 정치, 민족주의나 국익을 정서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여론 동원 정치 등의 도덕주의 정치관은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위축시키고 정치가 창출하는 개혁이나 변화의 가능성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28면)




10.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커다란 문제는, 정당을 부정하고 정치를 부정적으로 공격하면서 보수파나 진보파 모두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에 공조해 왔다는 것이다. (29면)




11.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는 국가기구를 관장하는 엘리트들을 순환시켰다는 것 이상의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운동권 인사들이 모든 부문에서 최대 다수 집단으로 부상했지만 정치체제의 작동 양식이나 주요 정책에서 변화는 사실상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해 민주화 운동 경력은 민주화 이후 통치 엘리트가 되는 효과적 통로로 작동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30, 31면)




12. 운동은 이제 무익하다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운동을 강조하면서 정치와 정당을 부정하는 어떤 이념적 태도에 대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대중 정당은 운동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이 사회적 요구를 표출하는 기능을 하는 한 운동은 정당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31면)




13. 오늘의 대중 매체는 공익적 역할도 하지만 사익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사적 목적을 갖는 대중 매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대중을 특정 방향으로 동원하는 막대한 영향력이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의 한 특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39면)




14. 국가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지 않는 한, 그리고 복지를 위해 증세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기술 관료적 결정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 증세와 국가의 확대는 사회복지의 증대와 빈부 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보다 비선출직 관료들의 사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4면)




15. 국방비 지출이 OECD 평균보다 세 배나 크지만, 사회복지 부문은 4분의 1수준에 머물려 있다. (44면)




16. 내가 자유주의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인간의 평등을 철학적으로 규정하는 천부인권과 불가양도의 자연권 사상이다. 이 사상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사상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46면)




17.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그 철학, 이념의 인식론적 근저에 인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경쟁에서의 승자와 사회 경제적 강자를 정당화하고 상찬하는 가치,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이념이자 제도로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대에서 구현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나 권위주의로 보이고, 자유주의가 기초를 두었던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부정,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는 철학으로 이해된다. (47면)




18. 권위는 기본적으로 제도 속에서의 역할, 즉 상하 관계나 역할 관계 등의 관계구조에서 행위하는 쌍방이 동일한 가치와 규범, 역할을 서로 수용할 때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한 유형이다. 그것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 또는 탁월한 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인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강제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영향력이다. ... 권위있는 지도자가 없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붕당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49면)




19. 내가 했던 정치학을 되돌아 볼 때, 권위주의 시기 정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다분히 운동론적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규범적인 판단이 중요했기 때문에 정치학의 정체성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면서 정치학의 장점과 묘미에 빠지게 된다. (54면)




20. 헤로도토스는 투키디데스와 함께 역사학의 두 아버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조적인 역사관과 서술로 역사학 방법론의 두 기원이 되었다. 투키디테스가 위대한 인물, 리더십, 정부, 교회, 정치 등 영웅들이 주도하는 웅장한 정치의 드라마를 보여 주는 역사학을 열었다면, 헤로도토스는 민중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역사학을 개척했다. (55면)




21. 고대 그리스 고전학자인 조시아 오버는 권위주의 등 다른 체제가 갖지 못한 민주주의의 핵심 덕목을 ‘자체 수정 능력’revisability이라고 말한다. (56면)




22.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 행위의 목적이 공익에 봉사하고 사회적 윤리성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 윤리’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 또한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이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는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공동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이 주관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즉 객관적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75면)




23. 그 많은 학회지, 연구논문을 보면서 죽은 논문, 죽은 글쓰기, 죽은 학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디로부터인가 문제가 주어져서 여기저기서 자료를 모아다가 늘여놓은 것 같은 글들, 문제의식 없는 공부가 너무 많다. 훌륭한 학문은 뜨거운 열정을 차가운 열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수련을 필요로 한다. (78면)




24. 원래 민주주의는 철학자나 학자들이 이론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현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외부에서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정답을 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특징이고 매력이기도 하다. (78면)




25. 보통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가장 선호할 수 있는 까닭은 다른 정치체계들에 비해 이 체계가 그 자체의 여러 매커니즘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의사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83면)




26. 주권자인 인민과 대표 사이의 관계, 이를 주인-대리인 관계로 바꿔어 말하면 대리인이 아무리 주인의 권익과 의사를 잘 대변한다 하더라도 양자는 동일인이 아니기에 양자 간의 간극은 사실상 필연적이며 구조적이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은 거의 태생적인 것으로 보인다. (87면)




27. 요컨대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체계의 전환, 즉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점에서는 성공했지만, 1960-70년대에 성립된 국가-재벌 연합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소외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성장 모델로부터 ‘발전 경로에 대한 대안적 출구’exit option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고 하겠다. (111면)




28. 금융 시장 자유화, 기업 구조 조정, 노동 시장 유연화, 공공 부문 민영화, 재정 지출의 감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IMF 개혁안은 민주 정부에 의해 신속하게 실행되었고, 이후 민주 정부들은 자유 시장 근본주의와 정통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집행자로 나타났다. (113면)




29.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위한 친재벌, 친기업, 노동 억압, 노동 배제 정책은 보수정당에 의한 보수적 정부가 아니라 이른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부를 통해 수행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해체 효과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OECD 국가 가운데 사회복지비 지출이나 노동 소득 분배율 등의 사회경제 지표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가 더욱 급증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113면)




30. 사회경제 정책에서 이른바 담론으로 표현되는 차이와는 무관하게 정당들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실제의 사회경제적 갈등이 정치 경쟁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 영역에서 이 문제를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흔히 ‘지역당 체제’로 불리는 지역 간 엘리트 경쟁체제 내지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을 둘러싼 경쟁이 갈등의 중심축이 되는 상황, 나아가 대북 정책, 한미 관계, 외교정책을 포함한 민족 문제와 대외 정책의 차이를 중심으로 한 정당 간 갈등 상황은, 사회경제적 이슈가 배제된 정당 체제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114면)




31. 시장 효율성 대 국가 비효율성과 같은 대립항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을 만들고 나아가 도덕적 선악 개념으로 전환하면서 확대 해석되기에 이른다. 시장은 경제, 효율성, 성장을 의미하는 반면, 국가는 부패, 낭비, 기생적 제도와 같은 것을 상징하면서 도덕적 규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121면)




32. 정치 경쟁의 대립항을 진영 간 대립으로 설정할 때, 그것은 수구적인 것과 변혁적인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등 마치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정치를 이해하는 방법과 유사한 도덕적 선악의 이분법적 구조로 나타나기 쉬우며, 문제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정조와 경향을 강화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태도는 사회경제적 이익과 그 차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정당과 민주 대 반민주라는 하나의 단일 축에 바탕한 이분법적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운동의 경향과 많은 친화성이 있다. 민주화 이후 운동으로부터 일상 정치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과 정조는 정당과 운동을 상호 배타적인 선택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정당보다는 운동에서 민주화의 동력을 끌어내고자 하는 경향을 지속하게 했다. (124, 125면)




33.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실은 보통선거권의 전면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대중정당의 계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27면)




34. 흥미로운 것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중심 가치인 생산성과 효율성이 민주주의 원리를 대체했다는 사실이다. (128면)




35. 오히려 한국의 정당들은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개방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141면)




36.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냉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 시기에 그 틀이 갖추어진 한국의 정당 체제는 제도권 내에서 경쟁하는 모든 정당이 극우 내지 우파의 보수정당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에서는 서구식 사민주의 정도의 이념과 정책을 표방하는 좌파 정당은 차치하고라도 중간파 정당의 존립조차 허용되지 못했다. 냉전 반공주의의 가장 뚜렷한 유산은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논의되고 경쟁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노동 문제를 말할 때,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 전통적인 생산자 노동자를 조직기반으로 하고 고전적인 사회주의와 같은 어떤 이념성을 가진 노동자계급 정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넓은 의미에서 노동 문제가 정치적 이슈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노동운동의 정치조직이 정치과정의 중요한 행위자로 기능하지 못함으로써, 체제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조직하는 정치 행위 자체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147면)




37. 키르히하이머의 포괄 정당은 유권자지지 시장에서 좌파 정당이 보수적 정당에 접근함으로써 양대 세력 간 경쟁이 중산층의 지지 획득을 위해 중간으로 수렴하고, 이 과정에서 좌파 정당의 조직 구조가 관료화되고 전문화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148면)




38. 왜냐하면 한국에서 대중정당은 역사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조건의 차이로 말미암아 19세기 말로부터 발전된 유럽 대중정당의 특성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49면)




39. (이하 박찬표 글) 국가의 주요한 정책 결정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으로 이전되어 해소되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현상이 그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 호주제, 국가보안법 등 전통적인 시민권 이슈 뿐만 아니라 새만금사업,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이라크 파병 등 핵심적 국가정책들이 법원이나 헌재를 중심으로 쟁투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대통령 탄핵과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 판결일 것이다. 전자는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포함한 권력 행사의 범위를 축소했다는 점에서, 후자는 민주적으로 구성된 의회의 입법이 사법적 판단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그 사안이 집단적 갈등과 관련된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관여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197면)




40. 4대 개혁 입법의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개폐, 사학 개혁, 언론 개혁의 의제는, 한국의 냉전, 보수세력의 역사적 뿌리와 그 체제적 근거에 관한 것이며 또한 시민사회의 보수 헤게모니의 심층을 겨눈 것이었다. (203면)




41. 결국 자유의 개념을 둘러싼 이런 논쟁은, T. H. Marshall이 제시한 근대적 시민권의 확대 과정 즉 시민적 권리에서 정치적 권리로, 나아가 사회적 권리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Marschall의 논의에 기초하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단순화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내용이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에 머물렀던 단계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사회적 권리가 의제로 제기되면서 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 이념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 결과 자유주의는 내부 분화되기 시작했고, 고전적 자유주의를 견지하는 입장은 민주주의와 갈등 관계를 노정하게 되었다. (209면)




42. 그 결과 현재 우리 사회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노동의 해체와 사회 양극화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중산층을 축소시키면서 사회 양극화를 급속히 심화시켰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보는 권리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민주화와 함께 사회민주화의 이슈들도 분출되고 있다. 사학개혁이나 언론개혁 외에도, 가정 및 양성 평등의 관건인 호주제 폐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위한 사립학교 종교 자유화 등의 이슈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이 모든 것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217, 218면)




43. 이와 같이 시민권 확대의 요구는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주의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18면)




44. 하지만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 영역은 급속히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 다른 한편 이들은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개혁이나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주장에 대해 ‘시장’과 ‘사유 재산의 신성함’을 내세우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그 결과 한국의 자유주의는 사회경제적 기득권층을 방어하는 논리로 전유되고 있다. (219면)




45. 현재 담론 영역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정경분리 담론이다. 그 핵심은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대와 관련된 의제를 사적 영역의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정치와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지배담론의 또 다른 한 축은, ‘사회 공익을 대표하는 불편부당하며 초월적인 권위’로 사법부를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헌재의 물신화가 그것이다. 최장집이 지적하듯이 탄핵 심판이나 위헌 심판에서 재판관들은 ‘법리’를 강조한다. 이때 법리는 민주주의의 규범으로부터 독리적이거나 혹은 그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런 논리는 파당적 정치를 초월하여 공익에 충실한 이성적인 법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회에 부과하며, 동시에 법의 해석자로서 법관들은 민주주의 밖에서 법리를 근거로 민주주의를 심판하고 계도할 수 있는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른다(최장집 2005, 62-65). 신자유주의의 법치 민주주의 개념에 이보다 부합되는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 (223면)




46. 진보적 사법 적극주의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결국 민주주의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본질적 측면을 간과하는 점이다. 허쉴에 의하면, 세계적인 사법 지배의 경향은 헤게모니적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정책적 신호를 민주 정치과정의 영향으로부터 분리하고자, 정책 결정권을 다수결주의적 정책 결정의 영역으로부터 준자율적인 전문가적 정책 결정 기구로 옮김으로써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좀 더 광범한 시도의 일부로 파악한다(Hirshl 2004). 즉 민주주의의 축소라는 것이다. (225면)




47. 한국에서 산업화를 통해 생산직 노동자가 대거 형성된 시기는 1970-80년대였다. 하지만 이 시기 노동의 정치적 조직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중욯나 제약 요인은 분단, 반공체제였다. 냉전과 분단 체제는, ‘노동자’라는 단어조차 이념적으로 재단하여 ‘근로자’로 부르도록 강요할 만큼 노동의 계급화를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이었다. 노동운동 탄압에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것은 이런 사정의 반영이었다. (235면)




48.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 대 반민주’ 대립 구조에서 점차 여당은 국가에 편입된 국가권력의 종속물이 되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제도권 정치 안에서 경쟁하는 ‘제도권 내 정당’이 아니라 국가에 반하는 시민사회와 연대한 ‘제도권 밖의 정당’으로 변해 갔다. 결국 시민사회의 반정부 운동에 야당이 참여하는 민주화 대연합이 형성되고 이는 권위주의 체제 종식에 기여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38면)




49. 정당 정체성의 후퇴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지표는 선거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의원들의 당적 변경이다. (240면)




50. 엘리트 이론에 맞서 다원주의로 미국 정치를 정당화했던 다알 역시, 기업 집단의 과도한 힘으로 다원주의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Dahl 1985). (260면)




51. (이하 박상훈) 한국 현실에서 대중조직 정당이 비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은 그 근거로서 한국사회가 이미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했음을 제시한다. 탈물질주의 균열의 등장, 정치적 무관심층의 증가, 투표율 하락 등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서구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서구가 복지국가를 거치면서 물질주의적 갈등이 이완되었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산업사회의 균열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265면)




52. 그간 대통령들은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시민사회를 통합하는 데에서 정당을 기반으로 삼기보다는 정당을 우회하거나 초월하려는 욕구를 자주 드러냈다. 정당의 매개 없이 국가를 운영하고자 했을 때, 언론의 매개 기능과 재벌의 정책 로비 기능은 극대화될 수 밖에 없었고, 전문가 집단의 자문과 정책‘작성’기능에 대한 의존 역시 커졌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노무현 정부 시기 이른바 삼성과의 정치적 연계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 결정에 투입 기능을 압도한 것은 정당이 아니라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사태 전개에 대한 아래의 단순한 기술만으로도 정부가 정당에 기반을 두지 않을 때 그 힘의 공백을 누가 차지하게 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인수위 시절부터 최근 한미 FTA 추진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부 핵심정책의 이면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벌의 정책 로비용 보고서가 갖는 영향력은 컸다(손재민, 2006).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에서 동북아 중심 국가론, 신성장 동력 개발론, 혁신 주도형 경제론, 산업 클러스터론 등의 개념도 모두 이들의 보고서를 통해 발전되었다. (314면)




53. 한국에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권위주의를 퇴출시킨 중심 힘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져온 운동의 힘은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대면해야 할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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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원칙 - 위험사회, 자유냐 안전이냐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 푸른숲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1. 재난은 종종 사람을 더 영리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더 선하게 하지는 못한다. 재난에서 인류의 도덕적인 진보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24면)




2. 재앙은 모든 것을 박살내고 위험은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재앙은 압도하는 현실인 반면, 위험은 그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29면)




3. 얼마든지 예측가능한 위험에 대한 책임은 일을 당한 뒤 어떤 행동을 취했느냐가 아니라, 예방 조치 마련에 태만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 (30면)




4. 모험이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위험은 어쩔 수 없이 그 안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인 반면, 모험은 스스로 원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30면)




5. 모험이란 앞으로 자신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손해의 요인들을 기꺼히 감내하겠다는 행위이다. (31면)




6. 위험이 없는 곳에는 모험도 없다. 하지만 모든 위험이 다 모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모험이란 의도적인 위험 부담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 행위자에게 있다. (31면)




7. 모험적인 행위에는 대개 그것이 야기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작용에 대한 무지가 깔려 있다. 그것은 그 영향력에 함께 있게 될 제3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험을 시도할 때에는 장점만을 내세운다. (32면)




8. 미래를 모른다는 사실만이 결단을 결단이게 한다. 미래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하고, 모험이 불가피한 것이다. (32, 33면)




9. 불확실함을 다룬다는 것은 합리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인간의 지각은 사태가 아니라 내면의 균형을 찾으려는 정서적 노력에 좌우된다. (42면)




10. 모험 속에서 하는 계산은 결코 이성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 어떤 결정이 끝까지 합리성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험 자체가 그때그때의 결정이나 결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43면)




11. 인간 행동의 추진력은 정교한 계산이 아니라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따른다. (44면)




12. 하지만 이제 악천후, 홍수, 기근, 전쟁 등은 인간의 손에서 나온 불행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위험한 세계에 살았다. 다만 스스로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하고 나서야 그 모든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었고, 홀로 불안과 싸울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47면)




13. 불안은 불확실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은 다시 불안을 낳는다. 일상생활의 기반은 취약해진다. 불안이 일상을 지배하면 삶이 지금까지처럼 진행되리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52면)




14. 위험은 파악하기도 힘들지만 극복하기는 더 힘들다. 위험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경계심은 사라지고, 의식은 탁해지며, 기분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불안은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영혼과 정신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불확실성은 결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생활 감정이나 기분 혹은 정서와 관련된 것이다. (53면)




15. 부정적인 기분이 지닌 아주 섬뜩한 힘은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 걱정은 그의 느낌이나 감각, 지각을 지배하고, 행동에 제약을 가하며, 생활 속에서 가위눌림 같은 것이 된다. (54면)




16. 세계의 탈주술화(즉 근대화)는 위험을 모험으로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의 범위도 극대화했다. (55면)




17. 안전을 향한 동경이 사회에 확산되는 순간 입증의 의무는 정반대 쪽에 부과된다. ... 그 대신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그것의 무해함이 결정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즉시 위협으로 간주한다. (56면)




18. 불안과 공포를 넘어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시간뿐일 때가 있다. 재앙의 시나리오는 그것이 최종적으로 반박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사회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든다. 용기라는 덕목은 대단히 신속하게 발휘된다. (59면)




19.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경쟁이나 위험이 아니라 안전이 된다. (62면)




20. 모험에서 오는 만족감은 운명을 걸어야 얻을 수 있다. (66면)




21. 이런 불안과 소심함이야말로 보험사업의 자양분이다. (73면)




22. 보험증서를 갖게 되면 사고와 불안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더 큰 위험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 뒤에서 보험이 든든하게 받쳐준다면 기꺼이 온갖 불행에 맞선다. (75면)




23. 그러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노인 수가 많아지면서 사회보험은 새로운 불확실성과 불의의 원천이 되었다. (79면)




24. 인간은 서로를 만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생각을 내던질 때 생기는 그림자를 만난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비춰진다. 사회적 교류에는 서로에 대한 허상이나 진단 혹은 환상이 끊임없이 오간다. (88면)




25. 사람들은 이 같은 관계의 불가측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공식적인 만남이나 관계를 적게 가져 정보에 대한 욕구를 줄이고, 개인적으로 두터운 친분을 쌓는 상황을 가능한 한 제한하며, 지켜야 할 규칙이나 꼭 필요한 지식만으로 만족한다. (89면)




26. 사회적인 역할 모델은 규범을 통해 지탱된다. ... 규범은 법정의 판결이나 정치권의 결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행을 통해서 효력을 발휘한다. ... 규범은 사회의 정상성을 유지하며, 정상성의 실천은 사회 규범을 만들어내고 강화한다. (90, 91면)




27. 사회적 위험은 신뢰를 통해 절반쯤은 안전한 토대를 확보하며, 불명료한 것들은 우선적으로 배제된다. 미래는 더 이상 위험의 원천이 아니라 현제의 통제 가능한 진보로 받아들여진다. 신뢰는 모든 것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높여준다. 신뢰는 일상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95면)




28. 거리 두기 혹은 낯설어하기는 별로 내키지 않는 사람의 접근을 막아준다. 따라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신뢰감을 얼마나 줄 것인가를 잘 계산해야 한다. (99면)




29. 승리만을 목표로 하고 패배를 피할 길은 염두에 두지 않는 전략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110, 130면)




30. 이따금씩 파산을 겪으면서 시장은 정화되고 사람들은 이성을 되찾는다. 그들은 서둘러 큰 부를 이루려 했던 꿈이 냉혹한 현실의 땅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13면)




31. 은행의 사업이란 바로 예금과 인출의 기간 차, 즉 시간을 사고파는 일이다. (124면)




32. 아침에 예상했던 대로 거래가 끝나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26면)




33. 모든 정보가 다 가격 형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127면)




34. 이념이 현실에서 힘을 가지려면 선포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구속력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19면)




35. 사전 대비의 정치는 위험한 자유보다는 장래의 안전 확보를 중시한다. 자유가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기반을 확보한다면, 그런 정치의 대차대조표는 흑자 쪽이다. 자유의 축소에 비례해 위험도 줄어든다면 균형을 갖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온갖 조처에도 불구하고 안전은 확보되지 않고 자유만 파괴된다면, 그 대차대조표는 적자다. 이것이 바로 최후의 재앙 시나리오다. 그리고 그런 일은 오늘날 현대인이 믿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들이 크게 손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24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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