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 개정증보판 현대사상신서 6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 옮김 / 교보문고(교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 여기서 나는 미셸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과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담론이라는 개념을 원용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을 밝히는 데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18면)




2. 서양, 특히 미국에서 생활하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처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에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거의 완전히 일치된 여론이다. (60면)




3. 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역사적 발전의 법칙은, 선택성의 증대가 아니라 영역의 확대에 있다. (99면)




4. 사실 오리엔탈리즘의 태도 일반도 참으로 반경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마술이나 신화처럼 폐쇄된 시스템이 갖는 자기충족적이고 자기강화적인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133면)




5.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동양을 묘사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언어와, 동양 그 자체 사이에 있는 대응관계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언어가 부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35면)




6. 나아가 근대 서양의 용어로 동양을 서술해 온 순수한 힘은... 지금까지는 무시된 그대로 방치해 온 무언의 어두움으로부터 동양을 끌어 올려, 근대 유럽 학문의 명료함 속으로 포함시켰다. (160면)




7. 과거에 서양에서 아시아란 거리감과 소원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무언의 표상이었고, 이슬람이란 유럽 기독교 세계에 대한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상대였다. 이러한 무서운 불변의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을 알아야 하고, 이어 동양에 침입하여 그것을 소유하며, 그 뒤에 학자, 군인, 재판관의 손으로 재창조하여야 한다. 곧 그들은 잊혀진 언어, 역사, 민족, 문화를 발굴하여, 그것을 동시대의 동양을 판단하거나 지배하기 위하여 이용할 수 있는, 참으로 고전적인 동양으로 (동시대의 동양인 눈을 벗어나) 진열했다. 애매함은 없어졌고, 대신 온실에서 기른 실체가 대체되었다. (168, 169면)




8. 어떤 경우이든 그 근본에 있는 것은, 인간과 장소와 경험이 한 권의 책에 의해 언제나 묘사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며, 그 결과 책(텍스트)이 그 속에 묘사된 현실보다도 더욱 큰 권위를 얻어 더욱 널리 이용된다. (173면)




9.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서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 현실 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식과 현실이란, 일종의 전통, 즉 미셸 푸코가 담론이라고 부른 것을 낳게 된다. 그리고 담론의 내부에서 생긴 텍스트의 내용을 결정하는 본질은, 특정 작가의 독창성이 아니라, 실은 그러한 담론의 실체적 존재나 그 무게이다. (174면)




10. 패권주의, 즉 헤게모니즘hegemonism이란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용한 개념으로서, 소수가 다수를 문화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고, 그것이 소수와 다수 모두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되는 것을 말한다. (역주, 180면)




11. 동양은 관찰되고 있다. (190면)




12. 오리엔탈리스의 동양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동양화된 동양이다. (192면)




13. 이 경우 이데올로기의 공급원은 어중간한 지식을 가진 기술자만이 아니라 고도의 학식을 지닌 오리엔탈리스트들이었다. (198면)




14. 이러한 견해에 끊임없이 잠복되어 있는 것은, 서양인 소비자가 수로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원의 대부분을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또는 그 두가지 모두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양인과는 달리 서양인은 참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면)




15. 어떤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다른 문화, 민족, 지리적 구분 속의 인간존재를 무시하고, 그 정수를 뽑아 버리며, 그것을 박탈하는 결과로 생기는 한계이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은 이 한계를 넘어서 더욱더 나아간다. 그것은 동양을 단지 서양을 위한 구경거리로 볼 뿐만 아니라, 서양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고정된 그대로의 존재로 본다. 오리엔탈리즘이 대상을 서술하고 텍스트에 의존하여 거둔 성공이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 정치, 사회의 모든 역사적인 단계는 서양에 대한 단순한 응답에 불과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서양은 어디까지나 행위자이고 동양은 수동적인 반응자이다. 서양은 동양의 행동의 모든 측면에 관한 관찰자, 재판관, 배심원이다. (199면)




16. 인문학자는 전문적으로 분화된 연구 주제에만 자신의 주의를 한정하는 정도가 너무나도 극심하다. (201면)




17. 오리엔탈리즘의 끊임없는 야심은 하나의 세계를 전부 지배하는 것이었지, 그 세계의 일부분 곧 특정한 저자나 텍스트의 일정한 집합과 같이 쉽게 한정할 수 있는 범위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201면)




18. 낱말 하나의 일생과 그 모험을 얘기한다면, 얼마나 훌륭한 책을 쓸 수 있겠는가? 의심할 바 없이 하나의 낱말은 그것이 사용된 사건의 여러 가지 인상을 받아 왔다. 그것이 사용된 장소가 변함에 따라 그것은 여러 가지로 상이한 사람들에게 상이한 종류의 인상을 불러일으켜 왔다. 그러나 하나의 낱말을 영혼, 육체, 운동이라는 3면에서 생각하면 더욱 위대하지 않겠는가? (235면)




19. 그들은 결코 그 학문의 뿌리에 이를 수 없다. 그들은 결코 문헌학을 하나의 문제로 파악하지 않는다. (니체, 236면)




20. 니체가 생각한 문헌학 역시 인간적인 사업의 상징으로서, 비코가 말한 대로 발생하고 만들어진 거시며, 인간적 발견, 자기발견, 독창성의 한 범주로 창조된 것이다. (236, 237면)




21. “나는 중앙에 앉아서 모든 것의 향기를 빨아들이고 판단하며 비교하고 결합하며 귀납한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사물의 체계 그 자체에 도달하게 된다.” 문헌학자의 주변에는 명백한 권력의 분위기가 있다. (237면)




22. 퀴네의 정식에 의하면, 동양을 문제를 제기하고 서양은 그것을 해결한다, 곧 아시아는 예언자를 가지며 유럽은 전문가(학자와 과학자: 이는 말장난이다)를 갖는다는 것이다. (245면)




23. 르낭에 의하면, 문헌학자는 향락보다 행복을 좋아해야 한다. 그것은 성적인 쾌락이 아니라,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고상한 행복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260면)




24. 샤토브리앙에게는 쓴다는 것이 곧 삶의 행위였다. 그는 살아 있는 한, 모든 것에 대하여,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의 돌에 대해서도 문자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308면)




25. ... 또 생생한 그대로의 현실을 동양 그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의 관찰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309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