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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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체와 정의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에서 ‘와’라는 접속사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단어들과 개념들, 아마도 사물들을 결합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접속사는 -유비나 구분 또는 대립에 따라 작동하는 경우일지라도- 질서와 분류법, 위계 논리 등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 (11면)




2. 이 제목은 의혹의 형태를 띠는 질문을 제기한다. 곧 해체가 정의의 가능성을 보증하고 허락하고 허가하는가? 해체가 정의를, 또는 정의 및 정의의 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한 일관성 있는 담론을 가능하게 해주는가? 어떤 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12면)




3. 해체의 ‘고통’, 해체가 겪는 고통이나 또는 해체가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은 아마도 법과 정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규칙과 규범, 그리고 확실한 기준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12면)




4. 힘이 없이는 법도 없다는 것을 칸트는 매우 엄밀하게 환기시킨 적이 있다. 적용가능성이나 ‘강제성’은 법에 대하여 보충적으로 추가되거나 추가되지 않을 수 있는 외재적이거나 부차적인 가능성이 아니다. 그것은 법으로서의 정의 개념 자체에, 법이 되는 것으로서의 정의, 법으로서의 법 개념 자체에 본질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힘이다. 여기서 나는 곧바로 어떤 정의의 가능성, 곧 단지 법을 초과하거나 그것과 모술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법과 무관하거나 또는 그것과 기묘한 관련을 맺고 있어서 법을 배제하면서도 법을 요구하는 어떤 정의, 심지어 어떤 법의 가능성을 유보해두자고 주장하고 싶다. (15, 16면)




5. 칸트는 ‘법론’의 ‘서론’에서 이를 환기시키고 있다. 분명 적용되지 않는 법들이 존재하지만, 그러나 적용 가능성 없이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힘이 없이는 어떠한 법의 적용 가능성이나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16면)




6. 한편으로 정당한 것일 수 있거나 어쨌든 적법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힘과, 다른 한편으로 항상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폭력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는가? 정당한 힘 또는 비폭력적인 힘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16, 17면)




7. ...., 게발트(Gewalt)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또한 적법한 권력과 권위, 공적인 힘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공정하게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 Gesetzgebende Gewalt는 입법적 권력이며, geistliche Gewalt는 교회의 영적 권능이며, Staatsgewalt는 국가의 권위와 권력이다. 따라서 게발트는 폭력과 적법한 권력, 정당화된 권위 모두를 뜻한다. (17면)




8. 해체적 질문하기는 전적으로 법과 정의에 대한 질문하기, 법과 도덕, 정치의 토대들에 대한 질문하기이다. (21면)




9. ... 내가 보기에 이 작업들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순수히 사변적이고 이론적이고 아카데믹한 담론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스탠리 피시가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단지 교육 과정만이 아니라 우리가 도시, 곧 폴리스라고 부르는 곳에, 그리고 좀더 일반적으로는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 효과적이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사태를 변화시키려고 하며 성과를 얻어내려고 한다. (23면)




10. 산업적이고 고도 기술화된 사회에서 학문 제도의 공간은 이전보다 더욱더 단자적이거나 수도원식으로 폐쇄되어가고 있다(이전에는 결코 이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특히 법대의 경우 더욱더 사실이다. (23면)




11. “정당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이 지속되는 것(강제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26면)




12. 파스칼은 계속 말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은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 (27면)




13. “그리고 사람들이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27면)




14. 우리는, 법들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복종한다. ‘신용credit'이라는 단어가 명제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으며, 권위의 ’신비한‘ 성격에 대한 암시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것들의 유일한 토대는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는 존재론적이거나 합리적인 토대가 아니다. 믿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29면)




15. 정의와 힘을 ‘결합하고’, 힘을 일종의 정의의 본질적 술어로 만드는 파스칼의 단편은 관습주의적이거나 공리주의적인 상대주의를 넘어서고, 법을 사람들이 자주 ‘가면 쓴 권력’이락 부르는 것으로 간주하는 고대나 근대의 회의주의를 넘어서며, 라 퐁텐La Fontaine의 ‘늑대와 양’의 냉소적인 도덕 -이에 따르면 ‘가장 강한 자의 이성이 항상 가장 뛰어난 것이다“ (“힘이 법을 만든다”)-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30면)




16. 어떤 행동이 단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법적) 인격체는 단지 권리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정의의 책임도 지니고 있는가? 그런 사람은 정당한가, 결정은 정당한가? 나는 내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 나는 이런 확신은 오직 자기만족과 신비화의 모습으로만 가능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38, 39면)




17. 타자에게 타자의 언어로 자신을 전달하는 것은 모든 가능한 정의의 조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39면)




18. 사실 라틴어 자체가 이미 하나의 폭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라틴어에서 불어로의 이동은 하나의 폭력에서 다른 폭력으로의 이행을 표시한 것뿐이다. (46면)




19. 우리의 가장 공통적인 공리는 정당하기 위해서 또는 부당하기 위해서는,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서 또는 정의를 침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자유로워야 하며, 나의 행동과 행위, 나의 사고와 나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9면)




20. 요컨대 어떤 결정이 정당하고 책임감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단은 자신의 고유한 순간에 -만약 이런 것이 존재한다면-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며,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하고 재정당화하기 위해, 적어도 그 법의 원칙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재긍정과 확증 속에서 이를 재발명할 수 있기 위해 법에 대해 충분히 파괴적이거나 판단 중지적이어야 한다. (50면)




21. 결정 불가능한 것은 계산 가능한 것과 규칙의 질서에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규칙을 고려하면서 불가능한 결정에 스스로를 맡겨야 하는 -우리는 이 해야 함(의무)으로부터 말해야 한다- 것의 경험이다. (52면)




22. “Zur Kritik der Gewalt"는 언어의 도착과 타락인 표상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형식적이고 의회적인 민주주의 정치체계인 대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혁명주의적’ 논문은 1921년에 반의회주의적이고 반 ‘계몽주의’적인 대세 -나치즘은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말하자면 이 조류의 표면 위에 부상하고, 심지어 ‘파도타기’를 하게 될 것이다-에 속하고 있었다. 벤야민이 찬양하고 서신을 교환했던 칼 슈미트는 이 논문을 칭찬했다. (66면)




23. 우선 두 가지 법적 폭력, 법과 관련된 두 가지 폭력 사이의 구분이 존재하는데, 법을 설립하고 정립하는 정초적 폭력(die rechtsetzende Gewalt, 법정립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 곧 법의 영속성과 적용 가능성을 유지하고 확증하고 보장하는 폭력(die rechtserhaltende Gewalt, 법보존적 폭력)의 구분이 그것이다. 편의상 폭력을 게발트의 역어로 사용하겠지만, 나는 앞서 이에 필요한 유의 사항들을 말해둔 바 있다. 게발트는 또한 합법적 권력의 우월성이나 주권성, 허가하거나 허가되는 권위, 곧 법의 힘을 의미할 수도 있다. (75면)




24. 그러나 두 전통은 동일한 독단적 전제, 곧 정당한 목적은 정당한 수단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자연법주의는 목적들의 정당화를 통해 수단들을 ‘정당화’하려 하고, 법실증주의는 수단들의 정당화를 통해 목적들의 정당성을 ‘보증’하려 한다.” 두 전통은 동일한 독단적 전제의 원을 돌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당한 목적들과 정당화된 수단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할 때, 그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실증주의는 목적들의 무조건성에 대해 맹목적이며, 자연법주의는 수단들의 조건성에 대해 맹목적이다. (78면)




25.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보수적이거나 반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벤야민의 명시적인 목표를 넘어서 나는 법정초적이거나 법정립적 폭력Rechtssetzende Gewalt 자체는 법보존적 폭력Rechtserhaltende Gewalt을 포함해야만 하며 결코 그것과 단될 수 없다는 해석을 제안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88면)




26. 전쟁의 의례 이후 치러지는 평화의 의례는 승리한 자가 새로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92면)




27. 다른 법을 정초하는 순간 그것은 현존하는 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93면)




28. 왜냐하면 오늘날 경찰은 더 이상 강제로 법을 적용하고 보존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법을 제정하고 명령을 공포하고 법적 상황이 사회의 안전을 보증하기에 불확실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개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은 거의 모든 시간에 걸쳐 개입한다. 경찰은 법의 힘이며, 법의 힘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수치스러운 것인데, 왜냐하면 경찰의 권위 안에서 “정초적 폭력과 보존적 권력의 분리가 제거되기(또는 지양되기)” 때문이다. 경찰 자체를 의미하는 이러한 제거/지양에 따라 경찰은 법이 자신에게 입법의 가능성을 허용할 만큼 비규정적일 때마다 법을 발명하고, 자신을 ‘법정립적인’ 것으로, 입법적인 것으로 만든다. 경찰은 법의 권리를 가로채고, 법을 침탈한다. (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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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연대 - 현대 세계와 헤겔의 사회.정치철학 인문정신의 탐구 4
나종석 지음 / 길(도서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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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보기에 현재 헤겔의 사회․정치철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 인정투쟁과 ‘차이’의 정치, 시민사회 이론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8면)




2. 내가 주목한 세 가지 주제 중 하나는 서구 근대 사회에서 등장한 자유주의적 이념의 기초인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기주의적 개인주의와 극단적 집단주의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상호주관적 공동체 철학의 가능성을 헤겔의 인륜성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9면)




3. 이 책을 관통하는 두 번째 주도적 관심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형성된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것이다. (9면)




4. 마지막으로 나는 헤겔의 사회․정치철학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생태 위기와 연관된 주제들을 다루고자 했다. (10면)




5. 그러나 이 열정은 의미 있는 다양성과 개성의 분출을 허용하는 토대 위에서 사회적인 통합과 연대성을 구축하는데 실패한다. 근․현대 혁명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 절대적 자유를 향한 열정은 쉽사리 일체의 차이와 개성을 경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를 파괴하는 전체주의적 사유와 강한 친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1면)




6. 서구 근대의 위기에 대해서 헤겔의 사회․정치철학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양 극단을 화해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통합과 연대적 원리에 대한 강조이다. (13면)




7. 첫째, 헤겔의 사회․정치철학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그의 사변적인 형이상학적 토대이다. ... 그리고 체계에 대한 사전 인식 이외에도 헤겔 철학 전체 체계의 기초를 구성하는 절대적 이성의 원리와 그의 사유의 방법적 원리인 변증법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하다. (20면)




8. 뢰비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완성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헤겔에서 니체로: 19세기 사유에서의 혁명적 단절’ 제1판 서문에서 헤겔의 정신 형이상학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고 선언한다. (21면)




9. 그(찰스 테일러)는 1975년에 나온 ‘헤겔(Hegel)'이라는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헤겔 정치철학의 현재적인 의의를 되살리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럼에도 테일러 역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절대적인 이성의 자기실현의 필연적인 전개 과정의 단계들로 해석하려는 헤겔 철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는 이제 설득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22면)




10.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 시대 비판의 표어가 되는 것은 헤겔 철학 이후의 다양한 철학의 흐름 속에서 거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22면)




11. “내가 무엇보다 혐오하는 것은 헤겔주의와 변증법이었다.” (질 들뢰즈) (23면)




12.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전통에서 중요한 것은 헤겔의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를 뒤바꾸어 국가를 자본주의적 생산 사회의 반영으로서 폭로하는 것이었다. (25면)




13.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헤겔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마르크스와 더불어 전체주의의 사상적 선구자로 거명하면서 그의 이론을 비판한다. 포퍼는 우선 헤겔을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직접적인 계승자로 간주한다. ... “헤겔의 역사주의가 현대 전체주의 철학과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5면)




14. 포퍼의 헤겔 비판의 방법론과 연관해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헤겔의 인간상을 폄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 지나치게 감정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비판은 사실상 엄밀한 학문적인 논증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매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포퍼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술어를 빌려서 “헤겔의 성공”을 “부정직의 시대의 시작”이자 지적, 도덕적 “무책임 시대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36, 37면)




15. “그는 소화할 수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 그의 글의 내용에 관해 말하자면, 독창성이 없기로 최상급이다.” (포퍼) (37면)




16. 포퍼는 헤겔 철학의 “두 기둥”을 변증법적인 사유와 객관성의 동일성 철학(philosophy of identity)으로 규정하면서, 후자를 전자를 응용한 경우로 평가한다. 간단하게 말해 헤겔의 동일성 철학은 현존하는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봉사”하며, “존재하는 것이 선한 것이라는 윤리적․법률적 실증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학설은 바로 ”힘이 곧 옳은 것“이라는 이론이기에, 헤겔 철학은 강자의 이익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포퍼가 헤겔 철학이 도덕적 실증주의라고 규정하는 논거이다. (39, 40면)




17. 사회계약론에서 계약의 주체인 인간은 우선 서로 독립적이고 고립되어 있고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설정된다. 헤겔은 이런 관점을 비판하면서 인간 존재의 사회성과 근대적 주체성의 형성에서 타자와 전통이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40면)




18.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정신을 물질로 대치했으며 그로 인해 인류 역사 발전의 기본 동력을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갈등과 투쟁으로 대치했다고 포퍼는 서술했다. (50면)




19. 다만 여기에서 예를 들고자 하는 것은 헤겔 사회․정치철학의 핵심 중의 하나인 국가 내에서의 다양성과 분화의 필연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헤겔 철학 체계의 원리를 담당하는 주체의 성격 규정이다. 헤겔이 국가의 중앙 집권적인 조직화에 반대하여 국가와 개인의 매개를 담당하는 중개 집단의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사회․정치철학이 전체주의의 사상적 선구라는 비난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여러 사례들의 하나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전체주의 국가는 근대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한 인간의 삶의 다양화와 분화를 거부하고 사회를 국가 권력과 전 사회적 통제를 통해 전면적으로 획일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만, 헤겔은 차이와 다양성과 분화가 없는 동일성의 원리를 죽은 것으로 치부했다. 그가 자신의 철학의 근본 전제인 절대적 주체성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절대자의 근본적인 모습을 추상적인 동일성에서가 아니라 타자와의 연관 속에서의 구체적인 보편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다. (52, 53면)




20. 물론 헤겔은 무차별적인 다양성과 변화를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는 근대 사회의 분화와 다양성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게 분열시키고 소외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대표적 예로서 근대 시민사회에서 빈부 격차의 확대로 인해 인륜적 삶이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근대 산업사회 내지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의 내적인 분열을 처음으로 파악한 철학자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사회적․정치적 삶에서 다양성과 분화와 차이를 모두 제거하고 사회를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삶을 절대적으로 파편화된 것으로 만드는 무조건적인 분절화 내지 분화의 환영 못지않게 위험하다. 이런 획일화는 결국 자유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의 적절한 분화와 차이를 자유의 전제조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53면)




21.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존 롤즈는 헤겔을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로 본다. 그에 의하면 헤겔은 “온건한 진보적인 개혁 성향의 자유주의자(a moderately progressive reform-minded liberal)”이다. 로버트 애링턴(Robert Arrington)은 “헤겔의 공동체주의는 어떤 독재 정부나 전체주의적 정부 또는 무비판적 전통의 찬미도 옹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는 현대의 분석적인 영미 철학에서 그 어느 사조보다도 헤겔의 이론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헤겔 윤리학의 범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야만 한다. 헤겔의 이론은 계약의 이론에서 성적인 욕망, 배우자 사이의 사랑, 노동의 분화, 관료 정치, 형벌의 이론, 정체성의 추구, 구체적이고 소외되지 않는 자유, 그 밖에도 이전에는 철학적 반성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인간의 삶의 많은 요소들을 포괄하는 이론이다. ... 헤겔은 우리에게 수많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로버트 L. 애링턴, 서양 윤리학사, 김성호 옮김, 서광사 2003, 490쪽) (62면)




22. 찰스 퍼스(Charles S. Peirce)는 헤겔의 찬미자는 아니었지만, 헤겔주의와 그의 프래그머티즘 사이의 기본적인 유사성을 인정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또 다른 대표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헤겔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핵심적인 철학적 통찰들은 헤겔의 지적 유산에 큰 빚을 지고 있다. (63면)




23. 주지하듯 헤겔의 사회․정치철학은 근대의 사회계약론과 개인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이론철학이 고대의 형이상학과 근대의 주체 중심의 철학을 종합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헤겔 실천철학은 고전적인 실천철학과 근대 정치이론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이다. (66면)




24. ‘논리학’에서 헤겔이 대상으로 삼는 개념들의 발생과 운동 그리고 개념들 상호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해명 작업은 절대적 이념(die absolute Idee)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주지하듯이 이 절대적 이념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통일이자 헤겔 학문 체계의 기본원리이다. ... 헤겔은 절대적인 이념을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이념” (sich selbst denkende Idee)으로 이해한다. (70, 71면)




25.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헤겔을 플라톤에서 칸트에 이르는 전통을 파괴하고 그것의 “종언”을 알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시자로 본다. 그래서 로티는 헤겔을 플라톤 그리고 칸트적인 전통과의 연결 속에서 바라보지 않고,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로 이어지는 아이러니스트 철학의 전통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75면)




26. 마르크스주의자 이외에 카시러도 “헤겔주의는 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사상의 분야가 아니라 정치사상의 분야에서 부활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헤겔 철학 체계의 “가장 공고한 보루”로 여겨진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수많은 공격에 노출되어버리고 그의 정치사상 만이 부흥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카시러는 “현대의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헤겔의 법철학과 역사철학에서 처음으로 제창되고 옹호된 원리들의 힘의 지속성과 영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75, 76면)




27. 헤겔이 법철학의 대상을 “법의 이념”, 달리 말하자면 “법의 개념과 그 실현”이라고 규정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헤겔은 ‘법철학’에서 인간의 법 및 정치질서 일반의 타당성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작업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참다운 정치철학은 자유의 개념과 그것의 현존 방식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 개념의 구체적인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제도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 헤겔 정치철학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77면)




28. 그는 이런 구체적인 자유의 형태를 언급하면서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에 주목한다. 사랑이나 우정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결코 자신과 낯선 존재로 느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로 느끼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만끽하고 자신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 사랑이나 우정의 관계가 보여주듯이 이런 관계 속에서 관계 당사자들 사이에는 일방적인 이타성이나 이기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81면)




29. 사적 소유가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관련해서 이를 부인하는 입장과 이를 긍정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일례로 플라톤은 수호자 계층과 전사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적 소유를 부인하였다. 그가 보기에 사적 소유는 이기주의에 기반하는 것이고, 이기주의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사항이었다. 이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기주의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해야 할 사항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기심 자체가 아니라 지나친 이기심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여 재산의 공유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플라톤의 공산주의적 공동 소유 이념을 비판한다. (85면)




30.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사적 소유에서 구하고 모든 형태의 사적 소유에 철저하게 반대하는 사상과 운동에 커다란 영향과 영감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루소에 의하면 자기 땅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여기는 내 땅’이라고 외치는 최초의 인간의 행위야말로 인류가 겪어야 했던 그 수많은 범죄와 전쟁, 참상과 공포의 출발점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자 레오 톨스토이 역시 “재물은 모든 악과 모든 고통의 뿌리”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갈등과 분규의 원인을 “재물을 과다하게 가진 자들과 무산자들 사이‘에서 구한다. (85, 86면)




31.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복지국가에 대단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시장이 거의 혹은 전혀 구속받지 않고 작동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지지하고, 나아가 순수한 시장 논리에 방해가 되는 모든 정치적․사회적 구조들을 비판한다. 따라서 그들은 대체로 불평등에 무관심하거나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87면)




32. 서양에서 발생했으나 이제는 전 세계로 확산된 근대 세계의 원리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태학적 분야에서 그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근대의 기획에 정신적인 토대를 부여했던 계몽주의와 이성에 대한 믿음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타자 억압과 자연 파괴의 원리로서 폭로, 거부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성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비판이 현대 지적 담론의 주된 배경을 형성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이성 비판이 가능한지 그리고 이성과의 급진적인 단절이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315, 316면)




33. 특히 인간적인 욕망에 대한 헤겔의 철학적 분석이 지니는 의미에 주목할 것이다. 뒤에서 보는 것처럼 헤겔은 동물적 욕구와 다르게 인간적 욕망이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다. 달리 말해 인간적인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이런 타자와의 인정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동물적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다움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319면)




34. 자기 이익 추구의 전면화와 상호의존성의 체계 사이의 연결은 이미 근대 경제학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다. 일례로 스미스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질서의 원리가 보편적인 이기주의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계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그러나 시장경제 질서에서 주관적인 이기심의 추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의 욕구 충족에 기여”한다. 상호의존성의 체계로 이해되는 근대 자본주의의 시장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이기심에 의존하고 있지만 엄청난 효율성을 갖고 있다. (330, 331면)




35. 근대 시민사회의 구성원인 사적 개인들은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편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이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법칙이 요구하는 것들을 스스로 충족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것을 충분하게 충족할 수 없는 사람은 사적인 개인으로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근대 시민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 (335면)




36. “마찬가지로 특수해진 욕구와 그것을 만족하는 수단이 분화되고 다양화된다.” (340면)




37. 인간의 욕구의 대상은 이제 한갓 자연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다. 이제 인간은 욕구의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나 생각 역시 충족하고자 애쓴다. ...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이제 주택의 욕구의 만족은 자신의 자연적인 욕구, 즉 잠자리를 해결하려는 욕구의 충족에 그치지 않는다. 욕구 충족의 방식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인정받고 확인하는 수단으로 전환된다. (341면)




38. 헤겔은 인정투쟁을 인류 역사 형성의 동력으로 이해한다. 그가 보기에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자기의식 및 자유의식은 여러 인간들 사이의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정을 추구하는 존재로 본다. 달리 말하면 인정의 추구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원천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자의 인정을 바라는 사회적 존재이다. (342면)




39. “인간 자체는 인정(행위)로서의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 바로 인간은 자연상태를 극복한다. 즉 인간은 인정(행위)이다.” (343면)




40. 헤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식 또는 자기의식적 존재이다. ... 인간이 자기의식인 한에서, 그는 자신이 존엄하고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한다. (343면)




41. 헤겔은 인정투쟁과 자유의식의 발생 사이의 공속성을 강조한다. 헤겔은 인정의 과정을 투쟁으로 이해하고, 이 인정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자유의식이 전개되고, 이 인정투쟁의 과정을 통해 인류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고 본다. 요약해 보자면 인정투쟁은 인간의 형성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존재, 즉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사이기도 하다. 인간의 인간됨의 과정은 물론 정치적 관계의 형성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처음의 인정투쟁의 결과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인과 노예 혹은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거쳐 인간은 점차 모든 인간들이 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임을 터득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모든 다른 타자들에 의해서 가치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받으며, 그 역시 다른 모든 타자들이 자기의식적 존재임을 승인한다. 인류의 역사는 보편적인 인정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종결점에 이르는 것이다. (345면)




42. 호네트에 의하면 헤겔은 인정투쟁을 인간의 정체성 요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으로 해석하여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도덕적 요구에 대한 훼손 경험에서 찾는 사상적 움직임”을 개척한 사람이다. (356면)




43. 헤겔은 계급이라는 용어로 시장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외되고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칭함으로써 근대적 노동계급의 출현에 주목하고 있다. (358면)




44. 헤겔은 빈곤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선 부유한 사람들에게 직접 부담시키는 방법, 즉 과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 방법과 병원, 재단, 수도원 등 공적 제도들을 통한 방법을 제시한다. ... 그러나 이런 방법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이런 방법은 시민사회의 기본 원리, 즉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생길 의존성 혹은 ‘도덕적 해이’ 등을 염려했을지도 모른다. (364면)




45. 빈민들을 운명에 내맡기는 방법 이외에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을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결의 서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식민지 개발의 필연성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즉 시민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와 빈곤의 양극화는 그 시민사회를 식민지 개척으로 몰아세운다는 것이다. (365면)




46. 경제적 자유주의, 보다 상세하면 설명하자면 오로지 주어진 목적(그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배제한 채)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발견하고자 하는 도구적 합리성만을 갖추고 자신의 이기심을 최대한으로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는 개별적 행위자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고 생각하는 개인주의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어떤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70면)




47. 우리가 진지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는 자유 지상주의적(libertarian) 혹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진실을 드러내주고 있는가, 시장경제 사회를 옹호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령인가, 자본주의적 시장질서와 그것의 사상적 표현인 경제적 자유주의 및 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의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371면)




48. 자유의 이념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정치적․사회적 조건들이 담보되지 않으면 공허하고 추상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헤겔의 입장이다. 자연법적 이념이 헌법의 원리로 실정화됨에 따라 이제 국가는 강제력에 의거해서 자연법적 이념의 훼손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헤겔은 자연법적인 이념의 역사적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자연법과 실정법 사이를 대립과 모순의 관계로 설정하는 입장을 비판한다. (375면)




49. 헤겔은 독일의 병폐의 하나로 간주되는 법전에 대한 절대적 완전성을 요구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이런 태도가 불충분한 이유는 그것이 법이란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조건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그 모든 상황에 대해서 세세하게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실정법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법적 규범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강조이다. 헤겔은 실정법을 다루면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들을 함께 고려한다. ... 슈네델바하는 헤겔의 사법이론을 “근대적인 법사회학의 전사(Vorgeschichte)"로 이해한다. (384, 385면)




50. 형벌의 사회적 성격이 부각되면 어떤 특정한 범죄 행위를 바라보는 입장이 사회의 상태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다. (385면)




51. “그러므로 자백이 요구되는 경우에 고문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Ilting) (388면)




52. 헤겔은 재판을 다루는 곳에서 배심원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389면)




53. 헤겔에 의하면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법적 용어를 시민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외래어로 구성하는 태도야말로 소송 지식을 번잡하게 하여 결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할 법률을 일부 특권 계층의 “영리 추구와 지배 도구로 변질”시키게 된다. ... 헤겔은 배심원 제도의 정당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다시 전문적인 법률가들의 엘리트주의와 특권의식을 비판한다. “재판관만이 범죄 사실을 확정해야만 한다고 가정할 어떠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391면)




54. 모래알처럼 흩어진 원자적인 개인들의 군집으로는 근대적인 자유의 이념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헤겔의 고유한 통찰의 하나이다. 국가는 “가족과 시민사회가 국가 속에서 전개되는 한에서만” 진실로 “살아 움직인다. 이런 맥락에서 헤겔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보편적인 제도 및 질서인 헌법을 "매개의 체계”(System der Vermittlung)로 간주하는 것이다. (395면)




55. 시장경제 질서는 작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들을 양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자와 빈자의 극단적인 분열이다. 헤겔이 지적하듯이 “빈곤의 발생은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결과이며, 빈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시민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생긴다.” rsm대 시장경제 질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은 항상 낙오되고 도태되어 극심한 빈곤 상황에 처한다. 그 결과 그들은 실업과 빈곤 속에서 타인의 소유와 인격적 권리의 훼손, 즉 범죄의 유혹을 받게 된다. (395면)




56. 헤겔은 1817-18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겨울학기에 행한 강의에서 모든 사람은 “생존의 권리”(das Recht des Lebens)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 권리를 ‘소극적인 권리’가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라고 규정한다. 그뿐 아니라 헤겔은 실업자가 사회에 대하여 “노동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노동과 생계”의 권리를 “완전한 사회적 참여의 기본적인 필요조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로서 이해하고 있다고 마이클 하이몬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다. (399면)




57. 헤겔은 자연적인 재능이나 능력의 불평등과 사회 경제적 계급의 서로 다음에 기인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시장경제의 특유한 논리와 결부되어 특정한 개인들을 빈곤한 상태로 몰아가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우연적인 요소에 기인한 것이므로, 인간의 사회적 생활에서 이것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인간을 불평등과 빈곤 상태로 몰고 가는 우연적인 요소들을 방치한다는 것은 이성의 자율성 이념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가족의 위치와 역할을 떠맡는 “보편적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힘이 조합이다. (401면)




58. 헤겔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근대 산업 사회에서 공통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되는 직업단체들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직업단체는 현대의 노동조합과 매우 유사하지만, 사용자와 고용주를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노조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조직 형태이다. (402면)




59. 헤겔은 직업단체의 활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직업단체가 담당하는 활동 전반을 “제2의 가족”의 역할에 비유한다. 즉 직업단체는 그 구성원들에게 가족이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404면)




60. 첫째로 직업단체는 시장사회의 파괴적 성격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405면)




61. 헤겔은 “각자가 단지 자기를 배려하고 공통적인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원자론의 원리(das Prinzip der Atomistik)라고 부른다. 이 원자론의 원리는 극복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직업단체는 이 사적인 개인에게 자신의 특수한 이익의 지평을 넘어서 동료들과 협력하는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406, 407면)




62. 둘째로 직업단체는 사회적 인정의 기초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407면)




63. 직업단체에서 시민들은 단순히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인격적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정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갖고 있는 특수한 능력의 발현을 통해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런 인정의 방식을 호네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사회적 가치 부여를 통한 인정”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호네트에 의하면 “사회적 가치 부여를 통해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개인적 차이를 특징짓는 특수한 속성들이다.” 호네트가 지적하듯이 권리의 보편적인 인정과 구별되는 사회적 가치 부여를 통한 인정의 방식은 헤겔이 인륜성 개념을 통해서 전개하고자 한 것이다. 이 인정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갖는 자신의 독특한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가치 부여를 통한 인정은 개별적인 존재가 자신을 개성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호네트는 이런 인정의 형태를 사랑과 권리를 통한 인정과 구별되는 “사회적 연대성”의 인정 형식이라고 부르는데, 놀랍게도 헤겔 역시 직업단체에서의 인정의 독특함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연대적”(soliarisch)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409면)




64. 셋째로 직업단체는 정치적 기능을 담당한다. 직업단체는 의회에 대의원을 파견하는 기회를 갖는다. 직업단체는 시민사회가 타락하고 해체하는 경향을 막아주는 방파제일 뿐 아니라, 시장과 국가와 구별되는 중간 영역을 창출하여 국가 권력의 관료제화와 중앙 집권적인 권력의 등장을 어렵게 만든다. (409면)




65. 이들 영역에서 개인들의 복지, 헤겔이 용어로 표현하자면 “특수한 복지”가 개인들의 정당한 “권리로서 다루어지고 실현되어야 할” 주제로 논의되기 때문이다. (410면)




66. 예어만이 지적하는 것처럼 헤겔에게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이성적인 대안”인 근대적인 사회국가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은 로렌츠 폰 슈타인이었다. (411면)




67. 법의 원칙을 규정할 때 인간의 행복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이유는 칸트의 보편주의적 윤리학의 성격에 기인한다. 법의 개념이 행복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유는, 행복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타당한 원칙이 있을 수 없다고 칸트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414면)




68.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할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을 자신의 인륜성 이론에 통합하는 헤겔의 정치이론은 극단적인 시장경제 자유주의와 중앙 집권적인 통제경제의 양극단을 피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417면)




69. 하이예크는 자유주의를 시장경제의 자율적 조절 능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으로 이해한다. (421면)




70. 하버마스에 의하면 사회복지국가가 유럽에서 성공적으로 관철된 후에 “날로 팽창하는 국가관료제가 자신의 수혜자(Klienten)의 개인적 자기결정을 제약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둔감성“을 보여주었다. ... 사회복지국가의 법이론이 사적 자율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지 못했다면, 자유주의적 법이론은 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사회적 맹목성’이라는 정반대의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423면)




71.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근대에서 광범위한 빈곤은 사회적 긴장과 갈등으로 표출되는데, 헤겔은 그 표출을 이해할 때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의 틀을 넘어서 갈등의 근원 속에 도덕적 동기가 존재함을 강조한다. 빈곤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상황에 직면하여 커다란 절망감과 자존감의 상실을 겪는다. 이 자존감의 상실은 근대 사회가 자립과 책임의 원리를 인격의 기본적 원리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뼈저리게 다가온다. 물론 근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그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다고 믿는 평등한 인격체로서의 권리가 훼손당했다는 감정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런 추상적인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다. 헤겔이 지적하듯이 자선사업 단체의 도움이나 사회 및 국가의 물질적 도움이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조치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시민사회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타인이나 사회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립심과 명예의 감정”을 손상당하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 타인이나 사회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빈곤한 사람들은 수치심과 명예까지도 잃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락할 위험에 놓이게 된다. (431면)




72. 이처럼 헤겔은 근대 사회의 빈곤 문제를 언급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감 및 명예심의 상실을 가장 결정적인 문제로 포착한다. 사회에 대한 내적인 분노와 저항의 근원에는 이런 도덕적 인정 욕구의 좌절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헤겔은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431면)




73. 호네트는 헤겔의 “인정투쟁”을 “인간의 사회적 생활 현실 내부에서 발전과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적 힘”으로 이해한다. 그는 헤겔의 인정투쟁 이론을 적절하게 현대화하여 “비판적 사회이론의 길잡이”로 삼으려고 시도한다. 그에 의하면 헤겔은 마키아벨리나 홉스와는 달리 주인과 노예의 투쟁을 자기 정체성 요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으로 해석함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도덕적 요구가 훼손당한 경험에서 찾는 사상적 움직임의 선구” 역할을 담당했다. (432면)




74.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헤겔은 사회적 갈등과 투쟁의 배경에는 인간의 도덕적 감정의 훼손에 대한 경험이 깔려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33면)




75. 후쿠야마에 의하면 헤겔은 인간을 타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가치와 자긍심을 인정받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런 인정에 대한 욕구를 바로 인류 역사 전체를 움직여가는 힘으로 이해했다. (433면)




76. 우리는 실제로 극단적인 시장경제 만능주의와 중앙 집권적인 계획경제 모델과는 구별되는 대안의 한 예를 독일의 사회적인 시장경제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434면)




77.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시장경제 이론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던 것은 발터 오이겐이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질서 자유주의이다. (435면)




78.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럽의 사회복지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복지 시스템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437면)




79.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최소한의 생계 및 건강 유지를 위한 물질적인 혜택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형성하는 작업이다. 이런 시각은 내가 보기에 헤겔의 관점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437면)




80. 헤겔은 정치적 삶과 사적인 삶,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양분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있다. (440면)




81. 헤겔에게서 인륜적 이념의 최고 형태는 주지하다시피 바로 국가이다. (440면)




82. 회슬레와 더불어 호네트 역시 헤겔의 인륜성 개념이 규범적인 정치철학을 함축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인정투쟁’에서 헤겔의 인정투쟁의 이념을 기초로 하여 인륜성의 새로운 기획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때 그는 이러한 기획은 “인륜성의 형식적인 기획”(ein formales Konzept der Sittlichkeit)이라고 명명한다. ... 이러한 인륜성의 개념과 함께 호네트는 “인간의 도덕적인 자율뿐 아니라 인간의 자기실현의 조건 전반”을 문제삼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행복한 삶의 실현이라는 보편적인 목적에 도움이 되는 “보호장치들”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호네트는 형식적인 인륜성 개념을 특정한 공동체의 습속을 이루는 “실체적인 가치 체계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실현을 의사소통적 방식으로 가능하게 한다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모든 특수한 삶의 형태들의 다양성과 규범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인륜성의 구조적인 요소들”로 이해한다. 결국 형식적인 인륜성의 개념은 인간 개개인의 자기실현의 필연적인 조건으로서 파악되는 “상호주관적인 조건들의 총체”(das Insgesamt an intersubjektiven Bedingungen)로 정의된다. (561, 562면)




83. 호네트는 이러한 형식적인 인륜성의 개념으로, 칸트적인 내용이 없는 형식주의적인 윤리학과 특정한 사회에서 관철되는 선에 대한 표상이나 가치 체계를 절대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공동체주의적인 윤리학의 일면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호네트는 인간의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구조 내지 전제들로서 사랑, 법 그리고 연대성의 세가지 인정의 형태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562면)




84. 헤겔은 말한다. “세계가 어떻게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에 한마디를 하기 위하여 철학은 어쨌든 항상 너무 늦게 온다." 철학은 항상 너무 늦게 오기 때문에 이제 철학은 한 시대가 일정한 종말에 이르게 되었을 때, 시대가 이미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그 시대의 기본적인 원리를 개념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명료화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법철학’ 서문의 끝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이 자신의 회색에 회색을 겹쳐 그릴 때, 이미 생의 모습은 늙어버리고 난 후이며, 회색을 회색으로 덧칠함으로써 생의 모습은 젊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짙어지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563, 564면)




85. 미네르바의 올빼미에 대한 헤겔의 주장은 역설적이지만 비판적 기능이 존재한다고 아비네리(Avineri)는 주장한다. 헤겔의 주장대로 철학이 미네르바의 올빼미라면, 철학은 곧 한 시대가 성숙해서 이미 종말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주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64면)




86. 현재는 전 지구적 세계화의 진전에 조응하는 새로운 윤리와 새로운 사회, 정치철학의 모색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626면)




87. 국민국가의 다수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이면서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계시민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들을 구축하는 것이 보다 더 시급한 과제이다. 이런 고민의 과정에서 보편주의의 추구와 다양성 혹은 차이의 긍정은 서로 양립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6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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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윤리의 전통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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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고전적인 대답은 ‘인간본성에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1면)




2. 자연법이라는 관념의 필연적인 일반성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한 한 가지 함축은 그러한 관념이 인간행위를 통제하는 규준들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실천적 윤리로서는 제한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자연법 관념은 도덕적 추론을 위한 어떠한 지름길도 제공하지 않는다. (12면)




3. 두 개념(nomos와 phusis) 사이의 대조는 인간세계와 변화하지 않는 자연질서를 구분하기 위해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13면)




4. 플라톤의 관점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자연적인 것(혹은 실재적인 것)이 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러한 설명은 단지 변화들이 한 존재의 자연적이고 내적인 원리들의 작동 결과로 발생한다는 점만을 주장할 뿐이다. (16, 17면)




5.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한 것은 합리성을 가장 완전하게 인간적인 특성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한다면, 우리가 찾는 것은 뚜렷하게 인간적인 삶을 통제하는 내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이다. (17면)




6.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대조적으로 스토아학파는 인간본성을 자연적 질서의 일부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학파는 인간들에게 있는 이성의 중요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조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스토아학파의 우주론은 이성적 질서를 사물들의 핵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우주를 질서짓고 통일시키는 로고스(logos), 즉 창조적 불이 지닌 하나의 불꽃이었다. (17, 18면)




7. 진정한 법은 자연과 일치하는 올바른 이성이다. 그러한 법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변화하지 않고 지속적이다. 그러한 법은 그 명령들에 의해서 의무를 환기하고, 그 금지들에 의해서 비행에서 벗어난다. ... 그래서 로마와 아테네의 법들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며, 혹은 지금과 미래에 상이한 법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의 영원하고 변화하지 않는 법이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타당할 것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에 대한 지배자이자 통치자인 신이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신은 이러한 법의 창조자이며, 그 법의 공포자이자 그 법을 집행하는 판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에 복종하지 않는 누구든 그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인간본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통상 처벌로 간주되는 것을 피한다고 해도 가장 나쁜 형벌들을 겪게 될 것이다. (키케로, 국가De Re Publica, III, xxii) (18, 19면)




8. 그로티우스가 가장 확실하게 기여한 것은 자연법을 인권에 관한 이론으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사무엘 푸펜도르프가 그로티우스 이론을 변형시켜 내놓은 영향력있는 작품인 ‘자연의 법과 민족들의 법’은 인권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중요성은 현저히 감소했다.) (26, 27면)




9. 전통적인 도덕적 믿음들에 대해서는 전형적으로 개량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자는 도덕적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리주의를 채택한다는 것은 진정한 도덕적 선들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2면)




10. 자연법 이론을 현대의 다른 도덕적 이론들과 그러한 측면에서 대비시키는 한 이유는 자연법 이론이 (제한된 수의) 진정한 인간적 선들에 관한 이론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33면)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은 통상 확고하게 의무론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34면)




12. ‘자연’, ‘자연적’ 등과 같은 말들은 기술적 의미들을 갖거나 규범적인 의미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만큼 애매하고, 자연법의 기본적인 결함은 이러한 애매성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라고 자주 언급되었다. (37면)




13. 다수의 행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원리는 거부되어야 한다. 즉 모두를 위한 원리일 수 없는 것은 결코 도덕원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도덕성은 보편화 가능성이 없는 원리들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생각은 칸트가 ‘정언명법’이라고 부르는 것 EH는 더욱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도덕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48면)




14. 불충분한 의무는 보편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 즉 우리는 곤란에 빠진 사람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으며 우리의 잠재적인 재능 모두를 계발할 수는 없다. (54면)




15.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존중한다면 칸트가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인격에 대한 존중을, 특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54면)




16. 루소와 마찬가지로 칸트에 있어서도 자율적이라는 것은 단지 자신의 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든지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율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지위를 충분히 고려하는 자기 통제의 행위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적인 의미에서 자율적이라는 것은 곧 도덕적으로 행위한다는 것이다. (55면)




17. 칸트의 윤리학에 대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은 이른바 정언명법이 공허하며 진부한 것이거나 아니면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어서 어떤 의무의 원리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헤겔과 밀(J. S. Mill)을 비롯하여 많은 동시대의 저술들에서 폭넓게 제시되었다. (60면)




18. 예를 들면 공동체주의자나 역사 결정론자들은 우리가 특수한 사회의 담론과 전통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도 호소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도전하였고, 공리주의자들은 원리는 선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 중 어떤 것에서도 설득력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칸트로 돌아가라’는 신칸트학파의 표어가 여전히 그들이 탐구하거나 반박해야만 하는 하나의 도전으로 남아 있다. (67면)




19. 모든 도덕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론에 대답해야만 한다. 첫째, 도덕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엇이며, 둘째, 우리는 왜 그러한 요구에 복종해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윤리에 대한 사회계약론적 접근방식의 매력은 그것이 이상의 두가지 물음 각각에 대하여 단순하면서도 서로 관련된 답변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도덕의 요구 사항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제하기 위해서 맺은 합의에 의해 결정되며, 그러한 도덕의 요구에 복종해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 합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답변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상이한 이론들이 이른바 ‘합의’의 내용과 구속력에 대하여 서로 판이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70, 71면)




20.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이론이 사람들이 합리적이면서도 자유롭게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된 기준을 제시했노라고 자처하기 때문이다. (71면)




21. 각 개인은 세계 속에서 자연이나 신에 의해 운명지워진 위치나 기능을 가지며, 그들의 의무는 그러한 위치나 기능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계몽사상이 이 낡은 윤리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의심하면서부터 철학자들은 사회계약론으로 그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요소들 중 하나가 왕권신수설이었다. (72면)




22. 이런 종류의 정치적 사회계약론은 19세기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가지의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갖가지 비난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런 계약은 한번도 체결된 적이 없었으며, 실제로 성사된 계약이 전무하다면 시민들도 정부도 약속에 의해 구속을 받지 않는다. (74면)




23. 현대의 사회계약론은 고전적 사회계약론보다도 더 야심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적 의무만이 아니라 고전적 사회계약론자들이 그저 당연시했던 개인적 의무까지도 계약에 의거해서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75면)




24. 1) 의무는 신적인 것이 아니라 규약적인(conventional) 것으로서 자연적으로 동등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유래한다. 2) 규약적인 의무들은 중대한 인간의 이익을 보장해 준다. (76면)




25. 그들의 주장은 사람들이 정말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덕은 오직 그러한 가정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79, 80면)




26. 의무론적 윤리이론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측면들이 도덕규칙들에 의해 통제되며, 그러한 규칙들을 어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을 때조차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115면)




27. 철학자들은 그러한 윤리적 관점들을 ‘의무론적’(deontological: 그리스어 데온(deon:의무)에서 나온 말)이라고 부르며, 이를 구조상 ‘목적론적’(teleological: 그리스어 텔로스(telos: 목적)에서 나온 말) 관점들과 대조한다. 목적론적 관점들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올바르거나 그른 특별한 종류의 행위들이 있다는 입장을 거부한다. 목적론자들에게 우리 행위의 올바름이나 그름은 행위의 결과들을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결정된다. (116, 117면)




28. 목적론적 이론: 선은 올바름과 독립적으로 정의되며, 올바름은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Rawls, 1971, p.24) (118면)




29. 의무론적 이론: 그것은 선을 올바름과 독립적으로 설명하지 않거나 올바름을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론이다. (p. 30) (118aus)




30. (1) 의무론적 강제들은 대개 부정적으로 ‘... 하지 말아라’ 혹은 금지들로 정식화된다. (122면)




31. (2) 의무론적 강제들은 협소한 틀을 가지며 경계가 있다. (123면)




32. (3) 의무론적 강제들은 협소한 방향성을 갖는다. (123면)




33. 의무론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구분은 허용 가능한 것과 허용 불가능한 것 사이의 구분이다. 의무적인 것을 정의하는 기초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 불가능한 것이란 개념이다. 의무적인 것이란 생략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의무론자들이 규칙들의 위반을 피하는 것과는 별개로 행위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가장 큰 부분의 도덕적 공간과 행위자의 가장 큰 부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허용 불가능한 것에 확실히 관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124면)




34.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올바름의 영역의 요구들에 의해 영위할 수 없다. 잘못을 피하고 의무를 행한 후에도 해야 할 무한한 선택들이 남아 있다. (Fried, 1978, p. 13) (125면)




35. 결과론적인 도덕이론들과의 대조는 여기서 매우 뚜렷하다. 의무론자들이 올바름의 개념을 약한(배제적, exclusionary) 것으로 여기는 반면, 결과론자들이 강한(포함적, inclusionary) 개념을 채택한다. 즉 하나의 행위자는 그 혹은 그녀의 행위들이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경우에만 올바르게 행위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행위를 하는 것이다. (125면)




36. 의무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행위는 최선의(혹은 심지어 하나의 좋은) 선택이 아니고서도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론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행위과정은 그것이 행위자에게 열려진 최선의(혹은 똑같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인 경우에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적은 선(이익)을 가져오는 것(혹은 더 적은 해를 막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결과론의 이러한 측면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며, 많은 사람들은 결과론적 관점들이 행위자에게 불충분한 도덕적 호흡공간을 남겨 놓았다는 근거에서 결과론적 관점들에 반대해 왔다. 의무론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론적 이론들의 집요함이 허용과 의무라는 개념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다고 자주 생각해 왔다. (125면)




37. 의무론적 강제들의 협소한 방향성과 협소한 틀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25면)




38.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주장된 우주와 그 우주의 작동 방식들에 관한 이미지를 거부한다. 그리고 초기의 종교저긴 도덕성을 지배했던 (아직도 정통적인 유대-기독교적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수도사, 목사, 성직자들이 가진 관점들의 많은 측면들은 편파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응보적인 인간의 본성 -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다른 역할들과 능력들 -에 대한 관점들을 반영하기 때문에 대체로 거부된다. (132면)




39. 의무론자들은 의무론적 강제들이 절대적이고,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매우 나쁜 결과들이 야기될 것을 알 때조차 의무론적 강제들의 위반을 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의무론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종류의 절대성은 실제로는 조건적이고 제한적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의무론적 강제들이 지닌 절대적 힘의 범위에 대한 중요한 축소는 의무론적 강제들이 협소한 틀을 갖고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135면)




40. 의무론자들이 의무론적 강제들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것과, 나쁜 결과들의 (허용 가능한) 야기와 그른 행위들의 (허용될 수 없는) 수행의 구분이 본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의무론자들이 성공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다. (136면)




41. 의무론적 강제들의 범위를 줄이려고 시도하기 위해 의무론자들이 선호하는 다른 장치 - ‘전통적인 이중결과의 원칙’에 의존하는 것과 의도된 해악과 단순한 해악 사이의 구분 - 역시 상황이 더 나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철학자들과 법이론가들은 이중결과의 원칙을 비판해 왔고, 의도와 단순한 예견 사이의 구분의 견지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내가 믿는 것처럼, 이러한 비판들에 유용성이 있다면, 현대 의무론적 이론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들은 의무론자들이 의무론적 금지들의 범위를 확장하도록 강제하거나 혹은 그러한 금지들이 절대적이거나 정언적인 힘을 갖는다는 주장을 철회하게끔 강제하기 때문이다. (137, 138면)




42. 우리가 보았듯이, 그 딜레마의 첫 번째 부분은 의무론자들을 규범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관점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의무의 갈등들에 관한 심각한 문제들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의무론적 관점들의 구조 자체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의무론적 강제들은 어떤 종류의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금지된 행위가 실제로 금지되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행위자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의무론적 강제들이 그러한 강제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해 왔던 절대적이거나 정언적인 종류의 힘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의무론적 관점들은 일종의 도덕적 다원주의 및 그 점에서 아주 직관주의적인 형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138면)




43. 도덕적 규칙들 혹은 강제들의 중요성에 의무론자들이 집착하는 것은 그른 행위를 피하는 것이 유일한 임무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행위자의 주된 임무라는 믿음 때문이며, 도덕적 행위자들로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진지한 노력을 할 경우에만 그른 행위의 회피를 목표로 삼고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141면)




44. 우리가 “올바름의 영역이 요구하는 것들에 의해 우리 삶”을 영위할(Fried, 1978, p. 13) 수 없다면, 현대 의무론자들이 생각해 왔던 것처럼 그 올바름의 영역이 더 넓다는 점을 적어도 인정해야 한다. (144면)




45. 조건부 의무이 윤리는 의무를 지닌다는 것의 개념에 대한 특징적인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조건부 의무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다른 의무들을 산출하게 된다. 따라서 조건부 의무 이론은 엄격한 의무론적 윤리가 낳는 가혹한 결과를 피할 수 있게 한다. (146면)




46. 조건부 의무의 윤리의 창시자인 로스(W.D.Ross) ... 프리처드(H.A.Prichard) ...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주로 옥스퍼드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로스는 우선 모든 형태의 일원론이(즉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도덕원리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가) 거짓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 칸트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은 칸트의 기본 원리가 정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칸트의 원리는 ‘의무의 동기로부터 행해진 행위만이 옳다’는 것이다. 로스는 이 원리가 우리가 반드시 어떤 원리로부터 행위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여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그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능력을 우리가 지니고 있을 때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려는 행위의 동기를 선택할 수는 없다. 즉 우리의 동기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려는 바는 선택할 수 있지만 왜 그것을 행하려는 지는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특수한 동기로부터 행위하여야만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칸트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으므로 그의 이론은 거부되어야만 한다. (148면)




47. 그들의 행위의 결과는 미래에 속하는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과거에 대하여 (즉 자신들이 한 약속 자체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한다. ... 그러나 이렇나 결과의 비교평가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런 경우에는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로스는 주장한다. ... 이러한 예가 보여주는 바는 어떤 사람의 행위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문제가 되지만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것들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과주의는 단지 이런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50면)




48. 로스의 전체적인 견해는 우리가 고려하여야 할 모든 요소들이 너무나 많으므로 도덕적으로 중요한 특성들의 완벽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50면)




49. 결국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조건부 의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잘라서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는 주어진 상황을 심사숙고하여, 예를 들면 내가 이전에 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두 사람의 이웃을 공항에 태워다 주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하나의 규칙 또는 여러 규칙들의 집합이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152면)




50. 분명한 사실은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면서까지도 약속을 지켜야만 하며, 때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스는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처한 도덕적 곤경들이 지닌 특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세계가 완벽하게 질서지어져 있어서 우리의 서로 다른 조건부 의무들을 한번에 모두 정확하게 순위매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보다 이론이 사실과 들어맞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Ross, 1930, p.19) 서로 다른 유형의 조건부 의무들 사이에 일반적인 순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도덕원리들의 엉성한 목록일 뿐인데 이는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바에 도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의 목록에 불과하다. (153면)




51. 이와 같은 경우는 나의 원리들 중 하나는 반드시 거부되어야만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그른 일이다. 이러한 대립이 발생할 경우 원리들 중 하나를 잠시 유보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도 원리들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위의 경우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옮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154면)




52.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원리는 우리가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는 조건부 의무와 곤란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조건부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 하지만 이런 사실이 두 원리 중에 어느 하나를 포기하여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우리가 두 원리 모두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대립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즉 우리는 그렇게 할 조건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곤란에 빠진 사람을 가능한 한 도와야 한다는 것(즉 우리는 그렇게 할 조건부 의무 또한 지니고 있다는 것) 모두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립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두 가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대립의 해소는 두 원리들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함으로써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원리가 더 많이 고려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55면)




53. 만일 어떤 행위가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행위라면 - 즉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그 행위를 하여야만 한다면 - 그 행위는 적절한 의무이다. 어떤 행위가 적절한 의무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의무에 지니는 다양한 조건부 의무들을 서로 비교해 보아야 하며, 그 경우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측면에서 비교를 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적절한 의무와 조건부 의무 사이의 분명한 구별점이 드러난다. (157면)




54. 로스는 우리가 삶을 계속 살아 나가면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할 때 그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특성들을 이해하게 되며 또한 이로부터 이런 특성들이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리라는 -즉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되리라는- 점을 배워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조건부 의무의 일반원리들이 진리임을 파악하게 된다. (160면)




55. 여기서 나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나는 이미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잘 알고 있다) 각각의 원리들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또한 그들 중 어떤 것이 현재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지를 결정하려는 시도를 한다. ... 따라서 결국 우리는 수많은 도덕원리들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그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조건부 의무들은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적절한 의무들은 결코 알 수 없다. (161면)




56. 어떤 특성이 오직 한 가지 경우에서만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곧 일반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야만 한다. (165면)




57. 첫 번째의 비판은 이 이론이 권리와 관련된 주장을 위한 공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로스 자신은 공리주의에 대하여 적대적이었지만 그의 이론은 공리주의의 특징 한 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조건부 의무와 다른 조건부 의무 사이에 균형을 잡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공격 중의 하나는 이런 종류의 접근 방식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포섭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다는 것이다. (166면)




58. 이 경우 태아의 권리는 이른바 ‘으뜸패’로 간주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권리가 문제되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의 행위의 전반적인 결과와 같은 것을 고려함으로써 우리가 행해야만 할 바를 적절하게 결정할 수 있지만 권리가 문제되는 경우에는(인공유산의 경우처럼) 권리가 가장 중요한 결정근거가 되며 결과에 대한 고려 등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167면)




59. 현재의 상황에서 로스를 옹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만일 우리가 권리를 으뜸패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권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168면)




60.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적 이론의 한 예이다. 다시 말해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일을 -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173면)




61. 결과주의자들은 가치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도구적인 관계로 간주한다. ... 결과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치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비도구적인 관계로 간주한다. (177면)




62. 오스틴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한 요점은 공리주의와 같은 결과주의적 이론은 행위자가 선택을 할 때 어떻게 숙고해야 하는가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을 다른 선택들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 정당화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그 선택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사실이다 -에 관한 설명이라는 점이다. (185, 186면)




63. 결과주의가 숙고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정당화에 관한 이론이라고 쳐도 결과주의자가 됨으로써 우리의 사고방침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달라진다는 말인가? (187면)




64. 비결과주의자들을 대개 정당화보다는 오히려 숙고에 초점을 맞춘다. (195면)




65. 많은 의무론적 이론들이 처음에는 정당화에 관한 결과주의적 논지의 설득력을 인정했다가도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견제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구칙결과주의자를 들 수 있는데, 규칙결과주의자는 결과주의를 규칙의 선택 과정에만 적용하고 행동의 선택은 그런 식으로 선택된 규칙에 준해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195, 196면)




66.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추악한 세상마저도 모종의 탁월성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선에 대한 이론들은 대부분 선에 대한 유사한 기준들에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이론들은 대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 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탁월성을 성공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풍부한 복잡성(rich complexity)으로 분석한다. (200면)




67. ‘이상적 공리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일련의 무리들은 ‘프린시피아 에티카(Principia Ethica)'에서 G. E. 무어(G. E. Moore)가 주장하는 바를 공리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준거로 삼는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론이 고전적인 쾌락주의적 공리주의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그러한 이론이 어떤 살아있는 존재에게 좋은지와 무관하게 미학적 이상을 수용하는 데에 가까워질수록 윤리이론으로서의 그러한 분석은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다. 동일한 도전에 대한 더욱 설득력있는 내용은 '후생 공리주의자(welfare utilitarians)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단순한 선호보다는 이익들의 만족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206, 207면)




68. 하지만 비개인성은 매력적인 측면이 있기도 하다.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 당신 자신의 이익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거나 혹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익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특별히 좋은 모습이 아니다. (213면)




69. “우리들의 계산은 매우 실용적인 이유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편애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213면)




70. 공공 정책 입안자들은 더욱 흔하고 표준화된 경우들에 대한 입법을 하면서 공리 원리의 요구 조건과 십계명 의무론자의 요구 조건이 적절히 들어 맞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217면)




71. 어쩌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 제기된 질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대신 “내가 어떠한 유형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어야 할지 모른다. 덕 이론은 이러한 후자의 질문, 그리고 훌륭한 품성을 구성하는 덕목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덕 이론이 윤리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가? (219면)




72. 최근 도덕철학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 최근에는 ‘어떠한 품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야 하는가’가 관심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부 도덕철학자들은 포괄하는 범위가 좁으면서도 비개인적인 유형의 도덕이론, 다시 말해 지금까지 지배적인 도덕이론이었던 공리주의와 칸트주의에 싫증을 내고, 이제껏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던 ‘덕 이론’의 전통을 부활하였다. (220, 221면)




73. 첫째, 윤리이론은 서로에게 그다지 도움이 될 것 없는 공리주의와 의무론 간의 싸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 윤리이론은 이론적인 천착을 완전히 포기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도 고려하지 않고서 윤리적인 논쟁거리로 ‘하강’을 하거나, 행동에 대해 함축하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서 단어들과 개념들에 대한 서술들로 ‘상승’함으로써 일어났다. (윤리이론에 대한 천착 없이 기존의 규범윤리를 전제로 하여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응용윤리와 윤리 언어의 문제를 다루는 메타윤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21면)




74. 고대 그리스(주로 소크라데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공헌한 바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덕(품성이 갖는 여러 특성들)을 윤리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 둘째, 그들은 용기, 절제, 지혜, 그리고 정의라는 ‘주요한’ 덕 등 구체적인 덕목들을 분석하였다. ... 셋째, 그들은 여러 유형의 품성들에 서열을 매겼다. (227면)




75. 조엘 구퍼만(Joel Kupperman)이 말하고 있듯이, “칸트주의자와 결과주의자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양 학파의 저술을 읽는 사람은 사실상 얼굴 없는 윤리적 행위 주체라는 그림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행위 주체는 자신의 과거 또는 미래와 심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서 도덕적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Kupperman, 1988)




76. '윤리학: 옳고 그름에 대한 탐구‘(Ethics: Inventing Right and Wrong)라는 책에서 존 매키(John Mackie)가 주장하듯이, 만약 용기가 우리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언제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언제인가를 계산하는 성향을 우리가 계발하였다면, 그러한 성향은 참된 용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질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성향 또한 참된 용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232면)




77. 고대 그리스 서적들을 읽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 용기, 고상함이라는 이상에 맞추어 자신들을 개발하는 그들의 감각에 감명을 받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윤리는 폴리스, 개인, 그리고 미래의 인간의 완전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완전주의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완전주의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을 우습게 생각한다. 품성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인간들 사이의 도덕적 평등의 원리에 따라 행동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233, 234면)




78. 물론 그의 짜라투스트라적 고지에서는 위대한 영혼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권능과 너그러움으로 천한 빈자들을 간혹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천한 빈자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들이 도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그들을 희생시켜도 무방한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품성의 이상들만으로는 윤리가 짊어져야 할 모든 과업을 수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234, 235면)




79, (1) 누가 또는 무엇이 권리를 지니는가?

(2) 무엇이 권리의 내용 또는 대상일 수 있는가?

(3) 어떻게 권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4) 권리는 양도될 수 없는가?

(5) 권리는 절대적인가? (2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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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 아우또노미아총서 12
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 갈무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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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펼쳐질 생각들은 아마 독자들의 평소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식이 ‘저기 바깥에 있는 바로 저’ 세계의 표상(Repraesentation)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어느 한’ 세계를 끊임없이 산출하는 일(Hervorbringen)이라는 관점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7면)




2. 이 점에 대해서는 마뚜라나 본인도 1960년에 모든 인식활동의 바탕에 깔린 재귀성이 불러올 결과들에 접근하면서 땅이 꺼지는 듯했고 자기 머리가 정상인지 의심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12면)




3. 그에 따르면 우주를 기술하는 일은 그것을 기술하는 사람, 곧 관찰자의 기술도 포함해야 한다. (13면)




4. 여기서 실재(Realitaet)란 관찰자의 인식행위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관찰자가 가르는 구분들을 통해 비로소 관찰할 개체들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렐라는 이 창조적 인지과정을 가리켜 ‘있게 하기’(Ontieren)라 부른다. (13면)




5. 모든 인지적(kognitiv) 경험은 자신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매우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인식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확실성의 경험이란 타인의 인지적 행위를 보지 못하는 개인적 현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독이며, 오로지 우리가 타인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의 세계 안에서만 극복할 수 있다. (22, 23면)




6. 우리는 나타나야만 할 것 같은 비연속적 공간을 사실상 지각하지 못한다. 맹점의 실현이 극적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26면)




7. 지은이들이 쓰는 ‘섭동(작용)’(스페인어로 perturvacion)이란 개념은 부정적 의미가 꽤 담긴 ‘방해’(disturbacion)와 달리 어떤 체계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상태변화가 환경의 어떤 상태에 의해 바로 ‘야기’(verursachen)되는 것이 아니라 ‘유발’(ausloesen)됨을 가리킨다. (29면)




8.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visuelles Feld)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chromatischer Raum)을 체험하는 것이다. (30면)




9. 거울에 반사된 순간이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일부를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구조를 보여주는 맹점이 드러날 때와도 같다. 나아가 맹점 때문에 생긴 눈먼 상태가 그 틈이 메워짐으로써 사라질 때와도 같다. 반사 또는 성찰(Reflexion)이란 자기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눈 먼 자신을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확신도 마찬가지로 굳고 드세지만 결코 확실하지 않음을 깨닫는 유일한 순간이다. (31면)




10.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33면)




11.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한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hervorbringen)을 뜻한다. (34면)




12. 모든 성찰은, 따라서 인식의 기초에 관한 성찰도 언제나 언어 안에서 일어난다. 언어는 인간 존재와 행위의 특수한 존재다. 때문에 언어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인식도구이자 문제이기도 하다. (34면)




13.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성찰 자체는 언제나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한 장소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35면)




14.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이 인식자의 행위라는 사실, 나아가 인식의 바탕에 인식자의 구조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데 있었다. (43면)




15. 인식자의 행위인 인식은 인식자의 생물학적 본성, 곧 생명체의 조직(Organisation)에 뿌리내리고 있다. (43면)




16. “우리는 구분(distinction)의 개념과 지시(indication)의 개념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나아가 구분하지 않고는 지시할 수 없다는 것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우리는 구분의 형태를 형태(the form)로 간주한다. ... 어떤 경계로 두 쪽을 분리하여 한 쪽에 있는 어떤 점이 경계를 건너지 않고는 다른 쪽에 이를 수 없을 때 구분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는 구분을 낳는다.” (G. Spencer Brown, Laws of Form, London 1969, 1면) (51면)




17. 조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떤 것이 어떤 것이기 위해 있어야만 하는 관계들이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대답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물체를 의자라고 말하려면 내가 다리, 등받이, 앉는 곳이라고 부르는 부분들 사이에 앉는 일을 가능케 하는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먼저 확인해야만 한다. 그 물체는 나무와 못으로 되어 있든 인공물질과 나사로 되어 있든 그것은 내가 그 물체를 의자로 정의하거나 분류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53면)




18. 생물을 특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생성(erzeugen)하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성조직(autopoietische Organisation)이라 부르고자 한다(그리스말로 ‘autos'는 '자기자신', 'poiein'은 ‘만들다’를 뜻한다). (56면)




19. 따라서 우리의 견해로는 생물을 자율적 체계이게끔 하는 기제인 자기생성이야말로 생물을 자율적인 것으로 특징짓는다. (59면)




20. 다만 생물에게 독특한 점은 조직의 유일한 산물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 곧 생성자와 생성물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생성개체의 존재와 행위는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기생성조직의 특성이다. (60면)




21. 그러므로 생식이 있으려면 당연히 두 가지 기본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곧 원래의 개체와 생식과정이 있어야 한다. (70면)




22. 세포의 경우에 분열이 일어나도록 작용하는 것은 바로 세포의 자기생성적 역동성 자체다. 세포는 외부의 어떤 작용물이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80면)




23. 개체발생이란 개체가 조직을 잃지 않은 채 겪는 구조변천의 역사다. 개체의 구조변천은 매순간 일어난다. 이것은 주위환경에서 온 상호작용이 유발한 것일 수도 있고 개체가 지닌 역동성의 결과일 수도 있다. 세포라는 개체는 환경과 끊임없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언제나 자기 구조를 바탕으로 ‘바라보고’ 처리한다. 이때 구조는 세포의 내부 역동성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89면)




24. 따라서 관찰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개체와 환경의 재귀적 상호작용은 둘의 상호섭동(reziproke Rertubationen)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호작용에서 환경의 구조는 자기생성개체의 구조에 변화를 유발(ausloesen)할 뿐, 그것을 결정(determination)하거나 명령(instruieren)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꾸로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체와 환경이 해체되지 않는 한, 이런 재귀적 상호작용은 구조변화를 서로 주고받는 역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조접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91면)




25. 어쨌든 우리는 메타세포체의 조직이 작업적 폐쇄성(operatinale Geschlossenheit)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104면)




26. 다시 말해 오직 체계의 변화 전체가 그것의 구조에 따라 (그 구조가 어떤 것이든) 결정되는 체계만 다룰 수 있으며, 이때 체계의 구조변화는 체계 자신의 역동성을 통해 생기거나 아니면 환경과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통해 유발된 것이다. (114면)




27. 섭동작용의 영역: 상태변화를 유발하는 모든 상호작용 (115면)




28. 다른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트럼펫에게도 네 영역이 존재한다. a) 상태변화, b) 파괴적 변화, c) 섭동작용, d) 파괴적 상호작용 (116면)




29. 구조적으로 결정된 역동적 체계에서는 구조가 끊임없이 변함과 동시에 (물론 이 변화도 언제나 체계의 매순간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구조에 따라 정의된 영역들도 함께 변한다. (116면)




30. 이렇게 양립할 수 있는 한, 환경과 개체는 서로 섭동의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상태변화를 유발할 것이다. 이런 지속적인 과정을 우리는 구조접속이라 표현한 바 있다. (117면)




31. 생물에게 독특한 점이란 1차 등급의 개체든, 2차 등급의 개체든 자기생성을 줄곧 유지하는 가운데 구조적 결정과 구조접속이 실현된다는 사실, 그래서 생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 자기생성과정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있다. ... 생물의 모든 구조변천은 생물이 자기생성을 유지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 자기생성의 유지와 양립할 수 있는 구조변화를 유발하는 상호작용들은 모두 섭동작용일 것이다. (117면)




32.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개체에게 실제 일어난 구조변화는 마치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이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보면 환경은 유기체의 구조변화에 대한 ‘선택자’인 셈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일은 거꾸로 환경에게도 일어난다. 곧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생물은 환경의 구조변화에 대해 선택자로 작용한다. (119, 120면)




33. 관찰자에게 이 상관변화는 환경변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지만 환경변화가 이 상관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작업상 서로 독립적인 유기체와 환경이 만나서 생긴 구조적 표류의 산물이다. 이 만남과 관련된 모든 요인들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표류란 우연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135면)




34. 진화란 자기생성과 적응이 보존되는 가운데 일어나는 자연표류다. ... 진화란 오히려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135면)




35. 따라서 환경의 구조는 신경계에 변화를 유발할 뿐 그것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151면)




36. 신경계가 세계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가정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신경계가 작업적 폐쇄성을 지닌 결정된 체계로 매순간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가능성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행위이다. ... 다른 한쪽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타당한 진공상태에서 신경계가 작동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주위 환경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인지적 고독, 곧 유아론(Solipsismus)의 극단이다. (152, 153면)




37. 다세포생물의 작업에 참여하는 신경계란 그물처럼 서로 얽힌 여러 순환관계들로 된 기제이며 유기체가 조직을 보존하는 데 본질적인 내부 상태들을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이렇게 볼 때 신경계는 작업적 폐쇄성(operationale Geschlossenheit)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186면)




38.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물로서 구조접속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이) 바로 그 생물의 존재영역에서 일어나는 인식활동이다. 경구로 나타내자면, 삶이 곧 앎이다. 다시 말해 생명활동이란 생물로서 존재하는 데에 효과적인 행위이다. (197면)




39. 의사소통의 특수성이란 그것이 산출되는 기제가 다른 행동의 산출기제와 다르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사회적 행동의 영역에서 나타난다는 데 있다. (218면)




40. 언어적 재귀현상인 언어가 없다면 자기의식도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기의식, 의식, 정신 등은 언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그것들 자체는 오직 사회적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259면)




41. 인식활동은 언어를 구성하는 행동조정을 통해 언어 안에 존재함으로써 세계를 오히려 산출한다(hervorbringen). (263면)




42. 이 책에서 한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독자라면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다시 말해 무엇을 보거나 맛보거나 고르거나 물리치거나 말하거나 하는 모두가 타인과 공존하면서 (우리가 기출한 기제를 통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70면)




43. 두 극단, 다시 말해 표상주의(객관주의)와 유아론(관념론)에 빠지지 않도록 또다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이 책의 한 목표는 바로 그 중간길 찾기였다. 곧 우리의 기술과 인지적 가정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게 할 어떤 준거가 우리로부터 독립해 있다고 전제하지 않은 채, 우리가 늘 경험하는 세계의 규칙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270, 271면)




44. 곧 인식(활동)이란 객체들과 아무 관계도 없다. 인식활동이란 효과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인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산출한다. (273면)




45. 앎을 알면 얽매인다. (275면)




46. 앎의 앎은 확실성의 유혹에 대해 늘 깨어 있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또한 우리가 가진 확실성이 진리의 증거가 아님을, 누구나 다 아는 이 세계는 오직 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산출한 어느 한 세계임을 깨닫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그것은 우리가 다르게 살 때만 이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우리를 얽어맨다. 앎의 앎은 우리를 얽어맨다. 왜냐하면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우리 자신이나 타인 앞에서 마치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275면)




47. 다툼을 극복하려면 공존할 수 있는 다른 영역으로 옮아가야만 한다. 이 앎에 대한 앎이야말로 사람다움에 바탕을 둔 모든 윤리의 사회적 명령(Imperativ)이다. (276면)




48. 곧 우리가 가진 세계란 오직 타인과 함께 산출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우리는 이 세계를 산출할 수 있다. (278, 279면)




49.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데, 앎을 모르는데 있다. 우리를 얽어매는 것은 앎이 아니라 앎의 앎이다. (279면)




50. 첫째로 우리는 이 책에서 표상주의에 근거하지 않는 지식관을 제시하였다. ... 비표상주의적 관점이 대안이 되려면 생명체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은 자율성의 진정한 뿌리인 세포의 자기생성(autopoieis)을 살피는 데에서 시작하였다. (2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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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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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35면)



2. 아버지 에르네스토는 아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단다. 가난은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 대항하여 싸울 줄 알아야 한다. ...” (48면)




3. 자신의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던 ‘평등’ ... (66면)




4. “장사로서의 의료 행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 (67면)




5. “저 사람들이 당신들의 시중을 들고, 당신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뒤치다꺼리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그들 역시 태양빛을 음미하며 바닷불 속에 몸을 담그고 싶어할 텐데도 말입니다!? (67면)




6. 알베르토가 맞장구를 쳤다. “수세기 전부터 가진 자와 힘있는 자들이 장악한 학교와 교회, 그리고 언론이라는 가증스런 삼각고리가 우리를 옥죄어왔지. 민중은 자신의 능력을 깨달을 기회조차 없어.” (71면)




7. 이처럼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든 가난한 가족들에는 노골적인 적의가 감돌고 있다. 이들은 생존하는 데 거추장스러울 뿐인 아버지의 의무를,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형제로서의 의무를 포기한다. (79면)




8. 정의로운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겠다는 젊은 이상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있었다. (89면)




9. “교수님처럼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 인디오나 메스티노에게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 이런 비생산적인 책을 쓰셨다는 사실이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110면)




10. 물론 그는 보통의 미국 사람들을 증오하진 않았다. 그가 증오했던 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눈 하나 깜짝 않고 라틴아메리카에 멍에를 지우는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기업가들이었다. (130면)




11. 인디오들이 정신적 고립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얻지 못한다면 이 혁명은 실패할 것이라는 거였다. (139면)




12. 저는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한순간의 꿈에 불과했다고 생각됩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런 야심보다 우선하는 또 다른 계획이 저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177면)




13. “나는 쿠바인들의 운명과 하나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겠어요.” (195면)




14. 상자 두 개를 한꺼번에 옮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나는 그 앞에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약품인가, 아니면 탄약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결국 나는 탄약상자를 선택했다. (215면)




15. ‘포로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정부군의 태도와 대조가 됐을 것이다.’ 체는 나중에 그 요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229면)




16. 피델 일행에게는 전투 이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과제가 있었다. 바로 시에라마에스트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농민들로부터 신뢰는 얻는 일이었다. (232면)




17. 우리는 결단코 전쟁광이 아니다. 다만 그래야 하기 때문에 행하고 있을 뿐이다. (235면)




18. 별이 총총한 밤이면 시가를 입에 물고 마테차를 손에 든 체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그는 라울 카스트로에게 프랑스어도 가르쳤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늘 곁에 두고 있던 책을 펼쳐들었다. 당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대륙 발견 이전의 문화와 호세 마르티가 말년에 쓴, 지성이 숨쉬는 정치적 산문들이었다. 그는 늘 남보다 촛불을 늦게 끈 까닭에 영내에서 가장 많은 밀람ㅂ을 소비하는 대원이 되었다. (239면)




19. ‘내일 자유라는 빵을 쟁취할 수 있다면 오늘의 배고픔쯤이야 견딜 수 있지 않은가?’ (251면)




20. 체는 공평함에 관한 한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했다. 대장인 자신조차 커피 한 잔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마시는 일은 없도록 커피 양까지 통제할 정도였다. (298면)




21. 아르헨티나에서 왔지만 그는 자신을 세계의 시민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런 만큼 범세계주의자로서 싸우고 다른 인간들의 투쟁을 격려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라 여겼다. (315면)




22. “나는 해방자가 아니다. ‘해방자들’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민중을 해방시키는 건 그들 자신이란다.” (434면)




23. 의사, 게릴라 대장, 대사, 토지개혁위원회 위원장, 국립은행 총재, 체 게바라라는 한 인물이 수행하던 직책이다. (455면)




24. 당면했던 특별한 상황과, 또 내 기질 탓도 있었겠지만, 일단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나는 아이티와 산토도밍고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으로, 나중에는 의사로서, 나는 빈곤과 기아, 질병을 목격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우리 아메리카의 기층민중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현실임을 바라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유명한 학자가 되거나 의학상의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민중을 직접 돕는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456면)




25. ‘서구 사람들 대부분의 행동을 특징짓는 것은 개인주의다. 그 개인주의에 빠져든다면 거기에는 도덕이 있을 수 없다. 도덕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707면)




26. ‘인간이 권력의 자비에 매달려 사는 사회가 아니라 공적인 생활의 중심에 있게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그는 맹세했다. (7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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