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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윤리의 전통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1.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고전적인 대답은 ‘인간본성에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1면)
2. 자연법이라는 관념의 필연적인 일반성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한 한 가지 함축은 그러한 관념이 인간행위를 통제하는 규준들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실천적 윤리로서는 제한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자연법 관념은 도덕적 추론을 위한 어떠한 지름길도 제공하지 않는다. (12면)
3. 두 개념(nomos와 phusis) 사이의 대조는 인간세계와 변화하지 않는 자연질서를 구분하기 위해 소피스트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13면)
4. 플라톤의 관점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자연적인 것(혹은 실재적인 것)이 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러한 설명은 단지 변화들이 한 존재의 자연적이고 내적인 원리들의 작동 결과로 발생한다는 점만을 주장할 뿐이다. (16, 17면)
5.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한 것은 합리성을 가장 완전하게 인간적인 특성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한다면, 우리가 찾는 것은 뚜렷하게 인간적인 삶을 통제하는 내적인 원리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이다. (17면)
6.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대조적으로 스토아학파는 인간본성을 자연적 질서의 일부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학파는 인간들에게 있는 이성의 중요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조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스토아학파의 우주론은 이성적 질서를 사물들의 핵심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은 우주를 질서짓고 통일시키는 로고스(logos), 즉 창조적 불이 지닌 하나의 불꽃이었다. (17, 18면)
7. 진정한 법은 자연과 일치하는 올바른 이성이다. 그러한 법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변화하지 않고 지속적이다. 그러한 법은 그 명령들에 의해서 의무를 환기하고, 그 금지들에 의해서 비행에서 벗어난다. ... 그래서 로마와 아테네의 법들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며, 혹은 지금과 미래에 상이한 법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의 영원하고 변화하지 않는 법이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타당할 것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에 대한 지배자이자 통치자인 신이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신은 이러한 법의 창조자이며, 그 법의 공포자이자 그 법을 집행하는 판결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에 복종하지 않는 누구든 그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며, 자신의 인간본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통상 처벌로 간주되는 것을 피한다고 해도 가장 나쁜 형벌들을 겪게 될 것이다. (키케로, 국가De Re Publica, III, xxii) (18, 19면)
8. 그로티우스가 가장 확실하게 기여한 것은 자연법을 인권에 관한 이론으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사무엘 푸펜도르프가 그로티우스 이론을 변형시켜 내놓은 영향력있는 작품인 ‘자연의 법과 민족들의 법’은 인권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중요성은 현저히 감소했다.) (26, 27면)
9. 전통적인 도덕적 믿음들에 대해서는 전형적으로 개량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자는 도덕적 회의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공리주의를 채택한다는 것은 진정한 도덕적 선들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2면)
10. 자연법 이론을 현대의 다른 도덕적 이론들과 그러한 측면에서 대비시키는 한 이유는 자연법 이론이 (제한된 수의) 진정한 인간적 선들에 관한 이론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33면)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은 통상 확고하게 의무론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34면)
12. ‘자연’, ‘자연적’ 등과 같은 말들은 기술적 의미들을 갖거나 규범적인 의미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만큼 애매하고, 자연법의 기본적인 결함은 이러한 애매성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라고 자주 언급되었다. (37면)
13. 다수의 행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원리는 거부되어야 한다. 즉 모두를 위한 원리일 수 없는 것은 결코 도덕원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도덕성은 보편화 가능성이 없는 원리들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생각은 칸트가 ‘정언명법’이라고 부르는 것 EH는 더욱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도덕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48면)
14. 불충분한 의무는 보편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 즉 우리는 곤란에 빠진 사람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으며 우리의 잠재적인 재능 모두를 계발할 수는 없다. (54면)
15.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존중한다면 칸트가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인격에 대한 존중을, 특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54면)
16. 루소와 마찬가지로 칸트에 있어서도 자율적이라는 것은 단지 자신의 의지를 드러낼 수 있다든지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율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지위를 충분히 고려하는 자기 통제의 행위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적인 의미에서 자율적이라는 것은 곧 도덕적으로 행위한다는 것이다. (55면)
17. 칸트의 윤리학에 대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은 이른바 정언명법이 공허하며 진부한 것이거나 아니면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어서 어떤 의무의 원리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헤겔과 밀(J. S. Mill)을 비롯하여 많은 동시대의 저술들에서 폭넓게 제시되었다. (60면)
18. 예를 들면 공동체주의자나 역사 결정론자들은 우리가 특수한 사회의 담론과 전통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도 호소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도전하였고, 공리주의자들은 원리는 선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 중 어떤 것에서도 설득력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칸트로 돌아가라’는 신칸트학파의 표어가 여전히 그들이 탐구하거나 반박해야만 하는 하나의 도전으로 남아 있다. (67면)
19. 모든 도덕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론에 대답해야만 한다. 첫째, 도덕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엇이며, 둘째, 우리는 왜 그러한 요구에 복종해야만 한다고 느끼는가? 윤리에 대한 사회계약론적 접근방식의 매력은 그것이 이상의 두가지 물음 각각에 대하여 단순하면서도 서로 관련된 답변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도덕의 요구 사항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제하기 위해서 맺은 합의에 의해 결정되며, 그러한 도덕의 요구에 복종해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 합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답변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상이한 이론들이 이른바 ‘합의’의 내용과 구속력에 대하여 서로 판이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70, 71면)
20.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이론이 사람들이 합리적이면서도 자유롭게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된 기준을 제시했노라고 자처하기 때문이다. (71면)
21. 각 개인은 세계 속에서 자연이나 신에 의해 운명지워진 위치나 기능을 가지며, 그들의 의무는 그러한 위치나 기능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계몽사상이 이 낡은 윤리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의심하면서부터 철학자들은 사회계약론으로 그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은 요소들 중 하나가 왕권신수설이었다. (72면)
22. 이런 종류의 정치적 사회계약론은 19세기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가지의 결정적인 결함 때문에 갖가지 비난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런 계약은 한번도 체결된 적이 없었으며, 실제로 성사된 계약이 전무하다면 시민들도 정부도 약속에 의해 구속을 받지 않는다. (74면)
23. 현대의 사회계약론은 고전적 사회계약론보다도 더 야심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적 의무만이 아니라 고전적 사회계약론자들이 그저 당연시했던 개인적 의무까지도 계약에 의거해서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75면)
24. 1) 의무는 신적인 것이 아니라 규약적인(conventional) 것으로서 자연적으로 동등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에서 유래한다. 2) 규약적인 의무들은 중대한 인간의 이익을 보장해 준다. (76면)
25. 그들의 주장은 사람들이 정말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덕은 오직 그러한 가정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79, 80면)
26. 의무론적 윤리이론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측면들이 도덕규칙들에 의해 통제되며, 그러한 규칙들을 어기는 것이 더 좋은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을 때조차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115면)
27. 철학자들은 그러한 윤리적 관점들을 ‘의무론적’(deontological: 그리스어 데온(deon:의무)에서 나온 말)이라고 부르며, 이를 구조상 ‘목적론적’(teleological: 그리스어 텔로스(telos: 목적)에서 나온 말) 관점들과 대조한다. 목적론적 관점들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올바르거나 그른 특별한 종류의 행위들이 있다는 입장을 거부한다. 목적론자들에게 우리 행위의 올바름이나 그름은 행위의 결과들을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결정된다. (116, 117면)
28. 목적론적 이론: 선은 올바름과 독립적으로 정의되며, 올바름은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Rawls, 1971, p.24) (118면)
29. 의무론적 이론: 그것은 선을 올바름과 독립적으로 설명하지 않거나 올바름을 선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론이다. (p. 30) (118aus)
30. (1) 의무론적 강제들은 대개 부정적으로 ‘... 하지 말아라’ 혹은 금지들로 정식화된다. (122면)
31. (2) 의무론적 강제들은 협소한 틀을 가지며 경계가 있다. (123면)
32. (3) 의무론적 강제들은 협소한 방향성을 갖는다. (123면)
33. 의무론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구분은 허용 가능한 것과 허용 불가능한 것 사이의 구분이다. 의무적인 것을 정의하는 기초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 불가능한 것이란 개념이다. 의무적인 것이란 생략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의무론자들이 규칙들의 위반을 피하는 것과는 별개로 행위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가장 큰 부분의 도덕적 공간과 행위자의 가장 큰 부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허용 불가능한 것에 확실히 관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124면)
34.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올바름의 영역의 요구들에 의해 영위할 수 없다. 잘못을 피하고 의무를 행한 후에도 해야 할 무한한 선택들이 남아 있다. (Fried, 1978, p. 13) (125면)
35. 결과론적인 도덕이론들과의 대조는 여기서 매우 뚜렷하다. 의무론자들이 올바름의 개념을 약한(배제적, exclusionary) 것으로 여기는 반면, 결과론자들이 강한(포함적, inclusionary) 개념을 채택한다. 즉 하나의 행위자는 그 혹은 그녀의 행위들이 유용성을 극대화하는 경우에만 올바르게 행위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행위를 하는 것이다. (125면)
36. 의무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행위는 최선의(혹은 심지어 하나의 좋은) 선택이 아니고서도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론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행위과정은 그것이 행위자에게 열려진 최선의(혹은 똑같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인 경우에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적은 선(이익)을 가져오는 것(혹은 더 적은 해를 막는 것)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결과론의 이러한 측면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며, 많은 사람들은 결과론적 관점들이 행위자에게 불충분한 도덕적 호흡공간을 남겨 놓았다는 근거에서 결과론적 관점들에 반대해 왔다. 의무론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론적 이론들의 집요함이 허용과 의무라는 개념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다고 자주 생각해 왔다. (125면)
37. 의무론적 강제들의 협소한 방향성과 협소한 틀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25면)
38.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주장된 우주와 그 우주의 작동 방식들에 관한 이미지를 거부한다. 그리고 초기의 종교저긴 도덕성을 지배했던 (아직도 정통적인 유대-기독교적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수도사, 목사, 성직자들이 가진 관점들의 많은 측면들은 편파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응보적인 인간의 본성 -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다른 역할들과 능력들 -에 대한 관점들을 반영하기 때문에 대체로 거부된다. (132면)
39. 의무론자들은 의무론적 강제들이 절대적이고,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매우 나쁜 결과들이 야기될 것을 알 때조차 의무론적 강제들의 위반을 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의무론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종류의 절대성은 실제로는 조건적이고 제한적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의무론적 강제들이 지닌 절대적 힘의 범위에 대한 중요한 축소는 의무론적 강제들이 협소한 틀을 갖고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135면)
40. 의무론자들이 의무론적 강제들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것과, 나쁜 결과들의 (허용 가능한) 야기와 그른 행위들의 (허용될 수 없는) 수행의 구분이 본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의무론자들이 성공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다. (136면)
41. 의무론적 강제들의 범위를 줄이려고 시도하기 위해 의무론자들이 선호하는 다른 장치 - ‘전통적인 이중결과의 원칙’에 의존하는 것과 의도된 해악과 단순한 해악 사이의 구분 - 역시 상황이 더 나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철학자들과 법이론가들은 이중결과의 원칙을 비판해 왔고, 의도와 단순한 예견 사이의 구분의 견지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내가 믿는 것처럼, 이러한 비판들에 유용성이 있다면, 현대 의무론적 이론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들은 의무론자들이 의무론적 금지들의 범위를 확장하도록 강제하거나 혹은 그러한 금지들이 절대적이거나 정언적인 힘을 갖는다는 주장을 철회하게끔 강제하기 때문이다. (137, 138면)
42. 우리가 보았듯이, 그 딜레마의 첫 번째 부분은 의무론자들을 규범적으로 개연성이 없는 관점에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의무의 갈등들에 관한 심각한 문제들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의무론적 관점들의 구조 자체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의무론적 강제들은 어떤 종류의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금지된 행위가 실제로 금지되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행위자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의무론적 강제들이 그러한 강제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해 왔던 절대적이거나 정언적인 종류의 힘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의무론적 관점들은 일종의 도덕적 다원주의 및 그 점에서 아주 직관주의적인 형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138면)
43. 도덕적 규칙들 혹은 강제들의 중요성에 의무론자들이 집착하는 것은 그른 행위를 피하는 것이 유일한 임무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행위자의 주된 임무라는 믿음 때문이며, 도덕적 행위자들로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진지한 노력을 할 경우에만 그른 행위의 회피를 목표로 삼고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141면)
44. 우리가 “올바름의 영역이 요구하는 것들에 의해 우리 삶”을 영위할(Fried, 1978, p. 13) 수 없다면, 현대 의무론자들이 생각해 왔던 것처럼 그 올바름의 영역이 더 넓다는 점을 적어도 인정해야 한다. (144면)
45. 조건부 의무이 윤리는 의무를 지닌다는 것의 개념에 대한 특징적인 해석에 기초하고 있다. 조건부 의무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다른 의무들을 산출하게 된다. 따라서 조건부 의무 이론은 엄격한 의무론적 윤리가 낳는 가혹한 결과를 피할 수 있게 한다. (146면)
46. 조건부 의무의 윤리의 창시자인 로스(W.D.Ross) ... 프리처드(H.A.Prichard) ...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주로 옥스퍼드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로스는 우선 모든 형태의 일원론이(즉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도덕원리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가) 거짓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 칸트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은 칸트의 기본 원리가 정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칸트의 원리는 ‘의무의 동기로부터 행해진 행위만이 옳다’는 것이다. 로스는 이 원리가 우리가 반드시 어떤 원리로부터 행위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여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그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능력을 우리가 지니고 있을 때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려는 행위의 동기를 선택할 수는 없다. 즉 우리의 동기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하려는 바는 선택할 수 있지만 왜 그것을 행하려는 지는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특수한 동기로부터 행위하여야만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칸트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으므로 그의 이론은 거부되어야만 한다. (148면)
47. 그들의 행위의 결과는 미래에 속하는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과거에 대하여 (즉 자신들이 한 약속 자체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한다. ... 그러나 이렇나 결과의 비교평가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이런 경우에는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로스는 주장한다. ... 이러한 예가 보여주는 바는 어떤 사람의 행위의 결과가 무엇인지도 문제가 되지만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것들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과주의는 단지 이런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50면)
48. 로스의 전체적인 견해는 우리가 고려하여야 할 모든 요소들이 너무나 많으므로 도덕적으로 중요한 특성들의 완벽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50면)
49. 결국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조건부 의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잘라서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는 주어진 상황을 심사숙고하여, 예를 들면 내가 이전에 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두 사람의 이웃을 공항에 태워다 주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하나의 규칙 또는 여러 규칙들의 집합이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152면)
50. 분명한 사실은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면서까지도 약속을 지켜야만 하며, 때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스는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처한 도덕적 곤경들이 지닌 특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세계가 완벽하게 질서지어져 있어서 우리의 서로 다른 조건부 의무들을 한번에 모두 정확하게 순위매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보다 이론이 사실과 들어맞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Ross, 1930, p.19) 서로 다른 유형의 조건부 의무들 사이에 일반적인 순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도덕원리들의 엉성한 목록일 뿐인데 이는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바에 도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의 목록에 불과하다. (153면)
51. 이와 같은 경우는 나의 원리들 중 하나는 반드시 거부되어야만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그른 일이다. 이러한 대립이 발생할 경우 원리들 중 하나를 잠시 유보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어도 원리들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위의 경우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옮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154면)
52.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원리는 우리가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는 조건부 의무와 곤란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조건부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 하지만 이런 사실이 두 원리 중에 어느 하나를 포기하여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우리가 두 원리 모두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대립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즉 우리는 그렇게 할 조건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곤란에 빠진 사람을 가능한 한 도와야 한다는 것(즉 우리는 그렇게 할 조건부 의무 또한 지니고 있다는 것) 모두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립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두 가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대립의 해소는 두 원리들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함으로써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원리가 더 많이 고려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55면)
53. 만일 어떤 행위가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행위라면 - 즉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그 행위를 하여야만 한다면 - 그 행위는 적절한 의무이다. 어떤 행위가 적절한 의무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의무에 지니는 다양한 조건부 의무들을 서로 비교해 보아야 하며, 그 경우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측면에서 비교를 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적절한 의무와 조건부 의무 사이의 분명한 구별점이 드러난다. (157면)
54. 로스는 우리가 삶을 계속 살아 나가면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할 때 그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특성들을 이해하게 되며 또한 이로부터 이런 특성들이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리라는 -즉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되리라는- 점을 배워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조건부 의무의 일반원리들이 진리임을 파악하게 된다. (160면)
55. 여기서 나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나는 이미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를 잘 알고 있다) 각각의 원리들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또한 그들 중 어떤 것이 현재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지를 결정하려는 시도를 한다. ... 따라서 결국 우리는 수많은 도덕원리들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그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조건부 의무들은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적절한 의무들은 결코 알 수 없다. (161면)
56. 어떤 특성이 오직 한 가지 경우에서만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곧 일반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야만 한다. (165면)
57. 첫 번째의 비판은 이 이론이 권리와 관련된 주장을 위한 공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로스 자신은 공리주의에 대하여 적대적이었지만 그의 이론은 공리주의의 특징 한 가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조건부 의무와 다른 조건부 의무 사이에 균형을 잡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공격 중의 하나는 이런 종류의 접근 방식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포섭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다는 것이다. (166면)
58. 이 경우 태아의 권리는 이른바 ‘으뜸패’로 간주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권리가 문제되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의 행위의 전반적인 결과와 같은 것을 고려함으로써 우리가 행해야만 할 바를 적절하게 결정할 수 있지만 권리가 문제되는 경우에는(인공유산의 경우처럼) 권리가 가장 중요한 결정근거가 되며 결과에 대한 고려 등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167면)
59. 현재의 상황에서 로스를 옹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만일 우리가 권리를 으뜸패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권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것이라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168면)
60. 공리주의는 결과주의적 이론의 한 예이다. 다시 말해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일을 -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173면)
61. 결과주의자들은 가치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도구적인 관계로 간주한다. ... 결과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치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비도구적인 관계로 간주한다. (177면)
62. 오스틴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한 요점은 공리주의와 같은 결과주의적 이론은 행위자가 선택을 할 때 어떻게 숙고해야 하는가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을 다른 선택들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 정당화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그 선택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사실이다 -에 관한 설명이라는 점이다. (185, 186면)
63. 결과주의가 숙고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정당화에 관한 이론이라고 쳐도 결과주의자가 됨으로써 우리의 사고방침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달라진다는 말인가? (187면)
64. 비결과주의자들을 대개 정당화보다는 오히려 숙고에 초점을 맞춘다. (195면)
65. 많은 의무론적 이론들이 처음에는 정당화에 관한 결과주의적 논지의 설득력을 인정했다가도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견제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구칙결과주의자를 들 수 있는데, 규칙결과주의자는 결과주의를 규칙의 선택 과정에만 적용하고 행동의 선택은 그런 식으로 선택된 규칙에 준해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195, 196면)
66.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추악한 세상마저도 모종의 탁월성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선에 대한 이론들은 대부분 선에 대한 유사한 기준들에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이론들은 대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에 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탁월성을 성공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풍부한 복잡성(rich complexity)으로 분석한다. (200면)
67. ‘이상적 공리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일련의 무리들은 ‘프린시피아 에티카(Principia Ethica)'에서 G. E. 무어(G. E. Moore)가 주장하는 바를 공리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준거로 삼는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론이 고전적인 쾌락주의적 공리주의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그러한 이론이 어떤 살아있는 존재에게 좋은지와 무관하게 미학적 이상을 수용하는 데에 가까워질수록 윤리이론으로서의 그러한 분석은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다. 동일한 도전에 대한 더욱 설득력있는 내용은 '후생 공리주의자(welfare utilitarians)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단순한 선호보다는 이익들의 만족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206, 207면)
68. 하지만 비개인성은 매력적인 측면이 있기도 하다. 도덕적으로 보았을 때 당신 자신의 이익에 우선권을 부여한다거나 혹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익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특별히 좋은 모습이 아니다. (213면)
69. “우리들의 계산은 매우 실용적인 이유로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편애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213면)
70. 공공 정책 입안자들은 더욱 흔하고 표준화된 경우들에 대한 입법을 하면서 공리 원리의 요구 조건과 십계명 의무론자의 요구 조건이 적절히 들어 맞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217면)
71. 어쩌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 제기된 질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대신 “내가 어떠한 유형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어야 할지 모른다. 덕 이론은 이러한 후자의 질문, 그리고 훌륭한 품성을 구성하는 덕목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덕 이론이 윤리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가? (219면)
72. 최근 도덕철학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 최근에는 ‘어떠한 품성을 형성하면서 살아야 하는가’가 관심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부 도덕철학자들은 포괄하는 범위가 좁으면서도 비개인적인 유형의 도덕이론, 다시 말해 지금까지 지배적인 도덕이론이었던 공리주의와 칸트주의에 싫증을 내고, 이제껏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던 ‘덕 이론’의 전통을 부활하였다. (220, 221면)
73. 첫째, 윤리이론은 서로에게 그다지 도움이 될 것 없는 공리주의와 의무론 간의 싸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둘째, 윤리이론은 이론적인 천착을 완전히 포기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도 고려하지 않고서 윤리적인 논쟁거리로 ‘하강’을 하거나, 행동에 대해 함축하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서 단어들과 개념들에 대한 서술들로 ‘상승’함으로써 일어났다. (윤리이론에 대한 천착 없이 기존의 규범윤리를 전제로 하여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응용윤리와 윤리 언어의 문제를 다루는 메타윤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21면)
74. 고대 그리스(주로 소크라데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공헌한 바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은 덕(품성이 갖는 여러 특성들)을 윤리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 둘째, 그들은 용기, 절제, 지혜, 그리고 정의라는 ‘주요한’ 덕 등 구체적인 덕목들을 분석하였다. ... 셋째, 그들은 여러 유형의 품성들에 서열을 매겼다. (227면)
75. 조엘 구퍼만(Joel Kupperman)이 말하고 있듯이, “칸트주의자와 결과주의자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양 학파의 저술을 읽는 사람은 사실상 얼굴 없는 윤리적 행위 주체라는 그림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행위 주체는 자신의 과거 또는 미래와 심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서 도덕적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Kupperman, 1988)
76. '윤리학: 옳고 그름에 대한 탐구‘(Ethics: Inventing Right and Wrong)라는 책에서 존 매키(John Mackie)가 주장하듯이, 만약 용기가 우리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언제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언제인가를 계산하는 성향을 우리가 계발하였다면, 그러한 성향은 참된 용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질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성향 또한 참된 용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232면)
77. 고대 그리스 서적들을 읽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 용기, 고상함이라는 이상에 맞추어 자신들을 개발하는 그들의 감각에 감명을 받게 된다. 고대 그리스의 윤리는 폴리스, 개인, 그리고 미래의 인간의 완전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완전주의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완전주의는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을 우습게 생각한다. 품성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이상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인간들 사이의 도덕적 평등의 원리에 따라 행동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233, 234면)
78. 물론 그의 짜라투스트라적 고지에서는 위대한 영혼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권능과 너그러움으로 천한 빈자들을 간혹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천한 빈자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들이 도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그들을 희생시켜도 무방한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품성의 이상들만으로는 윤리가 짊어져야 할 모든 과업을 수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234, 235면)
79, (1) 누가 또는 무엇이 권리를 지니는가?
(2) 무엇이 권리의 내용 또는 대상일 수 있는가?
(3) 어떻게 권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4) 권리는 양도될 수 없는가?
(5) 권리는 절대적인가? (251면)